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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망이 깎던 노인- ‘존댓말’ 제안 건에 부쳐
관리자    조회 4,813    2014.02.08관리자님의 다른 글      
우리는 흔히 글에서 글쓴이의 인품과 인격을 볼 수 있다고 얘기하곤 한다. 그렇다. 이 말을 쉽게 반박하기는 어렵다. 글에서 글쓴이의 삶의 자세가 어느 정도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글쓴이의 실제 삶이 비도덕적인 사람도 있을 수 있으며 아주 형편없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면 좀 갸우뚱해지겠지만. 어쨌든 글쓴이의 인품과 인격이 실제 삶에서도 엿볼 수 있다면 아마 금상첨화일 터.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며칠 전 ‘존댓말 제안’을 했지만, 그 제안에 몇 독자 의견 이외 다수의 독자는 시큰둥한 반응이고 불편해하는 분위기니, 자유게시판 ‘글쓰기 주의사항’만 잘 지켜주기 바란다. 그것만 잘 준수해도 무난하리라 본다. 단, 오늘(2014년 02월 08일)부터는 독자 가운데 영구히 ‘발제 글’ 또는 ‘발제 글’과 ‘댓글’ 쓰기 정지(물론 그 과정은 신중에 신중을 다하겠다.)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 즉 영구히 댓글만 쓸 수 있되 발제글은 쓸 수 없는 독자가 있을 수 있고, 발제글과 댓글을 영구히 쓸 수 없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이 선택은 결국 독자 몫이다. 특별히 주의 바란다. 다른 필명으로 재가입해도 똑같이 적용. 부적절한 글·악의적인 글을 생산해 내는 독자는 본인 스스로 더 잘 알 것으로 본다. 유치원 아이가 아닌 이상.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만, 그래도 독자들에게 한마디 더 조언 드리자면 글은 ‘진정성’ 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글 내용(알맹이)에 진정성만 있으면 그만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물론 맞는 얘기다. 하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은 글 내용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춘 표현의 방식도 포함하고 있음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포장지를 싸서 건네는 선물과 포장하지 않고 건네는 선물 가운데 어느 것이 성의가 더 있어 보이는가.

윤오영의 수필에 등장하는 노인처럼 이 공간을 방문하는 일부 독자들은 왜 자기 글(발제 글과 댓글)을 정성 들여 다듬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고 소설가, 수필가, 시인, 칼럼니스트처럼 글쓰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자유게시판이지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게시판이 아무도 볼 수 없는 동굴 속의 공간이라면 솔직 그냥 상관하지 않겠다. 그러나 인터넷이란 것이 어디 그런가? 이 공간도 한중동포가 모두 들여다보는 곳이란 얘기다.

생각해 보라! 불특정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아무렇게나 휘갈긴 글이 선량한 한중동포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일부 한중 누리꾼은 ‘진정한 자유’를 너무 모른다. 더욱이 상호 존중하는 자세가 부족하다. 스스로 글쓰기 자세를 조금만 뒤돌아보자!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우리 함께 가자!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을 전하면서 글을 맺는다.


         *                          *                          *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기(竹器)는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기는 대쪽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기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약재(藥材)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숙지황(熟地黃)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九蒸九曝)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북어 자반을 뜯고 있었다. 전에 더덕, 북어를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 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檮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擣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윤오영,「방망이 깎던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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