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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력사 2 - 간도
기사 입력 2018-07-11 11:55:24  

‘간도’란 명칭의 발원지로 알려지고 있는 유서깊은 ‘사이섬’. 1878년 좌우에 개간되면서부터 이곳은 우리 동포들이 ‘북간도’에로 이주해오는 중요한 길목이였다.

월강죄 두려워 한 거짓말 간도농사
향연이 짙은 력사의 지명—간도
하산봉 농사군 리영수형제

강 건너 땅이 얼마나 기름졌으면 버들이 우거지고 풀들이 키를 넘을가. 대한재로 하여 말라빠진 자신들의 밭을 바라보면서 조선의 리재민들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이렇게 탄식했으리라. 그리고 고양이 기름종지 노리듯 북안기슭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섰을 것이다.

19세기 60년대 조선 종성군 하산봉에 사는 농사군 리영수형제가 끝내 죽음을 자초하는 기아와 맞서 도발적인 행동을 감행한다. 떼목을 타고 용감히 강을 건넌 것이다. 그리고 버드나무를 찍어내고 풀을 베여내여 밭을 일구었다.

그 때를 선구촌 제1촌민소조의 농민시인 심정호씨는 이렇게 말한다.

“로인들한테서 들은 얘긴데 130년전에 종성 하산봉의 리영수형제가 떼목을 타고 강을 건너와 이 천평벌에 첫 괭이를 박았다고 그럽니다. 그 먼저 종성사람들은 저 뚝너머 사이섬에서 농사를 했다는군요. 리영수형제는 월강죄가 무서워 사이섬에 가서 농사를 지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 다음부터 저기 산 너머 마늘골이랑, 애끼골이랑에 가서 밭을 일구었고 석정골이며 연집골까지 들어가 화전을 일구면서도 사이섬에 가서 농사 짓는다고 거짓말을 하잖으면 않됐다더군요.”

선구촌 제6촌민소조 마을 앞 두만강언제에 올라서면 심정호씨가 말하는 사이섬이 한눈에 안겨온다. 마을사람들은 이 섬을 ‘미도(尾岛)’ 혹은 정답게 ‘꼬리섬’이라고 부른다. 얼마전까지도 사이섬에는 조선농민들의 농막이 있었으며 조선농민들이나루배를 타고 건너와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이런 섬이 두만강에는 아주 많았는데 ‘꼬리섬’은 그중 큰 섬이였다. 조선 농민들은 감히 륙지를 범하지는 못하고 그저 이런 섬들을 개간하여왔댔는데 이번에 리영수형제가 담도 크게 이 벌에 첫 괭이를 박은 것이다.

물론 가을이면 곡식을 떼목에 싣고 돌아가서는 정부의 눈을 속이기 위해 여유작작 사이섬 즉 ‘간도(间岛)’에 가서 농사를 지어왔다고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그후 농사군들은 절골(애민촌), 애끼골(제동), 자동, 후동 등 광제욕 지역은 물론 석정과 연집 등지에까지 파고 들어와 화전을 일구어가면서도 ‘간도’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그 때로부터 ‘간도’란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면서 아예 강건너 땅을 ‘도’라고 부르게 되였다.


두만강 ‘사이섬’남쪽에 자리잡은 선구나루터 옛터


‘간도(间岛)’와‘간토(间土)’

1883년 청나라와 조선 두 나라의 변계가 <길림조선상민무역지방장정>에 의해 개방되고 연변지구에 대한 봉금령이 페제되면서 월간국이 설치되게 되였다. 하여 많은 조선농민들이 연변땅에 들어와 황무지를 개간하게 된다. 땅을 개간한다고 하여 연변지구를 ‘간도(间岛)’라고 부르게 되였는데 조선말의 ‘간(垦)’자와 ‘간(间)자가 같은 음이고 ‘도(岛)’ 자와 ‘토(土)’ 는 근사한 음이여서 민간에서는 구별없이 ‘간도(间岛)’라고 불렀다.

조선 리재민들이 끝임없이 두만강을 건너 내지로 깊숙이 들어와 거주하는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간도라는 범위도 커졌다. 두만강 이북인 연길, 화룡, 왕청, 훈춘 등 지역을 ‘북간도’라고 불렀고 압록강 이북지구를 ‘서간도’라고 불렀다.

연변대학 력사학 교수 박창욱선생은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1》에 기재된 자신의 글 〈‘ 간도문제’ 의 발생과 일제의‘통감부 간도림시파출소’ 〉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이주초기 봄갈이 준비에 여념이 없는 조선인 개간민


“두만강류역에는 크고 작은 허다한 ‘섬’들이 있었는데 그중 제일 큰 섬을 ‘간도’라 하였다. 《동삼성정략》이나 《연길변무보고》의 기재에 의하면 ‘간도’는 원래 ‘섬’이 아니다. 지금의 룡정시 광개향의 선구, 광소촌과 조선 종성 사이로 흐르는 두만강의 중국측 강안에 길이 약 10리, 너비 1리가 되는 2,000여무의 ‘복새험’이 있었는데 그 복새험은 광제욕에 잇대여 있는 륙지였다. 이 ‘복새험’이 어느 때부터 개간되였는지는 알수 없으나 1881년 연변지구의 봉금제가 페지되자 월경한 조선족간민들이 광제욕 앞을 개간하느라고 물길을 뺀 후부터 ‘복새험’은 사방이 강물에 둘러싸인 ‘섬’으로 되였다.

당시 한족들은 이 ‘섬 ’을 ‘가강(假江)’ 또는 ‘강통(江通)’이라고 불렀고 조선족간민들은 ‘간토(垦土)’ 또는 ‘간도(间岛)’라고 불렀다. 이로부터 조선족간민들에게서 ‘간도’란 칭호가 나왔다. ‘간도’땅은 주로 조선의 종성농민들이 중국의 월강국에 조세를 바치면서 경작하였는데 매년의 조세총액은 800여냥에 달하였고 월강국에서는 조세를 받아 월강사무비로 사용하였다.”


김철호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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