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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
기사 입력 2020-05-18 12:29:30  

어제는 “기막힌 유산”이란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휴대전화”란 표현이 나오길래 잘못 들었나 해서 다시 돌려봤다. 분명 핸드폰도 휴대폰도 아닌 휴대전화라고 했다. 사실 영어권에서도 쓰이지 않는 핸드폰은 어디에서 왔는지 그 출생의 비밀을 알길이 없거니와 한자어 휴대와 영어 폰의 결합도 썩 합리한 조합은 아니였다. 네이버와 같은 인터넷 사전을 검색해도 많은 외래어 뜻풀이 뒤에는  “-로 순화한다”로 되여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많이 써왔고 외래어도 우리말의 일부분이라는 주장하에 과도하게 람용되고 있는 가운데 일상생활을 반영한 드라마에서 휴대전화란 단어가 나왔다는 건 아주 이례적이면서도 또한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핸드폰이든 휴대폰이든 휴대전화든 알아들으면 되지 뭘 피곤하게 자꾸 따지냐는 주장이라면 그것 또한 각자의 립장이니 누가 뭐라 하지는 못한다.

얼마전에 조선 영화 “한 녀학생의 일기”를 보면서 “아자”란 단어를 들었다. 한국에서도 “화이팅”을 아자로 순화하자고 주장한지 오래된 일이다. 이렇게 남북에서 다 쓰는 좋은 단어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전문 연구를 하는 사람이나 기관이 아닌 이상 대부분 경우에는 한 단어가 어떻게 왔는지 그 어원을 따지지는 않는다. 그냥 일상 소통에서 원활하게 사용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그런 연구가 필요없는 건 아니다. 지극히 필요할 뿐만아니라 그런 연구가 존중을 받아야 되고 연구의 합리한 성과를 자각적으로 실천해 가는 게 한 민족의 언어를 지키고 발전시켜 가는 자세이다. 우리가 생소하다고 아니면 이른바 어색하다고 고유어나 순화어를 배척하면 그건 우리말을 아끼는 자세가 아니다.

부인이란 뜻으로 “와이프”는 항간에서 많이 사용되기는 하나 바람직한 표현은 아니라고 일찍 2천년대 초반에 만났던 한국방송공사 아나운서 실장의 지적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게 쓰니 그의 영향을 받아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쓰이고 있다. 순치음이나 치간음이 없는 우리말에서 화이팅이나 팩트 같은 말은 죽었다 깨나도 영어발음을 그대로 따오지 못한다. 그러니 또 적기는 저렇게 적고 구두어에서는 영어음을 그대로 살려서 발음해 준다. 참 지혜로운 언어생활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또 왜 한자어는 되는데 영어는 안 되냐며 갸우뚱한다. 이건 력사, 문화와 어학적인 견지에서 론문이 작성돼야 할 문제로 우리말의 58.5%가 한자어라는 식으로 간단하게 해석이 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여기서 또 영어에 친화적인 한국이 일본어는 왜 그렇게 배척하냐면 이것 또한 답답한 질문이다. “바른말 고운말” 같은 프로에서 들어도 그냥 일본어에서 왔길래 순화한다고 해석하면 끝이다. 물론 짧은 프로에서 일제 강점기 력사까지 다 풀 수는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작심하고 따지면 끝이 없다. 어떤 때는 그냥 싫다는데 꼭 리유가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학교 때 은사님이 자주 례로 들었던 “상인”은 되는데 왜 “공인”은 안 되냐고 따지면 참 어려운 질문이다. 반도에서는 로동자라는 뜻의 공인이라는 말을 아예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따질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지만 한어의 영향을 받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곤혹스러운 문제다. 우리말의 장단음도 마찬가지다. 그 나라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말하며 자라서 자연스럽게 지켜지지만 그런 환경이 없었던 우리에게 있어서는 억지로 기억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다.

어릴 때 대도시에서 우리 마을에 놀러온 애가 있었다. 우리말이 아주 서툴렀는데 눈섭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그만 “작은 머리”라고 해버렸다. 그랬더니 애들은 웃겨 죽겠다고 배를 끌어안는다. 우리가 그럴수록 그 애는 점점 더 우리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금도 내가 위챗에서 “녀자”  “리해”라고 쓰면 두음법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영 신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없지 않다. 심지어 한국에 가 있는 한족 류학생들도 내가 위챗에서 우리나라 화페단위인 “원”을 “위안”이라고 쓰지 않아서 헛갈린다고 한다. 한화가 “원”이고 인민페는 “위안”이라는 주장이다. 이건 북경이냐 베이징이냐 청도냐 칭도오우냐의 문제이니 여기서 시비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부모”가 외국에 있는 정체불명의 외래어 “자식”들이 줄줄이 나오니 그 언어환경에 있어본 적 없는 사람들은 그걸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 환경에서 생활한다고 해도 세대간의 언어의 벽은 분명 존재한다. 외래어 뿐이 아니고 줄임말도 갈수록 넘쳐난다. 미국 드라마를 “미드”라고 하더니 국내의 개별적인 매체는 또 그걸 금방 받아물어서는 사용한다. 뉴질랜드 드라마는 “뉴드”라고 할 판이다. 간혹 모음 발음이 꼬이면 열독량은 엄청 올라가게 생겼다. 언어의 경제성인지 게으름인지 암호인지 류행인지 출생의 비밀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다 그렇게 쓰면 언어사정기관에서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게 우리의 일상언어생활 현실이다.

공상행정관리국이나 세무국 같은 기관이면 과태료라도 물리겠지만 언어는 학자들이 아무리 안타깝게 호소해도 들으면 좋고 안 들으면 그만이다. 오히려 금방 한 말씀이 무슨 뜻이냐고 어학자가 일반인에게 물어서 공부해야 할 상황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오며 각자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합의점은 별로 없었던 화제를 드라마 한편을 보다가 생각나서 또 이렇게 넉두리를 했다. 출판사에서 편집으로 근무하는 후배의 모멘트에는 이런 대글이 달렸다고 한다.

“당신들은 아직도 이런 걸 캐고 그럽니까?”

딱히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워지는 물음이라 오히려 언어 사용 문제의 화두를 던진 사람이 더 곤혹스러워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현상에는 질서와 규범이란 건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다. 그걸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현상은 너무 엉뚱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간혹은 궤도를 벗어났다가도 다시 돌아와서 존속해간다. 그러기까지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지성인들의 피타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 이런 분들이 고맙게 여겨지지는 않더라도 그들의 로동을 존중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고유어를 쓰자는데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한편 정보통신, 의학,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교류에 따라 외래어의 류입 또한 불가피한 일이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에로 가느냐의 문제는 키잡이가 중요하다. 분명한 건 바람 부는 대로 돛을 달면 바람의 방향이지 배가 가야할 목적지는 아니다.

운전은 가속페달보다 제동장치가 더 중요하다.



중국조선어방송넷 20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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