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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기행 3편- 명동촌을 찾아서
세속오계    조회 4,520    2006.12.20세속오계님의 다른 글      
3편. 명동촌을 찾아서  


‘내가 너무 늦어 왔어.’

길가에서 ‘명동 윤동주생가'라는 입석(立石)을 보았을 때 입에서 부지중 튀어나온 말이다. 연길에서 30여 킬로미터 상거한 이곳을 왜 이제야 찾았을까. 무엇이 시인을 만나지 못하게 했던가. 명동촌에 시인의 생가가 복원되고 한국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되었지만 더 늦기 전에 와봐야겠다는 긴박감은 느껴보지 못했다.



▲ 윤동주 생가


물론 내가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이드아가씨도 조선족이 명동을 찾는 일은 거의 드물다고 한다. 나는 근 반년 동안 연변의 산천과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돈화의 정각사(正覺寺)로 구름처럼 밀려가는 연변사람들은 보았지만 역사유적지를 찾는 연변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답사를 다닌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한다. 우리사회가 민족의 전통교육과 역사교육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자식을 한족학교에 보낼 수 있는 사회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오히려 어떤 학자들은 ‘협애한 민족주의를 고집하지 말고 더 넓은 안목에서 민족의 발전을 도모하자’고 말하고 있다. 분석해 볼 것도 없이 ‘상급의 정신을 받들자는 이론’이다. 그런 ‘안목’이 김치와 된장국을 먹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중화요리로 곤혹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늦게나마 시인을 찾게 되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뜰에 들어서니 옛날 인민공사시절에 지었음직한 우사(牛舍)건물 앞으로 회칠을 한 헐망한 서향집 한 채가 보인다. 지붕위에 십자가가 걸려있지 않았으면 헐망한 농기구창고정도로 보았을 법했다. 나무기둥사이에 수수대를 대고 진흙으로 매질을 한 뒤 다시 흙모래를 바르고 회칠을 한 이런 흙집은 지난날 연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전통가옥이었다.

    

▲ 복원해놓은 명동교회


가이드아가씨가 안으로 안내했다. 초라하지만 그런대로 예배당모습을 재현시켜놓고 있었다. 시인의 외삼촌이자 명동촌의 개척자이고 명동학교 교장이며 후에는 명동교회 장로로 있었던 김약연 선생이 세운 명동교회였다. 반일독립사상을 선양하던 애국지사들의 숨결이 흐르던 곳이다. 대들보며 서까래며 기둥을 봐서는 옛 집의 구조를 이용하여 수건한 것으로 보인다. 나도 20살까지 일본인이 살던 집에서 살아봐서 알지만 그 시기의 건물을 이 정도 수건하자면 조련찮은 일이다.

가이드아가씨한테 예배를 보느냐고 물었더니 “못 본다.”고 한다. 고향에 와서 민감한 사항으로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짚고 있어서 그 말의 함의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국 같으면 이런 곳에 김약연선생의 이름으로 교회가 복원되고 시인의 정서를 담은 기념공원이 만들어 질 것이다. 그리고 주일이면 가족단위로 와서 예배도 보고 어린이들에게 민족교육과 애국주의교육을 시키는 명소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백성들에게는 “옛날에 있재용. 시를 쓰는 사람이 살던 집이라오.”라는 정도로 알려지고 있었다.

나는 단상 앞으로 다가가서 십자가를 향하여 묵념하고 섰다. 나는 기도할 줄 모른다. 다만 교회는 어려운 사람들이 원하면 가족으로 받아준다는 것만은 안다. 빈손으로라도 서로 보듬어 주고 흐느껴주고 기뻐해주는 것이 교회다. 그런 원인으로 한중수교가 이뤄진 지난 14년 동안 수십만 명의 의지가지 없는 중국동포들이 낯선 한국 땅에서 어려울 때마다 교회를 찾아 위로를 받곤 하였다. 하기에 우리 조선족사회에 유입해 들어오는 외화에는 한국교회의 기여도 갈라놓을 수 없다.

가이드아가씨는 우리를 뒤뜰로 인도했다. 우사건물 뒤로 전통한옥 한 채가 보였는데 길 어구에는 ‘윤동주생가'라는 나무 팻말이 박혀있었다. 생가 옆에는 옛 우물이 있었는데 그 물을 마셔도 된다기에 두레박을 우물에 “풍덩” 던졌다. 아직 소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이런 우물을 길어먹고 자라서 두레박을 던지는 요령이 생소하지 않았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시인의 ‘자화상’은 1939년 9월에 지은 걸로 되어있다. 1939년이면 시인이 서울에 있던 시절이다. 시인이 서울에서 이 우물을 그리며 지은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인의 생가는 한국의 문화재들처럼 소박하지만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다. 가이드아가씨한테 후원은 어디서 하느냐고 물으니 ‘대부분 한국에서’한단다. 아까 큰길가의 입석도 만든이가 제주도 모 단체로 되어 있었다. 또 마침 한국의 연변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연길에서 학생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시인의 생가를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아가씨한테 시인의 묘소를 물었다. 아가씨는 용정 동산(東山)에 있다고만 들었지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고 한다.

그로부터 4개월 후인 지난 11월 7일, 나는 시인을 찾아 떠났다. 연길에서 버스를 타고 여름에 다녀간 적 있는 용정 서시장입구까지 왔다. 그런데 택시기사들과 윤동주묘소로 가자고 하니 모두들 모른다고 한다. 그럼 윤동주는 아느냐고 물으니 이름난 시인이 있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단다. 택시기사들이 모여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훗날 봉오동 항일전적지로 갈 때도 아랫마을인 수남촌에서 ‘봉오동 전적지’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모두들 모른다고 한다. 오히려 그쪽에서 못마땅해서 “그 때 일을 어찌 알겠소.”라고 해서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이것이 문화재에 대한 조선족사회의 현주소다.

어처구니가 없어 자리를 옮겨 다른 곳에서 물으려고 하는데 한 청년이 자기 택시에 오르라고 한다. 자기 부친이 동산에서 ‘호림방화’단속을 하고 있는데 물어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란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시인의 묘소는 ‘3.13반일의사릉(反日義士陵)’에서 직선거리로 1000미터 되는 산 위 공동묘지에 있었다.

    

▲ 묘지기


3.13반일의사릉에서 동산에 오르면 가깝고 편했지만 택시기사는 길을 몰라 합성리 마을에서 산에 올랐다. 거기의 길은 빗물에 패여서 승용차가 달리기에는 무리였다. 택시가 겨우 산중턱까지 올라갔는데 팔에 ‘호림방화’완장을 두른 키가 작달막한 아저씨 한 분이 차를 쫓아왔다. 자기 집 택시차를 알아본 모양이다. 택시기사가 찾아온 연고를 말하니 아저씨는 알았다면서 차에 오른다. 그리고는 나를 보더니 마치 묘지기나 되듯이 추운데 찾아왔다며 치하해 준다. 시인의 묘지를 찾는 분들이 많으냐는 물음에 유람 철에는 가끔 있었지만 인제는 추워서 오는 사람이 없단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는 말로 한국인들이나 오지 조선족들은 오는 사람이 없단다.

택시는 또다시 가파른 언덕길을 톱아 올랐다. 어떤 곳에서는 차바퀴가 웅덩이를 건너지 못해 내가 뛰어다니며 벽돌과 돌멩이를 주어다가 웅덩이를 메워서야 차바퀴가 건너갈 수 있었다.

“다 왔소.”

    

▲ 윤동주묘소


아저씨는 스톱하라고 소리친다. 내려 보니 길가에 ‘윤동주묘소’라는 작은 안내판이 보인다.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야박한 공동묘지였다. 시인의 묘지는 애초에 골회함을 갖다 묻어서인지 봉분이 작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묘비에 새겨진 십자가를 보고서야 새삼스레 시인도 교인이었다는 사실을 떠 올렸다. 시인의 묘지에서 좌측으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시인의 고종사촌인 문사 송몽규(宋夢奎) 묘지가 있었고 우측에는 당시 용정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현석칠(玄石七)목사의 묘지가 있었다.

시인의 묘지 앞에 서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저려 오른다. 긴 세상을 짧게 살다 간 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마을부근의 선바위처럼 강의한 의지를 보여주었고 맑고 깨끗한 육도하처럼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으며 별지처럼 칠흙같은 암흑을 갈랐다. 그런 시인 앞에 우리는 너무나 작았다. 이제 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시인의 생가와 시인의 묘지를 찾아올 것이다.

    

▲ 선바위



나는 묘지를 향하여 묵묵히 묵념을 드리고 나서 입속으로 시인의 ‘서시’를 읊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성주

다음 회 제4편 <백금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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