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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사 4
빨치산    조회 3,942    2006.12.20빨치산님의 다른 글      
1945년 8월 15일, 일제는 패망하였습니다. 영구병합과 동화정책의 구호가 그토록 요란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황급하게 그들의 고향으로 철수해 갔습니다. 아무도 있어 달라고 붙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일제가 철수한 다음 조선의 사정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시 1905년 대한제국이 패망할 그 당시로 원상복구된 것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회와 경제의 구조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들이 옛날의 그 인간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경제학에서는 발전 또는 개발이라 합니다. 영어로 말해 development입니다. 이는 성장, 영어로 말해 growth와는 상이한 개념입니다. 성장은 사람의 키가 크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키가 160cm에서 170cm로 되는 것, 그것이 성장입니다. 국민소득이 1천 달러에서 2천 달러로 되는 것, 그것이 성장입니다.

개발, development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영어말의 기원은 생물학에서 나왔습니다. 애벌레가 성충이 되는 과정, 바로 그것이 개발입니다. 모양과 기관이 바뀌고 복잡화하는 것이지요. 사람이 원래 어머니 배 속에서 금방 수정되었을 땐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인간의 모습으로 탈바꿈하지요. 그것을 두고 개발 또는 발전이라 하는 것입니다. 한 사회가 역사적으로 개발되었다거나 발전했다고 하면, 그것은 그 사회의 운동 원리와 그 사회의 부속 기관이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어 마치 성충이 애벌레로 돌아갈 수 없듯이 불가역적인 변화를 겪는 것을 말합니다.

식민지근대화론은 바로 그러한 개발이 식민지기의 한반도에서 일어났음을 주장하는 학설이지요. 인간들이 더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애벌레가 성충이 되었는데, 영양상태와 소득수준이 좋아졌다든가 나빠졌다든가 이야기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지요. 무엇 때문에 그러한 원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의 변화가 생겨난 것입니까. 바로 앞서 설명드린 민법으로 상징되는 근대의 법과 제도에 의해서이지요. 바로 그 이유로 1945년 일제가 이 땅에서 철수한 다음의 한반도는 결코 1905년 대한제국 당시의 조선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점이 일제가 남긴 역사적 유산의 본질입니다.

일제가 남긴 역사적 유산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차근히 따져 보도록 합시다. 유산은 가시적인 물적 유산과 비가시적인 정신적 유산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물적 유산과 관련하여 남한과 북한의 사정은 크게 달랐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제는 북한에 의외로 풍부한 물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추진된 군수공업화의 결과였지요. 해방 후 1946년 현재 북한에서는 800개 이상의 대규모 공장이 가동 중이었습니다. 제철ㆍ제련ㆍ전기ㆍ화학 등, 당시로선 세계 첨단 수준의 공장들이 북한에 있었습니다. 특히 1939년 이후 일본에서 건너온 전기ㆍ화학공업의 대규모 공장은, 종업원 수가 3천 또는 6천을 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200개가 넘습니다. 기타 북한지역에 깔린 철도망은 인구당 철도 마일리지에서 일본 본토보다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인구당 발전량에서도 북한은 일본을 능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일제가 북한에 얼마나 많은 거대한 규모의 군사공업시설을 건설했는지는 최근에야 겨우 밝혀지기 시작한 새로운 연구성과입니다. 해방 후 이들 첨단 공업시설의 일부는 철거되어 점령군 소련의 전리품으로 넘어갔습니다만, 거의 대부분은 북한정부에 정상 인계되었습니다. 그 상당 부분이 6.25 전쟁과정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됩니다만, 공장을 경영하는 고급인력이 존재하고 부품이 공급되는 한 파괴된 공장을 복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흔히들 북한이 1960년대까지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앞섰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그것이 사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렇게 된 것은 북한이 일제로부터 받은 물적 유산이 풍부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1950년 김일성이 6.25전쟁을 도발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화기나 화약에 관한 한 북한은 이미 자체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남한에는 거의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남북한의 경제구조나 경제력의 차이가 김일성으로 하여금 6.25 전쟁을 도발하도록 유혹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남한이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물적 유산은 참으로 빈약하였습니다. 남한은 쌀농사 중심의 농업지대였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큰 산업은 수출 쌀농사였습니다. 공업시설이라곤 양조장ㆍ정미소와 같은 식품가공업이 주류를 이루었을 뿐입니다. 그 밖에 서울, 부산, 대구와 같은 도시에 면방직ㆍ견직 등의 의류공장이 몇 개 있었음이 고작이었습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 부근에 기계공업이 일부 발달하였습니다만, 공장제수공업의 수준을 별로 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이들 남한의 공업시설은 해방 후의 혼란기에 많이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남한은 일제가 남긴 또 다른 역사적 자산을 소중히 잘 보존하였습니다. 다름 아니라 근대적인 법ㆍ제도와 시장경제체제가 그것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원래 서유럽에서 발생하여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일제의 유산이라기보다 20세기 인류가 공유하는 문명의 자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도 여러번 지적하였습니다만, 이러한 근대적인 법과 제도는 일제가 한반도를 영구병합하기 위해 이식한 것이었습니다.

해방 후의 대한민국은 이러한 근대 문명으로서 법과 제도를 그대로 보전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일제는 1937년 이후 전시기에 접어 들면서 시장경제체제를 상당 부분 중지하고 국가사회주의적인 통제정책을 취합니다. 식량의 공출과 배급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일제의 전시경제체제는 해방 후 남한에서는 미군정에 의해 해체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수립될 때는 보다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일제를 통해 이 땅에 들어온 시장경제체제를 복구하고 발전시켜 오늘날과 같은 번영하는 시장경제를 성립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북한은 풍부한 물적 유산을 받았지만, 일제를 통해 들어온 근대적인 법과 제도를 폐기하고 말았습니다. 사회주의 혁명을 할 목적에서였지요. 1946년 북한은 ‘건국 20개 조항’을 발표하면서 “일제가 통치의 목적으로 시행한 모든 법을 폐지한다”고 하였습니다. 아울러 “일제의 재판기구를 인민으로부터 선발된 대표에 의한 인민재판기구로 대체한다”고 하였습니다.

재산권의 절대성을 보장한 민법이 폐지되면 어떻게 됩니까. 법에 의한 재판기구가 해체되면 그 사회의 인간들은 어떠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까. 그렇게 북한은 근대문명을 부정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북한은 비극적이게도 문명의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사회주의혁명의 열기에 들떠있던 당대인들이 그러한 문명사의 비극을 어찌 예감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지만 인간정신의 본질인 자유, 그 자유의 물적 토대인 재산제도가 폐지되면 그러한 비극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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