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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기행]] 연변기행 1편-용정의 밤------퍼옴
개미의꿈    조회 4,815    2006.12.05개미의꿈님의 다른 글      
[연변기행] 1편. 용정의 밤  


연변통신은 앞으로 약 20회에 걸쳐  [연변수기]를 연재합니다. 한국에서 수년 동안 노동생활을 하던  한 중국동포 지식인이 귀향해서 연변의 산천을  답사하면서 본대로 느낀 대로 적은 기행수기입니다. 최근 연변의 변화를  생생하게 보고하고 있는 이 수기를 통해 연변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용정의 밤

용정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나오니 건너편 작은 골목으로 여관간판들이 보인다. 몇 군데 물어보니 방값이 20원이란다. 옛날 같으면 샤워도 할 수 없는 이런 여관방은 눈여겨보지도 않았으련만. 서울에서 몇 해 살다오니 오히려 사정이 반전됐다. 응당 해외로 나가 고생하는 사람들이 잘 살아야 하는데 집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산다. 아파트도 몇 채씩 갖고 있고 웬만한 사람들도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궁상맞게도 나 쪽에서 아끼는 시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관방은 말이 20원이지 한국의 여인숙정도는 되어보였다. 한국에서 관광을 다닐 때는 여관비가 신경 쓰였지만 연변에서는 잠자리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여관이 싼데다가 여관 없는 시골에서도 민가에 들어가 하룻밤 재워달라고 하면 안 된다는 사람이 없다. 인심이 좋은 원인도 있겠지만 옛날부터 이불 짐을 멘 子弟兵과 ‘하방’간부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수발을 들어주던 전통이 남아있어서 제집처럼 편안하다. 물론 작별할 때는 싫다고 할수록 넉넉히 사례비를 쳐주어야 한다. 연변사람들의 ‘싫다’는 정말 싫다가 아닌 체면치례이고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존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여관방에 비스듬히 기대어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는 내 모습이 우습다. 남들은 연길에서 가까운 용정에다 여관방을 잡았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침에 용정에서 삼합 가는 첫 버스를 타려면 전날 용정에 머무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행의 편의도 편의지만 잠자리를 바꾸면 오랜만에 기분전환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중국에 와서 컬러링을 서부민가로 바꾸니 전화가 올 때마다 서부고원의 흙먼지가 일고 요고소리 요란하다. 전화를 걸어온 것은 연길에 사는 친구였다. 소학교 3학년부터 학교구단에서 함께 뛰던 각별한 친구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인데 내가 그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용정?” 친구는 날더러 연길로 들어오라고 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자기가 용정으로 나온단다. 그러면서 지금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 나는 속보이게 여관에 있다고 말할 수 없어 그냥 밖에서 거니는 중이라고 했다. 친구는 좀 있다 만나자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20원 팔고 여관에서 한 시간 남짓이 지웠으니 시간당으로 계산하면 고급호텔에 든 셈이다. 밖에 나와 시내 중심가를 바라고 걷노라니 널따란 거리가 생소하다. 지도를 보니 새로 닦은 海蘭路이다. 연길로 가는 차량들이 새 길로 통과하면 용문교를 우회하지 않고 직접 농학원 입구에 떨어질 수 있어 거리가 많이 단축되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걷다보니 서시장입구까지 갔을 때는 한참 늦은 뒤였다. 갑자기 지척에서 자동차경적소리가 “빵빵”울리는 바람에 화뜰 놀랐다. 뭐라 하려고 돌아서는 순간, 친구의 웃는 모습이 승용차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친구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한국에서는 부득이 경적을 울려야 할 경우에도 은근살짝 치는데 이곳 운전기사들은 이를 악물고 ‘배 고동’을 울린다. 행인들이 짜증을 내면 그쪽에서 오히려 이상해 한다. 주민구역에서도 거리낌 없이 나팔을 치고 한 밤중이고 새벽이고 자기만 깨어있으면 나팔 치는데 전혀 주저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인도로 주행하면서도 행인을 피하라고 나팔을 쳐대니 신경 쓰이면 제명대로 살지 못한다. 도로교통법에는 도시 전 구역에서 나팔을 울릴 수 없게 되어있지만 그걸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없다.

친구는 배낭을 메고 태양모를 꾹 눌러쓴 내 모습이 신기해서 한참이나 뜯어본다. 뭘 먹겠는가는 친구의 물음에 용정에서 유명한 美食街로 가자고 해서 친구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미식거리는 진작 하얀 포장마차들로 꽉 차 있었다. 여러 가지 꼬치구이로부터 편의음식, 요리냄새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우리는 맛보기를 하듯 이것저것 주어먹고 마셨다. 친구도 나의 시식법이 희한했는지 뒤질세라 집어먹으며 즐거워한다.

밤 9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미식거리를 나왔다. 얼굴에 취기가 오른 친구는 날보고 운전하란다. 내가 운전경력이 오래다는 게 이유다. 몇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서 희한한 것 중의 하나가 이 ‘천리마’표 승용차다. 앞을 봐서는 한국산인데 트렁크에는 한자로‘千里馬’라고 표시됐다. 한국이 앞에서 끈다고 하면 조선이 차 궁둥이를 민다고 해야 맞다. 남북의 통일된 모습을 보는 것으로 감회가 깊었다. 1800CC로 추정되는 승용차는 엔진소리도 자못 부드럽다.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에 친구는 구경거리를 보여준다며 용문교로 가란다. 용문교에서 우회전을 하고 해란강 둔치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앞에 담으로 둘러진 건물들이 보였다. 무슨 구경거린지도 모르고 친구가 가리키는 대로 차를 운전하고 담장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에 들어서니 길 양방향 불빛이 화려하다. 불빛 밑으로는 문가에 화장을 진하게 한 모습의 아가씨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이건 한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집창촌이다. 하긴 밤 자면 건너오는 한국유행에 가시내들이 아랫도리를 벗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요즘처럼 여자가 귀해 장가한번 가보지 못한 총각들, 마누라를 해외에 보내고 청승맞게 사는 홀아비들, 애인 키우기 힘든 저소득층남자들이 해란강바람 한번 쏘이지 말라는 법 또한 없다.  

기아를 저속에 넣고 한 바퀴 돌아볼 판이다. 그냥 눈 요귀하면 어느 법에도 저촉되지 않으니 뭐 대순가. 서울에 있을 때도 청량리의 사창가를 승용차에 앉은 채 요리조리 돌면서 구경한 적이 있다. 물론 한국사장의 취향이었지만 “오빠, 놀다가요”를 차 뒤로 뿌리치는 재미도 재미였다. 한국의 창녀들은 상품으로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었지만 용정의 창녀들은 아직 수입이 짭짤하지 못해서인지 포장이 별로다. 그리고 ‘오빠’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냥 손짓으로 눈짓으로 웃음으로 꼬리친다. 창녀들 머리위로 보이는 간판을 보니 다방으로 되어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커피도 나오겠지만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냥 고향에서 유곽거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은 이미 멎기 직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되어 유곽거리들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데 여기는 오히려 새로 유곽거리가 생겨났다. 어둠속으로 늑대들이 다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또 어떤 곳에서는 문가에서 흥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친구는 이곳에서도 단속은 이뤄지고 있으나 대체로 엄하지 않다고 한다. 국가는 허가하지 않은 사람들끼리는 범접하지 말라고 규정했으나, 싱숭생숭 남의 것이 좋은 늑대들이 있고, 남의 것 밖에는 좋아할 여자가 없는 늑대들이 있으니 그런 늑대들과 거기서 한몫 보려는 여자들이 어울려 집창촌을 이룬 것이다. 사진 한 장 찍고 싶었으나 대문어구에서 어슬렁거리는 남자들이 켕기어 그냥 나오고 말았다.

밖으로 나오니 친구는 일찍이 용정에서 유명했던 배꽃호텔로 가자고 한다. 호텔에서 자고 내일 삼합까지 바래다주겠다는 것이다. 20원짜리 여관이 내 수준이라면 150원짜리 호텔이 친구의 수준인 셈이다. 나는 친구한테 삼합까지 바래다 줄 의향이면 비싼 호텔에 들지 말고 지금 바로 삼합에 가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그러자 친구는 순순히 응낙한다.

천리마는 용정을 빠져나와 육도하를 따라 달렸다. 나는 친구한테 소학교 때 당시 전국청소년축구대회에서 1위를 한 안민소학교구단을 견학 왔던 일이 생각나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산 더덕을 캐서 팔아 여비를 마련하고 왔는데 어찌 있을 수 있느냐며 너털웃음을 친다. 그 때 우리는 너무도 가난했다. 학교구단선수였지만 선배들이 물려주는 서캐가 다닥다닥한 운동복을 입고 축구를 했고 축구공은 보풀이 일고 땜질을 한 것들이었다. 소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만 해도 동네에서 돼지잡기를 기다려 돼지오줌통을 찼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불빛하나 없는 한적한 길에는 천리마만 신나게 달린다. 요즘 잘 사는 사람들은 천리마처럼 신나게 달리지만 못 사는 사람들은 돈 없고 일자리 없고 부모효도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고장에서는 ‘일자리창출’이라는 단어가 없다. 일자리창출은 개인의 창업에 의거해야 하는 탐탁한 형편이다. 그러나 창업이 어려운 곳 역시 연변이다. 연변의 기둥산업인 ‘해외노무산업’은 2000년에 2.4억 달러, 2001년에는 3억 달러, 2002년에는 4.76억 달러, 2003년에는 6.5억 달러, 2004년에는 7.3억 달러 순으로 벌어들였지만 노무자들이 정작 돌아와 보면 창업하려는 의욕부터 잃는다. 응당 정부가 이들 해외노무자들의 창업을 돕고 고향에서 친인들과 어울려 살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나가라는 재간밖에 없다.  

해외노무자들을 대하는 시선도 냉혹하다. 해외에서 차별을 당한 사람들이지만 집에서도 ‘불법체류’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릴 듣는다. 재입국행렬이 북새통을 이룬 연길공항에는 이들을 위로하는 플래카드 하나 없다. 빨강 빤스라도 하나 뜯어 쫙 펴서 “왔니?”하고 두 글자만 적어 걸어놔도 고향 떠나 서럽던 사람들이 당금 눈물이 글썽해지련만. 고향이고 뭐고 돈 벌어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갑자기 헤드라이트 불빛 속으로 전신무장한 군인들이 안겨왔다. 군인들 뒤로는 교통차단 봉이 내려져 있었고 길가에는 안테나를 길게 뺀 군용트럭이 서 있었다. 내가 당황해하는 것을 보고 친구는 요즘 새로 생긴 변방출입검문인데 신경 쓸 필요가 없단다. 두만강으로 통하는 길목마다 검문이 있다는 것이다. 브레이크를 밟고 창문유리를 내리니 군인 한명이 다가와 차안을 들여다본다.......

자정이 넘어서야 천리마는 삼합진에 도착했다. 길가로 여관이 보여 문을 두드리니 여관주인이 이층으로 안내한다. 방문을 여니 퀴퀴한 냄새가 머리를 빠갰다. 그렇다고 이 시골에는 더 이상 여관이 없단다. 술기운이었으니 망정이지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다. 우리는 문간수도 하지 못한 채 이불 우에 그대로 뻐드러졌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배꽃호텔과 뜨거운 김이 문문 나는 샤워기가 그리워났다.

성주



다음 회 제2편 <두만강 가에서 만난 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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