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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나는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셋째딸인가 봅니다
기사 입력 2013-08-29 11:56:10  

나는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싫어졌다.

그 첫째 원인은 내가 중학교에 진급할 때 한족학교에 추천을 받았는데 아버지가 조선족이 우선 조선글을 배워야 한다면서 우리 집까지 찾아오신 한족학교의 선생님들을 되돌려 보냈다. 남들은 가고 싶어도 추첨을 받지 못해 못 가는데 나는 아버지 때문에 조선족중학교에 갈수 밖에 없었다.

둘째 원인은 내가 첫사랑남자와 교제할 때 그 남자의 가정배경이 좋지 않다고 기어이 반대하는 바람에 우리 사랑이 깨졌기 때문이다. 결혼후에도 첫사랑의 상처는 오래도록 나를 아프게 했다.

세번재 원인은 아버지는 직장에서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를 자신의 직장에 취직할 수 있도록 빽을 써주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가 내가 엄마를 쏙 빼닮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늘 부지런하시고 직원들한테는 한없이 자애로운 상사였지만 가정에 돌아와서는 딸들한테만 특별히 엄하셨다. 머리를 감은 후에도 풀어헤치지 말고 묶어야 했고 밤에는 일찍 집에 들어와야 하고 남자들과 희희닥닥 거리는 걸 금지했으며 식탁에서 항상 조신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나는 그런 틀에 박힌 아버지가 싫어서 늘 청개구리마냥 일을 저지르군 했다. 다시 남자를 만나 결혼하려 하자 아버지는 또 반대표를 던졌다.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기어이 결혼에 골인했다.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자기가 만들어낸 신문을 밥상의 남은 음식을 덮는데 쓴다든가 휴지통에 버리는 것이였다.

‘그깟 신문에서 돈이 나오나’

나는 늘 아버지한테 욕을 먹으면서도 신문을 휴지로 쓰군 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애꿎은 신문에 분풀이를 한 셈이였다.

우리 집이 가난한 것도 가장인 아버지가 무능한 탓이라고 늘 원망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 형제 다섯에 삼촌들까지 11식구의 대 가정이지만 오직 신문사 일에만 관심이 있고 가정의 경제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서 우리가 남보다 못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만은 절대로 아버지와 같은 찌질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5년전에는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버지는 한평생 신문사 일에 몰두하셨지만 허술한 아파트 한 채 외에는 자식들한테 돈 한푼 물려주지 못했다.

◇ ◇ ◇

2년전에 나는 한국에 나와서 우연한 기회에 대한에니어그램 영성학회에서 조직한 에니어그램 영성수련(인간의 성격을 9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것)이라는 성격분석프로그램에 2박 3일로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나 자신도 미처 몰랐다.

중국에서 교회에 대해서 늘 경계하면서 살아오던 나는 그날 아침 수녀원 뒤뜰에 <십자가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된 여러 개의 조각상들을 감상하게 되었는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과정을 하나하나의 조각으로 설명된 것을 처음보게 되었다. 그 조각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영성수련에서 한양대학교 김영운 교묵실장님의 강의였다.

<인생은 자기발견의 여로>,
<나를 알아야 남을 알 수 있다>
<우선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

이런 생소한 단어는 나를 당황하게 했고 경악하게 했다. 중국공산당의 교육을 받아온 나로서는 이런 화두가 충격 그 자체였다. 나의 모든 생각이나 행동은 나라와 사회 그리고 당을 위함이 우선이지 결코 나 자신을 위한다거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사자리적인 일이라 생각해서도 안되고 행동에 옮겨서는 더구나 안 되는 금지구역이였다. 그제서야 비로서 나는 내가 걸어온 길들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만약 중학교를 한족학교에 갔더라면 내가 국문학과를 선택할 확률이 적었을 거고 첫사랑과의 인연이 맺어졌더라면 지금의 남편을 만나지 못했을 거고 아버지의 직장에서 그냥 일을 했다면 평생 신문사기자 노릇만 했을 텐데 좋아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별로 경험할 수 없었던 무역사업, 노무수출도 해볼 수 있었고 개인자영업도 해볼 수 있었다. 그 후 42살의 뒤늦은 나이에 모 방송사에 취직하여 편집사업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중국연변작가협회 수필작가로 글도 쓸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와의 만남, 진정한 나를 찾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미처 몰랐던 나 자신의 장점을 찾는 것은 즐거움이였지만 내가 승인하기 싫어하는 단점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처음 만나는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을 때 나는 나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 앞에서 토로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자신만이 알고 있는 아픔을 말하면서 나도 눈물을 쏟았다. 서로에게 위로를 해주고 박수를 보내주고 용기를 주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나는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아픔도 공유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 방송사업을 할 때 나는 고민상담프로그램 편집을 일년 정도 한 적이 있다. 해외진출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부는 얻었지만 대신 가정이 깨지고 자녀들이 기로에서 헤매보니 또 외국에 나와있는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도 적지 않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중국교포들은 분명히 한국인과 같은 조선족이지만 한국계 중국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3D업종에서 힘들에 일해야 하는 현실, 문화적 사회적 차이로 인해서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등 고민과 갈등이 많았다.

한국에 나와 있는 우리 중국교포들만 해도 53만명을 웃돌고 있는데 이들에게 내가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없을가 하고 고민하던 끝에 중국교포들을 위한 심리상담이 아직 미흡하다는 것을 알고 나는 <서서울생명의전화>에서 일년간 심리상담수업을 받았고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중국동포들을 위한 무료심리상담전화를 개통하고 심리상담전화의 첫 교포전문 심리상담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렇게 닮기 싫은 아버지였는데 결국엔 내가 아버지의 길을 고스란이 가고 있었고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것도 자녀들 중에 셋째 딸인 나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딸인가 보다.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299호 2013년 8월 28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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