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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보는 조선족사회의 정착과 리
기사 입력 2016-07-10 23:48:31  

해방전, 동북지역에는 근 2백만에 달하는 조선인(조선족이민 1세대)이 살고있었다. 이중에는 적지 않은 문인들도 포함되여 동북조선인들의 삶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이는 본격적인 조선족문학의 전사(前史)라고도 할수 있는것으로서 흔히 재만조선인문학 또는 조선족이민문학으로 불린다. 이시기 문학을 관통하는 키워드의 하나로 “개척”을 들수 있다.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하여 낯설고 물선 동북에 들어와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의 어려움과 보람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기때문이다. 새로운 삶의 터전의 개척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고향의 건설과 련결되여 “북향(北鄕)” 즉 북쪽의 고향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으며 널리 사용되였다.

1933년 11월, 룡정에서는 “북향회(北鄕會)”라는 문학동인회가 결성되였으며 이 동인회에서는 또 《북향(北鄕)》이라는 동인지를 발간하였다. “북향회”의 결성과 “북향”지의 발간을 계기로 해방전 중국 조선인문단이 형성되였다고도 말한다. 북향회 회원이였던 안수길은 후날 “간도(현 연변 지역)는 조선사람들의 제2의 고향”으로서 이곳에 “우리의 문학을 이룩해보자는 취지”에서 북향회를 결성하였다고 회억하였다.

이처럼 조선인문단 형성과 함께 사용된 “북향”이라는 단어는 그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고있다. “북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안수길을 들수 있다. 안수길은 동북 조선인들의 생활을 반영한 소설들을 묶은 그의 첫 개인창작집 제목을 《북원(北原)》(1944)이라 명하였으며, 조선인들이 동북에서 리상촌을 건설하는 이야기를 다룬 그의 첫 장편소설의 제목을 《북향보(北鄕譜)》(1944)라고 달았다.

안수길의 말처럼 조선의 북쪽, 즉 동북에 제2의 고향을 건설한다는것이야말로 이시기 동북에서 생활한 조선족이민 1세대의 삶에 대한 가장 형상적인 요약이 되겠다. 오늘날 동북에 있는 조선족집거지들은 이런 “북향”건설의 결과물들인것이다.

이렇게 건설한 “북향”이 진정한 “고향”이 된지도 이젠 반세기가 넘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조선족들은 이 “고향”땅에서 우리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켰으며 다양한 문학작품도 창작하였다. 그러나 최근년에 오면서 우리의 문학작품은 어렵게 건설한 “고향”의 위기를 알리고있다. 박옥남의 “둥지”(2005)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둥지”는 벽동툰이라는 한 조선족마을과 그 마을에서 생활하는 한 조선족가정의 이야기를 통하여 조선족공동체의 해체와 몰락을 보여준다. 송화강류역에 위치한 벽동툰은 평안북도 벽동에서 여덟가족이 이주하여 형성된 조선족마을로서 처음에는 팔가자(八家子)라 불렸으나 1954년 소학교를 세우고 그 학교의 이름을 벽동소학교로 명명하면서 마을이름도 아예 벽동툰으로 바꿔버렸다. 벽동소학교는 학생수가 가장 많을 때에는 200여명까지 되였으나 현재는 전교생이 7명이며 끝내는 페교를 맞이한다. 페교된 교사는 이웃 마을의 한족이 사들여 양우리로 사용하며 운동장은 양들이 먹을 사료를 재배하게 된다. 마을이름의 유래에서도 알수 있다시피 벽동소학교의 흥망성쇠는 곧 벽동툰의 흥망성쇠를 반영한다. 소학교의 페교처럼 벽동툰도 현재 몰락을 거듭하고있다. 소학생인 진수는 다니던 학교가 페교되면서 이제부터 외가집에 가 생활하면서 현성의 학교를 다녀야 한다. 한국에 돈벌이를 간 진수의 아버지는 현재 련락이 두절된 상태이다. 진수의 어머니는 농사일에는 관심이 없고 매일 도박판으로만 돌아다니다 촌장과 바람을 피운것이 들통나 마을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오늘날 조선족농촌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우리는 이 작품속에서 찾아볼수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이 작품을 읽고 분석하다가 몇몇 학생이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작품속에서 자신의 고향마을을 보았을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쓰려났다. 필자가 다니던 소학교가 현재 소우리가 되여있고 운동장이 옥수수밭으로 된것을 생각하면 이 작품을 보는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그러면 “또다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어디에 가 어떻게 살아가고있는가? 김혜련의 “아빠트”(2011)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고있다.

“아빠트”는 연변의 한 조선족농촌마을에서 태여난 30살좌우의 네 조선족젊은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철수는 연길의 한 파출소에 근무하고있는데 연길에 아빠트가 없다는 리유로 사귀던 녀자친구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아일랜드에서 돈을 벌어 부모님에게 연길에 아빠트 한채를 사주겠다던 박연은 불법체류가 들통나 그사이 모은 돈을 모두 날리고 자신보다 7살 어린 당지 남성과 결혼하는것을 통하여 강체출국만은 면한다. 상해에서 박사공부를 하는 미자는 량가 부모님들이 10여년 한국에서 번 돈으로 선불금을 내고 상해에 아빠트를 마련한다. 매달 6천원씩 20년간 은행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있지만 미자는 상해에서 대학 교수가 되여 “떠돌이 삶”을 자신의 세대에서 끝내겠다는 꿈을 안고 이악스레 살아간다. 한국에서 박사공부를 하는 영희는 사귀던 가난한 남자친구와 헤여지고 아빠트를 갖고있는 한국남성과 결혼한다. 작품속의 인물들은 모두 “고향”을 등지고 도시에서 “아빠트”때문에 울고 웃는다. 도시에 아빠트를 가졌다는것은 도시에 정착하였다는것으로 리해할수 있다. 이로보면 작품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조선족젊은이들의 도시지향적인 삶과 도시정착과정에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반영한것으로 볼수 있다.

안수길은 “북향”건설을 제2의 고향건설이라고 하였다. “북향”건설을 통하여 우리는“둥지”의 벽동툰처럼 농촌을 중심으로 집거생활을 진행하는 제2의 고향을 건설했으며 벽동소학교와 같은 민족학교의 건립을 통하여 우리의 언어, 문화,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개혁개방이후, 특히는 중한수교이후 조선족농촌공동체는 “둥지”나 “아빠트”에서처럼 해체의 위기를 맞았으며 한국, 일본, 북경, 청도 등 외국이나 연해도시에 새로운 조선족공동체를 건설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였다. 이런 새로운 도시조선족공동체의 건설을 우리는 “제3의 고향건설” 또는 “남향”건설이라고도 할수 있겠다.

우리가 그토록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북향”을 건설했던것처럼 비록 당분간은 여러가지 현실적어려움이 많겠지만 “남향”도 또 하나의 “고향”으로 잘 꾸려갈수 있을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런 “남향”건설을 반영한 보다 많은 작품이 나타나 우리 조선족문학을 풍성히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학송 략력】
최학송(崔鶴松)
소속: 중앙민족대학 조선언어문학부
전공: 조선족문학, 재중조선인문학
학력: 한국 인하대학 문학 박사
연변대학 조문학부 문학 학사
경력: 현재 중앙민족대학 조선언어문학부 부교수

주요 론저:

저서로는《재중 조선인 문학 연구》(2013)、《주요섭 연구》(2014), 역서로《1946년 북조선의 가을》(2006)이 있으며, 이 외에 《‘만주’체험과 강경애문학》(2007) 등 논문 20여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




최학송
흑룡강신문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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