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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121]가난했지만 풍요로왔던 시절의 추억
기사 입력 2019-01-11 10:56:52  

어린 시절 필자(오른쪽 뒤)가 형제, 사촌들과 함께.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9)

지난 세기 80년대에 태여난 우리를 80후라고 부른다. 개혁개방의 급물살을 타고 중국의 40년을 거쳐 이룬 성과를 몸과 마음으로 감수하면서 성장한 우리 세대이다. 이렇게 40년 가까이 품어왔던 많고 많은 추억들속에서 평생 안고 가고픈 추억만 꺼내여 독자들과 공유하고저 한다. 그것은 바로 물질세계는 가난했지만 정신세계는 풍요로왔던 유년시절의 추억들이다. 나 또한 지금도 심심하면 아들놈에게 옛이야기처럼 들려주곤 하는 그 시절 기억의 쪼각들이다.

내가 태여난 곳은 지난 세기 80년대의 어느 조그마한 촌 동네였다.“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노래가사처럼 전통적인 조선족 동네가 아니라 내 고향은 주위에 한족이 대부분이고 조선족은 적은, 연변 집거지구와 비교되는 산재지역이였다. 그래서 소학교도 전문 조선족소학교가 아닌, 한족학교의 교실을 빌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개 학급씩만 꾸려나가는 식이였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환경에서도 우리 민족 언어를 배울 수 있게끔 조건을 마련해준 정부의 민족교육정책에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덕분에 나도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 언어로 능숙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것 중 하나라면 아마도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던 추억이 아닐가 싶다. 그 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 TV, 컴퓨터 등 전자제품이 없던 때라 놀 수 있는 거라곤 친구들과 술래잡기, 딱지치기, 유리구슬치기, 공기놀이, 고무줄뛰기 이런 것 뿐이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어린 시절을 화려하게 장식해주었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한번씩 그 때의 추억을 되살려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여남을 느낄 수가 있다.

어릴 때는 지금처럼 교통수단도 풍부하지 않아서 집에서 유일하게 쓸 수 있는 교통도구가 자전거인 걸로 기억된다. 그것도 앞에 가름대가 있는 큰 자전거 말이다. 아버지는 종종 나랑 남동생을 태우고 퇴근하시곤 했는데 그 때면 동생은 앞 가름대에 걸터앉고 나는 뒤쪽에 앉아서 룰루랄라 집으로 향했다. 하교길에 어쩌다 황소가 끄는 수레가 지나가면 애들은 얼싸 좋다고 우르르 몰려들어 너도나도 거기에 앉아서 가려고 서로 밀치고닥치고 했다. 그래도 인심 좋은 소몰이 아저씨를 만나면 본척만척 내버려뒀지만 고약한 아저씨라면 채찍으로 애들을 내쫓기도 했다. 저급학년 어린이들은 담임선생님이 줄을 딱 세워서 손잡고 하교하면서 집집마다 데려다준 것으로 기억된다.

어릴 때 간식이라곤 퉁퉁 부은 빵, 손가락과자, 말똥과자만이 기억난다. 그마저도 평소에는 입에 못 대여보고 모내기철이나 가을걷이철에 부모님들이 참으로 준비해간다고 조금씩 사는 것에서 뜯어먹어본 것 같다. 제일 많이 먹은 간식이라면 아마 누룽지일 것이다. 가마솥에서 금방 지은 밥을 퍼내고 누룽지를 동그랗게 오무려서 등교길에 엄마가 항상 쥐여줬던 것 같다. 그 때는 하도 먹어 질려서 몇입 떼여먹고는 가다가 던져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지금도 그 때 추억이 떠올라 한번 먹어보려고 해도 구하기 귀한 음식으로 되여버렸다.

겨울철이 되면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그 때 반찬이래야 제일 흔한 것이 김치와 계란볶음이였다. 오전 3교시가 끝날 무렵 선생님이 화로불 우에 애들의 도시락통을 올려놓고 밥을 덥히기 시작하는데 그 때부터 교실 안에는 김치가 들들 익어가는 냄새로 가득찬다. 그 때 도시락통이라면 일본말로‘벤또'라고 하는 것인데 알루미늄 재질로 된 거라 열전달이 빠른 대신 겉면이 아주 뜨거워서 많이 데여봤을 것이라 믿는다. 점심에는 애들 끼리 희희락락거리면서 도시락 반찬을 서로 나눠먹기도 하고. 지금은 학교에서 반찬을 몇가지씩 주는 데도 맛없다고 투정하는 아들을 보면서 그 때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아무래도 리해를 못하는 눈치다.


홍색근거지에서 혁명전통 되새기기 체험활동에 참가한 필자

어린 시절 집안에서 놀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보니 우리는 대자연을 만긱할 수 있었다. 봄이면 친구랑 같이 민들레, 달래, 냉이를 캐러 들로 부지런히 다녔다. 그 날 점심은 어김없이 엄마가 큰 양푼에다 캐온 민들레, 달래에 고추장 듬뿍 얹어 맛갈스럽게 비빔밥을 만들어주었다.

여름에는 동네 강물이 우리의 천연놀이터가 되였다. 아낙네들은 거기로 가서 방망이질하면서 수다도 떨고 우리 어린 것들은 풍덩풍덩 물속에 뛰여들어 미역을 감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어른들은 누구도 자녀가 강물에서 미역을 감다가 사고나지 않을가 하는 걱정을 안했던 것 같다.

여름철에 가장 기대되는 소식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학교에서 원족 간다는 소식이였다. 며칠 전부터 원족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밤잠까지 설친 걸로 기억된다. 또한 원족 가는 날 아침이면 제일 먼저 일어나 하는 일이 창밖의 날씨를 살피는 것이였다. 비가 오거나 하면 원족은 취소되는 것이였으니까. 원족 가는 날만은 엄마가 사과며 과자며 삶은 계란이며 바리바리 많이 싸주었던 것 같다. 요즘은 많이들 김밥을 싸서 소풍 간다고 하는데 그 때는 중한수교 전이라 김밥이 뭔지도 몰랐다.

가을철에는 겨우내 학급에서 피워야 할 화로불 땔감을 준비해야 했기에 일요일이면 남자애들 같이‘벤또'를 싸들고 솔방울 주으러 산으로 갔다. 남자애들이 소나무 우에 올라가서 흔들면 솔방울들이 후둑후둑 떨어지는데 녀자애들은 그걸 부지런히 주어담았다. 가득 주어담은 솔방울 마대를 이고 지고 집으로 오는 것도 아이들이였고 학교에 이고 간 것도 아이들, 겨울철 불을 지피는 것도 아이들 몫이였다. 지금처럼 학부모들이 학교에 유리창까지 닦으러 가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겨울철 눈이 오면 대자연은 우리의 최고의 놀이터가 되였다.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 하고 눈을 퍼서 화로불 우에 얹어서 서서히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살피고 하여튼 놀거리가 너무도 많았다. 또한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길이 막히면 어른들 아이들 할것없이 길가로 나와 눈을 치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 방학은 우리에게 얼어붙은 강얼음판에 가서 팽이를 치게 해주었고 산비탈 경사진 면에 자연이 만들어준 미끄럼대에서 실컷 미끄럼질도 하였다. 종일 미끄럼질 하고 나면 바지 엉덩이가 마모되여 구멍이 펑 뚫려서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도 생생하다.

명절 때가 되면 친척 식구들 다 같이 모여서 함께 지낸 걸로 기억된다. 사촌형제들 같이 놀면서 싸움도 많이 했건만 그래도 그것이 진정한 유년시절이였다. 지금은 집집마다 하나씩 키울뿐더러 친척들도 다들 뿔뿔이 흩어져 살아서 일년 가도록 한번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여버렸다. 가끔 핸드폰 영상통화로 건네는 안부전화가 전부가 된 지금, 나의 자식에게 참말로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들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다.

시대가 발전하고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안해도 된다. 아이들도 자기들이 하고만 싶다면 뭐든 시켜줄 수 있는 부모가 되여버렸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어린 시절 친구들과 지냈던 추억이 그리운지 모르겠다. 맛있는 것 많이 못 먹고 이쁜 옷 많이 못 입고 보고 싶은 책 많이 못 봤지만. 그 때 친구들과 보낸 일상이 지금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추억의 재부로 남아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유년시절을 회억해보라 하면 어떤 기억을 들춰낼 수 있을가? 너무 안타깝다.

또한 그 때는 한가지 일을 전념하여 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나 요즘의 시대는 너무도 많은 정보와 물질세계가 우리의 정신세계에 꽉 들어차서 내가 정녕 얻고저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목표가 무엇인지를 잃고 방황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져버렸다. 부모가 된 우리로서 아이들에게 정녕 무엇을 가르쳐주고 어떤 면으로 인도해야 할지 정말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나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자고, 그리고 많은 물질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추려내는 재간을 가르쳐주어 그 속에서 자기가 정녕 원하는 것을 확정하고 그 길로 노력할 수 있게끔 인도해주자고 모든 부모님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더 이상 수많은 학습반을 늘여놓지 말고 아이가 원하는 것 하나만 선택하고 나머지 시간을 할애하여 친구들과 함께 더 많이 뛰여놀게 하자고.

내 어린시절 추억을 더듬어보다가 깨닫게 된 점을 여러분과 공유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


▩ 윤미란(장춘)
길림신문 20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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