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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간 아들이 어머님께 드리는 이야기 (하)
기사 입력 2013-10-10 21:03:50  

2007년 11월 20일, 한국생활 첫날

11월 20일, 바로 한국에 도착한 그 이틑날 아침 9시, 우리는 <서원여성파출부>에 나갔어요. 한 60쯤 돼 보이는 아줌마(한국에서는 나이가 많아도 다 아줌마나 언니라고 부르지 할머니라고는 절대 안 불러요. 할머니라 하면 나이가 많아보인다고 좋아 안하는 모양)가 사장인듯하고 그 외 어린 각시 한명이 경영하는 파출부였어요. 처제가 우리를 소개하고 그 식당에서 소식이 왔던가고 물으니 사장님 아줌마가 전화를 드르르 걸더니 받는 사람이 없다면서 금방 왔으니 오느라 피곤하겠는데 며칠 쉬면서 소식을 기다리라는 것이였어요. 그래서 송화는 그 자리로 일당(하루 일해주고 퇴근할 때 품삯을 받는 일. 여기서는 보통 녀자면 하루에 한국돈으로 5만원정도- 인민페로는 대략 250원정도, 남자면 6만원정도)에 나가고 저는 그냥 려관- 처제네 집에 돌아와 TV를 보면서 휴식했어요.

이튿날에도 사흗날에도 그 새로 개업한다는 식당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요.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그냥 받는 사람이 없대요. 그래서 송화는 매일 매일 일당으로 이 식당 저 식당에 나갔고 저는 이제 새식당에 가면 어떻게 일을 할가, 가지고 갈 짐들은 무엇인가… 등등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어요.


나흘째 되던날, <서원>에 나가보니

“지금 그 식당에서 장식을 하는데 인테리어가 계획보다 늦어졌대. 그래서 26일이면 끝날거니깐 그날까지 좀만 더 기달려달래요.”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어떻게 해요. 기다릴 수밖에 없는거죠 뭐. 남들처럼 제가 일을 막힘없이 빵빵 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일이라면 아무 것도 모르고 어리바리한 제가 지금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큰 소리 빵빵치면서 “끄러워요. 난 다른 일을 할거예요.”라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니잖아요. 만약 그렇게 했다면 그걸 어머니께서 아시면 또 “야, 니는 왜 그 좋은 일자리두 다 팽개쳤니? 니게 그게 딱 좋을 것 같은데두나. 먹여주지, 재워주지, 어데가 그런 일거리를 두번 다시 찾겠니? 에구 에두 쯔쯔.” 할거예요. 그러니 그냥 그 식당에서 소식이 올걸 기다릴 수 밖에 없는거죠.

‘휴- 답답하지. 중국에 있을 때는 한국에 하루 빨리 오지 못해서 그랬댔는데 한국에 오니 이제는 일자리로 머리를 앓게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굴려보니깐 속이 적이 타고 있었어요. 그래도 기다려야죠.

그 사이 송화는 그동안 번 돈으로 먼저 핸드폰을 샀어요. 아무렴 우리가 왔는데 친척이나 친구한테 소식이라도 전해야 할게 아니예요? 그보다도 어머니한테 자주 전화해야 걱정을 덜 할건데요. 그래서 핸드폰을 하나 먼저 샀어요. 저는 아직까지 <무일푼>이니 그 핸드폰은 송화꺼죠. 물론 제일 처음으로 저는 청룡한테와 삼촌한테 전화를 했었어요. 주로 청룡한테는 그쪽에 허술한 일자리라도 없겠나 하는 목적이였고 삼촌한테는 그냥 어르신님이니깐 인사를 올리는거죠. 삼촌한테 전화를 했을 때 전 “26일날이면 화성에 있는 새로 개업하는 식당에 갑니다. 우리 부부간에 다같이 갑니다. 예. 글쎄 한국에 와서 일이 척척 잘 되나 봐요……” 라고 알려드렸어요. 그러니 삼촌도 많이 시름을 놓는 것 같던데요.


2007년 11월 26일, 일자리를 못찾고

드디여 오메에도 그리던 26일이 돌아왔어요. 집에서 짐을 다 싸놓고 아침 일찍 <서원>에 나갔어요.

“왜 전화를 안 받지? 전번날에는 오늘 오후 4시에 우리를 실으러 오겠다고 했는데. 참.”

사장님도 이제부터는 속을 태우는 모양이였어요. 아무렴 그도 우리한테서 소개비를 받아 챙겨넣었으니깐요. 대여섯번이나 전화를 걸어도 받는 사람이 없대요. 참. 세상에 이럴 수가…그래도 기다려야 했어요. 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으니깐요. 그래서 저는 그 사장님하고 그 사이에 할수 있는 다른 일당이라도 알선해 달라고 했어요 그러니-

“글쎄요. 여기는 여성인력이니깐…글구 남자들은 아침 일찍 나와야 일이 있어요. 내일 아침에 일찍 나와봐요.” 하는 것이였어요.

“몇시에 나와야 돼요?”

저는 안되는 한국 말을 하느라 깝짜르면서 말했어요.

“6시, 7시…”
‘엉? 요즘에 그냥 일이 없다고 늦잠을 잤댔는데 내일부터 어떻게 그리 일찍 일어날까.’

생각하면서도 일을 한다는 그것이 기쁘기만 했어요.

이튿날 아침, 저는 <서원>에 나가서 식당의 소식을 물어보고는 또 남자들의 일을 묻군 했어요. 송화는 그러는 제가 싫었지만 저야 뭐 볼게 있어요? 그래서 송화는 송화대로 저를 모른척하고 자기 일당만 나갔어요.

사장님 알선으로 전화번호를 적고 한 아파트 안에 이는 <21세기종합관리>에 찾아갔어요. 이 회사는 아파트청소를 하는 회사였어요.

“안녕하세요? 여기서 사람을 씁니까?”

제가 인사하고 들어서자 한 남자가 어디서 어떻게 왔냐고 물었어요. 저는 누가누가 소개해서 왔다했어요. 그러니 거들떠 보지도 않고

“여기도 일이 없어. 사람이 남아도는 판인데 무슨…”

라고 아주 건방지게 말하는 것이였어요. 아마 그 사장님 아줌마가 저를 보기가 무엇하고 또 시끄러우니 아무데나 막 가라고 한 것 같애요. 휴-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그 사장님 아줌마를 찾아 한바탕 해낼수도 없고. 아무렴 그 사장님 아줌마손으로 새 식당에 가야 할 신세니깐.

이젠 남자 일당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그냥 그 새 식당에만 집중했어요. 그래서 <서원>에 가 사장님을 보고 그냥 전화를 해보라고 재촉했어요. 근데 어쩐지 그 전화는 그냥 받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겠어요? 불시에 저의 머리에 한가지 떠올랐어요. 언제 그 사장님 말 가운데 그 새식당 주인의 동생이 여기 시흥에 있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던거에요. 그래서 재촉해 그 동생한테 전화를 하게 해보니 그 동생도 며칠째 전화연락이 안 되더라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차, 그럼 무슨 일이 난 게 아닌가? 별로 안 좋은 느낌이 들었어요.


2007년 11월 27일, 월곶에서 바다를 보다

그런댈 그날은 지나가고 이튿날 다시 나가니 그 동생이 직접 화성으로 형님을 찾아갔으니 좀만 더 기다리면 소식이 있을거라고 하였어요. 그러자 좀 시름이 났던지 송화는 저를 보고 이렇게 말했어요.

“오늘 월곶에 있는 식당에 가는데 나를 데려다 주겠슴까? 못 찾을까봐 걱정대서리…”

그 말에 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전에 연길에서는 제가 데려다 주겠다면 그냥 같이 다니기 싫어하던 사람이 오늘에 먼저 청을 드네. 요즘 그냥 집에만 박혀있었고 또 그 새식당에 가는 걸로 좀 속을 태웠던 차에 아무데라도 가 볼수 있게 되자 원래 나다니기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얼마나 좋았든지. 전 인차 대답하고 같이 버스를 탔어요.

두리번 두리번 거리면서 송화가 간다는 식당을 찾아 송화를 들여보내고 저는 혼자 남았어요. 그리고 돌아올 생각으로 버스승강장을 찾던 저는 한 가지 큰 것을 발견했어요. 글쎄 이 월곶이란 곳은 바다를 끼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월곶포구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와보기는 오늘 처음이였어요. 높이 들어앉은 아파트들을 요리조리 지나 바다가에 이르니 바다는 우리 부르하통하보다 조금 어떨가 했는데 그 강같은 물길을 따라 위로 거슬러 바라보니 저기 아득히 먼 곳에 큰 바다가 보일듯 말듯했어요.

‘아- 바다’

그렇게 영화나 TV에서 보아오던 풍경은 아니였지만 기분만은 파도가 출렁이는 크나큰 바닷가에 온 것처럼 대단히 좋았어요. 아마 몇 십년을 바다가 없는 곳에서 자란 모양인가봐요. 강같은 바닷가에는 적지 않은 고기잡이 배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어요. 지금은 물이 없어 바닥이 다 들어나 보이는걸 봐서 아마 밀물때인가 봐요. 이제 썰물일때면 저 고기배들이 다 저 큰바다로 떠나겠죠? 고기잡이배라고 해도 기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쪽배 같은건데 거기에 무슨 짐짝 같은 것들이 가뜩 싣겨져 있어요. 고기잡이배라고 하니 그런 배 하나 둘 만나면 아마 누가 버리고 간거라고 생각할거에요.

이렇게 저는 처음 보았다는 바다에서 바다 ‘바’자 냄새만 맡고 맡았어요. 그래도 바다를 보았다는 것만으로 마음은 아주 유쾌했어요. 하지만 그 유쾌한 기분도 한시뿐이죠. 어서 빨리 그 새 식당에나 가야 할건데요. 그렇지 않아요? 아직은 정신을 다른데 팔 신세가 됐어요? 참…

그날 밤엔 좋은 꿈을 꾸려고 무진 애를 다 쓰면서 겨우 잠들었어요. <끝>



김택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02호 2013년 10월 10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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