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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우정은 거리감에서 생긴다
기사 입력 2019-07-19 09:51:56  

요즘 보약같은 친구에 대해 많이 들먹인다. 낮에도 친구, 밤에도 친구 마치 친구가 없으면 세상사가 멈춰설 것처럼 섬기고 바치며 극성을 부린다. 친구가 많아야 만사형통이란 말을 생활의 신조로 믿고 교제활동에만 열중하다 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치게 된다. 풋면목에 만나 “형님”, “동생” 하는 호칭이 이제는 귀에 못 박힐 정도라 그 진정성을 가늠키 어려울 때가 많다. 더우기 정보화시대를 맞아 가상공간을 통해 익힌 채팅방 얼굴이 기수부지인 데다 놀음까지 겹쳐 허우적거리는 추태를 두고 사회의 일각에서 날리는 시선은 쌀쌀하고 매섭다.

하지만 겉으로 못마땅해 이마를 찡그리던 사람도 때론 친구모임을 찾아 서성거린다. 그만큼 친구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방증이겠지만 너무 많아도 걱정, 없어도 걱정인 것이 친구다. 사람 인(人)자를 살펴보면 서로 기대고 의지하는 양상이여서 한일자로 혼자 곧게 서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을 독방에 가둬놓고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산다는 건 섬나라에 표류한 ‘로빈손 크루소’처럼 사회속성을 잃어버린 생물학적인 삶을 의미하게 된다.

인간사이(人间)는 상징성을 띤 거리와 비움의 합성어이다. 우주의 들쑹날쑹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활동공간 속에는 모름지기 지켜야 할 엄격한 ‘룰’이 있다. 아무리 생사고락을 함께 나눈 친분일지라도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질서를 잡는 데는 보이지 않는 ‘가드레일’(시설물)이 마음의 흐름선을 절제하여야 가능하다. 고슴도치의 일화가 있다. 엄동설한에 제각기 멀리 서있으니 춥고 부둥켜안은 채 체온을 나누려 하니 돋친 가시가 찔리여 나중에 적절한 거리를 두고서야 딜레마(진퇴량난)가 해소된다. 가까운 친구가 혹간 귀찮고 낯설어지면서 웬 일인지 뜸한 사이가 오히려 흡인력을 갖는 까닭은 뜨거워진 흥분을 랭정히 식혀낸 거리와 공간이 교제의 천평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의 지켜야 할 례절을 무시하고 제 나름 대로 횡설수설하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뿐더러 신뢰가 무너져 결국 품을 들여 키운 소중한 정마저 모래알처럼 산산이 흩어지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인생드라마내용이 달리 씌여질 수도 있다.

성인 공자는 일찍 좋은 친구는 정직하고 성실하며 견식이 넓어 타인에게 도움이 되지만 나쁜 친구는 권세에 빌붙어 아부아첨하고 거짓말을 밥먹 듯하며 삐뚤어진 행세를 거리낌없이 하여 백해무익하다고 점찍었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의 이분법이 적용됐는지 몰라도 어진 사람을 만나면 착해지고 악한 사람을 만나면 불량배가 된다는 설법에 힘을 입어 선인들이 줄곧 교제의 비움과 간격에 대해 많이 치우쳐온 것만 사실이다. 단마르크 심리학자 루빈의 〈꽃병과 두 얼굴〉이 흥미롭다. 마주 향한 두 얼굴의 짜임새가 먼듯 가까운듯 팽팽하면서도 느슨한 여백 속에 현란한 꽃병이 우렷이 떠오른다. 랭철하고 리지적인 인간교제를 한번 느긋하게 음미할 수 있는 걸작이다. 크고 작은 고리로 련결된 인맥이 활시위처럼 하냥 긴장해있기보다는 칭칭 감긴 탕개를 이따금씩 풀어놓고 여유를 갖는 지혜가 사슬의 이음새를 더 튼튼하게 만든다.

친구 끼리 사귄 시간이 길든 짧든, 서열이 높든 낮든 접촉이 잦을수록 잠간 쉬여가는 여유를 갖고 정감의 배터리를 재정비, 재충천 하는 현명성이 맞물린 치차에 좋은 윤활제가 된다. 한낱 옛정에 매몰된 감성을 승화시켜 자신의 이미지를 항상 새롭게 돋보이게끔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가 친구간 거래를 한층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자신의 활동능력을 과시하느라 일부러 친구의 수자에 올인하면 흔히 알맹이 빠뜨리고 껍데기만 덩그렇게 남은 관상용 패키지로 밖에 되지 않는다. 방송드라마 《김학철》을 들으면서 감회가 깊었다. 파란만장한 인생담과 비범한 문학재질이 각계각층의 수많은 인사들과 친분을 맺을 수 있었겠지만 인간교제의 원칙성을 드팀없이 지켜 생의 마감까지 몇몇 문우의 이름만 적힌 종이장을 내놓으면서 상주가 조문객의 부의금을 받지 말며 추도회를 열지 말라는 당부를 유언으로 남겼다. 실로 우리 민족의 고상한 도덕적 풍모와 정신세계를 지닌 희세의 본보기이다. 하여 지금도 문학애호가들은 그 분의 작품을 애독하며 기리는 마음을 달랜다.

평생 얼굴 맞대고 지냈어도 아리숭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번 만난 연분인데 오래동안 기억 속에 남는 사람도 있다. 매력적인 카리스마도 아닌데 자석같이 끌리는 리유가 무엇일가? 듬성듬성 자란 나무가 무성한 가지를 펼치듯 자신의 령역기준을 철저히 지키는 마음의 터전에서만 아름드리 거목이 푸르싱싱 자랄 수 있고 두줄기 레루장도 턴넬을 뚫고 벼랑을 뛰여넘는 멋진 꿈을 키워내지 않을가 싶다. 일생에 속생각을 마음껏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갖고 산다는 자체가 하나의 행운이고 기쁨이다.

살아가노라면 매사에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을진대 만수받이 찬성을 떠나 서로 허술한 틈은 충실히 메워주고, 휘여든 곳은 똑바로 잡아주는 아량이 생활의 대하에서 튕겨나온 수많은 오해와 불신의 트러블을 화해와 믿음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물망처럼 촘촘히 얼키고 설킨 이름들 사이를 비집고 스톱을 상징하는 쉼표를 적재적소에 척― 찍을 줄 아는 스타일이 진짜배기 수준급 딱친구임을 명심해두자.



최장춘
길림신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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