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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탈춤의 테두리 1.
기사 입력 2012-10-27 13:36:26  

단편소설 ― 탈춤의 테두리/ 문수요
1.
드디어 일을 끝내고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벌컥” 출입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서는 것 같더니 뒤미처 “탕!” 하고 문 닫기는 소리와 함께 짙은 술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아니, 어떤 녀석이 오밤중에 술 처먹고… )

순간 나는 자기도 모르게 제자리에 슬며시 주저앉은 채 잠자코 밖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곧 “처덕처덕”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지척에 들려오더니 이어 사람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시야를 스쳐갔다. 그때 문틈에다 바싹 머리를 갔다대고 지그시 바깥쪽에 시선을 던지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연분홍색 셔츠를 대충 어깨에 걸친 어떤 노브라 가슴의 여자가 한낱 팬티바람으로 휘청휘청 내 옆 칸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엉?!)
그 바람에 내 입은 금시 더운물에 뛰어든 붕어입이 되어버렸고 두 눈은 마치 백정한테 코뚜레 잡힌 찌러기 눈처럼 확 부릅떠지고 말았다.
일순 나는 두근두근 엄습해오는 긴장의 수은주를 따라 바싹 옆 칸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알코올에 젖은듯한 거친 숨소리와 함께 부시럭부시럭 속내의를 끌어내리는 근지러운 마찰음… 낡은 베니야판으로 뚝딱뚝딱 시늉을 낸 벽 너머로 여자의 소음은 아무런 여과도 없이 고스란히 흘러오고 있었다.

찰나 봉긋한 앞가슴을 포근히 두 손으로 가린 채 요염하게 허리를 비틀고 있는 여자의 라신이 벼락같이 뇌리에 떠올라 나는 부지중 자신의 거시기를 와락 꼬나 잡고 말았다. 아아, 정말이지 뜻에 없는 “홀아비”가 되여 거의 1년 가까이 쿨쿨 숙면에 취해있던 내 남자가 이렇게 불끈 화를 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때였다.
“벌컥!” 옆칸문이 열리며 쓰러질듯 여자가 쏟아졌고 반사적으로 여자는 몸을 가누느라 내가 웅크리고 있는 칸막이 출입문에 쾅 부딪쳐왔다. 잇달아 빠알갛게 매니큐어를 칠한 오종종한 발끝이 문짝 밑단 틈새로 앙징맞게 드러났다. 우우, 별스레 이상스러운 기분을 던져주는 그 요염한 빛깔! 사이 내 눈길은 어쩔새없이 허옇게 노출된 여자의 오동통한 종아리를 치달아 한 마리 독 오른 뱀처럼 힘차게 구불떡거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문살창 너머로 여자의 검스레한 구석을 막 또렷또렷 포착하는 순간 내 뿌리로부터 아찔한 환락이 왈칵, 주르르… 분출했다!

“처우쇼오즈(나쁜 자식)…”
헉! 그때 여자가 갑자기 된욕을 발사했다.
서슬에 아지랑이처럼 아물거리던 내 관능의 세계에 번쩍 섬광이 일어났다. 등골이 오싹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음란, 변태, 관음, 색마… 딴은 내 신상에 자리 없다 치부했던 끈적끈적한 단어들이 별똥처럼 내 뇌리를 직격했다.

(새꺄, 심야 화장실 술 취한 여자한테 언감생심…)
뭉클 내 행위의 심처에 한줄기 냉기가 확 솟구쳐 올랐다. 거의 기계적이라 싶게 더럭 욕망의 노도에 발목을 잡혀버렸던 이 엉뚱한 행위 아아, 이건 도대체 웬 놈의 지랄이었단 말인가…

대책없이 얼굴이 수수떡이 되어가지고 속이 한줌만 해서 앉아있던 나는 순간적으로 오싹 한 몸을 전율했다. 하긴 이러다 이 여자가 나를 발견하고 또 무슨 트집이라도 잡아 온 여관 투숙객들이 죄다 기상하도록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는 날이면 나는 두수없이…

(치, 치한?… !)
눈앞이 아뜩했다. 그러면 진짜 큰일이었다. 이런 개망신이… 아이고,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렇다고 문을 활짝 열고 화닥닥 뛰쳐나갈 수도 없고. 좋기는 될수록 이 여자가 빨리 넘어지던 엎어지던 꼬꾸라지던 이 칸에서 사라져야 하겠는데 반대로 여자는 내 화장실 문 앞을 떡 버티고 서서 뭐라고 열심히 중얼거리기만 한다.

“개-애-새끼… 내가 너를 얼매나 잘해주었는데… 나를 이 지경으로… 그래 간다, 가! 네가 쫓지 않아도. 내 사랑… 깊이 잠든 화원은 고요해 산들바람 불어오는데… "

여자는 중얼거리다 말고 “모스크바 교외의 밤”을 흥얼거렸다. 하지만 “산들바람 불어오는데”에서 “산들바람”에 아주 가사를 날려버리고 말았는지 한동안 끙끙거리더니 이윽고 노래는 포기하고 또 욕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헌데 토막토막 귀전에 날아드는 그 말씨는 뜻밖에도 귀 익은 우리말이 아닌가. 여기에 살고 있는 조선족을 다 합쳐도 100여명이 말랑말랑한 이 북방의 고도 ㅎ시에서 우리 동포 여자를 만나다니. 모름지기 내 뇌리에 부유하던 두려움은 일종 말 못할 반가움과 신기함에 슬며시 자리를 내기 시작했다. 얼굴만 확인할 수 있다면 내일 복도에서 만나면 은근슬쩍 말씨라도 붙이어보겠는데 방정맞게도 여자는 쭉 나를 등지고 있었고 나 역시 반 밀폐 상태에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는 처지라 그녀의 얼굴을 반듯하게 낚시질 한다는 건 어림 반푼도 없는 짓이었다. 그저 그녀의 상반신과 하반신의 부분적 신체 상황들을 작은 문틈사이로 슬몃슬몃 엿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금 그녀의 오른손에는 파란 포장지에 갇힌 화장지가 나른하게 쥐여져 있었고 그녀는 이미 그 사용을 포기했는지 뭐라고 중얼거리기만 한다. 팬티 가생이에 의해 절반쯤 나래가 가려진 범나비 한 마리가 부얼부얼한 왼쪽 엉덩이에 원색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엉덩이에 문신을 한 여자… 나는 별스레 가슴이 서늘해졌다. 목이 두툼한 사내들의 그늘 밑에서 밤거리를 호령하는 가시 돋힌 장미들이 불현듯 뇌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여자는 불쑥 한손을 팬티 안에 집어넣더니 신경질적으로 엉덩이를 긁적긁적하고는 뒤미처 계단 아래로 한발두발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좁은 문틈사이로 여자의 흐트러진 뒷모습이 얼른얼른 잡혀왔다. 노랗게 머리칼을 염색들인 장발의 여인이었다. 삼십대 중반으로 체크되는…
“쾅!”
이윽고 출입문이 닫히며 내 시야에서 여자가 깜빡하고 꺼졌다.

“휴- ”
안도의 날숨이 길게 터졌다. 좌변기가 아닌 옛날 구식변기를 밑으로 하고 한참을 앉아있었던 까닭에 다리는 쥐라도 오르듯 찡찡 저려 오르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새벽 2시가 파랗게 침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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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통보 201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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