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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간 아들이 어머님께 드리는 이야기 (上)
기사 입력 2013-09-29 17:01:15  

<2007년 11월 19일, 처음 한국 오던 날>
연길에서 시흥으로-구름나라를 넘어

잊을 수 없는 2007년 11월 19일입니다.

스산한 겨울 바람이 휘몰아치던 정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와 눈물 삼키며 떨어져서 비행장으로 달렸어요. 연길비행장은 그야말로 사람들로 붐볐어요. 마치 전쟁이 일어날 직전에 피난가는 사람들처럼 저마다 짐짝을 싸들고 웅성거렸어요.

“안된다니깐. 지금 얼마나 엄하다구.”
“양, 그럽데. 예전가 판 다르다오.”

12시 50분 정각, 저와 송화를 태운 남방항공은 서서히 연길비행장을 날아올랐어요. 비행기라곤 첨 타보는 저인지라 래일 모레의 일보다 지금이 너무나도 긴장했어요. 세상에 제일 멀미를 잘하는 우리 사랑하는 송화보다 멀미라곤 모르는 내가 먼저 긴장했던 거예요. 물론 송화는 비행기를 인젠 두번이나 타고 한국으로 오고 갔었으니깐 괜찮을 수 있겠죠.

비행기안엔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있었을 뿐 조용한데 거기에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일군 7~8명도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걸 돌볼사이가 없었어요. 제가 최고 위급상태에 빠졌으니깐요. 비행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순간, 저의 두 귀는 꽉 막혀버렸었요. 평소에도 일이 피곤했던가 아니면 너무 편안해서 그랬던지 하품을 할때면 가끔씩 두 귀가 꽉 막혀 이젠 귀머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가는 하품이 끝나면 정상으로 돌아올 때가 있었지만 오늘엔 하품도 안했고 피곤하지도 너무 편안하지도 않지만 이게 무근 판국이람. 5분, 10분 ... 있어도 두 귀는 열리지 않고 그냥 먼 상태로 있었어요. 그냥 먼 것도 아니고 소리는 조금씩 들리지만 아주 미약하게 그리고 답답하게 들리는 것이었어요.

‘젠장, 돈밖에 모르는 안해라니깐. 그 개도 안 먹는 돈 때문에 이렇게 출국하다가 끝내 귀가 멀게 되었나 보다.'

이렇게 불쌍한 안해 송화를 맘속으로 욕하면서 저는 몇년동안 꿈꿔오던 출국길로 하여 끝내는 귀가 멀고 몸이 잔페로 되는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이제 겨우 마흔 다섯 살밖에 안되는데, 90살까지 살려면 아직도 한 50년은 남았는데(모두들 저를 90까지 산다고 했어요). 귀가 멀어가지고 뭘한담...하지만 좀 있다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있었어요. 비록 두 귀는 멀거나 약간씩 들린다고 해도 두 손과 발이 있잖은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그 두 귀가 없어도 될 수 있잖은가. 인젠 지난 건 지난 거고 앞으로의 생각이나 많이 굴려보자. 그래서 조금씩 긴장을 풀고 창밖에도 기웃거리고 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걸 하나도 모르고 재밌고 즐겁게만 여길 우리 송화는 나보다 네댓줄 뒤에 앉아 도대체 뭘하고 있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어요. 반응이 있을 수도 없었고. 아무 상황도 모르니깐. 그래서 가끔씩 내가 뒤돌아보니깐 그녀는 아무런 내색도 없이 그냥 눈만 감고 있었어요. 원래 집에서부터 짬만 있으면 자는 습관이 있는 그녀였으니. 그렇다고 거기에 대고 “이보, 내가 귀 멀었소! 인젠 끝장이야.” 라고 소리 칠 수도 없는거구요.

자그마한 창으로 내다 보이는 바깥세상은 온통 구름바다였어요. 그냥 영화나 TV에서 본것같은 그런 풍경이였고 비행기안은 비행기가 가는지 마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이따금씩 곧추 솟아오르다가 또 평온하게 가는 듯한 비행기.

비행기의 승무원들은 너나 할것 없이 좋은 봉사로 뛰여다니다 싶이 하는 것 같았어요. 한국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는지 아니면 젊고 늙고 다 일하느라 바삐 보내는지 이 비행기안의 승무원중 남자들은 어린 남자들의 별로 없고 좀 늙어보였어요. 적어도 40여세 되는 분들 같았어요. 우리 고장이라면 그 나이에 이런 봉사일엔 엄두도 못낼 상황이 아닐가요? 하여간 승무원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 보였어요. 아마 그럴 수밖에 없나 봐요.

갑자기 비행기안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 같이 보였어요. 저도 그들을 따라 바깥은 내다보았어요. 쪼그맣고 둥근창문으로 바깥세상이 보이는데 마치 우리가 지도를 펼치고 한국의 서해안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들숭날숭한 륙지와 점같이 생긴 섬들이 어슴프레 보였어요.

‘아~한국이구나.’

승객들로부터 손목시계의 시간을 고쳐놓기 시작했어요. 가깝다고만 여겨온 한국이 비행기로 날아오니 그렇게 생각처럼 가깝지 않았어요. 벌써 한 시간이나 넘어 날았으니깐요.

한국시간으로 오후 4시 44분이 되니 착륙한다는 소식이 왔어요. 참으로 저에게는 재수가 없나봐요. 어쩌면 죽을 사자가 세개나 들어있는 시간인지.

한국땅을 밟았을 때에야 저는 느꼈어요. 저의 그 두 귀가 아무 일없이 멀쩡하다는 것을. 아무렴 그렇겠지. 이제 나이가 얼만데 벌써 잔페로 되다니. 또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주신 이 몸이 그렇게 쉽게 전페로 될수가 없죠. 말도 안되지.


인천공항 개찰구에서

한고비를 넘었다는 흐뭇한 기분에 줄을 서서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또다시 최고 엄숙한 사건이 벌어졌어요. 두번째 고비가 닥쳐왔어요.

줄에 설 때 송화가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한 줄에 서지 말기쇼. 혹시나 퇴짜맞더라도 한사람이 맞아야지. 절대로 우리 부부 둘이 같이 왔단 말을 하지마쇼.”

저는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만약에 퇴짜를 맞아 중국에 돌아가더라도 한사람이 돌아가야지 둘이 함께 왔다고 하면 둘다 돌아갈게 아니에요? 그래서 저마끔씩 자기줄에 서서 나가기를 기다렸어요. 드디어 저의 차례가 왔어요.

“누구의 요청으로 오셨어요? 아저씨!”

개찰구에서 물었어요.

“임송옥이라고 하는 사촌 녀동생이예요.”

저는 또박또박 묻는 말에 대답을 했어요. 그런 물음에 대답을 못할 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 분의 전화번호는요?”
“...”

아차, 기억 못햇는데 어떻게 한담.

“저기 가방 안에 있어요. 기억 못했어요.”

저는 림기응변 했어요.

“그럼 가방 안에서 꺼내오세요.”

하참, 이걸 어쩌나 사실은 가방안에도 없는데...송화가 한국에 둬번 왔다간 적이 있는지라 이러루한 자료같은 건 다 그가 손에 쥐였고 또 전 그걸 적어두지도 않았는데, 누가 이렇게 떨어져 나갈 걸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냥 내놓으라는 이 아저씨를 어떻게 한담.

“저...큰 가방안에 깊이 넣어뒀는데, 그 가방은 아직 찾을 수도 없구 어떻게 하나요?”

저는 수속이 가짜가 아니니깐 맘이 든든해서 그냥 내키는대로 할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분은 머리를 빽빽 돌리더니 뒤사람들이 찌쑥 찌쑥 머리를 들이면서 급한 모양을 보이자

“아저씨, 안 되겠어요. 저 안에 들어가요.”

하는 것이였어요. 저는 할수 없이 그가 가리키는 대로 사무실안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자그마한 사무실이나 사람이 여러 명이 있고 사무상도 많았어요. 나는 겨우 한 사람이 반기는 상옆에 자리를 비비고 섰어요. 그럼에도 그 분은 걸상을 내주면서 앉으라고 상냥하게 권했어요. (1)

그분은 저를 힐끝 쳐다보고는 제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도하지 않는듯 자기 할 일만 하는 것이였어요. 컴퓨터만 들여다 보면서 뭔가를 찾고 있었어요. 한 10분이나 흘렀을까. 그분은 저에게 컴퓨터안의 한 남자 사진을 보이면서 “이 분을 아세요?” 하고 물었어요. 저는 속으로 아마 송옥의 한국 남편을 찾아내여 저에게 물어보는 것이리라고 생각했어요. 하긴 송옥의 그 남편을 저는 수속을 할때 사진으로 피뜩 보기는 했지만 저의 기억력으로는 기억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모르겠슴다.” 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했어요. 그러니 그분은 또 컴퓨터로 뭔가를 찾고 있었어요. 저는 수속이 가짜가 아니고 진짜인지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또 긴장감도 없이 그냥 가만이 앉아만 있었어요. 이윽해서 그분은 또 다른 사람의 사진을 꺼내 똑같이 물어보았어요. 저는 원래 알수 없는 사람인지라 그냥 모른다고 딱 잡아뗐어요. 이렇게 서너번 반복하느라 시간도 아마 반시간은 푼히 걸린 것 같았어요. 그러더니 안되겠든지 그분도 아주 무뚝뚝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였어요.

“후-저쪽에 가봐요.”

인젠 잡혀들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한 저는 그래도 저에게는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뻔뻔한 태도였어요.

“어데요?”
“하참, 인젠 나가요. 나가라는데두요.”

그말에 저는 생각밖인지라

“인젠 가라는 말입니까?” 하고 되물었어요.

그분은 귀찮다는 듯 그냥 손짓만 해대곤 더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어요.

사무실에서 나와 개찰구를 승리자처럼 척척 걸어나오니 송화가 층계 아래서 손짓하고 있었어요. 아마 송화도 비지땀을 뻘뻘 흘렸을 거에요.

제가 가까이에 가니 송화는 “난 인젠 동무가 중국에 돌아간다고 생각했슴다.”라고 하면서 “다행임다. 인젠 둘다 나왔으니 빨리 짐이나 찾아가지고 길을 재우치기쇼.” 하면서 짐 찾으러 갔어요.

둘이서 대합실을 나오니 눈비가 마중왔어요. 고향에서는 이맘때면 눈이 오겠건만 여기는 여름처럼 눈비가 마구 스스럼 없이 오는 것이예요. 하지만 우린 그런데 신경 쓸 사이도 없이 시흥으로 가는 버스를 찾느라 여념이 없었어요. 시흥시에는 사촌 처남이 있고 그 처남의 녀동생도 있어요.

버스를 알아보고 표까지 뗐으나 버스는 어쩐지 오지 않았어요. 시간이 좀 흐르자 우린 당황해 났어요.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과 달아보았더니 그들도 그 버스를 기다린다면서 곧 올 것이니 급해 말고 기다리라는 것이였어요. 그제야 좀 맘이 내려갔지만 너무도 늦어서 사촌 처남을 찾아가는 마음은 그냥 급해났어요.

버스에 오르자 시름을 좀 놓긴 했으나 처남한테 연락을 못한 송화는 근심 끝에 버스안을 돌아보았어요. 마침 중국 조선족인듯한 사람들을 찾았어요.

“조선족 같네. 저 금방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전화를 좀 쓸수 있어요?”

송화가 비위 좋게 말을 걸자 그 분들도 선뜻이 내놓았어요. 그렇게 처남한테 연락까지 하고나서 송화는 시름을 푹-놓는 것이였어요.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한국에 두 번이나 왔다갔다는 리유로 저의 가이드로 나서야 되니 참 힘들기도 하겠죠. 그러나 저는 원래 길을 떠나면 잠자거나 그런 건 딱 질색이고 그냥 밖을 내다 보거나 구경하는 습관이 있는지라 창밖을 내다 보았어요. 밖은 이미 늦은 시간이고 또 눈비가 창쌀같은 큰 비로 바뀌여 번개가 번쩍거리면서 오고있는지라 캄캄했어요. 마치 저를 골려주는 것만 같았어요.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제가 한국에 간다는 소식을 들은 처남은 전화로 저에게 “매부는 한국에 와서 무슨 일을 하겠소?” 하면서 이날 이때까지 일이란 걸 못해본 저를 걱정하고 골려주던 일이 잊혀지지 않아요. 지금 창밖에서도 그런 식으로 저를 골려주는 것만 같았어요.

버스는 인천대교를 지나 경기도 시흥시에 막 들어가고 있어요. 인천출구에는 ‘안녕히 가십시오. 인천입니다.’ 라는 간판이 걸려있고 경기도 입구에는 ‘어서 오십시오. 경기도입니다.’ 라는 간판이 걸려있었어요.

오후 6시 45분에 버스에 앉아 처남네 집에까지 들어서니 9시 넘었어요.


새로 개업하는 식당에서 일하기로

우리가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접한 사촌 처제는 언녕 벌써 파출부에 가 일자리를 맡아놓았어요. 바로 새로 개업하는 식당에 우리 부부가 같이 들어간다고요. 얼마나 약삭 빨라요. 그 식당은 경기도 화성시에 있다는데 본점은 여기 시흥시에 있고 화성에 분점을 새로 앉힌대요. 거기서 모두 조선족 3명 요구하는데 우리 말고 다른 아줌마는 벌써 면접을 다 보고 기다린대요. 우리는 부부간이라니깐 면접도 안보고 요구하는거구요. 여기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부부간을 쓰기 좋아해요. 아마 독신이라면 자꾸 나가서 친구를 찾거나 청가를 맡고 놀러다니고 부부간이면 어델 가지도 않으니 그런가 봐요. 그래서 우리는 면접도 안보고 ‘합격’ 된거에요. 제일 중요한건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그것이죠. 참 다행이죠?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생각대로 되는게 아니에요.

[다음호에 계속]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01호 2013년 9월 28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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