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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당시 [조선족 부대]는 없었다
오아시스 조회 8 2025.12.14			오아시스님의 다른 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은 막강한 화력으로 기습 남침을 감행했다. 38선과 서울 주변의 방어선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전쟁은 불과 며칠 만에 한반도 전체의 운명을 가르는 국면으로 치달았다. 그 최전방에는 북한이 가장 신뢰하는 최정예 병력 - 제5사단, 제6사단, 제12사단이 있었다. 이 세 개 사단은 풍부한 실전 경험과 막강한 전투력으로 한국전쟁 초기의 전황을 사실상 결정지은 핵심 전력이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이들 세 개 사단의 병력을 두고 하나의 단순한 설명이 반복되어 왔다. 바로 이 최정예부대를 조선족 부대로 규정하는 통설이다. 학술연구에서 출발한 이 통설은 대중담론속으로 스며들어 굳어졌고 이제는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조선족 출신 필자의 칼럼에서도 이 세 사단이 조선족 병력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특별히 강조되곤 한다.

이러한 개념 혼동은 학술 연구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실제로 한국 언론과 칼럼, 유튜브 등에서 이들을 조선족으로 규정하고, 나아가 [6.25 전범 후손]이라는 식으로 조선족 전체를 낙인찍는 담론이 반복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으로서, 그리고 당사자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이 통설은 오래된 개념 혼동 위에 세워진 잘못된 인식이다. 분명히 짚어야 할 사실이 있다. 6.25 전쟁당시, 조선족 부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연안파의 실체 ― 중국에서 싸운 조선인

제5, 6, 12사단의 골간을 이룬 병력은 이른바 [연안파]출신 조선인이었다. 연안파란 북한 권력 형성 과정에서 흔히 언급되는 국내파, 소련파와 함께 거론되는 중요한 정치, 군사적 계파로, 중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고 국공내전을 거쳐 해방 이후 귀환한 조선인 집단을 가리킨다. 사실상 [중국파]라고 불러도 무방한 이들은 중국공산당과 협력하며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여한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6.25개전 이전에 중국에서 북한으로 입북한 조선인 병력은 약 5만에서 6만명,이 중 약 3만여 명이 제5, 6, 12사단에 편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보유한 실전 경험과 조직력은 전쟁 초기 북한군이 압도적인 전투력을 발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연안파 조선인들이 중국 혁명사와 깊은 접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 중국공산당 경력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의 무대가 중국 대륙이었다는 사실이 이들을 곧바로 조선족 부대로 호명하게 만들었다.

중국과의 연고 ≠ 중국 국적

그러나 연안파는 중국 국적의 소수민족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중국은 귀속의 대상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기 위한 투쟁의 공간이었다. 이들이 속한 부대는 중국 공산당의 지휘 체계 아래 있었지만, 그 민족적 정체성은 끝까지 [조선인]이었다. 일본의 패망은 곧 중국 혁명에 참여한 조선인으로서의 사명이 끝났음을 의미했고, 이후 조선으로의 귀환은 애초부터 예정된 귀결에 가까웠다. 물론 이 귀환 과정에 북중간 모종의 정치적 협의가 있었으나 본질은 분명하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중국이 아니라 조국, 즉 조선의 독립과 해방, 그리고 새로운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연안파가 무기를 들었던 이유였다. 6.25 개전 당시 최전선에 서 있었던 이들의 정체성은 조선족이 아니라, 분명히 조선인이었다.

[조선족]이라는 번역이 만든 오해

연안파가 조선족으로 굳어지게 된 데에는 연구 자료의 수용 과정도 크게 작용했다. 연안파 관련 연구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 측 문헌에 의존해 왔는데, 중국 학계는 이들을 조선족(朝鮮族)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 문헌에서 사용되는 조선족이라는 용어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국적, 행정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이 용어가 반드시 중국 국적의 소수민족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역사적 맥락에 따라 조선민족 전체를 가리키는 민족 계통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중국에서 조선족이라는 용어가 중국 국적 소수민족을 가리키는 행정 개념으로 재정의된 것은 1952년 민족분류사업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도 중국에서는 몽골족, 회족 등과 마찬가지로 조선인을 조선족이라 불렀고, 두 표현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항일전쟁기나 국공내전기 문헌에서 조선족이 등장한다 해서 그것이 곧 오늘날의 행정적 의미와 같다고 볼 수는 없다. 요컨대, 당시 중국 문헌의 [조선족(朝鮮族)]은 민족 계통/혈통을 가리키는 넓은 개념(조선인, 조선 민족 전체)으로 쓰였고, 오늘날 한국에서 말하는 [조선족]은 1950년대 이후 중국 국적을 취득한 특정 집단(중국 국적 조선계 소수민족)을 가리킨다. 이 두 개념이 구분되지 않았을 때, 연안파 조선인은 곧바로 [중국 국적 조선족 부대]로 잘못 치환된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맥락은 축약되었고, 정체성의 층위는 단순화되었다. 용어 하나가 정체성을 왜곡할 수 있다. [조선족 부대]라는 말은 연안파의 선택과 대가를 흐리고 조선족의 실제 전쟁 경험은 지우거나 왜곡하며, 오늘날 조선족을 [6.25 남침의 앞잡이 후손]처럼 만드는 정치적 낙인을 생산한다.

중국 문헌 번역을 글자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김구, 안중근, 홍범도 같은 인물들도 중국 문헌에서는 때때로 조선족으로 표기되기 때문이다. 이걸 맥락 없이 [중국 소수민족 조선족]으로 읽어버리면, 한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들까지 중국의 소수민족 역사로 포섭되는 길이 열린다. 이는 단순한 번역 실수가 아니라, 역사 주도권과 기억의 주체 문제와 직결된다.

조선족은 분명히 참전했다

조선족이 6.25 전쟁에서 수행한 역할을 지우려는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역할이 [연안파=조선족]이라는 잘못된 등식 속에서 필요에 따라 때로는 과장되어, 때로는 축소되어 소비되어 온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조선족은 분명히 참전했다. 다만 그것은 연안파의 전쟁과는 다른 자리, 다른 이름 아래서였다.

조선족은 개전이후 조선족의 이름이 아닌 중국인민지원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언어적 장점을 가진 조선족 군인들은 일선 보병 전투부대보다는 정찰, 통신, 통역, 안내, 의료, 후방 지원 등에서 인적 자원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연안파의 귀환이후 조선인부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중국인민지원군에도 당연히 조선족 부대가 존재했을리 없다. 민족 단위의 독립부대 편제는, 다민족 국가인 중국의 정치, 군사 논리상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발상이다.

그러면 조선의용군은 왜 가능했나? 조선의용군은 중국공산당이 자국 소수민족으로 편입한 병력이 아니라, 중국 땅에서 일본과 싸우던 기존의 조선인 무장세력이었고, 공산당과의 동맹 관계 속에서 일시적으로 지휘체계에 편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조선의용군은 중국에서는 외국인부대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정체성의 차이와 그 분기점

연안파와 조선족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둘 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에서 싸웠다. 그러나 일본이 패망한 후 두 집단의 길은 갈라졌다. 일부는 본래 목적의 연장선상에서 조국으로 귀환하여 황폐화된 조국의 재건을 위한 길을 택했고, 일부는 남아서 이들과 함께 개척했던 민족의 새 터전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어떤 조직적인 합의를 거친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역사적 역할이 나뉘게 된 것이다. 이 시점이 두 집단의 정체성이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귀환한 집단은 귀환후 조선인이라는 원래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그때를 기점으로 북한에서 연안파로 분류된다. 연안파라는 정체성도 그때 생겨난 것이다. 나머지는 잔류하여 중국 국적을 취득함으로써 비로소 오늘날 한국인들이 말하는 의미의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두 집단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한, 누구의 역사도 정확히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 중국과의 연고가 있었다는 사실과 중국 국적 소수민족이라는 규정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 기본적인 구분을 회복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6·25 전쟁 당시 조선족 부대는 없었다]는 말은 단순한 명칭 바로잡기가 아니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선택과 경험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며, 연안파와 조선족이라는 서로 다른 역사를 각자의 자리로 되돌려 놓기 위한 최소한의 구분이다.

조선족의 역사는 한국사의 주변부가 아니라,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궤적을 가진 제3의 민족사다. 잘못된 명명은 그 궤적을 흐리고, 정확한 구분은 오히려 그 역사를 제자리에서 또렷하게 만든다. 역사는 객관적이지만, 그 객관적인 역사의 해석은 잘못된 기록에 의해 객관적이지 않게 변질될 수도 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조선족의 역할을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리에서 다시 보게 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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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