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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탈춤의 테두리 2.
기사 입력 2012-10-28 12:11:41  

2.
뒤늦게 토를 다는 얘기지만 그 마적 내가 투숙하고 있던 여인숙의 화장실은 저질이나마 형편없는 저질, 저질에도 급별이 있다면 그야말로 수준급이나 다름이 없었다. 단 두 칸뿐인 남녀용 화장실은 베니야판 한 장을 사이둔채 나란히 이웃하고 있었고 변기라는 것도 좌변기가 아닌 옛날 구식 변기였으며 그나마 펌프도 잘 되지 않아 배출해놓은 내용물들이 평균 잡아 하루 2~3시간은 거의 한 치의 변동도 없이 지리멸렬하게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더욱이 여인숙 자체가 반 지하 상태에 있다 보니 비가 조금만 부슬거려도 화장실은 넘쳐나기가 일쑤였고 갖가지 이상한 냄새들이 시때없이 후각을 괴롭히곤 했다.

고향에 있을 때면 거의 아침저녁으로 샤와를 하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참고 견디기가 힘들었지만 별수가 없었다. 3년 전에 러시아로 장사를 떠난 아내가 귀국한다고 하여 마중을 나온 것이 벌써 예정기일을 넘어 닷새가 흘렀고 수중에 지니고 있던 돈도 돌아갈 차비를 내놓고는 서서히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요행 통화가 이어지기 바쁘게 부아통을 터뜨렸고 그러는 나한테 아내는 사뭇 미안조로 내일이면 꼭 들어선다고 했다. 뭐, 나머지 물건을 처리하는데동료들끼리 좀 문제가 생겼다나? 별수가 없었다. 사흘까지 버티자면 싸구려 여인숙에 몸을 던지는 수밖에. 그래서 찾은 것이 바로 이 반지하 여인숙이었다. 또한 끼니도 길거리 난전에서 대충 때우다보니 느닷없는 속탈에 화장실 야근을 서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녘 때 아닌 “돌발사태”로 뒤늦게야 잠을 청했던 나는 점심 무렵에야 겨우 잠에서 깨여났다. 장시간 실면을 했던 까닭에 되우 머리가 묵직해났고 그래서 나는 바삐 세면실로 향했다. 시원히 머리를 감는 것으로 좀 맑은 정신을 바꾸어보려는 생각에서였다. 마침 세면실에는 누구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대야 쪽으로 향했던 손을 거두어 “삐익” 수도꼭지를 틀었다. “쏴-” 아직 점심때가 일러서인지 아침나절이면 결속단계에 이른 쇠오줌처럼 약하게 나오던 물줄기가 금방 실하게 토해졌다. 잠간 물줄기를 가늠하며 망설이다말고 나는 다짜고짜 수도꼭지 밑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곧 머릿속으로 찬 기운이 엄습했고 나는 그 찬 기운에 흐느낌 가까운 음성을 토해내며 힘차게 머리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발치에 놓인 일회용 싸구려 샴푸를 찾아 머리에 마구 바르고 지그시 두 눈을 감은 채 다시 수도꼭지를 찾아 손 더듬질 할 때였다. 얼쩡거리는 내 발치에 뭔가 툭 마쳐오기에 금시 아래로 향해 슬며시 눈을 떴던 나는 꿈틀 놀라고 말았다. 빠알갛게 매니큐어를 칠한 여자의 오종종한 발끝이 또렷하게 내 시야에 잡혀왔던 것이다. 그 바람에 나는 황급히 두 손으로 눈가를 문지르고는 번쩍 두 눈을 떴다. 한가득 빨랫감이 담긴 노란 비닐대야를 가슴 무겁게 안고 있는 장발의 여자가 수평으로 바라보이는 코앞에 그린듯이 서있었다. 뜻밖에도 새벽녘 화장실에서 조우했던 여자였다! 놀랍게도 여자는 불그스레 충혈된 눈길로 나를 정시하고 있었는데 위쪽 단추 두개가 채 꿰이지 않아 헐거워진 티셔츠 깃 사이로 풍만한 젖가슴이 가볍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여자는 새벽녘과는 달리 연분홍색 브래지어를 불룩하게 착용하고 있었다. 무르익은 사랑의 자줏빛 정열을 은유처럼 표현하고 있는 브래지어… 순간 내 심장이 후두두 고도했다.

아마 여자는 그렇게 내 머리감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고 있은것 같았다. 세면실이라는 것도 수도꼭지를 가설한 것이 고작 세 개 뿐이었고 그나마 두개는 인위적인 고장으로 사용이 불가능했으니 자연 그럴 법도 했다. 또한 내가 괴상망측하게 수도꼭지 밑에다 머리를 틀어 박은 채 흑흑 느끼고 있었으니 여자의 체면에 감히…

나는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을 서둘러 훔쳐내며 여자한테 자리를 권했다.
“저… ”
그러는 내 “관심”에 여자는 눈인사로 갸웃 고개를 움직여보이고는 곧 옆으로 몸을 돌리려다 말고 지나가는 말처럼 조용히 물음을 흘려왔다.

“혹시… 동포분 아니세요?”
이곳 현지 조선족들과는 조금 억양이 다른 연변식 한국말투, 그리고 어딘가 목이 쉰듯한 허스키한 음성이 툭 내 귀전을 건드렸다. 정작 속으로는 어이없이 두근거리면서도 모처럼 생긴 이 기회 어떡하면 요리해볼까 제창 주물럭거리고 있던 중인데 반대로 여자의 물음이 먼저 내 귀를 낚아채자 나는 금방 허라도 찔린듯 꿈틀했다.

“아니, 그럼?… ”
그녀에게 자리를 내주느라 세면대의 빈구석을 향해 묵도하듯 잔뜩 허리를 수그리고 있던 나는 급기야 활짝 허리를 펴며 짐짓 둥그렇게 놀라움을 가장했다.
“그, 그럼 그쪽도?… ”
여자는 알릴듯 말듯 미소를 지었다.
“고향은요?”
“연변이에요.”
조금 열이 뜬 내 물음에 여자는 진작 준비해둔 답이었다는 듯 제꺽 대꾸했다.
“네? 여, 연변이라구요? 연변 어딘데요?… ”

“연변”이라는 말에 이번에는 내가 진짜로 놀라가지고 줄줄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훔칠 사이도 없이 연방 물음을 던지는데 거기에 여자는 잠시 서성거리더니 “아이, 옷이 다 젖네요.” 하고 세면대 한구석에 걸려있던 내 타월을 냉큼 채뜨려 화급히 건네주고는 잡음이 한창인 수도꼭지를 조금 약하게 비틀었다. 그리고 그 밑에 자기가 들고 온 대야를 내려놓고는 이어 나와 조츰 떨어져서 “저는 ㅇ시인데…” 하고 중얼거리며 은근슬쩍 내 얼굴을 빗질했다. 핼끔 귀가 들린 눈초리가 요염하게 빛났다.

“ㅇ시? 나두 ㅇ시인데! ”
“그래요? 그럼 ㅇ시 어디서… ?”
“군중문화예술관에… ”
“군중문화… 예술관?”
그러자 여자는 잠자코 미간을 찌프리더니 나직이 중얼거렸다.
“오, 그러면 연변의 이름난 가수들이랑 소품배우들이랑 잘 아시겠네요?… ”
“허허… 잘 알기는 무슨, 그저〈나무군〉이랑〈떼떼부부〉랑 두루두루… ”
헌데 그 자랑처럼 흘린 내말이 입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여자가 반짝 두 눈을 빛내며
“그럼 혹시 권학선생님 알아요?”
하고 번개같이 낚시를 던지고는
“황권학이, 이전에 드라마〈별들〉에서 나왔던 주인공배역 말임다”하며 완전 연변말투로 부리나케 토를 달아 왔다.

“황권학? 주인공배역 맡았다고?”
“예예, 곱슬머리에 키도 맞춤하고 잘 생긴 사람 말임다. 외국사람같이 눈동자가 좀 파란…”
“글쎄 이름은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하지만 정작 집어내자고 보니 한사코 기억의 저편에서만 아물거리는 얼굴이라 일단 포기하고 그냥 도리머리를 해 보이는데 여자가 금방 리플을 달아 왔다.

“저, 소문에 그 사람 연변TV에 있다고 하던데…”
“글쎄…”
그런데도 역시 애매한 내 대답에 여자는 금방 시무룩해 가지고 수도꼭지를 힘껏 “삐익” 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실하게 토해지던 물줄기가 어찌된 영문인지 실뱀처럼 조르륵 조르륵 안타깝게 꼬리를 잇고 있었다. “윙-” 찰나 나는 강한 이명을 느끼며 갑자기 나타난 침묵 앞에 당황해났다. 불쑥 헛거미가 잡혔다. 아침을 굶었다는 사실이 뒤늦게야 생각났다.

“여긴 출장을 나왔씀까?…”
생각밖에도 여자의 호기심은 집요했다.
“아, 저 말입니까? 출장이 아니라 마중을요…”
“마중?”
“네. 러시아에 간 아내가 내일 들어온다고 해서…”
“우~ 그렇씀까? 그럼 나간지 꽤나 된 모양임다. 돈도 꽤 벌었겠슴다… 남편 되시는 분이 이렇게 마중까지 나오신걸 보니…”
“허허…”
여자의 흡반같은 어투에 또다시 말꼬리를 잡혔으나 이상하게도 나는 기분이 흐뭇했다. 남자의 외로움에는 여자가 약이라더니…

“뭐, 나간지는 3년이나 돼두 보따리장사니까 별루…”
“움마 3년씩이나! 그럼 그 수속은 어디서 했담까?”
“네. 시관광국에 있는 여행사에서…”
“ㅇ시 관광국을 그럼까?”
“네.”
“그럼 혹시… 태성일이라는 분…”
“네~에?”
여자의 낚시에 후딱 걸려나온 내 대꾸가 민요가락처럼 휘익 늘어졌다.
“그… 부국장으로 있던 태성일이를?”
“네, 맞슴다. 바로 그 태국장님!”
그러면서 회동그랗게 놀라는 여자의 눈길에 나도 그만 둥그렇게 전염되고 말았다.

“태성일.”
허참, 이것을 일컬어 우연이라 하는가, 인연이라 하는가. 넓고도 좁은 것이 세상이라고 하더니… 공교롭게도 나는 그 “태국장님”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도 그저 잘 알다 뿐이 아니었다. 소학시절부터 고급중학시절까지 녀석은 쭉 나와 송아지친구였고 농촌에서 땅을 다루며 무명작가로 살고 있던 나를 도시로 호적을 옮겨주고 직업까지 마련해준 “은인”이기도 했다. 그만큼 나와 녀석은 이란성 쌍둥이와도 같았고… 그런데 이 여자가 내 친구를 알고 있다니? 지난 세월 녀석과 조석으로 상대하면서도 녀석이 이런 여자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감감 모르고 있었는데… 하다면 녀석이 여적 나한테 털어놓지 않은 비밀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하긴 사람마다 심장에 묻은 비밀이 하나씩은 있다고 하던데. 그제야 나는 이 여자의 이름이 뭔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우선 대답은 생략하고 이름부터 발굴하기 시작했다.

“전… ”
여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저… 옥경이라고 함다. 리-옥-경. 한산 리(李)씨.” 하고 이름에 다시 성씨에 본까지 더해 또박또박 대꾸했다. 말 끝낸 입가에 숫저운 미소가 찰랑거리고 있었지만 그 발그레한 표정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은연중 내비치고 있었다. 시어머님 몰래 홍시를 꺼내먹다가 덜컥 들켜버리고 만듯한 며느리의 표정이랄까…
“리옥경?”
좌우간 녀석한테서는 생전 들어보지 못한 이름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난… 물 심(沈)자에 나라 국(国)자… ‘심국’이라고… ”
“네… 헌데 그 태국장님 지금두 거기 관광국에 계심까?”
하지만 여자는 내 이름자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 친구의  근황만 추격한다.
“저, 소문에 들을라니까 반년 전에 거기서 사직하고 나왔다던데…”
“어디로요?”
“하… ”
나는 “하남성”이라는 말을 하려다 말고 “한국이라던가? 글쎄 소문에는 외국에 나갔다고 하던데… ”하고 뒤끝을 흐렸다.
“소문에요?”
“네.”
“그럼 태국장님의 친구가 아니… 라는 말씀?”
“친구라기 보담은 그냥… 낯익은 사이랄까요. 어쩌다 길에서 만나면 그냥 인사치레나 하는… 도시가 워낙 손바닥만 하니까 자연히 서로 얼굴도 익히고…”
순간 뭔가 짚이는게 있어 나는 어눌하게 말끝을 흐리며 딴전을 쳤다.

(이 여자 도대체… 친구와 어떤 사이지?)
새삼스레 반가움을 넘어 꼬불딱 의심이 자반뒤집기를 해왔던 것이다.
“저, 꼭 말씀드린다면… 그분, 그분은… ”
(첫사랑? 정부? 아니면?… )
무언중 내 얼굴에 비낀 의심을 마주하고 여자의 입술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분, 그분은… 제 은인이람다. 아직 은혜두 값지 못한…”
“뭐요, 은인!?”
여자의 엉뚱한 답안에 나는 그만 소스라치듯 놀라고 말았다. 수도꼭지 밑에 놓인 여자의 대야에 어느새 물이 자란자란 넘쳐흐르고 있었다…


<다음 기에>
연변통보 201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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