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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지바위와 장재촌
기사 입력 2018-08-09 18:01:10  

지난 세기 60년대 전까지만 해도 광지바위는 장대한 기상을 품고 룡정시 동성향, 덕신향, 석정향의 경계지대에 우뚝 솟아있었다. 천년 풍상을 견디며 버티고 서있던 광지바위가 동란의 세월에 접어들면서 꺼져가는 초불처럼 힘없는 민초들의 슬픈 삶처럼 비참하게 쓰러져갔다.

60년대초에 연길현 소재지였던 룡정진에서 건축용 기초돌을 대부분 광지바위 돌을 캐서 날라들였는데 1965년에 이르러 이미 바위 주변은 커다란 채석장으로 변하여갔다. 바위를 폭파하는 발파소리, 망치와 징으로 돌 까는 소리로 광지바위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 갔다. 천년 동안 쌓아 온 광지바위 기운이 꺾여서 일가 과거에 웃 광지바위마을 아래광지바위마을 그리고 인근 개척기마을 사람들이 어울러 삶의 터전을 가꾸어 오던 동네,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아 지나가는 길손들의 발길을 붙잡던 정경도 그때로부터 차츰 그 자취를 감추어갔다.

먼 전설에 의하면 옛날 장재비라는 린색한 부자가 이곳에 살았었는데 어느 날 스님이 시주를 청하니 장재비는 소똥 한바가지 퍼서 스님의 몸에다 부어버렸다. 스님이 말없이 돌아가려 하자 장재비의 며느리가 몰래 쌀을 시주하니 스님은 며느리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며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며느리는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아이를 등에 업고 집을 나섰는데 이제 막 산 정상에 올라설 무렵 별안간 하늘에서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너무 놀라 스님의 말을 잊고 뒤를 돌아보니 그가 살던 집은 땅속으로 함몰되고 그 자리는 커다란 호수로 변해가고 있었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동안 광주리를 인 며느리도 아기와 함께 바위돌로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이후 사람들은 이곳 커다랗게 광주리를 이고 아기 업은 형상을 하고 서있는 바위를 광지바위라고 불렸고 그 호수를 장재비늪이라고 불렸다고 전하고 있다.

룡정시에는 백금향과 지신향 경계지대에도 광지바위라는 지명이 하나 더 있다. 용신향 사람들은 광지바위를 광주리바위라고도 불러왔다고 한다. 여기에서 광지바위와 광주리바위가 지니고 있는 실질적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고 광지바위 전설이 불교설화라는 점을 념두에 두고 광주리와 광지와의 련관성을 밝혀내는 것이다.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서는 일찍 부처님의 말씀을 문자로 기록 할 때 패엽(貝葉)이라는 나무잎에 부처님 말씀을 새겨 보관하게 되였다, 우기 철이 오면 습기가 많아 부식이 잘 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광주리에 경전을 따로 담아 보관하게 된 데서 대장경(大藏经)인 삼장(경장, 률장, 론장)을 ‘세개의 광주리(筐)’라는 의미로 풀이한다.

용신향 광지바위에서 북쪽으로 15리 , 덕신향 광지바위에서 서쪽으로 15리에 상거한 곳에 그 유명한 장재촌 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장재라는 지명은 예전에 이 마을 앞에 장재비 늪이라는 이름에서 따온 지명이라고 전하고 있다. 광지바위 설화와 장재비늪 설화와 맞물리여진 장재촌에는 과거에 남으로 거울처럼 고요한 호수가 보석처럼 여러개 박혀있었고 북으로 사자산이 마치 한마리 사자처럼 휘우듬히 허리를 꼬며 돌아누운 형국으로 되여있었다. 1912년에 전례 없는 큰 홍수가 들이닥쳐 흙더미와 돌덩어리가 굴러와 크고 작은 늪들을 메워버렸고 1938년에 발생한 홍수는 달라자산이 무너져 내려 부근의 밭과 마을들을 폐허로 만들어놓았다.

장재촌은 일찍 1899년 동한이라는 땅임자가 죽자 그 대부분 땅은 안성주, 김병한, 박윤섭 등 입적한 세 조선인들이 사들였다. 그중 안성주는 중국어에 능통하여 동한 땅임자의 집 재산관리를 도왔고 김병호는 누이와 딸을 권세 있는 중국인에게 시집보내여 호가호위 하였고 박윤섭은 호적이 없는 조선인들에게 밭을 사주는 중개인 노릇을 하며 돈을 벌었다. 지금의 명동촌은 최초에 대연촌이라고 불렀는데 동한이 약담배를 재배하는 밭으로 되여있었다가 천불붙이와 달라자 지역의 화전민들을 삯군으로 쓰면서 차츰 마을을 이루었다.

력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세종 때부터 두만강 류역에 육진을 설치하고 조선인 농부들을 이주시켰으며, 그 결과 이들은 함경도 지역의 녀진족과 섞이게 되였다. 이들중 대부분 사람들은 관청에서 찾을 수 없는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갔으며 이 지역 녀진족과 동화하는 과정에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1914년 함경도 지역에 대한 조사에서 일본 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함경도 북쪽에서 발견된 재가승이라고 불리는 집단에 주목했다. 그들은 깊은 계곡, 산속의 움집에서 살았는데 움집은 사원의 성격을 담고 있어서 대부분의 재가승들은 경전을 읽을 줄도 몰랐고 불상 앞에서 기도를 했으며 죽은 자들을 화장하고 성씨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연변의 광지바위 장재촌과 같은 지명과 그리고 이 지방 대부분 사람들이 최초의 적관(籍貫)이 함경도 유읍으로 나오나 성씨는 김해 김씨, 전주 리씨 ,전주 김씨 라는 자료를 접하고 보면 광지바위와 장재촌지명 사이 련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 모든 것은 지명연구 시야를 넓혀주고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으나 정확한 사료가 부족하니 현재로서는 완벽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광지바위 장자늪 지명은 연변과 조선반도에 걸쳐 널리 분포되여있음을 알 수 있다. 연변에서는 광지바위라 부르고 조선에서는 광주리바위 또는 광지바위라고 부르며 한국에서는 며느리바위 할매바위 같이 지명이 변종되여 나타나고 있으나 전해 내려오는 설화는 류사하다.



허성운
연변일보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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