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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은 中原이다....(3)
가설    조회 1,413    2008.01.15가설님의 다른 글      
현재 우리는 흔히 中原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中國人’으로 이해하곤 한다. 그러나 ‘中國’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특정한 국가를 지칭하는 말로 이해되고 사용된 것은 역사적으로 아주 최근의 일임을 알아야 한다. 즉, 이 말은 1910년 한족의 민족운동가 孫文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되었으며,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본래 ‘中國’이라는 말은 ‘王이 거주하는 都城’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말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중국의 史書들에 빈번하게 나오는 ‘中國’이라는 단어를 보고, 오래 전부터 중국이 있었고, 중국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오해를 하게 된다.

우리가 ‘中國’이 ‘王이 거주하는 都城’을 의미하는 말임을 알게 되면, 비로소 우리는 그 말이 중국의 사서들 속에서 왜 그토록 자주 사용되곤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수나라나 당나라처럼 한족들이 우리 동이국가들과 견줄 수 있을 만큼 강대한 국가를 세울 경우, 그들은 우리 고구려나 백제에게 외교문서를 보낼 때마다 꼭 ‘中國’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그 말이 함축하는 바는 한 마디로 우리 고구려나 백제에게 ‘도전’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구려나 백제를 ‘아래’, ‘지방’으로 취급하면서 소위 ‘中心’ 혹은 ‘王(이 경우는 天子)이 거주하는 都城’에서 명령을 한다는 식의 연출을 하는 것으로서, 이 자체가 이미 하나의 도발이며 도전인 것이다. 즉 이는 그 문서를 보내는 주체가 ‘진정한 天子’임을 강조하는 정치적 수사인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지금의 중국, 그리고 중국인을 의미하는 말이 달리 있었음을 추리할 수 있다. 실제로 여러 가지 말이 존재했었는데, 그 예로는 ‘黃土’, ‘西土’, 혹은 가장 일반적으로 ‘支那’등이 있으며, 보통은 그저 수, 당 같은 왕조명이 사용되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송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中華’라는 말이 사용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중화‘라는 말은, 그것이 비록 ‘통시성’을 가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아직 ‘나라의 이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오랑캐들과 변방 등에 대비되는 ‘문화적 중심지’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에 그것은 문화적 개념인 것이다.

사실, 중국은 ‘중국’이라는 말 보다는 ‘중화’라는 의식과 개념을 먼저 의식했으며,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의 진정한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중화’ 개념을 먼저 정확히 이해해야만 한다.

요약적으로 정리하자면, ‘중화’라는 개념은 ‘지리학적으로는’ 주로 ‘만리장성’ 이남의 지역을 의미하며, ‘경제학적으로’는 ‘수렵이나 어업, 그리고 유목’에 대비되는 ‘농업’을 의미하며, ‘문화적으로'는 ’야만‘, ’오랑캐‘에 대비되는 ’문화민족‘ ‘문명세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황제 헌원에서 맹아가 싹터서, 공자가 기획했으며, 진시황에 의해 현실화되기 시작했고, 漢나라때 본격화되어, 마침내 宋대에 이르러 완성된다.

본래. 동아시아는 夷族들에 의해 건설되고, 운영되었던 문명세계이다. 특히, 夷라는 말의 실제적 기원인 ‘東夷’족은 동아시아 문명의 개척자들이자 중추세력이었다. 이는 현재 ‘요서지역’에서 발굴되는 ‘홍산문명’의 유적과 유물들에 의해 ‘과학적으로’ 검증되기에 이르렀다.

‘中華’의 역사는 이런 동아시아 문명의 개척세력들이자 중심세력인 ‘東夷’로부터의 분리/독립/투쟁/정복/지배의 과정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중화’의 맹아는 ‘황제 헌원’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 역시 본래는 ‘동이’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동이의 권위’를 부정했으며, 스스로 동이와는 다른 세력의 시조가 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의 섬서성, 사천성, 산서성 지역에 흩어져 살던, 당시까지 그 어떤 역사적  정체성도 없고, 이질적인 여러 부족들, 즉, 당시까지 그저 ‘黃土人’, ‘西土人’이라 불렸던 세력들을 하나로 규합, 문화적 주류였던 ‘동이’세력에 도전을 했다.  

이 도전의 결과가 바로 그 유명한, 지금의 하북/산동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蚩尤세력과 지금의 북경부근의 ‘탁록평원’에서 치렀던, ‘탁록대전’이었다. 이 전쟁은 동아시아 역사상 최초의 세계대전이며, 이를 계기로 동이와 서토, 혹은 支那가 분리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록 支那라는 말이 전적으로 ‘미개한 변방’을 의미하며, 이 전쟁에서 銅頭鐵額의 모습을 했던 蚩尤의 신출귀몰하는 전술에 의해 헌원 세력이 대량살육 당하고, 대패했으며, 헌원은 치우 앞에서 다시는 ‘동이’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지금의 하남성 지역 남쪽으로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중원‘지역의 패권을 두고 이후 4천년간 진행되었던 支那人들의 역사적 ’對 東夷 투쟁의 시발점’을 의미했다.

이런 支那의 ‘對 東夷 투쟁’이 하나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계기는 바로 秦나라의 등장이다. 진의 시황제는 춘추 전국 시대의 전국 7웅 중의 하나이자 그 자신 동이계 사람이었지만, 그 역시 동이로 부터의 단절을 시도했다. 그가 당시 하북/산동 지역의 동이계 나라들을 모두 정복하고, 소위 천하를 통일한 다음에 그 유명한 ‘만리장성’을 쌓았을 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현재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고조선을 대표로 하는 동이와 흉노를 대표로 하는 그 역시 동이계열 북방 유목세력과의 ‘심리적/문화적/역사적’ 단절과 독립이었다.

이후 ‘만리장성’은 줄곧 ‘군사적 의미’ 보다는 ‘심리/문화/역사적 단절과 독립’을 의미했다. 진시황은 그것으로써 철저히 ‘농경’에 기반한 새로운 문화/문명/민족을 기획했으며, 이는 바로 宋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明을 거쳐, 현재 중화인민공화국까지 이어지고 있다. 진과, 한, 그리고 그로부터 생겨한 漢族은 자신들의 ‘심리/문화/역사적 권역’을 언제나 ‘농경지역’으로 제한했는데, 이는 심지어 그들의 세력이 성장하여 북방의 유목세력들을 정벌하게 되었을 때조차 그대로 유지된다. 그들이 북방 유목세력들과 동이를 정벌할 때조차도 그들의 문화적 확대를 위하기보다는 오직 그들의 ‘농업세계’의 ‘안정화’를 위해서였다.

이에 반해서 ‘동이’는 그 지리적 기원을 지금의 ‘요서지역’에 두었는데, 요서지역은 고대 역사에서 동아시아 최고의 천혜의 조건들을 두루 갖춘 지역이었다. 요하와 난하, 그리고 대릉하와 시라무센 강 등으로 둘러싸인 광활한 충적 평야지대여서 농사를 짓기에 좋으며, 해산물이 풍부한 발해만으로 연결되어 어업을 하기에도 좋으며, 중원지역과는 달리 북방의 유목지역과 지리적으로 개방되어 있어서 당시 문명적 선도세력이었던 유라시아 유목문명과 만날 수 있었으며, 다시 하북지역으로 연결되어, 당시 중원의 핵심지역이었던 하북/산동지역으로 쉽게 진출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요서지역’이야말로 진정한 문명의 중심지이며, 참된 中原이자, 支那에 대한 ‘本那’ 였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현재 세계 고고학의 기적이자 혁명인 ‘진정한 세계 최초의 문명 발상지’인 ‘홍산문명으로 대표되는 대요하문명’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요하문명의 주인공이 바로 배달/고조선이다. 그동안 전설과 신화로만 치부되던 고조선의 찬란한 영광이 지금 서서히 사실로서 정립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조선민족의 진정한 기원이 이 요서지역이었음이, 이 숨겨진 신비의 제국이 드러나면서 밝혀지고 있다.

원래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비록 현상적으로는 많은 나라들과 그에 따른 국명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실재로 우리 조선 민족에게 있었던 ‘나라’와 ‘나라이름’은 오직 ‘조선’뿐이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조선’이외에도 ‘부여’, ‘예’, ‘옥저’, 그리고 유명한 ‘고(구)려’, 백제 등의 이름들을 볼 수 있었으며, 그것들이 각각 독립적 국명이라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의 역사에 무지한데서 기인한 오해일 뿐이다. 실제로 그것들은 각자 독립적인 나라이름들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거대 복합국가를 이루고 있던 각 ‘지역명’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부여’는 지금의 의미로 ‘서울’이다. 즉, ‘부여’의 의미는 ‘中國’의 본래적 의미와 유사하다. 그래서 부여에는 단군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처럼 ‘부여’가 ‘서울’의 의미와 유사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고조선 이후의 소위 ‘열국시대’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상고사, 특히 고조선에 대해서 공부할 때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일반적인 ‘중앙집권적 통일 대제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광활한 영토를 기반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전제정치국가’는 동아시아 역사에서는 ‘秦’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중원에서는 한, 수, 당으로 이어지며, 이런 흐름이 우리 측에서는 고구려에서부터 시작한다. 소위 동아시아 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는 기존의 ‘도시국가적/지역자치적’ 정치형태에서 ‘중앙집권적 전제정치’형태로 이행하는 중요한 과도기이다.

한편, ‘부여’가 ‘서울’을 의미하는 말이었던 것에 비해서 ‘고(구)려’는 당시 ‘꼬우리(까우리)’로 발음되었으며, 이는 지금 말로는 ‘가운데 마을(지역)’을, 한자로는 ‘中部’를 의미한다(나는 이전에 이를 ‘中部’가 아닌, ‘中國’으로 이해했었다. 물론, 중앙집권적 전제정치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고구려 사람들은 후에 ‘고구려’를 실제로 ‘中國, 즉 세상의 중심국가이자 천자국으로 이해했다.). 이는 하나의 거대한 연합국가인 고조선을 구성하는 여러 지역(혹은 주) 중에서 고구려가 위치한 곳이 가운데 지역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흐름은 고구려 다음의 ’발해‘에도 이어진다(’발해‘가 ’발해‘인 이유는 요서지역의 ’발해만‘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민족은 고조선 말기부터 지속되었던 ‘분열’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조선’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본래 우리 민족에게 나라는 오직 ‘조선’뿐이며, 우리 민족은 이 하나의 거대한 조선 내에서 수많은 다양한 지역 세력들이 서로 각자의 지역에서 ‘자치권’을 가지며 살아왔던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본래적 정체가 지역자치이며, 오직 이 경우에만 ‘분열과 갈등’에서 벗어나 ‘홍익인간의 대화합’을 이룰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와는 달리 支那의 역사에서는 ‘지역자치’개념이 없다. 그들은 그 기원에서부터 ‘계급주의와 중앙집권적 전제정치체제’에 근거한 ‘민족/정치/문화/역사’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되었듯이 우리 東夷는 그 근본이 ‘지역자치’이다. 그리고 전체를 통솔하는 왕은 ‘전제군주’가 아닌, 각 지역 세력들 간의 분쟁과 이해관계의 ‘중재자/조정자’이다. 바로 이런 東夷와 朝鮮 정치체계의 고유성으로 인해서, 支那의 사서들에 의하면, 고조선시대의 세율이 개인 수익의 ‘1/20’이라는 이상적인 수치가 가능했던 것이며, 단군께서 그토록 검소한 삶을 사셨던 것이며, 한 마을의 모든 집들이 밤에도 대문을 걸지 않아도 도둑이 없었던 것이며, 그토록 축제와 대동제가 활성화되었던 것이며, 인심이 유순했던 것이며, 오래도록 支那의 성인들로부터 군자의 나라, 하늘나라, 이상 국가로 칭송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우리 東夷의 고유한 성향과 시스템으로 인해서 왜 우리가 소위 ‘역사시대’, 즉 ‘중앙집권적 전제정치국가’ 시대가 시작됨과 동시에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흐름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분열과 반목’의 역사적 궤도에서 비틀거리게 되었으며, 그토록 우위를 가지고, 자부심을 가졌던 支那와 西土人들과의 역사적 투쟁과 경쟁에서 점차적으로 밀리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시대적/역사적 숙명이라 할 수 있다.

支那人들은 빈곤한 기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점차적으로 성장하는 흐름을 탈 수 있었으며, 드디어는 인류문명의 근원인 우리 東夷를 넘어서는 역사적 운을 얻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그런 정복의 역사의 종착지에서 급기야 우리 東夷의 명줄을 끊으려는 단계에 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지금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의 최후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다하더라도, 그들이 분명히 인정을 하고, 우리가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그들 支那적인 것이 진정으로 인류에게 참되게 기여한 것이 있는 가이며, 그들이 역사 속에서 나름의 여러 政體들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들의 무의식과 실제적 현실을 이끌어왔던 것은 ‘폐쇄적 계급주의에 기반한 노예착취 시스템’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개방화를 외치는 지금도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다.

易의 사유의 기본원리는 ‘物極必反’ 과 ‘原始反本’이다. 어떤 하나의 국면이 그 절정에 도달하게 되면, 어느 순간, 그와 반대되는 국면으로 뒤바뀌기 시작 한다는 것이며, 모든 변화의 시작은 근본으로의 회귀라는 것이다. 영역을 동아시아로 좁혀도, 이제  우리는 어떤 하나의 역사의 극점을 느끼기 시작하며, 새로운 역사적 흐름을 염원하기 시작한다.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그런 필요성을 강제하고 있다. 뭔가 새로운 국면의 전환이 강력하게 욕구되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의 완성이자 종결점에 우리는 서있다. 우리는 지금 최고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꿈을 꾸어야만 한다. 支那의 전제정치와 서구의 제국주의, 그리고 우리 東夷의 갈등과 분열의 역사는 모두 ‘하나’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못났기 보다는 그것이 우리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디어 이 고달프고 끝끝내 적응하기 힘들었던 시대가 지금 서서히 저물고 있다. 이는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의 꿈을 꿀 때다. 그것은 한 때, 우리가 가장 편안해했던 현실이다. 이제 머지않아 인류문명의 진정한 새벽을 열었던 동방의 빛, 東夷가 돌아올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老子가 꿈꿨던 小國寡民의 이념과 멀지 않으리라.  

출처 : 시대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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