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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 이세민 조선태종 이방원 청태종 홍타이지 공통점(1)
배달민족    조회 5,516    2010.02.19배달민족님의 다른 글      
그들은 전부 배달민족 출신의 명군이었다

당태종 이세민과 조선의 태종 이방원

나는 그 둘을 한번 비교해보려고 한다. 그럼 일단 먼저 태종이라는 같은 묘호를 쓰고 있는 두 왕이기에 난 일단 태종이라는 묘호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태종이란 묘호를 쓴 왕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크게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어떻게 태종이라는 임금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까? 일단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개국한 임금을 태조라 하고 태조를 계승한 이를 태종이라 하는데, 이것은 역대의 공통된 칭호입니다" -연산군 1년 1월 15일
개국시조를 태조, 태조를 계승하여 나라의 기틀을 잡은 임금을 태종으로 하는 것은 한마디로 요즘 유행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당나라 이래 '태종'이 있었던 국가는 대부분 최소 200년 이상 장수하는 것만 봐도 '태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그럼 당 태종 이세민은 과연 누구일까?

당 태조 이연보다도 당왕조 건국에 공이 컸던 것은 그의 차남인 세민이었다. 망설이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거병케 한것도, 거병을 위한 모든 계책을 수립한 것도 세민의 열성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또한 건국이후 10년에 걸친 국내평정도 원수의 자격으로 군대를 지휘한 세민의 공이 매우 컸다. 그러나 그의 황제등극 과정은 그리 순조롭지 못했다. 조선 태종의 '왕자의난'과 비슷한 '현무문(玄武門)의 변(變)'이라는 것을 겪었다.

본래 세민은 차남이라 고조는 장남인 건성을 황태자로 봉하고 세민을 진왕(秦王)으로 봉하였으나 세민의 공이 워낙에 큰지라 진왕에 더하여 천책상장으로 봉하였다. 또한 세민은 수도 군대의 통솔권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황태자로서는 그 지휘가 매우 불안하였다. 황태자는 아우인 세민을 실각시키기 위하여 셋째 아우인 제왕과 황제의 비빈들과 도모하여 밤낮으로 세민을 무고하였다.

마침내 황태자는 제왕과 짜고 세민을 죽이려고까지 하였으나 세민은 그것을 알면서도 망설였다고 한다. 마침내 측근들에 의해 결심을 굳힌 세민은 먼저 선수를 쳐 현무문 앞에서 황태자를 활로 쏘아 죽이고 제왕역시 살해하였다. 이에 질려버린 고조는 세민을 황태자로 책봉하였다. 626년 8월 9일 아버지 고조에 이어 2대 황제로 즉위한 세민, 즉 태종은 연호를 정관(貞觀)이라 고쳤는데 그의 치세인 정관 23년간은 '정관의 치'라고 해서 유교적 관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치가 시행된 시대라고 한다.

태종의 정치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재를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인재를 모으는데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그의 밑에는 방현령, 두여회, 위징, 왕규, 이정, 이적 등의 명신 명장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으며 자신 또한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나라가 민심을 살피지 않아 단명한 것을 알고있던 그는 백성생활의 안정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았다.

"군주는 나라가 있은 다음에 군주이며, 나라는 백성이 있은 다음에 나라이다"

즉위 초에 우선 궁녀 3천을 해방하여 집으로 돌려보냈으며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자식을 노예로 팔아 호구를 연명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자신의 내탕금을 지출하여 팔린 자식의 몸값을 치루고 부모에게 돌려보냈다. 하늘이 도왔는지 4년째에는 대풍이 들어 민심이 수습되었으며 자연히 범죄도 줄어 나라가 안정되기 시작하였다.

당의 창업과정과 국내평정 과정에서 그 무력을 과시한 태종은 수성과정에 있어서는 문치(文治)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남북조 문화의 집대성을 목적으로 하여 문화사업을 크게 일으켜 유학의 경전인 오경(五經)을 교정하고 주석을 달았으며 계속 교정을 거듭하여 편찬된 오경정의는 태종시대의 문화사업을 대표하는 것이 되었다.

태종은 귀족세력을 억압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300년이 넘는 분열기를 거치며 중국에는 수많은 명문가(名門家)들이 존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당왕조 건립에 공로가 있는 가문을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아무런 공로가 없는 산둥지방의 최씨(崔氏), 노씨(盧氏)가문 등이 존경받는 것은 괘씸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수여하는 관작을 기준으로 새로운 명문가의 서열을 만들려 하였으나 귀족들의 반발로 일종의 타협을 보아 명문가의 서열을 담은 <씨족지(氏族志)>라는 책을 편찬할 때 황족을 1서열,  외척을 2서열, 별볼일 없는 관작의 최씨가문을 3서열로 하였는데 당시 상황으로 봐서는 황족과 외척을 1, 2서열로 기재한 것만으로도 당 황실의 권력이 매우 강해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정관시대는 또한 걸출한 인재들이 많았던 시대로 유명하다.

좌청룡 우백호로 평가되는 방현령(房玄齡), 두여회(頭如晦)와 같은 명재상과 돌궐과 터키토벌에 큰 공을 세운 이정과 이적같은 무장, 명간관(임금에게 직언을 하는 직책)으로 유명한 왕규, 위징, 태종의 문화정책에 있어 좋은 상담역이었던 구양순, 우세남과 같은 인물들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역사상 굴지의 명군으로 꼽히는 태종이 이루지 못한 숙원이 있었다면 그것은 고구려 정벌이다. 중국을 평정하고 동돌궐, 천산남로의 서역제국을 복속케 하고 토번을 회유하여 세계제국을 이룬 태종은 마지막으로 고구려 정벌을 시도하나 끝내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실패로 끝난 고구려 원정에 있어서도 싸움에 쓰러진 장병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유주(幽州)에 민충사(憫忠寺)를 세우고 기념비를 남기게 하는 정치적 감각을 발휘하였다.
태종 이세민의 23년간의 재위는 당제국의 기틀을 확실히 잡아놓은 기간이었고 당나라가 장수하는데 확실한 원천이 되었으며 무치(武治), 문치(文治) 어느 부분에서도 비할데 없는 업적을 세워 적어도 중국의 입장에서는 역사상 제일가는 명군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조선 태종 이방원은 어떨까?

태종 이방원
1367년 함흥 귀주동의 사저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위의 형들과 달리 학문을 가까이했으며 1382년 문과에 급제하였을 때 이성계와 어머니 한씨가 매우 기뻐하였으며 이성계의 아들들 중 가장 똑똑하고 치밀하였다. 1388년에 정조사 서장관으로 이색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온 이후, 아버지가 위화도 회군을 일으키자 가솔들과 함께 동북면으로 피신했으며 아버지를 도와 고려 왕조 유지 세력을 제거하였다. 특히 부하인 조영규를 시켜 정몽주를 선지교에서 제거함으로써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신진 세력의 기간을 굳건하게 하여 새로운 왕조인 조선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392년 이성계가 태조로 등극함에 따라 정안대군에 봉해졌다.

원래 왕세자를 장자로 세워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조선 개국에 회의적이었던 태조의 장남인 진안대군 이방우를 제치고, 신료들은 가장 유능한 왕자를 세자로 세우라 주청 올렸다. 개국의 공로를 따지면 이방원이 태조의 아들들 중 가장 많은 공을 세웠으나, 당시 신권을 주창하던 정도전은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면 신권을 주장하는 자기들을 제거할까봐 두려워 결국 왕세자로 태조의 막내아들이자 계비 신덕왕후 소생인 의안대군 방석을 선택하였다. 정비인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들은 이에 크게 불만을 나타내었으며 그것은 누구보다 조선 개국에 공이 컸던 이방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도전이 왕자들의 정치 언급을 막고 급기야 사병 혁파를 기도하는 등 이방원과 마찰을 빚자, 이방원은 1398년에 부왕 태조가 와병 중임을 틈타 아내 민씨의 후원과 하륜·이숙번·처남 민무구·민무질 등과 함께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남은·무안대군 방번·세자 방석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얼마 안가 태조는 차남인 영안대군 방과에게 보위를 물려주니, 방과는 정종이 된다.

그러나 형제들간의 분란이 또 발생하는데, 이방원의 넷째 형인 회안대군 방간이 박포의 꼬드김에 넘어가 1400년에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장수들과 병사들을 가지고 있던 이방원은 쉽게 이 난을 진압하고 왕위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었다. 그 해 2월에 정종으로부터 왕세제로 책봉되었고 그리고 왕세제로 책봉된 지 9개월 만에 정종의 양위를 받아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태종은 조선 초기의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관제 개혁을 통한 왕권 강화에 온 힘을 쏟았다. 중앙 제도와 지방 제도를 정비하여 아직 남아있던 고려의 잔재를 완전히 없애고 군사 제도를 정비하여 국방력을 강화하였으며 토지 제도와 조세 제도의 정비를 통하여 국가의 재정을 안정시켜 나갔다. 그리고 신료들의 중심으로 정사가 이루어지던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 육조 직계제를 통해 관료들이 왕에게 직속되게 하였다. 그가 이렇게 관료들을 잘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고려 말기에 10년 간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로 지냈던 적이 있었기에, 관료들이 어떤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태종은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직접 풀어주기 위해 신문고를 설치하고 수도를 개경에서 서울로 다시 옮기는 등 국가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또한 왕권의 강화를 위해 자신을 등극하게 만들어준 공신들을 유배보내거나 처형했으며 심지어는 정사를 농단한다는 이유로 처남 네 명을 모두 죽이기도 하였다. 또한 태종은 아내인 원경왕후를 교폐전에서 사실상 유폐시켜 어떠한 정치적 언급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런 태종의 왕권 강화의 노력이 바탕이 되어 다음 임금인 세종 때에는 조선이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군사적 발전을 이루게 된다.

역시 이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은 왕들이다. 왜냐면

첫 번째로 이세민이나 이방원이나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 자신들의 칼에 형제들의 피를 묻혔다. 두 사람은 그들의 형제들 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었고 또한 가장 야심이 큰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남으로 태어나지 못한 두사람은 형재들을 피를 묻히지 않고는 왕위에 오를수 없었다.

두 번째로 민심을 많이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이 왕위에 오를 때는 다른 왕조를 멸망시키고 세워진 왕조들이었기에 민심도 그렇게 좋지 않았고 또한 정통성도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민심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세 번째로는 왕권강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나라가 세워질 당시에는 많은 귀족가들이 있었는데 당태종은 <씨족지>라는 것을 만들어 아예 귀족들의 서열을 황제가 직접 만들었다. 즉 황제의 권한이 귀족들을 마음대로 통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태종 이방원은 신료들의 중심으로 정사가 이루어지던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 육조 직계제를 통해 관료들이 왕에게 직속되게 하면서 관료들을 왕의 직속으로 만들어 버렸다. 또 다른 공통점이 있지만 생략하고 차이점에 대해서 써보려 한다.

차이점으로는 첫 번째 영토 확장을 위한 대외 원정에 대한 것이다. 당 태종 이세민 같은 경우는 나라의 기틀이 조금 잡혀가자 바로 대외 원정을 일으켰다. 그래서 동돌궐, 천산남로의 서역제국을 복속케 하고 토번을 회유하여 세계제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역시 주위의 나라들보다는 소국이라서 그랬는지 대외 정벌은 거의 하지 않고 내부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 모든 힘을 다 쏟았다.

두 번째로 측근 세력들에 관한 것이다. 당태종 이세민 같은 경우는 측근세력들을 절대로 토사구팽하지 않았다. 태종 이방원은 조선을 세우고 또 자신을 왕위에 올려준 건국 공신들을 모두 제거했다. 또한 외척들의 세력도 정리 해버렸다. 이 차이점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당태종 이세민의 시대에는 중국의 역사에서도 찾기 어려울 만큼 걸출한 인재들이 많았던 시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의 시대에는 그의 측근이었지만 재거 당했던 인물들을 빼고는 몇 명 보이지 않았다. 이점만 볼 때는 태종 이방원보다는 이세민이 좀 더 자신감이 넘치고 또한 주위 사람들은 더 믿었던 것 같다

청태종 홍타이지
숭덕제(崇德帝, 1592년 11월 28일 ~ 1643년 9월 21일)는 청나라의 제2대 황제(재위 1626년 ~ 1643년)이다. 휘는 황태극(皇太極, 만주어:  - hung taiji), 묘호는 태종(太宗)이다. 아바하이(阿巴海)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며 부황인 천명제가 세운 후금을 이어받아 연호를 천총(天聰)이라 하다가 1636년 나라 이름을 청(淸)으로 바꾸고 연호 역시 숭덕(崇德)으로 바꾸었다. 시호는 응천흥국홍덕창무관온인성예효경민소정융도현공문황제(應天興國弘德彰武寬溫仁聖睿孝敬敏昭定隆道顯功文皇帝)이다.

애신각라 황태극은 효자고황후 엽혁나랍씨 소생으로, 태조 천명고황제 노이합적의 여덟번째 아들이었다. 특히, 복선(伏善, 다이샹) 등과 함께 사대왕 중 한 사람으로 활약하여 베일레[貝勒(패륵)]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천명 11년(1626년)에 태조의 후계자로 지목되어 태조 사후 칸의 보위에 올랐고, 이듬해 천총이라는 연호를 개원하였다. 즉위 당시 남명(南明)과 교전상태에 있는 국내외적으로 다소 어려웠으나 만주족과 한족과의 관계 등 국내의 융화를 꾀한 후 외정에 나섰다. 천총 9년(1635년) 주변의 여러 국가를 침공 및 정복하여 속국으로 삼았으며, 내몽골를 평정하여 대원전국 옥새(大元傳國 玉璽)를 손에 넣은 것을 계기로 국호를 대청(大淸)으로 개국하였고, 연호를 다시 숭덕(崇德)으로 바꿨으며, 1636년 태자 시절 인조반정으로 청나라에 부정적인 정권이 들어섰다는 점을 알고, 아버지의 뜻을 무시하고 12월에 조선을 침공하여 병자호란을 일으킴으로서 1월 30일부로 전쟁을 끝내고, 조선의 항복을 받아냈다.

홍타이지는 광해군 이후, 명나라를 돕는 인조를 치면서 조선이 후금의 형제국가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홍타이지는 조선사신에게 전달한 국서를 통해 조선의 신하들을 ‘책을 읽었지만 백성과 나라를 위해 경륜을 발휘할 줄은 모르면서 한갓 허언(虛言)만 일삼는 소인배들이며, 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들 서생(書生)들이 10년 간 이어져온 후금과의 화의를 폐기하고 전쟁의 단서를 열었다고 비난했다.

또한 인조에 대하여 ‘왕은 지금 덕과 의리를 닦지 않고 해도(海島)의 험준함만 믿고 있으며 서생들의 말을 듣고 형제의 화해를 깨뜨리고 있으며, 몽골의 차하르(察哈爾) 한도 덕을 닦지 않고 간신들의 말에 따라 내게 전쟁을 걸었다가 쫓기는 몸이 되고, 끝내는 신료들에게 배신당했다면서 조선이 ‘후금을 원수’라고 한 이상 자신은 전쟁을 통해 강약과 승부를 겨룰 뿐 사신들을 죽이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그 후 중국 본토에도 침입하여, 중원 제패의 꿈을 이루지 못하여 뇌출혈로 인하여 사망하였다. 그리고, 재위기간동안 내삼원(內三院)과 6부(六部), 군사 및 행정제도인 팔기군체제를 재정비하여 대청제국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사후 심양(瀋陽)의 북릉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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