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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온다
기사 입력 2021-04-12 05:25:25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같은 앞다리/ 동아같은 뒤발로/ 량귀 찢어지고/ 쇠낫같은 발톱으로/ 잔디 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하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는듯/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요즘 그야말로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노래이다.

‘이날치’라는 젊은 밴드가 득음이라도 한 소리군처럼 촤르르르 목젖을 굴려 내뿜은 퓨전음악, 판소리와 팝이 된장과 커피처럼 어우러진 이 동영상은 글로벌한 공감을 이끌어내며 전세계에서 합산 조회수 3억회를 기록했다.

‘이날치’라는 그룹 이름은 조선 후기 여덟 명창중 한명인 이날치(李捺治)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노래말과 젊은 가수들의 의성(拟声)이 만들어낸 ‘워리렁’ 포효소리를 듣노라면 흡사 호랑이가 정말로 득달같이 달려와 눈앞에 떡하니 뻗쳐선 경상을 보는 것만 같다.

년말년시, 다름 아닌 우리 주변에서 노래말과 꼭 같이 “몸은 얼숭덜숭”하고 “꼬리는 잔뜩 한발이 넘”는 범(호랑이)이 “누에머리 흔들며” 등장했다.

훈춘의 촬영사 곡보신(谷宝臣)은 훈춘시 양포향의 자기 집 인삼밭을 보호하기 위해 8개의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는데 1월 23일 새벽, 그의 적외선 카메라에 동북호랑이가 활동하는 화면이 잡혔다. 모니터링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다 싶이 동북호랑이가 땅에 떨어진 옥수수를 먹고 있었다. 그는 폭죽을 터뜨려 범을 쫓았고 이튿날 아침 마당 주위에서 두줄로 된 선명한 호랑이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온라인에서 호랑이와 마주쳤다며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한 남성이 공개한 영상에는 집을 지키던 개를 순식간에 공격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담겼고 뻐스 운전사가 도로 린근 숲속에서 배회하는 호랑이를 목격하고 찍은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근년래 길림성에서 생태환경 보호에 힘을 기울여 록색 보호벽을 구축하고 야생동물의 서식과 번식을 보장해준 결과물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서 으뜸으로 돋보는 동물로서 우리와 남다른 정서적 인연을 갖고 있다. 우리의 선조들이 호랑이를 토템신앙의 상대로 삼은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인도에서 코끼리, 애급에서 사자, 로마에서 승냥이를 숭배하듯이 우리도 호랑이를 서기롭고 신성한 령물로 보고 있다.

우리 민속에서 호랑이는 ‘산군자(山君子)’로 산신령으로 상징되고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령물로 간주되고 있다. 세시(岁时)와 놀이에서 호랑이가 그 어느 동물보다 많이 등장한다.

길상의 의미에서 소나무가 장수를, 까치가 기쁨을 상징한다면 호랑이는 보은(报恩)을 상징한다. 하여 매년 정월초 궁궐을 비롯하여 민가에서도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걸어 귀신의 침입을 막는다는 풍속이 있었다. 지어 욕창이 생기거나 부스럼이 나도 호랑이를 그린 종이를 약처럼 붙이군 했다.

이렇게 문화에 도입된 호랑이 숭배는 많은 민간전설과 속담 성어를 낳고 있다. “호사류피 인사류명(虎死留皮 人死留名)”, “호랑이 담배 필 적의 얘기”, “호미난방”, “호랑이 제 소리하면 온다”, “호랑이새끼는 산에서 사람새끼는 글방에서” 등등으로 우리 민족의 성심에 꼭 사개 맞는 호랑이 관련 속담들이 기수부지이다.

민담이나 전설 고전작품들에서 호랑이는 권선징악의 대변인으로 도덕규범을 수호하는 위도사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저서에서 “…범이란 영특하고 문무가 겸전하고 자성이 있고 효성이 있으며 슬기롭고도 용맹이 놀랍고 장하여 천하에 적수가 없다. 세상의 큰 인물들은 범의 변화하는 재주를 본받고 제왕들은 범의 걸음걸이를 배우고 자식들은 범의 효성을 법도로 삼고 장수들은 범의 위엄을 취한다.”고 호랑이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피력하기도 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일찍부터 신변의 생령들을 통하여 자연과 인생, 유한한 생명중에서의 만물의 생기 및 우주의 영원을 감오해냈다. 자연의 모든 것 즉 나무, 돌, 짐승, 바람, 강물들이 주는 상호 교환의 기호를 읽고 판독하는 것이 삶의 지혜이며 틀이였던 것이다.

일찍 장자는 자신의 자연관을 천명하는 글에서 “하늘의 법도를 어지럽히고 만물의 본성을 거역하면 현묘한 하늘의 조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짐승은 무리에서 떠나고 새들은 모두 밤에 울며 재앙은 풀과 나무에 미치고 화는 벌레에까지 미칠 것이다.”고 말했다.

자연파괴 현상이 극심화되는 오늘의 상황을 2천년전의 장자가 예언한 것처럼 들린다.

인류는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 편입되여있다. 인간은 생태계로부터 신세를 지지 않으면 생존을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심각한 지구의 환경파괴와 인간생존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서는 자연과의 평등, 공생, 그리고 자연으로 열린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지향하는 생태주의적 자연관이 요청되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 지구촌이 신음하고 있는 오늘날 그러한 자연관은 더욱 바람직하다.

〈범 내려온다〉는 퓨전음악이 례사롭지 않게 들려오는 것도 바로 이러한 상념이 곁들어져서일 것이다.



김혁(소설가,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길림신문 202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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