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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탈춤의 테두리 5.
기사 입력 2012-11-04 09:56:07  

5

별스레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여인숙에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다저녁무렵이었다. 조심조심 층계를 즈려밟으며 반지하 여인숙의 문을 따고 침실로 향하던 나는 그만 이상한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촉수 낮은 구식 전등불이 불그레 빛나고 있는 복도 끝머리 침실에서 그 소리는 기묘한 음성으로 하모니를 연주하고 있었다. 절주있게 삐꺽거리는 침대의 마찰음과 함께 애써 울음을 삼키듯 간헐적으로 토해내는 여자의 음성… 순간 나는 발에 뿌리라도 내린듯 멍청하니 그자리에 그루잡히고 말았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며 심장이 후두두 고도했다. 무슨 소리인지, 구경 어떤 상황에서 반주되는 소리인지 나는 반사적으로 깨달았고, 깨닫는 그 순간 내 남자의 본능이 힘차게 기지개를 켰다.

   "씨팔!"
   찰나 이유없이 누군가를 속으로 꾸짖었다. 그냥. 꼭 집어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야속한 심정이었다.
   "요즘 인연들이란 참,…"
   그러면서 그 무슨 선각자처럼 헤헤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도리머리를 했다.

   (거리에서 만난 인연들일까? 아님 집없는 주말부부? 혹시 금과를 맛보는 대학생들?... )
   그런 물음에 멋없이 답안을 굴리며 나는 여과없이 귀로 날아드는 그 적라라한 육체의 하모니에 대책없이 마음을 울렁이고 있었다.

   “삐걱삐걱…”
   “아… 아… 흑!”
   하모니는 고조로 채찍질을 하고 있었고 그 소리에 어이없이 부풀어 오르는 남성을 간신히 달래며 나는 바삐 내 침실로 들어섰다. 뭔가 방도를 구하지 않으면 3년이나 녹이 쓸었던 내 창날이 꼭 사고를 낼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반지하 여인숙이어서 원체 어두운데 거기에 반쯤 바깥이 보이는 창문에마저 커텐을 쳐놓다 보니 침실안은 더욱 어두컴컴했다. 바삐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딸깍!" 소리와 함께 불이 들어왔다. 강렬한 백열등 불빛이 두눈을 쏘았고 거기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닫는데 난데없는 여자의 소리가 홱 내 귀를 채갔다.

   "인제 오세요?"
   "누, 누구?"
   등줄기에 냉수벼락을 맞은듯 화닥닥 그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나는 둥그렇게 놀라고 말았다.
   몸에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여자가 내 침대에 반쯤 등을 꼬부린채 누워있었던 것이다! 리옥경, 바로 그 여자였다. 발톱에 빠알갛게 매니큐어를 칠한… 엉덩이에 범나비 문신을 한…

   "여, 여기는?..."
   뜻하지 않은 여자의 출현에 나는 하얗게 머리를 비우며 꺽꺽거리기 시작했고, 그러는 내 바보같은 표현에 여자는 책망하듯 나를 곱게 흘겨보며 다 알고 있지 않느냐? 는 표정으로 묘하게 입귀를 실룩였다.
  
   "참, 빨리 불을 끄지 않고 뭘해요? 남 부끄럽게…"
   "아… 아… 아앗!..."

   그때 밖으로부터 쾌락의 언덕을 질주하는 야성의 소리가 내 뒤통수를 호되게 때려왔고,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전등불 스위치에 손을 가져갔다. 다시 컴컴하게 몰려온 어둠속에 내 남성의 전등불이 벌겋게 켜지고 있었다…

   무연한 들판으로 바짝 꼬리를 사린 들개 한마리 장쾌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들판은 들쑥이며 우엉이며 잡초들이 풍겨놓은 들크무레한 냄새와 승벽으로 우는 풀벌레소리들로 화창했다. 개는 저 멀리 봉긋이 살아오른 두개의 구릉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고 들판은 개가 헐떡이는 숨소리로 꿈틀꿈틀 살아나고 있었다.

   금잔디를 곱게 두른 구릉은 엷은 운무에 알린알린 시야를 희롱했고 개는 한달음에 두개의 구릉 사이로 훌쩍 뛰어 올랐다. 난데없는 불청객에 간밤 내려왔던 운무가 흩날렸고 깃발처럼 빳빳이 꼬리를 치켜든 개는 열심히 궁둥이를 흔들며 뭔가를 찾아 그 구릉을 배회했다.

   구릉 마루에 올라가 앞발로 땅을 후벼도 보고 킁킁 냄새를 맡아도 보고 그러면서 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뭔가 못마땅한지 간단없이 낑낑 신음을 토막치기도 했다.

   문득 어디선가 한가닥 미풍이 불어왔고 솔솔 향기로운 내음이 묻어왔다. 두귀 쫑끗 발톱을 세우고 코를 벌름거리던 개는 후닥닥 구릉에서 뛰어내려 힘차게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곧 무성한 풀숲이 나타났고 향기로운 내음은 바로 멀지 않은 곳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근처에 시내물이 흐르는 소리도 조잘조잘 귀맛좋게 들려오고 있었다. 개는 주저없이 풀숲으로 뛰어들었고 순간 그곳에서 밤을 지켰던 들새 몇마리 푸드득 날아올랐다. 물씬 물씬 풍겨오는 황홀한 내음에 개는 안절부절 못하며 풀숲을 쏘다녔고 그러던 어느 순간 깊숙한 구덩이에 풍덩 빠찌고 말았다. 혼겁해진 개는 뛰쳐나오려고 길길이 날뛰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구덩이의 입구에 있는 흙들이 비오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바닥에서 샘물이 퐁퐁 솟구치기 시작했다. 환장할 지경으로 향긋한 내음을 풍기는 샘물이었지만 개는 어서 빨리 그 구덩이를 뛰쳐나오는데만 정성을 넣고 있었다. 뛰고 떨어지고, 뛰고 떨어지고…

한번 두번, 수십번, 수백번… 최종 맥이 진한 개는 혀를 문채 바닥에 쓰러졌고 그 순간 구덩이가 전율하더니 곧 무너지기 시작했다.

들판위로 가없이 넓게 펼쳐진 하늘가는 매지구름으로 컴컴하게 짓눌려 있었고 이따금 번개가 번긋번긋했다. 우레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 있었다……

"찌르륵!... 찌르륵!... "
요란한 귀뚜라미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황급히 소리나는 쪽으로 손을 허우적이다가 그 소리가 지척이 아닌 침대아래에서 들려오기에 바삐 벽을 더듬어 전등을 켰다.

침대아래에서 열심히 귀뚜라미소리로 울고 있는 휴대폰에는 "태성일"이라는 이름 석자가 현시돼 있었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야, 뭐하고 있는데 씨팔, 전화도 받지 않고…"
친구는 아예 인사말을 삭제한체 다짜고짜 욕부터 발사하고 있었다.
"아, 늦잠이 든게 그만…"
나는 허위가 아닌 진짜 피곤을 긴 하품으로 전달하며 쩝쩝 입을 다셨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정말 니가 어제 말한 그 여자… 지금도 거기 있는거야?"
"리옥경?"
"그래, 그 리옥경이라는 여자."

그제야 나는 새삼스레 주위를 둘러 보았다. 침실 안에는 나를 내놓고 아무도 없었다. 알몸으로 침대 가녁에 걸터앉아 전화를 받고 있는 내 모습이 탁상앞 바람벽에 걸린 거울에 흉측하게 드러나 있었다. 잔뜩 고개를 숙인 내 남자의 상징에 시선이 가는 순간 엇저녁 옥경이라는 여자가 알몸으로 내 침대에 누워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아, 그 여자 언제 나갔지?... )
나는 묵직해나는 머리를 이곳저곳 주먹으로 꾹꾹 누르며 두뇌를 회전시켰지만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불이 꺼지기가 바쁘게 알몸의 여자가 내 허리를 끓어 안았고 그러는 여자를…  

"너 진짜 간밤에 그 여자하고 잔거라도 아니야?"
"간밤에?"
친구의 말에 나는 바삐 창문 커텐을 옆으로 반쯤 밀었다. 밖은 어느새 희번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럼 지금이 새로운 하루란 말이지? 나는 어처구니 없이 한밤의 흔적을 지워버린 내 생체리듬을 탓하며 친구에게 반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무슨 일? 큰일이야!"
"큰일?"
"리옥경, 그 여자 바로 나를 함정에 넣은 여자란 말이다!"
"뭣이? 니를?"
나는 "꿱" 거위소리를 냈다.
"내가 관광국에 있을 때 출장갔다가 호텔에 웬 여자가 들어왔다고 했잖아? 바로 그, 그 여자란 말이다. 엉덩이에 문신을 한 여자! 오늘 새벽 뒤를 보다가 갑자기 생각났어. 니가 어제 한 말 굴려보다가!"
"그-래-애?"
엿가락같이 휘익 늘어진 응대가 내 입가에서 신음처럼 흘렀다.

"당장, 그 여자를 잡와 둬. 당장!"
전화 저켠에서 악을 쓰는 친구의 모습이 보이는듯 했다.
"오, 그래 알았어."
황급히 전화를 끊고 바닥에 널린 옷가지들을 찾아 허둥거리던 나는 그만 굳어지고 말았다. 그 "리옥경"이라는 여자 오늘쯤 러시아로 출발한다던 말이 불쑥 떠올랐던 것이다.

(아내도 오늘 들어온다고 했지?)
찰나 나는 못가에 나선 아이처럼 덤벙거리기 시작했다.
어딘선가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리는 소리가 귀 따갑게 들려오고 있었다.

<다음 기에>

연변통보 2012-11-04

김성

탈춤좋다 아이가.

201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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