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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시장과 후지동
기사 입력 2020-04-06 10:26:55  

연필을 뜻하는 함경도 옛말은 ‘가름다시’인데 국내외 방언학자들은 로씨야어에서 들어온 외래어로 서뿔리 못박아놓고 있다. 허나 그 어원을 따지고 보면 북방언어계통인 몽골어와 돌궐어에서 검은 돌이라는 의미로 풀이가 가능하다. 여기에서 가름은 검다의 의미를 지닌 가라말이라는 가라 음과 뜻이 일맥상통되며 다시는 표준어 돌과 달리 함경도 사투리 돌잭이라는 음과 뜻이 근접된다.

근대에 들어서서 로씨야 연해주와 연변지역으로 진출한 선인들의 탈출로정을 추적하여 보면 황야길에 검은 돌을 쌓아올린 국시장이 도로표지처럼 등장한다. 이런 국시장은 거개가 평지의 세질어부름(함경도 방언 삼거리)과 산 데걱기(함경방언 산마루)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평지와 산마루 사이를 이어놓는 고래를(함경도 방언 골짜기) 국시장골로 불러왔다. 북방언어계통에서는 ‘ㅎ’ 음과 ‘ㅋ’ 음이 상호 전환된다. 왕을 지칭할 때 한(han)을 칸(khan)이라고도 부른다. 연변과 함경도에서는 할아버지 혹은 할배를 ‘커라배’라고 부르듯이 국시장골은 어음변화를 후동(厚洞),후지동(厚地洞)으로 마을 지명들이 굳어진다.

삼굿구이는 예로부터 두만강일대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삼껍질을 벗기려고 구덩이를 파고 돌을 달구어 삼을 찌는 일을 말한다. 삼굿구이는 단순한 로동행사가 아니라 김과 연기를 피워 하늘에 메시지를 보내고 신과 소통하여 가물과 장마를 피하며 초목이 푸르고 가축이 늘어나는 자연생태 선순환을 기원하는 민속풍속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와서 삼을 가공하여 진정제효과가 강한 마약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환각상태에서 복술과 무당들이 푸닥거리하며 구명하고 굿을 올리는 일을 단순히 미신행위의 자대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고유한 문화자원으로 바라보는 것이 정확하다. 삼굿구이에서 까맣게 구운 돌들을 선별하여 국시장에 쌓아올린 돌탑은 선인들이 탈출길에 쌓아올린 독특한 력사풍경이다.

돌 쌓는 풍습은 조선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선인들의 국시장 돌탑은 하늘과 감응하는 까만 삼굿구이 돌로 선별하여 해묵은 가둑나무(함경도 방언 참나무일종) 옆에 수북하게 쌓아놓는 것이그 특징이다. 하늘에서 내린 운수라는 뜻으로 몽골어에서(kut), 만주어에서 (kesi)라 적고 있다. 만주어에서 (kesi)은 우리 말의 굿과 그 뜻과 음이 류사하며 몽골어에서(kut)은 우리 말의 가둑나무의 가둑음과 근접되여 하늘과 감응하는 매개체로서 가둑나무는 하늘에서 굿이 내려오는 성스러운 곳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함경도 사투리 후투산 소리 한다는 굿에서 운수가 붙는 좋은 징조가 있다는 말이다. 후동(厚洞), 후지동(厚地洞)은 운수가 붙는 복된 땅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200년 전 선인들의 함경도 대탈출은 류례없는 기적의 력사이다. 1867년 5월 길림 장군 부명아는 로씨야 연해주 지신허와 연추를 돌아보고 함경도에서 탈출해온 1000여명이 집을 짓고 살고 있으며 만주인, 로씨야인, 조선인 옷차림을 하였다고 적고 있다. 각이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데려다가 물어보니 모두가 토박이 함경도 말을 하였다고 덧붙이고 있다. 청나라 봉금시기로부터 이어진 선인들의 이런 대탈출 력사는 일제시기의 집단이주와 확연히 구별되는 력사이다. 문둥이병, 기아, 살육, 수탈 온갖 끔찍한 재난 속에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운명을 박차고 얼기설기 실피줄처럼 거칠게 끓어지였다가 다시 이어지며 로씨야와 연변 지역으로 가시밭길을 뚫고 진출하였다. 그 암울한 시대 만약 국경이란 거미줄에 목이 매여 온갖 가난의 실타래를 감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선인들의 위대한 대탈출 력사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치발복역한 양자, 양녀로 시늉만 하는 벙어리로, 지울군으로, 지팡살이군으로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마침내 위대한 탈출력사를 촉발시킨다.

첩첩이 가로막힌 산들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두만강지역 그 울울창창한 원시림을 뚫고 나가는 탈출 길은 말 그대로 저승길이였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수천만번 끝내는 기여가는 몸의 형태는 이미 스러지고 없다. 질긴 목숨을 이어가는 추운 겨울 머리 우엔 피눈물같이 마른 나무잎만이 뚝뚝 떨어진다. 육신이 닳고 닳아 뼈가 부서진 손으로 마지막 간절함을 빌어 국시장 돌탑에 까만 돌을 얹혀놓는 그 찰나에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신의 빛이 내려오고 해와 달 전설처럼 구원의 동아줄이 드리워지고 아라비얀나이트 그 행운의 바위돌문이 열린 것이다.

국시장은 과거 선인들의 주된 활동무대였다. 눈으로 보는 국시장은 돌을 얹은 돌탑으로 보이지만 마음으로 대하는 국시장은 선인들의 불요불굴의 삶이 불덩이처럼 뜨겁게 녹아내린 성소이다. 오늘도 천년력사가 바위돌로 굳어져 눈 뜨고 앉아서 세상을 굽어본다. 그 위대한 침묵 우에 석불처럼 조용히 앉아 잃어버린 국시돌전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주어본다. 타자에 의하여 굳게 닫힌 선인들의 위대한 탈출력사의 빗장을 벗기고 그 진실된 력사를 열어놓아야만이 우리의 과거사는 더 많은 미래 세대들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드넓은 력사문화의 장으로 거듭날 수가 있다.



허성운
연변일보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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