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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학 “재한조선족, 그들에게 하나의 힘과 하나의 의미를…”
기사 입력 2017-06-28 05:49:17  

디아스포라의 민족으로 해가 지지 않는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삶을 영위해가는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그중 가장 많은 인수가 한국에 산재했다. 땅거미 지는 저녁, 가정을 위한 희생을 달가이 여기는 그 누군가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지친 어깨를 끌고 귀가한다. 고달픈 생활로 이방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크고작은 꿈들이 움틀거린다. “약장수”, “불법체류자”, “위장결혼자”, “류학생”, “엘리트”… 여러 단계에 거친 조선족들의 코리안드림이 비공식적 숫자이기는 하나 현재 공칭 70만명으로 헤아려진다.
  
수많은 조선족의 꿈들을 안고 3년전 고성을 울린 중국동포련합중앙회, 김성학회장을 며칠전 연길에서 만났다.


지금 서울 대림동에 가면 조선족들이 회포를 풀며 휴식의 한때와 고된 생활을 달랠수 있는 그런 “만남의 광장”이 있다. 2001년 맨처음 동대문밖 장안동에 자리를 잡았다가 후에 대림동으로 옮긴 ‘연변냉면’의 대표이기도 한 김회장은 한국에 가기전까지만 하여도 중국에서 검사직에 종사하였다. 그당시 한중수교로 특히 연변을 중심으로 한 동북3성에 거주하는 중국조선족들이 대거 한국행을 택하다보니 중국동포들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해 지난 1995년 중국정부의 고위관계자가 비공식적으로 김회장을 ‘중국연변사무소 서울주재’대표로 파견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후 상황이 바뀌면서 2006년 사표를 내고 지금까지 김회장은 안해와 함께 사업가로 살아오고있다. ‘연변냉면’은 조선족들이 불법체류자로 쫓겨다니던 시절에 세워졌으며 중국조선족들의 어두운 면만 부각되던 당시 2002년 KBS다큐(25분분량/'피플 세상속으로')에 소개돼 당당하게 사업을 펼치는 조선족으로 김회장은 주목을 받았다. 그리하여 하루아침에 ‘연변냉면’은 조선족들의 “약속의 장소”, “우리의 그곳”, “만남의 광장”이 되여버린것이다.


고향 생각나는 사람들이 몰려오고 불법체류자로 쫓기던 사람들이 몰려들고 부산, 울산, 수원, 의정부 등 전국 어디에서도 거기로 가면 고향사람, 소식 끊긴 사람들을 만날수 있다고 해서 몰려들어 가게는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고 한다. 그러던중 각종 동네토박이들의 부당한 협박과 공갈, 인간적모멸과 여러 원인으로 말미암아 터를 옮겼다. 그곳이 대림동이였다.
  
당시만 해도 대림동은 서울에서 가장 락후하고 지저분한 동네였다. 그러나 그래서 그곳이 바로 터를 잡을 명당자리라고 판단한 김회장은 반드시 이곳에 ‘연변냉면’을 다시 세우겠다는 각오로 권리금을 떼이고 사기를 당하며 집주인이 거들떠보지않는 상황에서도 무조건 밀어붙여 끝내 가게문을 열었다고 한다. 개업식날 하루에 260만원의 매상을 올리는 ‘기적’으로 그들 부부는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다.

그는 여직껏 오기로 버티고있다. 현재 김회장은 서울대림동에서 ‘연변냉면’과 그 주변에 여러개의 지점 그리고 예식장건물을 구입해 운영하고있다. 중국조선족 출신치고 몇 안되는 사업가로 거듭난것이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하는 김회장은 그누군가는 꼭 조선족을 념두에 두고 일해야한다고 말한다. 몇년전부터 그는 그동안 조선족들의 사망사건이 일어나거나 불리익을 당하는것을 보면 가만있지를 못하는 사람으로 되여버렸단다. 그래서 개인사비를 털면서라도 경찰서에 가서 항의도 하고 억울하게 잡혀있는 동포들을 빼내주기도 하였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사람대접 받고 잘살려면 우선 조선족동포들이 단합하고 각성해야 합니다. 또한 한국에게 우리들은 짐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한국산업현장의 충실한 일군이며 공로자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실로 조선족들이 한국의 산업현장에서 빠져나가면 즉시 마비되는 공사현장이 많다고 집계된바가 있다. 식당, 건설현장, 병원의 간병인, 가정부 등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률은 지금도 아주 높은 실정이다. 그가 바라는것 역시 우리의 위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미래를 새롭게 개척해야 한다는것이다.


류설화 연변특파원
흑룡강신문 20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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