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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녕반산현조선족학교 분포조정 시급
기사 입력 2007-05-01 19:34:02  

료녕성 반금시 반산현 우의촌의 동쪽에 자리잡은 우의소학교(한족학교)에 들어서면 교실문밖에 중문으로《조선족반》이라고 써붙여놓은 한 교실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반산현에서 제일 작은 소학교인 우의조선족소학교다. 몇학년 몇반이라는 간판대신 《조선족반》이라고 써붙여놓은 이 교실에 들어서면 우의조선족소학교의 모습이 한눈에 확 안겨온다. 15평방메터의 교실안에 볼품없이 낡은 흑판 1개, 책상 3개, 걸상 4개가 놓여있고 흑판옆에 걸어놓은 《소학생수칙》아래에 붙여놓은 전교사생 5명(그중 교원 1명, 학전반 학생 2명, 1학년 학생 1명, 4학년 학생 1명)이 모여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있는데 가족사진같아보였다.

  학교의 반주임이며 과임교원이자 《탁아소 보모》인 백옥희교원이 학교의 상황을 기자에게 소개하였다.

  《우의조선족소학교가 언제 성립되였는지는 잘 모르나(기자의 조사에 의하면 1958년 3월에 성립) 금년에 60세인 우리 오빠가 이 학교를 다닐 때부터 복식공부를 하였대요. 그러니 우리 학교는 력사적으로 학생들이 복식공부를 해온것입니다. 1978년에 제가 우의조선족소학교를 졸업하고 한족초중에서 1년 공부하다가 다시1979년에 설립된 반산현조선족중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졸업한후 1982년에 우의조선족소학교에 돌아와 교편을 잡기 시작하였어요. 그때 당시 우리 학교에 저와 최창근선생 둘이서 글을 가르쳤는데 저의 기억속에 그때의 학교면적은 60평이였고 교실이 두개였으며 학생이 14명정도였어요. 그때도 역시 복식교수였지요. 1984년부터 우의조선족소학교의 교원은 제혼자만 남게 되였어요. 1985년에 우리 촌에 특대수재가 나는 바람에 촌의 학교들이 무너졌고 1986년에 촌에서 새 학교를 지으면서 조선족들의 동의를 거쳐 우의조선족소학교와 우의한족학교를 합병하여 오늘의 〈우의소학교 조선족반〉이 생기게 되였어요. 》

  《저는 이 학교에서 얼마든지 한족반을 가르칠수 있었어요. 우리 학교 학생들이 반산현중심조선족소학교(창업촌에 있음)에 가 공부하려면 차비만 해도 엄청나요. 촌에서 공공뻐스를 타고(차표 1원) 현성에 도착한후 또 구방자에 가는 뻐스를 갈아타고(차표 6원) 중도에서 내려 또 삼륜차를 타고(차표 6원) 반산현중심조선족소학교에 가야 해요. 통학비만 해도 우리 촌에서는 한달 생활비가 됩니다. 이렇게 거리가 멀어서 다른 학교에는 다니지 못하고 굳이 우리 조선족반에 들어와 공부하겠다는 조선족학생들을 보고 저는 차마 조선족반을 뿌리칠수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평생 이런 식으로 교수하자니 정말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힘들어도 락이 없고(苦中沒有樂)〉맥이 풀릴적이 많았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너무나 렬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다가 초중에 승학한후 공부가 떨어질가봐 걱정이였습니다. 그런데 알아보니 제가 가르친 학생들이 처음에는 학습이 따라가지 못하다 후에는 중상등수준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순간이나마 교원으로서의 자긍심에 가슴이 뿌듯합니다. 하지만 바람앞의 등불같은 우리 조선족반을 볼 때마다 저는 속이 막 답답합니다. 언제야 저도 다른 학교 교원처럼 전현 나아가 전시 교원들을 학교에 청해 떳떳하게 공개교수를 한번 해보겠는지?》

  같은 운동장을 쓰면서 활동시간이면 한족학생들의 고무줄뛰기를 멀쩡히 바라보아야 하는 조선족반 학생들, 운동대회에도 한번 참석하지 못한채 《흑색》의 동년시절을 보내야 하는 학생들의 현실, 회의에 참가할 때면 부득불 교학을 중지해야 하는 상태, 평생 교연과를 한번 가르쳐보지도 못하고 퇴직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한 로교원의 소원, 게다가 요즘 사회에서 보편화되고있는 컴퓨터는 고사하고 허줄한 록음기 한대도 마련할수 없는 상황… 이 학교 조선족반에 들어서면 사람마다 모두 가슴이 무거워지고 아파날것이다.

  《제가 이 학교에 있는한 끝까지 조선족반을 지킬것입니다.》 이는 백옥희교원의 확고한 신념이였다.

  우의조선족소학교에서 서북쪽으로 50리 떨어진 창업촌에 반산현조선족중심소학교가 있는데 이는 반금시 반산현에서 제일 큰 조선족소학교이다.

  학교청사앞에 가지런히 심어놓은 사시장철 푸른 소나무와 반듯한 기와집으로 된 학교청사는 겉보기에는 아담해 보였지만 30여명학생을 용납할수 있는 60여평방메터의 교실안에는 서너개의 낡은 책상과 대여섯개의 허줄한 걸상이 교실을 지키고있어 어쩐지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지만 우의조선족소학교에 비해 이곳 정황은 좀 나아보였다.

  소개에 의하면 이 학교는 1975년 10월에 성립, 그때는 9년일관제학교였는데 이름은 창업학교로 명명, 1978년에 이 학교의 중학교가 분리돼나가면서 단독적인 반산현조중이 성립되고 소학교를 창업조선족소학교로 개명, 그때 학생수가 200명좌우였다. 1986년에 이 학교는 반산현조선족중심소학으로 개명하였고 그때 학생수가 170명이였다. 90년대 후반기에 산아제한의 영향과 조선족인구류동의 영향으로 학생이 100명이나 줄어들면서 이 학교는 린근의 선봉조선족소학교와 합병되였으며 학생수는 130명이였다. 현재 이 학교는 학생 31명에 교원이 10명이다. 구체적으로 1학년생이 0명, 2학년생이 8명, 3학년생이 6명, 4학년생이 8명, 5학년생이 6명, 6학년생이 3명이다. 이 학교 최영국교장은 32년사이에 학생수가 90% 감소되였다며 계속 학생수가 줄어들면 민족교육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옛날에 우리 학교는 학생이 많아 여러가지 활동도 잘 조직되여 시, 현의 각항 시합에서도 월계관을 안아올 때가 많았어요. 그때는 교정에 랑랑한 글소리가 울렸고 웃음이 넘쳐 얼마나 활기가 넘쳤다구요. 그런데 지금은 운동대회도 진행할수 없는 정황이예요. 교원들도 제각기 자신들의 출로를 찾는다고 교정을 떠나 학교가 점점 썰렁해지고 있어요. 교원이 적어 교장인 저도 한어과를 가르쳐야 하고 부교장인 서일선선생은 퇴직할 나이가 다 되였는데도 다시 교편을 잡고있는 상태입니다. 영어교원도 없다나니 한족학교의 교원을 초빙하였는데 그 선생이 글을 가르치고 돌아가면 학생들이 모르는 문제가 있어도 물어볼수가 없습니다. 이곳에 남아있는 선생님들은 민족심때문에 교원사업을 하고있습니다. 민족심이 강하지 않고는 돈도 얼마 주지 않는 이 시골에 박혀 글을 가르치지 않을겁니다. 우리 교장들의 로임도 시내와 비해 700원이 적고 현과 비하면 300원이 적은데 보통 교원들은 더욱 차이가 많지요. 이런 적은 로임으로 이렇게 학교를 지켜주는 우리 교원들이 정말 고맙지요. 담임교원들은 방법을 대서 학생들에게 조선족춤을 배워주고 체조도 배워주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학생들의 동년시절에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려고 애을 쓰고있어요. 현재 우리 학교 제일 젊은 교원은38세입니다. 앞으로 우리 로교원들이 퇴직하게 되면 학교가 어떻게 될런지…》말끝을 맺지 못한 최영국교장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어려있었다.

  료해에 의하면 이 학교에 교원이 제일 많을 때가 30명, 지금은 10명만 남았는데 학교를 나간 20명의 교원들중 하해하여 장사를 하는 교원이 5명, 한국에 돈벌이 나간 교원이 4명, 외국에 시집간 교원이 3명, 퇴직교원이 8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면 이 학교의 교수시설은 어떤가? 10평방메터도 안되여보이는 도서실에는 낡은 책들이 먼지속에 쌓여있었고 해마다 국가에서 주는 돈으로는 겨울철 난방비용도 모자라 촌에서 매년 25톤의 석탄을 해결해주는 처지이다. 컴퓨터실에는 있는 도퇴된 낡은 컴퓨터로는 교원들이 자료도 찾을수 없는 정황이다.

  반산현의 다른 소학교의 상황은 아래와 같다. 호가진 홍암조선족소학교는 교원 2명에 학생이 3명, 이창촌조선족소학교는 교원 4명에 학생이 4명, 진가향조선족소학교에 교원 2명에 학생이 10명, 오가향단결촌조선족소학교는 교원 10명에 학생이 10명, 동곽진조선족소학교는 교원 4명에 학생이 6명, 석신진 태평촌조선족소학교는 교원 6명에 학생이 15명이다.

  기자는 반금시 반산현초교고(初敎股) 민족교학행정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김성빈을 취재하였다. 《1999년 반산현조선족중소학교 학생수가 500여명, 그때부터 지금까지 1년에 40명씩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현재 반산현교육국에서도 반산현의 조선족중소학교 교육문제를 둘러싸고 어떻게 처리할가 연구중입니다. 현재 반산현조선족중학교도 학생 69명에 교원이 28명이여서 운영하기 어려운 정황입니다. 조사한 결과 금년 9월에 전 반산현에서 초중 1학년에 진학할 학생은 5명입니다. 제 개인적인 분석에 의하면 이 5명의 학생들중 조건이 좋은 학생은 다른 지방의 중학교에 가 다닐것입니다. 그러니 9년일관제의 학교를 건립하는것도 어려운 일로 되고있어요》라고 하며 김성빈은 반산현민족교육의 전망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였다.

  기자를 만난 적지 않은 반산현조선족인사들은 한결같이 조선족교육의 발전과 교육질제고를 위하여 반산현조선족교육계는 학교분포조정을 진행하고 조선족기숙제학교를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료녕조선문보 2007 - 04 - 28
최수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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