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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조선 기록들 4(2) |
| 치우천왕 조회 2,868 2007.04.08 | 치우천왕님의 다른 글 |
54) 그 아이를 낳았으나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돼지우리에 버렸더니 돼지가 입김을 불어주고, 마구간에 버렸더니 말이 젖을 먹여서 죽지 않았다. 마침내 부여의 왕이 되었다.
55) 신라 시조 혁거세 즉위 19년 임오(기원전 39)에 변한 사람이 나라를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였다.
56) 『신당서』『구당서』에는 변한의 후손들이 낙랑 땅에 있었다 하고,『후한서』에는 변한은 남쪽에 있고, 마한은 서쪽에 있고 진한 은 동쪽에 있었다고 했으며, 최치원은 변한이 백제라 했다.
57) 온조왕이 일어나 나라를 세움은 홍가4년 갑진년 (기원전17)이었다.
58) 혁거세왕과 동명와의 시대보다도 40년이 뒤졌는데, 『당서』에 변한의 후손들이 낙랑 땅에 있었다고 함은 온조왕의 계통이 동명왕으로부터 나온 까닭으로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59) 구룡산을 잘못 알아 또한 변나산 이라 불렀던 까닭으로 고구려를 변한 이라하나 그것은 그릇된 것이다.
60) 마땅히 현인의 말을 옳다고 할 것이다. 백제 땅에 변산 이 있었던 까닭으로 변한이라 이른 것이다.
61) 진한의 늙은이는 진(秦) 나라에서 망명한 이들이 한국에 오니 마한이 동쪽의 땅을 떼어서 그들에게 주고 서로 부르기를 도徒라 하며 진나라 말에 가까운 까닭으로 혹은 진한 (秦韓) 이라고 했다.
62) 최치원은 진한은 본래 연나라 사람들이 피난해왔던 것이므로 탁수 (涿水) 의 이름을 따서 그들의 사는 읍과 마을을 일컬어 사탁 (沙涿), 점탁 (漸涿) 등으로 불렀다.
63) 봄에는 동야택 여름에는 곡량택 가을에는 구지택 겨울에는 가이택에서 놀았다 헌강대왕 때에는 성안에 초가집은 하나도 없고 집은 이웃과 서로 처마와 집은 이웃과 서로 처마와 담이 붙어 있었고 노랫소리와 피리 소리가 길거리에 가득하여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64) 진한의 땅에는 옛날에 6촌이 있었다.
65) 첫째는 알천 (閼川) 양산천 (楊山村) 이니 남쪽은 지금 담엄사다. 촌장은 알평이다. 처음 하늘에서 표암봉 (瓢嵓峯)에 내려오니 이가 급량부 이씨의 조상이 되었다.
66) 돌산 고허촌이니 촌장은 소벌도리다. 처음에 형산에 내려오니 이가 사량부 ― 양은 도라 읽고 혹은 탁이라고도 쓰나 역시 도라고 발음한다 ― 정씨의 조상이 되었다.
67) 무산 (茂山) 대수촌 (大樹村) 이니 촌장은 구례마 ― 혹은 구라고 쓴다 ― 이다. 처음에 이산 (伊山) ― 혹은 개비산이라고 한다. 지금은 장복부라 하니 박곡촌 등 서촌 (西村)이 이에 속한다.
68) 자산 진지촌 이니 촌장은 지백호 (智伯虎) 이다. 처음에 화산에 내려오니 이가 본피부 최 (崔)씨의 조상이 되었다.
69) 지금은 통선부 라 하니 시파 (柴杷) 등 동남촌 (東南村) 이에 속한다. 최치원은 본피부 사람이다. 지금 황룡사 남쪽 미탄사 남쪽에 옛터가 있다 하니 이것이 최후의 옛 집임이 분명하다.
70) 금산 (金山) 가리촌 이니 촌장은 지타다 처음에 명활산에 내려오니 이가 한기부 배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가덕부라하니 상서지 하서지 내활 등 동촌이 이에 속한다.
71) 지금풍속에는 중흥부를 어머니 라 하고 장복부를 아버지라 하고 임천부를 아들이라, 가덕부를 딸이라 하는 데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다.
72) 전한 지절 (地節) 원년 임자 (기원전 69) 3월 초하루에 6부의 조상들은 각기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의 언덕위에 여여서 의논했다.
73) 백성을 다스릴 임금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방자하여 마음대로 하게 되었소. 덕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을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지 않겠소.
74)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陽山) 밑 나정 (蘿井) 곁에 이상한 기운이 전광처럼 땅에 비치는데 흰말 한 마리가 끓어 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75) 붉은 알 한개 가 있는데, 말은 사람을 보고는 길게 울다가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알을 깨어 보니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놀라고 이상히 여겨 그 아이를 동천 (東泉)에서 목욕시켰다.
76)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이 따라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해지므로 , 그 일로 인하여 그를 혁거세왕이라 이름했다.
77) 위호 (位號) 는 거슬한 이라고 했다 혹은 거서간 이라고도 하니 이것은 극 처음 말할 때에 스스로 알지거서간 이 한번 일어났다고 했으므로 그 말로 인해서 부른 것인데 이로부터 와자의 존칭이 되었다. “이제 천자 天子 가 이미 하늘에서 내려 왔으니 마땅히 덕 있는 왕후를 찾아서 배필을 삼아야 할 것이오.”
78) 남산 서쪽에 있는 산기슭에 궁실을 짓고 두 성스러운 아이를 받들어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나왔으며, 그 알은 박고 같았다.
79) 향인 (鄕人) 들은 박을 박 (朴)이라 하는 까닭으로 그로 인하여 그 성을 박이라 했다. 계집아이는 그가 나온 우물 이름 알령으로써 이름을 지었다 두 성인은 나이 열 세살이 되자 오봉 (五鳳) 남자는 왕이 되고 여자는 왕후가 되었다.
80) 나라 이름을 서라벌 (徐羅伐) 이라고 했다. 처음 왕후가 계정에서 탄생한 계림국 이라하니 계룡이 상서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81)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왕은 하늘로 올라가고 7일 후에 그 몸뚱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는데, 왕후도 또한 세상을 떠났다 한다.
82) 나랏사람이 합장하고자 하니 큰 뱀이 쫓아와서 방해했다. 머리와 사지를 장사지내어 오릉 (五陵)을 만들고, 또한 한 사릉 (蛇陵) 이라 했으니 담엄사 북릉 (北陵)이 바로 이것이다. 태자 남해왕이 왕위를 계승했다.
83)『삼국사』를 살펴보면 “신라에서는 왕을 거서간이라 일컬었는데, 진한 말의 왕이다. 어떤이는 귀인을 부르는 칭호”라고 한다.
84) 세상사람들이 무당은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는 까닭으로 무당을 두려워하고 공경하게 되므로, 드디어 존장 되는 이를 불러 자충이라 하다고 했다.
85) 처음에 남해왕이 세상을 떠나니 아들 노례 (弩禮) 가 탈해에게 왕위를 사양했다.
86) 신라 왕 으로서 거서간과 차차웅이라 부른 이는 한 분이요, 이사금이라 부른 이는 열여섯 분이며 마립간이라 부른 이가 네 분이다
87) 신라 사람들은 모든 추봉된 이를 갈문왕이라고 불렀는데 자세히 알 수 없다.
88) 남해왕 때 낙랑국 사람들이 금성을 침범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또 천봉 5년 무인에 고구려 속국 일곱 나라가 항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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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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