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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
기사 입력 2021-03-23 09:29:40  

13세기 중세 독일의 궁정 시인 볼프람 폰 에셴바흐가 말했다.

‘그대의 꿈이 한번도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가엾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정말 가여운 것은 한번도 꿈을 꿔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芭蕾之梦)》는 바로 그 꿈의 실현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식의 메시지가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까지 건드린다.

영화의 배경은 1984년 영국 북부의 탄광촌 더럼이다. 이곳에서는 탄광 로동자들이 정부의 시책에 반대해 파업을 벌리고 있다. 11살 소년 빌리는 광부로 일하는 아버지와 형 토니 그리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허름한 집에서 살고 있다.

어머니는 바로 전해 38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 빌리는 엄마를 대신해 아침마다 삶은 닭알과 토스트를 할머니에게 챙겨드리는 착한 손자이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형은 매일 시위에 참여하느라 정신이 없다. 빌리와 한방을 나눠쓰는 형은 동생에게 퉁명스럽기 그지없다.

빌리는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하루 50센트씩 내고 체육관에 다니며 권투 련습을 한다. 하지만 권투가 자기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느 날 탄광에서 공간을 내준 발레교실이 체육관 귀퉁이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윌킨슨 부인이 지도하는 발레수업을 우연히 보게 된 빌리는 묘하게 마음이 끌리는 것을 경험한다.

하지만 빌리는 ‘남자가 발레라니’라고 여긴다. 이에 대해 윌킨슨 부인의 딸이자 빌리와 학교 같은 반 친구인 데비는 “여기 더럼에선 안해도 다른 데서는 해”라고 일러준다.

빌리는 윌킨슨 부인에게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윌킨슨 부인은 빌리가 춤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다. 빌리 또한 이동도서관에서 발레에 대한 책을 대출해 집에서 련습할 정도로 재미를 붙인다.

그 와중에 아들이 발레 련습을 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 재키 엘리어트는 크게 화를 낸다. 빌리는 아버지 몰래 계속 발레 련습을 하는데 발레를 가르치는 윌킨슨 부인은 정원과 자가용이 있는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그의 남편은 명예퇴직한 알콜 중독자이다. 직장 내 녀직원과 바람을 피우다 안해에게 걸려 각방을 쓰고 있다.

미스터 윌킨슨은 당시 마거릿 대처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의 립장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광부에게 월급을 주면 남는 거 없다. 파업은 공산주의자들이 선동하고 있는 거다. 나 같으면 당장 탄광을 페쇄할 거다.”라는 립장을 펼친다.

영화는 1984년부터 1985년 영국의 광부 대파업을 배경으로 한다. 그 중심지가 바로 더럼을 포함한 영국 북부 광산지대였다. 1980년대 초반 영국의 대처 정부는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구조조정을 강하게 밀어붙여 로동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대처 정부는 그중에서도 특히 전국 광부로조와 날을 세웠다.

1984년 대처 정부는 20개의 탄광을 페쇄하고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총파업이 시작됐고 전체 광부의 80%가 참가하며 규모가 커졌다. 이때 련행된 광부만 1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정부의 강경 진압과 1년이 넘는 기간 탓에 파업도 와해되기 시작됐고 결국 1985년 3월 로조지도부는 업무복귀 결정을 내렸다.

나날이 늘어가는 빌리의 발레 능력을 본 윌킨슨 부인은 런던에 있는 로열발레스쿨 진학을 권유한다. 돈을 안 받고 개인 교습을 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윌킨슨 부인은 2주 후에 지원자의 가능성을 보는 오디션이 열리니 같이 준비하자고 말한다. 재능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오디션 준비를 위해 빌리가 윌킨슨 부인과 함께 춤을 추는 신은 매우 인상적이다. 글램 록 밴드 테렉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동안 빌리 가족의 모습이 교차 편집된다.

방에서 헤드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흥에 겨운 토니, 욕실에서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아버지, 오래 만에 발레 포즈를 잡는 할머니의 모습이 비춰진다. 비록 힘든 삶에 찌들어있지만 충분히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임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빌리의 재능을 인정하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영화에는 영국의 로동계급이 대처 총리 기간에 겪어야 했던 고통과 집권 보수당에 대한 반감이 직, 간접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것은 각본가 리 홀이 빌리라는 캐릭터처럼 영국 북부 탄광촌 출신이라는 영향이 크다. 이 영화는 영국 로열발레단의 남성 무용수 모슬리의 실화를 참조하여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또한 탄광촌 출신이다.

영화에서 젊은 관객들은 역경을 딛고 꿈을 실현하는 소년의 스토리에 주로 감동을 느끼겠지만 중장년 관객들은 자식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아버지의 모습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자식에게 자신이 처한 비루한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절박함은 언제나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이 영화로 빌리 역을 맡은 제이미 벨은 2000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러셀크로, 톰 행크스, 마이클 더글러스를 제치고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윌킨슨 부인 역의 줄리 월터스는 녀우조연상을 받았다. 2001년 미국 아카데미상에서는 감독상, 각본상, 녀우조연상 등 3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주인공 빌리 역은 공개 오디션으로 선발했는데 그 조건이 발레와 탭댄스에 능한 영국 북부 출신 소년이였다. 2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제이미 벨은 6살 때부터 발레를 비롯해 각종 춤을 배웠고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놀림과 편견을 겪어봤다고 한다.

영화의 성공으로 작품은 또 뮤지컬로도 제작됐다. 영국의 대표 뮤지션인 엘턴 존이 작곡을 담당하고 영화 각본가 리 홀이 작사를 담당해 뮤지컬은 영국 웨스트엔드 초연 이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오스트랄리아 시드니 등 세계적인 무대에서 상연됐다.



신연희
연변일보 202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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