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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띠’해에 ‘황소’를 말한다
기사 입력 2021-03-23 09:23:25  

올해는 소띠해다. 1949년 소띠로 태여난 나는 ‘황소’를 말하고 황소의 ‘정신’을  찬미하고 싶다.

매양 내가  황소를 볼 때마다 그의 둥근 눈에서는 50여년 전  내가 황소수레를 몰고 이도구  학상동 고개를 넘나들던 장면이 한장 또 한장 찍혀나온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부모한테 효도하는 자식에 ‘황소’ 한마리면 큰 재부로 여겼다.

소는 부지런하다. 당나귀처럼 떼 부릴 줄 모르고 부지런히 일한다. 그리고 또 순진하다. 그저 “하라.” 하고 한마디 하면 죽을 둥 살둥 모르고 일을 한다. 그래서 일 잘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두고 “황소처럼 일한다.”고 말한다.

소는 닭 같은 짐승들이 소구유를 쏘다니며 모이를 쪼아먹어도 불만도 없이 대범하게 그들과 ‘공존’한다. 그리하여 ‘소 닭 보듯 한다.’는 속담도 있다.

연변의 ‘황소’는 조선족의 부지런하고 단결하여 분발향상하는 품격과 정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뢰봉정신이 수많은 ‘뢰봉’을 배출시켰다면 ‘황소정신’도 연변의 벼재배 기술원 류창근과 같은 수많은 조선족 선진인물과 전국로력모범인물들을 배출시켰다.

연변은 ‘황소’의 고향이다. 연변황소는 장백산일대와 두만강류역 조선족들이 한세기 반 동안 신근한 로동과 지혜로 배육해낸 귀중한 품종자원의 재부였다. 부지런하고 건장한 특성을 소유한 연변황소는 연변조선족의 생산과 생활의 주요한 조성 부분으로서 세세손손으로 그에 의거하고 존대하면서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다. 조선족들은 비가 새는 초가집에서 석유등잔을 켜고 살지언정 황소만은 따뜻한 벽돌기와집에서 전등불을 켜고 배불리 먹였다. 그리고 농번계절에는 평소에 귀한 찰떡도 쳐서 먹였다.

황소는 항일전쟁과 해방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황소수레에 탄약을 나르고 부상병을 호송한 불굴의 ‘공천’이였다. 60년 전 농촌의 처녀들은 황소수레 앉아 시집갔고 늙은이들도 그 황소수레에 앉아 온 마을을 돌며 70 진갑잔치를 치렀다.

황소마저 힘 다하는 연변의 농촌마을은 해마다 풍년이 들어 쌍당 ‘알곡 만근’ 관을 돌파했다.

풍년이 든 가을이 오면 연변의 곳곳마다 ‘애국량’ 황소수레가 붉은 꽃을 달고 꼬리에 꼬리를 문 채 줄줄이 늘어섰다.

나는 ‘소띠’해에 출생하여 ‘소처럼 부지런하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고 ‘소처럼 둔하다.’는 핀잔도 받았다. 어찌 보면 나는 황소의 품성을 고스란히 빼닮은 것 같다.

송아지 어린시절 나는 우사칸 마당에서 공놀이를 하다가도 찰떡 치는 소리가 나면 그리로 달려가 소가 찰떡을 먹는 것을 보며 군침을 흘리다가도 어른들에게 핀잔을 듣고는 그놈의 황소 때문에 우리가 찰떡도 먹지 못한다고 투덜댔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나는 농촌에 내려온 첫해에 벌써 황소수레를 몰고 다녔다. 그때 내 나이 17살이였다. 수전 호리질과 한전 밭갈이는 물론이고 가을걷이마저 하였으니 매일 황소와 코를 맞대야 했다. 그렇게 초중을  졸업하고 생산대 부대장이란 직책을 걸머지고 락후한 농촌 면모를 개변하기 위해 노력했다. 1970년 봄, 내가 인솔하는 민병패는 전 현 ‘우수청년 돌격대’라는 칭호를 수여받았고 경험소개도 하였다.

사업에 참가하여서도 나는 ‘황소정신’을 계속 발양하여 우수한 성과를 따냈고 정년퇴직 후 오늘날에도 대련조선족문학협회 회원으로 활약하면서 협회발전에 저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소띠’로 태여나 ‘황소정신’을 발양한 풍성한 결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민족문화의 특점을 한몸에 소유한 연변황소는 일종의 ‘문화품격’이자 ‘정신력’의 상징으로, 연변인민은 황소를 에워싸고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로 생활을  엮어나가고 있다.

나는 황소를 사랑한다. 나는 황소의 ‘정신’을 더욱 높이 찬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중국 꿈’을 실현하는 위대한 로정에서 ‘황소정신’은 더더욱 제창해야지 않을가 생각된다.




최준봉
연변일보 202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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