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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의미의 축제》
기사 입력 2021-04-12 06:16:50  

‘의미’와 ‘무의미’

“보잘것없는 것을 사랑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롱담과 거짓말, 의미와 무의미, 일상과 축제의 경계에서 삶과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는 더욱 원숙해진 밀란 쿤데라의 시선이 느껴진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전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며 21세기 생존하는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무의미의 축제》, 2000년 《향수》가 스페인에서 출간된 이후 14년 만의 소설이다.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네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촘촘히 엮여 진행되는 이 소설은 새로이 에로티시즘의 상징이 된 녀자의 배꼽에서부터 배꼽에서 태여나지 않아 성이 없는 천사, 가볍고 의미 없이 떠도는 그 천사의 깃털 그리고 스딸린과 스딸린의 롱담, 그에서 파생된 인형극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사유를 이어가며 인간과 인간 삶의 본질을 탐구한다. 첫 소설 《롱담》에서 시작되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전세계를 사로잡은 그의 문학세계는 《무의미의 축제》에서 정점을 이루며 ‘쿤데라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6월, 빠리 거리를 거닐던 알랭은 배꼽티를 입은 녀성들과 마주하고 배꼽이야말로 이 시대, 남자를 유혹하는 힘이 되였다고 생각한다. 허벅지 그리고 가슴, 지금까지 남성들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한 녀성의 이 신체부위들에는 제각기 의미가 있다.

‘허벅지, 가슴, 엉덩이는 녀자들마다 다 형태가 달라. 그러니까 이 황금 지점 세개는 단지 흥분만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고 그와 동시에 한 녀자의 개체성을 나타내준다고. 배꼽을 가지고 이 녀자가 내가 사랑하는 녀자라고 말할 수는 없어. 배꼽은 다 똑같거든. 그러면 배꼽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에로틱한 메시지는 뭘가?

한편 암에 걸리진 않았을가 걱정하던 다르델로는 의사를 만나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 안도한다. 하지만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예전 직장 동료 라모에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이야기하고는 묘한 희열을 느낀다. 거짓말을 했다고 부끄럽지도 않았지만 그 거짓말을 왜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암을 꾸며내서 대체 무슨 리득을 본단 말인가? 사람들은 자신에게 리득이 될 때에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다르델로는 왜 이다지도 기분이 좋은 것일가?

다르델로는 화려한 언변으로 주위의 이목을 끄는 남자다. 한편 카클리크는 조용히 침묵할 뿐이다. 그런데 파티에서 만난 아름다운 녀성들은 다르델로가 아닌 카클리크를 선택한다. 탁월함은 주변을 부담스럽게 한다. 함께 탁월해야만 할 것 같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을 준다. 하지만 보잘것없다는 건 주위를 편안하게 해준다. 자기 자신으로 있게 해주고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뛰여나 봐야 아무 쓸데 없다는거지, 그래, 알겠다.”

“쓸데없기만 한 게 아니야. 해롭다니까. 뛰여난 남자가 녀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녀자는 경쟁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게 돼. 자기도 뛰여나야만 할 것 같거든. 버티지 않고 바로 자기를 내주면 안될 것 같은 거지. 그런데 그냥 보잘것없다는 건 녀자를 자유롭게 해줘. 조심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거야. 재치 있어야 할 필요도 전혀 없어.”

거대한 력사의 흐름 속에 내맡겨진 인간, 그 존재의 가벼움에 천착하는 쿤데라는 이번 소설에서 스딸린과 칼리닌의 일화를 교묘히 엮어낸다. 사냥을 간 스딸린이 자고새 스물네마리를 발견했는데 탄창이 열두개밖에 없었다. 열두마리를 쏘아죽인 다음 탄창을 가지러 13킬로메터를 왕복하고 돌아와 보니 남은 열두마리가 그대로 있다. 이 경험을 스딸린이 자신의 동지들에게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동지들 모두 웃지 않고 입을 꾹 다문다. 모두들 스딸린의 이야기가 ‘웃자고 한 롱담’이 아니라 ‘역겨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스딸린의 롱담은 ‘아무도 웃지 않는 장난’이 되여버린다.

쿤데라의 첫번째 소설 《롱담》에서 롱담이 롱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인생을 송두리채 빼앗긴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왔다면 어쩌면 그의 마지막 소설이 될지도 모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 스딸린의 일화는 이제 ‘롱담’이 롱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넘어서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네 남자의 이야기 사이에서 어쩌면 기이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이 력사적 일화를 통해 쿤데라는 하나의 롱담조차에도 진지하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의 무거움, 그 비극성에 마주하는 태도로서 ‘무의미’를 이야기한다.

개인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새로운 에로티시즘의 시대를 여는 배꼽, 아무런 리유도 없고 리득도 가져다주지 않는 거짓말에 기뻐지는 마음, 롱담을 거짓말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오늘, 모두가 모인 파티에서 아무런 무게도 의미도 없이 천장을 떠도는 깃털, 순수하게 육체적, 인간적 고통만을 주는 칼리닌의 방광 등, 쿤데라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 결국 우리 인간 존재의 삶이 아무런 의미 없음의, 보잘것없음의 축제일 뿐이며 이 ‘무의미의 축제’야말로 우리가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의 시대라고.


신연희
연변일보 20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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