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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조선족’이라는 집념으로 하북성 청룡현 탑구(塔沟) ‘박씨마을’을 찾아서
기사 입력 2020-10-12 14:47:42  

조선족 하면 동북3성과 내몽골에 집중 거주하거나 또는 개혁개방 이후 동북에서 산해관 이남으로 많이 이동분포되어 있는 걸로 모두 알고 있지만, 하북성 청룡만족자치현의 어느 시골에 ‘박씨마을’이 있다는 것은 거의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곳 ‘박씨마을’은 예전에 일부 학자 및 기자들이 왔다간 이외 우리사회에 많이 소외된 곳으로 어떻게 보면 우리사회의 사각지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박씨마을’은 중국조선족 역사과정에서 하나의 중요한 표적지로 남아 있는 곳으로 우리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 역사를 간략히 말하면 아래와 같다.
명나라 말기 동북에 분포되어 있는 여진족의 한갈래인 누르하치가 점차 세력을 키워 내부를 통일한 후 후금정권을 건립하였다.

이후 후금은 계속 세력을 확장하여 명나라와 대항하고 조선왕조를 침입하여 많은 조선사람들을 포로 납치해서 만족귀족들에게 배분해주고 만주8기군에 편입하기도 하였다.

1636년 후금정권이 국호를 ‘대청’으로 개칭하고 전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1644년에는 산해관 이남으로 진출하였고 수도를 북경으로 옮겼다.  이때 만족 귀족과 8기군을 따라 많은 조선사람들이 산해관을 넘어 북경지역에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북경 근처, 하북 승덕, 청룡 등 지역에 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 가운데 청룡의 ‘박씨마을’ 선조들이 포함되었는바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이 된다.

이와 같이 ‘박씨마을’ 선조들은 중국조선족 역사의 시초와 연결되었고 ‘박씨마을’도 우리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되었다. 물론 수백년의 시간이 흘러 이 곳 박씨사람들은 점차 현지에 동화되고 만족 또는 한족으로 되어있었으나 박씨성, 선조가 조선인이라는 것은 잊지 않고 대대로 전해왔다.

이후 신중국이 건립되고 민족평등정책의 혜택하에 가슴 속에만 남아있던 민족의식이 되살아나서 1964년부터 민족성분을 조선족으로 고치기 시작하였고 20세기 80년대 말기 청룡현 소속의 몇개 마을에는 수백명의 조선족이 생활하고 있었다.

청룡현의 ‘박씨마을’에 관하여 20세기 80년대 말 이후 일부 학자와 기자들이 이곳을 다녀갔고 연변대학 역사학부 석사연구생들이 현지 조사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언제나 신문기사와 학술연구에 제한되었고 ‘박씨마을’에 대한 우리사회의 관심은 거의 없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등한시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필자 역시 오래전부터 한번 가본다는 것이 미루어져 이번에 처음으로 가보게 되었다.

2020년 10월 3일 도시우리말학교협의회 제6회 교사연수회가 진황도에서 개최하는 계기로 회의 참석자 전체가 ‘박씨마을’을 찾아갔다.

우리가 간 마을은 팔도하진 탑구촌으로 박씨가족이 제일 많이 사는 마을이었다. 탑구촌은 기타 농촌지역과 별반 차이가 없는 산골마을로 예전에는 외계와의 연계도 많지 않은 곳이었다. 이런 곳에 우리민족이 살고 있다는 것은 만약 사전에 일정한 요해가 없으면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마을에서 조선족마을의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였고 박씨사람들에게도 우리민족의 흔적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곳에서 단지 ‘조선족’이라는 집념으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필자는 마을에서 태어난 69세 노인 및 그 자녀들과 대화를 하는 가운데서 그들 자신이 조선족이라는 의식만은 아주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김치랑 된장 같은 것을 좋아하고 한복도 한번 입어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것을 보면 역시 같은 민족의 피는 속이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하였다.


▲사진설명: 마을에서 출생한 69세노인과 대화 중(2020.10.03)

이번 탐방에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박씨가족 사람들은 우리를 열정적으로 대해주었고 대화도 많이 나누었으며 우리가 가져간 한복을 입은 부녀들과 아이들의 얼굴엔 기쁨이 역력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이동 중에 마을사람들이 호기심 차서 누구냐고 묻기도 하였는데 박씨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친척들이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때 우리는 아주 감동을 먹었고 한편 소외된 그들의 마음 오죽했을까 하는 착찹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지금까지 조선족사회의 단체행위로 박씨마을을 찾아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전 준비는 좀 있었지만 마을에 대한 요해는 아주 적었다.

현재 탑구촌은 도로가 마을을 지나고 외계와의 연계도 많아 보였으나 마을 면모는 산골마을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고 박씨사람들의 생활도 그리 넉넉하지 않는 것 같다. 한때는 석탄부업으로 생활이 좀 좋아지기도 하였다지만 마을을 떠난 사람들도 많아졌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20세기 80년대 말 이 마을의 박씨성을 가진 조선족이 260여명이 있었지만 현재는 20여 가구에 100명도 되지 않아 박씨마을사람들이 점차 더 흩어져 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이번 걸음에서 이곳은 우리민족사회와 완전히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여기 박씨사람들의 신분은 조선족이지만 조선족사회와 완전히 단절되여 있었고 조선족농민들이 노무로 많이 가는 한국과도 전혀 연계가 없었다.

박씨마을사람들은 민족사회에서 잊혀진 존재이지만 조선족이라는 집념속에서 지금까지 왔으니 참 대단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계속 이런 상태라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우리 역사과정에서 중요한 한폐이지를 장식하는 청룡현 박씨마을은 흐르는 세월 속에, 그리고 민족사회에 소외된 아픔 속에서 점차 초라해지고 소실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이렇게 호소하고 싶다.
박씨마을의 지난 일은 이미 지나갔고 기성세대들에 대한 도움도 필요없는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 관심을 갖고 박씨마을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하여 우리사회에서 뭘 좀 할 수 없는지 심사숙고해보았으면 한다.



정신철
흑룡강신문/ 연해뉴스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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