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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한국인 비판(5)
8848    조회 3,478    2007.06.058848님의 다른 글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한국인 비판
    지은이:이케하라 마모루
    출판사:중앙M&B

      프롤로그
    책을 내면서
  내가 이렇게 한국 땅에서 한국 말로  책을 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이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이야기를 책에 담아 한국 국민  앞에 내밀 자격이
나한테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아주 우연한 일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아직도 잘 하는 일인
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 우연한 일의 경위는 대략 이러하다.
  일전에 한 시사 월간지 기자를 만나 한국의 환경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
다. 그 기자는 내 이야기에 아주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기사로 써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왔다. 나로서는 전부터 꼭 하고 싶은 환경 이야기였으니만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글을 쓰다 보니 처음에 의도한 환경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주로 한국 사람
들이 일상 생활에서 보여 준 모습을 비판하는 이야기가 부각되었다. 그래서 아예 기사 제목
도 '나라는 무법 천지, 국민은 염치가 없다'로 되어 버린 것이다.
  그 기사가 나가고 난 후 KBS에서 취재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결국 내 이야기는 일
요일 저녁 황금 시간에 방송되는 「일요 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나밖에 모르는 한국
인'이라는 제목으로 전파를 타기에 이르렀다.
  이 두 가지 '사건'이 터진 다음 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엄청나게 많은 분
이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며 연락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내 이야기에 공감하고
격려해 준 분도 많았지만, 더러는 오해하거나 불쾌하게 생각한 분도 없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자칫하면 '정말로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
오른 것이다. 아울러 처음부터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으면 모르지만 이왕 말을 꺼냈으니 적
어도 내 뜻을 오해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책으로 만들어 보자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두말 않고 승낙했다. 아무래
도 잡지나 방송에서는 시간과 지면의 제약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
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일을 벌여 놓고 보니 책에는 잡지나 방송하고는 또 다른 특성으로 그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평소 한국 사람들에 대해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그대로 털어놓을 수 있을지 선뜩 자신이 서지 않는 것이다.
  26년이나 한국에서 살았다고 하지만 나는 어차피 일본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런 내가 한
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한일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한일 관계라는 것이 대단히 어렵고도  민감한 문제라서 서로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 채 전혀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말기 일쑤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나라는 나란히 이웃해 있으면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고  비
교와 견제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본은 이런데 한국은 저렇다. 그것은 일본이기 때문에 그렇
다, 한국도 이런 면에서는 좋은 점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사실 얼마나 많은가.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만나면 괜히 기가 죽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오기
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 두 나라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나마 부딪칠 일이 없을 텐데 하필
이면 바로 코앞에 이웃해 있는 까닭에 갈등의 소지는 더 커진다.
  자칫 잘못하면 한국 사람에게는 내 말이 '잘난 체하는'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일
본이든 한국이든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있고, 사기꾼 살인자도
있으며, 뇌물을 받고 부정 축재하는 사람도 있다.
  때문에 일본은 이런데 한국은 왜 이러냐는 식의 논의는 전혀  필요 없다. 단지 한국이 올
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만 생각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한국 친구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곧 잘  "일본에서는 어떤
가?"하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걸 왜 묻느냐?"고 반문한다.  남이야 어떻든
사람이 똑바로 살아가는 길은 한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독자 여러분에게 우선 내가 일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그대로
이 글을 읽어 달라고 당부드리고 싶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일본의 사례가 자주 거론되겠지
만,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사례'일 뿐 결코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자는 의도가 아니라는 점
을 양해해 주시면 고맙겠다.
  또 한 가지 미리 밝혀 두고 싶은 것은 이 글에 나 자신의 독단과 편견이 상당 부분  포함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저이다. 나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훈련을 받은 학자가 아
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생활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일본 사람 중에서도 대단히 괴팍한 축에 속한다. 따라서 이제부터 내가 풀어
놓는 이야기가 일본이라는 한 나라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일본 사람
대부분이 나와 사고 방식이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엉뚱한 사람의 독단과 편견도 진실에 다가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무튼 이
책을 읽는 한국의 독자 여러분이 다시 한 번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는 조그만 계기가 되었
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끝으로 형편없는 원고로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곤욕을 치렀을 중앙 M&B 직원  여
러분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1998년 12월
    이케하라 마모루

      1.염치없는 한국인들
    경제는 1만 달러, 의식은 1백 달러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대충 봐주는  것은 결코 인정이 아니다. 그렇게  봐주면 그 사람은
아, 대충 해도 그냥 넘어가는구나 생각하고 점점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멀쩡한 사람이 파멸의 길로 치닫는 지름길이다.
  지난 여름 수해로 온 나라에 난리가 났을 때 방송국에서는 너도나도 앞다투어 수재민 돕
기 성금을 모금했다. ARS라 해서 그 번호로 전화를 걸면 이쪽 전화요금에서 1천 원씩 공제
된다고 했다. 방송국에선 화면 하단에  성금 액수를 표시했는데 불과 며칠  만에 몇억 원을
돌파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글 어느 나라 국민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이토록  적극
적이겠는가? 잘사는 부유충이 단번에 거금을 쾌척하는 것과 서민층이 마음을 모아 십시일반
으로 1천 원, 2천 원씩 돈을 내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다.
  이런 걸 보면 한국 사람들이 '인정'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정 많은 것이 언제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정 많은 사람이 바보가 되기도 한다. 자기  혼자
바보가 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차
라리 '잔인한 놈' 소리를 듣는 게 낫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창기 시절  나는 한국 말도 할 줄 몰랐고 지금처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런 나를 도와 주는 한국 사람이 하나 생겼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일
본에서 가지고 온 5억 엔을 그 사람에게 맡겼다. 지금도 5억 엔이라면 적은 돈이  아니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결과를 말하자면 나는 그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 내 돈을 가지고 도망가 버린  것이다.
그때 내가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했는지 모른다. 돈을 잃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나의  부주
의가 멀쩡한 사람을 사기꾼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배가 고픈 사람 앞에 지갑을 놓아 두었다면 그 지갑을 집어 간 사
람이 나쁜가, 거기에 놓아 둔 사람이 나쁜가, 백 번 천 번 놓아 둔 사람이 나쁘다.
  나중에 소문을 들으니 내 돈을 가져간 사람은 그 후 완전히 직업적인 사기꾼이 되었다고
한다. 감옥에 들락거리기도 하고,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소문도 들렸다. 글쎄, 내가 사람을 잘
못 봤는지는 모르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도 나는 그 사람
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진심이다. 나는 그때 돈을 잃었지만 그는  인생을
잃었다. 그렇게 되도록 그 사람이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는 데 일조한 셈이 되고 말았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조목조목 따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손해보고 말지 하면서 대충 넘어간다. 언뜻 보기에 대범한 것 같기도 하고, 인정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한국통신이 통신공사라는 간판을 달고 있던 1980년대 중반 그 회사 부사장에게 이
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마음씨  좋고 너그러운 국민 덕분에  그렇게 편하게 일하는
걸 보면 정말 부럽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전만 삼켜 버리고 통화가 되지 않는 공중
전화가 많았다. 그럴 때 한국 사람들은 "에이, 재수  없어!" 하면서 다른 공중전화를 찾아간
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10원이든 20원이든 부당하게 빼앗긴  셈이므로 몇천 원이 들든
몇만 원이 들든 그 돈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말이 안 되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해자가, 이용자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통신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문제
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설령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굳이 고칠 필요가 없다. 통화도 안
시켜주고 공돈을 벌었으니 더 이익인데 누가 힘들게 고치려 하겠는가?
  혹시 이 글을 읽은 여러분 가운데 전화가  잘못 걸렸을 대 전화국에 연락해서 따진 분이
있을까? 물론 자신이 번호를 잘못 눌러서 엉뚱한 곳으로 전화가  걸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틀림없이 제대로 눌렀는데도 잘못 연결되었다면 전화국 쪽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그냥 넘겨선 안 된다. 전화가 잘못 연결되면  반드시 전화국에 연락해서 왜 이
런 일이 일어났는지 따져야 한다. 자기가 번호를 잘못 눌렀다면 할 수 없지만, 전화국 쪽 문
제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잘못 걸린 전화요금을 철저하게 받아 내야 한다.
  전화 회사 직원들은 귀찮아서라도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늘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
다. 그러다 보면 기계적인 결함이 발견될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기술이 발전해 가는  과정
이다. 내가 통신공사 부사장한테 한 말은 결국 편하게 일할  수 있어서 좋겠다는 뜻이 아니
라 기술 개발의 동기를 자극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동정심의 표현이었다.
  곰곰이 따져 보면 한국 사회 각 분야에서 부실이 판치고 비리가 속출하는 것은 국민의 책
임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안전 시설, 환경 관련 시설을 졸속으로 처리해서 수많은  국민에
게 피해를 준 사람은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다.
  이런 말을 하면 한국 사람들은 내가 일본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역시 일본 사람은
'독해서'그럴 수 있는지 모르지만, 한국 사람은 그렇게 몰인정한  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
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대충 봐주는 것은 결코 인정이 아
니다. 그렇게 봐주면 그 사람은 아, 대충 해도 그냥 넘어가는구나 생각하고 점점 더 큰 잘못
을 저지르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멀쩡한 사람이 파멸의 길로 치닫는 지름길이다. 잘못이  발
견되면 철저하게 책임을 추궁하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인정'이
다.
  뇌물 받은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한 번 두 번 눈
감아 주기 시작하면 종국에는 그 정치인도 망하고 국민도 망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낸 세금이 행여 어느 구석으로 엉뚱하게 새 나가지 않는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
다. 까짓 것 액수도 얼마 되지 않는데 뭐 하는 사고 방식, 나 혼자 나서 봤자 뭐 달라질 게
있겠어 하는 사고 방식, 그것이 나라를 망가뜨린다.
  앞에서 ARS로 수재민이나 불우이웃을 돕는 데 많은  성금이 답지하는 걸 보고 놀랐다고
말했는데, 좋은 건 거기까지 뿐이다. 그 성금을 해당 주민에게 분배하는 과정에서 유용해 가
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기껏 국민이 착한  마음으로 돈을 내면
그들이 손 한번 안 대고 코 푸는 격으로 그 돈을 빼먹는  것이다. 성금을 낸 사람들은 공평
정대하게 분배되는지 끝까지 감시하고 관찰해야 한다. 좋은 일 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월간지와 텔레비전에 내 이야기가 나가자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 얘기는 구구절절이 옳아, 다 맞는 말이라고. 우리라고 그걸 모르겠어?  하지만 혼자
힘으론 안 되는 걸 어떡해."
  일단 해 보고 나서 그런 말씀을 하시라. 언제 한번 제대로  노력이나 해 본 적이 있는가?
왜 해 보지도 않고 안 될 거라고 지레 움츠러드는가? 애당초 안 될 것 같으면 이런 잔소리
는 하지도 않는다.
  옛날 같으면 안 되는 걸 어떡해라는 말에 수긍할 수  있었다.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와
도 눈치봐서 후닥닥 건너가고, 100원짜리 공사 따서는 50원쯤  슬쩍 해 자기도 먹고 아래위
로 골고루 나눠주고······어떻게 해서든 죽기  살기로 뛰어다니지 않으면 살아  남지
못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먹고 살 만한 정도는 되지 않았
는가 말이다. 이제 한국은 세계 11위 경제대국이다. 뒤집어 말하면 전세계 180개 나라  가운
데 169개 나라는 한국보다 못산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과대 평가하는 것은 분명 나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쁜 것은 국민소득 1만 달
러 시대 사람들이 1백 달러 시절 사고 방식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온상 속에서만 자라는 '떡잎'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누가 강제할 수 없는 본능에 속
한다. 그러나 한국 여성들의 자녀에 대한 애정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애정'이라기보다
'집착'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질이 별나서  꽤 말썽을 피운 축이다. 어쩌다  친구랑 싸움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면 어머니는 누구랑 싸웠느냐고 묻고는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 그 집을 찾아
갔다. 코피가 터졌든 입술이 찢어졌든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내가 가
해자인지 피해자인지조차 묻지 않으셨다. 무조건 상대방 집을 찾아가 사과를 해야 했다.  그
러고 나서야 어머니는 내 상처를 치료해 주셨다. 일본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한국에서도 아이가 싸우고 들어오면 상대방을 찾아가는 것까지는 같다. 그러나 일단 찾아
가서는 사과를 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어떻게 키웠기에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이 꼴로 만들
어 놓았느냐"며 언성을 높인다. 그러니 아이 싸움이 곧잘 어른 싸움으로 번지고 만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
설사 내가 좀 잘못했다 해도 내  뒤에는 부모가 버티고 있고, 언제 어디서든  내 편을 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는 자기 행동의 잘잘못을  판단할 정도로 철이 들었는데
도 정작 부모 눈에는 아이의 잘못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아찔한 순간을 많이 겪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한 사건
이 하나 있었다. 내가 탄 차가 광화문 근처 이면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코앞에
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세 명이 횡단 보도도 아닌 곳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차도로
뛰어들었다.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라 속력을 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자칫 끔찍한 사고가
날 뻔한 순간이었다. 우리 기사는  놀라운 순발력을 발휘하여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다행히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깜짝 놀란 그 학생들은 이내  자기네 잘못을 깨닫고 연신 허리
를 굽히며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나 역시 그  아이들 못지않게 놀랐지만 스스로 잘못
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으니 그냥 지나가려 했다. 그때 어디선가 한 학생의 어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타나더니 다짜고짜 우리 기사에게 마구 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남의 집 귀한
아들 병신 만들 일이 있느냐는 둥, 무슨 운전을 그 따위로 하느냐는 둥 자못 기세가 등등했
다. 나는 당장 차에서 뛰어내려 더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물론 자식에 대한 애정 때문이겠지만, 한국 어머니들 눈에는  자기 자식의 잘못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 사건만 해도 그 어머니는 오히려 우리 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어야 옳다.
  따지고 보면 그런 습성이 반드시  한국의 어머니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나라 전체가 과잉보호 습성에 길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래 글을 읽어
보자.
  "한국에 가니까 어느 날 전국적으로 일제히 비행기를  이착륙하지 못하게 했다. 자동차도
천천히 조용히 다니고 클랙슨도 빵빵  울리지 못하게 했으며, 전 국민의  아침 출근 시각을
두어 시간 늦추었다. 심지어 증권 시장마저 30분 늦게  시작하고. 그러나 버스와 전철, 택시
등이 총동원되고 경찰도 비상 사태인 듯했다. 거리 곳곳에서 부분적으로 통행을 금지했으며
병원의 구급 차량도 총동원하고······." 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미국인 동료들은 한국에 무슨 전쟁이라도 났느냐, 쿠데타가 일어났느냐며 묻기에 바빴다.
  맞다. 전쟁은 전쟁이다. 입시 전쟁. 위에 묘사한 것은  바로 대학 입시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 한국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마치 전쟁이나 쿠데타라도 일어난  것처럼 온 나라가 법석
을 떤다. 물론 일생 일대에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을  배려해 주고 싶은 마음이야 충
분히 이해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 무엇보다 전혀 교육적인 처사가  아니
다.
  중요한 시험을 치러야 하는 학생이라면 평상시와  똑같이 자기 힘으로 시험 보는  곳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교통이 막혀서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새벽 세  시든 네 시든 제 발로 걸
어서라도 가야 한다. 그렇게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 주어야지 온 나라가
마비될 지경이 되도록 학생들 편의를 봐 주는 것은  과잉보호에 다름아니다. 학부모 가운데
몇몇이 그렇게 극성을 부린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나라가 앞장 서서 그런 분위기를 조성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듯한 특권 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입시 날만 되면 추위가 맹렬하게 기승을 부린다. 1998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하늘이 한국  사람들
의 잘못된 사고 방식을 경고하기 위해 시련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적으로 잘못
을 저지르고 있으니 고생 좀 해 보라는 뜻으로 말이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과잉보호는 무관심보다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은 스스
로 원해서가 아니라 부모와 선생의 강요 때문에 할 수 없이 공부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변명의 여지가 싹튼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최선을 다해서
해야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는 법이다. 그런 사람은 변명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은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대 자기 잘못보다는 다른 여건 탓이
라고 책임을 돌려 버린다.
  노르웨이나 덴마크 같은 북유럽 나라를 여행하면서 나는 그곳 부모들이 자녀를  훈련시키
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젖먹이나  다를 바 없는 아이라 할지라도 여덟  시든 아홉 시든
정해진 취침 시간이 되면 가차없이 방으로 들여보내고는 밖에서  문을 걸어 버린다. 아무리
울고 불고 난리를 쳐도 들여다보는 법이 없다.
  취침 시간만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옆에서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매사
에 엄격하게 아이들을 대한다. 그러다 아이가 자라서 열다섯 살이 되면 그때부터는 전혀 간
섭하지 않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자유를 준다. 이제 너도  어른이 되었으니 네 인생은 알아
서 개척하라는 뜻이다. 한국처럼 여든 먹은 어머니가 환갑 지난 아들한테 "얘야,  차 조심해
라"하고 주의를 주는 모습 따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물론 유럽식 교육 방식이  반드시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너는
너, 나는 나'라는 개인주의가 극도로  횡행하는 서구 사회에 비교하면 자녀에게  맹목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쏟는 한국 부모들의 모습은 그들만의 커다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어떻게 부모라는 사람들이 저럴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만큼 자식을 모질게 대하는 서구 사람들도 자기 자식이 미워서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누가 강제할 수  없는 본능에 속한다.
그러나 한국 여성들의 자녀에 대한 애정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애정'이라기보다 '집착'
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약이 과하면 독으로 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교차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내가 이 책을 통해 지적하는 한국 사람들의 수많은 단점 또한
장점으로 전환될 수 있다.
  자녀에 대한 애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에 한국 부모들, 특히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애
정과 관심은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뛰어난 장점이 될 수 있다. 이 장
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지금처럼 과잉보호라는 엉뚱한 방식으로 표출하는 세태가  계속
된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내 앞에 가는 꼴, 절대 못 봐"
  한국 사회에는 인재를 키워 주는 풍토가 거의 없다. 다른  사람이 앞서 가는 기미라도 보
이면 철저하게 견제하고 방해해서 올라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그래야 자기가 올라갈 가
능성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와 함께 어울리던 동창 가운데 음악을 전공한 친구가 하
나 있었다. 그 친구는 음악적 재능은 타고났지만 집안이 워낙  가난해서 학창 시절 내내 아
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해야 했다.
  그는 주로 긴자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잘생긴 얼굴
에 연주 솜씨도 훌륭했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여자가 많았다.  우리는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너는 다 좋은데 여자 관계가 복잡한 게 탈"이라며 충고도 하고 놀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가 위기에 처했다. 치정에 얽힌 원한 관계에 휘말린 것이다.  구체
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자 문제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생명에 위협을 느낄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쩔쩔매는 그를 보다못해  나와 몇몇 친구가 '대책 회의'
를 열었다.
  당시 우리가 내린 결론은 그를 외국으로 피신시키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진 돈을 모두
털어 30만 엔이라는 거금(당시 대학교의 한 학기 등록금이 1만 2천 엔 정도였다)과 함께 조
그만 오토바이를 한 대 마련해 주었다. 친구는 결국 오토바이를 배에다 싣고 일단 홍콩으로
피신한 다음 거기서부터는 오토바이를 타고 육로로 유럽까지 내뺐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그는 프랑스 파리에 도착해 어느 부잣집에서 피아노 가
정교사로 일하며 음악 수업을 계속했고, 급기야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어 일본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음악에 웬만큼 관심이 있는 한국 사람들도 익히 알 정도로 유명한 지휘자가 되었다.
혹시 그에게 피해를 미칠지 모르니 이름은 소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돕는 것, 가능성이 보이는  친구를 밀어 주는 것은 직
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어느 학교 동창생들이 행정고시를  통과하고 공무원
사회에 포진해 있다고 하자. 대개 과장급 정도 되면 능력의 우열이 서서히 판가름나기 시작
한다. 그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나머지 동창들은 그 친구가 장
관 자리까지 오르도록 혼연일체가 되어 밀어 준다.
  그러다가 정말로 그 친구가 장관이라는 지위에 오르면 나머지 친구들은 그날로 모두 사직
서를 낸다. 장관이 된 친구가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에  어떤 특혜를 주고 싶어할지도 모르
고, 친구에게 마음놓고 지시를 내리기가 껄끄러울 것이라는 배려 때문이다. 일본 관료  사회
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일본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동요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오래 되어서 가사가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해 저물고 산사의 종소리 울려 퍼지니, 다 같이  손잡고 집으로 돌아가자. 까마귀도 함께
가자······.'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동요가 있는지 모르지만, 바로 이것이 일본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
에 깔려 있는 진정한 동반자 의식이다. 함께 손을 잡고 있으면 그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못
한다. 또 같이 가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뒤쳐지면 서로 끌어 주고  밀어 주어야 함께
갈 수 있다.
  그런데 무대가 한국으로 바뀌면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한국 사람들도 우정에 대해
서는 각별한 데가 있지만 그토록 돈독한 우정도 돈이나 지위가 개입되면 봄눈 녹듯 사라져
버리는 경우를 나는 적잖이 목격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친구가 잘 되는 것을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대신 은근히 시기하
고 질투하는 마음이 앞선다. 누군가 먼저 승진하면 "그 자식 그거, 능력도 없는 녀석이 열심
히 손바닥 비벼 대더니······"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인재를 키워 주는 풍토가 거의 없다. 다른  사람이 앞서 가는 기미라도 보
이면 철저하게 견제하고 방해해서 올라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그래야 자기가 올라갈 가
능성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어렵게 느낀 대인관계도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한국 사
람들의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두 사람은  절친
한 친구 사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  사이에 내가 나타났다. 나는 무슨일이 있어도 그  두
사람을 '똑같이'대해 주어야 한다. 외국에 갔다와서 하다못해  넥타이를 선물해도 두 사람에
게 똑같은 걸 주어야 한다. 둘 가운데 한 사람만 만나게 되면 반드시 사전에 혹은 사후에라
도 그런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나하고가 아니라 그 두 사
람 사이에 틈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럴 때는 무척 혼란스럽다.
  회사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한 회사의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등을 내가
다 알고 지낸다고 하자. 나는 그 서열에 따라서 한  사람이라도 섭섭한 감정을 느끼지 않도
록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상무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해서 사장을 제쳐놓고
상무하고만 일을 진행시키면 틀림없이 그 상무는 나중에 사장에게 불이익을 당한다.
  정치판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정치인 한 사람이 뇌물을 받았다
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인이 뇌물을  받아도 그 사람만은 깨끗할
것이라고 믿었고 그 믿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나로서는 그가  정치적 희생자가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세태는 한국 사람의 가장 심각한 병폐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제는 그 병폐를 장
점으로 활용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그  에너지의 각도를 조금만 달리
하면 건전한 선의의 경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참다운 경쟁이란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쟁이 아니라 정복이다.  파
이가 하나밖에 없었을 때에는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때려 눕히고 독차지해야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사이 좋게 나누어 다 먹을 정도로 파이가 커졌다. 어차피 다 먹지도 못
할 것에 욕심내지 말고 어떻게 하면 그 파이를 더 크게 키울 수 있을지만 생각하면 된다.

    입으로만 찾는 의리
  일본 공무원 사회에서는 뇌물을 받았다가 발각되는 사태가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림으로써 고리를 끊어 버리는 일이 흔히 나타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엮여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의리 있는 것일까.
  흔히 한국 사람들은 인정 많고 의리 있다는 말을 한다. 사실 나도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
조금 친해지면 '의형제'를 맺자고 제의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래서 국적은 다르지만 나를 깎
듯이 '형님'이라고 부른 '동생'이 셋이나 있다.
  여담이지만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사람도 있다. 그는 이름만 대면 누구
나 아는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배우다. 나 또한 그를 좋아하고 아끼지만 그 친구만큼은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나이가 들어서 활동이 뜸하지만,
한때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그 친구를 모르면 한국 사람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일본
인, 이른바 '쪽발이'인 나를 형님이라고 부른다면 한국  사람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지도
모를 '사건'인 것이다.
  물론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내가 전부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꼬박꼬박 형님, 형님 하다가도 자기 상사 앞에 가면  갑자기 '이케하라 상'이라고 부르는 사
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할 때에만 '형님'일 뿐  그렇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일본 사람이 한국에 대해 쓴 책에서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고향을 사랑하고 인정이 많아
지역 감정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난 거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다.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고향을  사랑하고 인정이 많은 듯이 보이는  것은 위험이 닥쳤을
때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기 위해서, 비빌 언덕을  미리 준비해 두기 위해서라고 생각
한다.
  앞에서 '까마귀도 손 잡고 같이 가자'는 내용의 일본 동요를 소개했지만, 한국 사람들에겐
그런 정신이 부족하다. 가능하다면 손을 잡고 같이 가는 게  아니라 나 혼자 먼저 뛰쳐나가
야 속이 시원하다. 뒤에서 총을 들고 쫓아오는데 나부터 살고  봐야지 다 같이 가려고 우물
거리다간 총 맞아 죽기 십상이다.
  한국 사회에 유난히 형님 동생이 많고 입만  열면 의리 운운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꿔 말해서 '가능하면 의리를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일  뿐, 현실에
서는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입으로나마 자꾸 의리를 찾는 것이다.
  일본 공무원 사회에서는 뇌물을 받았다가 발각되는 사태가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림으로써 고리를 끊어 버리는 일이 흔히 나타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엮어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의리 있는 것일까.
  기업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벌 구조에  대해서는 한국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비판이
많아서 현재 구조조정이니 빅 딜이니 하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
에 한국 재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니뭐니 해도 '의리'가 없다는 점이다.
  잡아먹지 않으면 먹히고 마는 치열한 경쟁 시대에는 의리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
는지 모르겠는데, 그렇지는 않다. 한국  재벌이 지금처럼 성장한 것은  순전히 국민의 도움,
정부의 도움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하다 해도 오늘의 자신을 있
게 해 준 은인을 배신한다면 경쟁 때문이 아니라 제풀에 못 이겨 스스로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한번은 어느 가전제품 회사에서 나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일본에서  다급하게 부품을
수입해야겠으니 도와 달라는 이야기였다. 하도 시일이 촉박하다고 성화를 부려서 왜 그렇게
서두르냐고 물었더니 미국에 수출을 해야 하는데 한국산 부품을 썼다가 클레임이  걸렸다는
것이다. 하자가 있는 부분을 보완해서 납기를 맞추려면 일본  부품을 들여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하루아침에 거래처를 바꿔 버리면 원래 그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던 한국 회
사는 어떻게 되는가. 조그만 하청업체가 중요한 거래선을 잃었으니 자칫하면 회사가 망할지
도 모르는 일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이번 수출 건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청업체를 지원해서  한국
기술을 키워 나갈 생각을 해야지, 미국에서 클레임이 걸렸다고  파트너를 버리고 일본 회사
에서 부품을 수입한다면 한국에서는 도대체 누가 기술을 개발한단 말인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할 뿐 이후의 먼 미래는 아예 안중에 없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조그만 협력업체를 키워 주는 데 너무  인색하다. 키워 주기는커녕 혹
시라도 저놈들이 힘이 세져서 우리를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견제하고 방해하기에 여
념이 없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튼튼한 협력업체를 키우는 것이 자기들에게도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 정도 안목도 없는  사람들이 한 나라의 경제를 이
끌어 간다고 생각하면 실로 한심스럽고 걱정스럽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평생 직장의 개념이 무너진다고 하지만 한국의 회사와 일
관계로 접촉하다 보면 5, 6년 이상 한 회사에 진득하게 붙어 있는 직원이 거의 없는 느낌이
다. 노동시장 구조가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는 미국식으로 정착된다면 또 모
를까, 아직 그렇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리저리 직장을 옮겨 다니는 것은 개인을 위해서나 회
사를 위해서나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직장을 옮기는 것은 그나마 낫다.  직
업 자체를 이것저것 바꾸는 사람을 보면 더욱 불안하다.
  한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정말 황당할 때가 있다. 어느 회사에서 줄곧 상대해 온 중견 간
부 한 사람이 어느 날 느닷없이 없어져 버린다. 그 사람 왜 안 보이냐고 물어 보면 '퇴사'하
였단다. 회사를 그만두려면 자기가 하던 업무를 후임자에게 철저하게  인수 인계해 주는 것
이 상식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몸만 달랑 빠져나가 버린다. 관련 업
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새 파트너를 상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고충은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니다.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황당한 일이 있다. 어느 날 한 회사에서 사라졌던 사람이 다른 회사 이
름이 찍힌 명함을 들고 불쑥 나타나는 것이다. 알고 보면  그는 먼저 다니던 회사에서 몸만
빠져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관계를  맺어 온 거래처 명단과 관련 기술,  정보 자료 등을
모조리 가지고 나온 모양이다. 그래 놓고는 회사는 바뀌었지만 사람도 똑같고 하는 일도 똑
같으니 예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자고 제의한다.
  그렇게 회사를 옮기면서 월급과  직위가 얼마나 더 올라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두 번 다시 상대하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이 그런  인간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면 정신이 나가지 않은 다음에야 어느 누가 그를 상대하려 하겠는가. 결
국은 제 손으로 무덤을 파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월급을 10만 원 더 받느냐 덜 받느냐, 부장이라는 직함을 1년 빨리 다느냐 늦게 다느냐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지극히 사소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
나 한평생 살아가면서 그렇게 사소한 일에 인간성까지 걸어서야 되겠는가.
  개인이든 기업이든 당장의 실리만 생각한다면 의리를 지키는 것이 불리하게 생각될지  모
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의리야말로 가장 소중한 재산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
서는 안 된다.

    새벽을 열지 못하는 장닭
  한국을 남성 중심의 사회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얼른  보기에는 남자들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한 꺼풀 벗기고 보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남자를 지배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여자들이다.
  한국에 살면서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지위라는 문
제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자들이 서구 사회에 비해 한국에는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낮다
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본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장관이나 차관 등 고위 공무원, 각 기업체
최고 경영자 등 정계와 재계 전체를 통틀어 한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터무니없이 낮다. 똑같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나 승진, 봉급 등에서 여성들은 뚜렷한  이유
도 없이 차별을 당하고 평상시에도 남성들보다 열등한 대우를  받는다. 그러니 여성 지도자
들이 '여성들의 각성'을 외치며 열변을 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불평등이 그뿐인가. 수시로 터져 나오는  성희롱 사건이나 여성이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사회적 차별 등을 생각하면 이제 한국도 진정한 남녀 평등 시대를 열어 가야 한다는 주장이
일리 있어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남녀가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도 대부분
여성이 차별을 받는다. 그런데도 나는 여성들이 나약하고 억울하고 불쌍하지 않다. 아니, 오
히려 그 반대다. 남성들이 힘이 없고 불쌍해 보인다.
  한국에는 '여성 상위' 사회라고밖에 볼 수 없는 측면이 많다. 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사
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일본은 물론 미국보다 더 여성의 힘이 센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이
른바 '여필종부'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는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이것은 결코 역설이 아니
다. 궤변은 더 더욱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들은 그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지 말고 근거를 대라고 할 것이
다. 이 대목에서 독자 여러분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야겠다. 나는 현상을 체계적이고  논리적
으로 분석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특히 학문적인  뒷받침을 요구하는 분야라면 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내가 지금 굉장히 주제넘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더군다나
한국은 내 나라가 아니다. 나름대로는 한국 사람 못지않게 한국이라는 나라를 사랑하고,  되
도록 이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해 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지만 때때로
'아 나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구나'하는 회한이 일 때가 있다.
  그러나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논리를 갖춘 과학적 분석만이 진실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아
니다. 물론 그런 방법론이 진실을 대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론이나 학문으로
승화되었겠지만, 나 같은 이방인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두런두런 늘어놓는 이야기에도
한번쯤은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자신이 직접 개입하고 있는 일은 당사자 눈에 잘 보이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나의 무책임한 발언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런 글을 쓰게
된 충정만은 여러분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내가 한국은  여성의 힘이 남성을 압
도하는 사회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역사적으로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  여성들이 보여 준 억척스러운 힘은  남자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 평범한 여염집 아낙들이 앞치마에 돌덩이를 실어 날라 일
본군을 물리치는 데 앞장 섰다는 이야기며, 적장의 허리를 껴안은 채 동반 자살한 논개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적지 않은 감동을 느꼈다. 물론 일본의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다.
  현대 한국 여성들도 결코 선조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나는 한국 사
채업자는 전부 여자인 줄 알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고로 돈줄을 움켜쥔 사람이 강자
로 군림한다. 따라서 큰손 작은손 가릴 것 없이 사채시장에  여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힘
이 세다는 반증이다. 장영자 사건을 필두로 굵직한 금융  사고에는 반드시 여자가 개입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나의 생각을 뒷받침해 준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나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여자들이 있고, 대형 사고에 여자들이 관
계된 경우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 배후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한국에서처럼 여자
가 전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며 대형 사고를 일으키는 나라는 거의 없다.
  힘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간단하게 팔씨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힘도 있지만, 우리
는 지금 그런 물리력보다 경제력이나 정치력 같은 사회적 힘이 더욱 중요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가정에서도 복잡한 역학 관계는 어김없이 작용한다.
  한국에서는 '경제권'을 남편이 쥐고 있는 가정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월급이 온라인
으로 입금되어 집에서 통장을 틀어쥐고 있는 아내의 수중으로 고스란히 들어가거나 월급 봉
투째 아내에게 가져다 바치고 자신은 용돈을 타서 쓰는 직장인이 태반이다.
  이따금 그런 친구들한테 "왜 자기가 번 돈을 아내에게 모조리 주고 정작 자신은  돈이 없
어서 쩔쩔매느냐?"고 물어 보면 대답은 한결같다. 자기가 돈을 관리하면 한 달 월급 가지고
보름도 못 버틴다는 것이다.
  결국 그 가정의 주도권을 아내 쪽에서 쥐고 있다는  뜻이다. 다들 표면적으로는 여성들이
특유의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으로 살림을 잘  하기 때문에 돈이 헤프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를 댄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돈줄을 쥔 자가 힘을 장악하고 관계를 장
악하는 자본주의의 생리가 고스란히 관철되고 있다.
  서구와 비교할 때 한국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미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을 남성 중심의 사회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얼른 보기에는 남자들이 모든 것
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한 꺼풀 벗기고 보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남자를 지배하는 것이 바
로 한국의 여자들이다.
  한국에서는 모든 집안일을 여자들이 처리한다.  밥하고 살림하는 것은 물론  물건을 사고
집을 사고 적금을 붓고 심지어 축의금이나 조의금 액수까지  여자들이 알아서 결정한다. 남
자들은 아녀자 일에 꼬치꼬치 간섭하는  것은 대장부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식이
싱겁거나 짜도 아무 소리 않고 그냥 먹는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어 보면 십중팔구는  '가
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물론 남자든 여자든 통이 크고 대범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가정에
서 이런 기울어진 역학 관계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남자들이 간섭하지 않으니까
여자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다 올바르다고 착각한다.
  화장이나 패션 같은 유행 문제를 생각해 보자. 한국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패션에 신경을
쓰는 여유를 누리게 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다.  내 생각이 맞다면 여자들이 멋내
기 역사는 불과 10년밖에 안 된다.
  한국 여자들 중에는 이 옷이나 화장이 나한테 어울리는지  어떤지, 멋있는지 아닌지 판단
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 결과는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누군가 모범을 보이면 대다수 여자가 아무 생각 없이 그 뒤를 따라가는 현상이다.
어느 나라나 유명 스타가 유행을 주도 하지만, 한국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길
거리를 다니다 보면 누가 누군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똑같은 헤어스타일, 똑같은 입술 색
깔, 똑같은 옷과 신발뿐이다. 개성이라고는 약에 쓰려 해도 찾아볼 수 없다.
  둘째는 일반적인 경제 원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값이 비싸면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기이
한 현상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어떤지 판단할 미적 안목이  없는 사람들은 오로지 값이
비싸냐 싸냐로 판단하는 것이다. 패션이나 멋내기에 대한 무지가  바로 이런 결과로 나타난
다.
  요컨대 여자가 화장을 하거나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다.
개중에는 자기 만족 때문에 그런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동기에 지나
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여자들의 유행이 남자 눈에도 예쁘게 비치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우선 내 취향부터 소개해 보자.  나는 입술을 시커멓게 칠하고 다니는  여자를 보면 당최
속이 울렁거려서 참을 수가 없다.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유행인지 모르겠지만,  골프장에
가 보면 오십 먹은 아주머니들까지 온통 입술이 시커멓다. 왜 그러고 다니냐고, 이왕이면 좀
더 예쁜 색깔도 있지 않으냐고 하면 대답은 한결같다.
  "왜요, 섹시하잖아요."
  글쎄, 그건 자기네들 생각이고 내가 보기에 섹시하기는커녕 죽은  사람 얼굴 같아서 언짢
기만 하다. 그렇게 말하는 아주머니들의 남편은 그 시커먼  입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몹시
궁금하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나 헤어 디자이너를 보면 남자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추세다. 당연한 일이다. 여자의 아름다움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 여자들은 남자의 견해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뭐라고 이야기를  하면 으레
"잔소리한다" "시대에 뒤떨어졌다" "구닥다리다"라고 말대꾸나 한다. 그런 소리가 듣기 싫어
서 남자들은 아예 간섭을 안 해 버린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다. 한 가정의 경제권
을 가진 여자가 장악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녀 교육 문제에 관한 한 한국
남자들이 지금처럼 전권을 아내에게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고 집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내에게 자녀 교육 문제
를 전담시킨다. 어쩌다 자식의 성적표나 들여다보는 게 고작이고, "교육 문제는 애들 엄마가
알아서 하겠지"하며 아예 신경을 꺼 버린다. 남편으로서는 단지 귀찮기  때문에, 그것말고도
신경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아내에게 자녀 교육을 맡겨 놓은 것이라고 둘러대겠지만, 사
실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면 아내 쪽에는  어떻게든 자기 손으로 자녀를 교육시켜야  하는
절박한 동기가 있는 반면 남편  쪽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얼른  생각하면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안되겠지만, 나는 그런 현상을 이렇게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는 '출가외인'이다. 시집가고 나면 더 이상  그 집 식구가 아니라는 뜻
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식을 올리는  그날부터 완전히 시댁 사람이 되느냐  하면 그게 또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왜냐하면 시집 족보에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자가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도 자기 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
는 나라다. 서양은 물론 일본에서도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간다.
  이에 대한 의미를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한국 여자들은 언제든지 시댁에서 "너 마음에
안 드니까 보따리 싸서 나가!"하면 친정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러나 친정에서는 출가외인 운운하며 한번 시집간 딸을 따스하게 맞아 주지 않는다. 말 그대
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라곤 오로지  자식밖에 없다. 시아버지와 시
어머니는 물론 최악의 경우 남편조차 내편이 아니다. 그러나  끈끈한 혈육의 정으로 연결된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는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다. 상황이 이러니 딸보다는 아들이 낫다.  아
들은 시집의 호적과 이름, 재산을 전부 상속받는 든든한 '백'이다. 이래서 한국  주부들은 기
를 쓰고 아들을 낳으려 한다. 아들은 말 그대로 보험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요즈음 같은
핵가족 시대에도 아들 낳으려고 삼공주, 사공주 주르르 낳는 집이 심심찮게 있다.
  남편은 자식에게 성을 물려주었으니 그 아이는 누가 뭐라 해도 자기 자식이다. 그러나 여
자로서는 자식까지 빼앗겨 버리면 이  세상 어느 한 구석 의지할  데가 없어진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감이 없지 않지만 자식, 특히 아들에게 유난히 집착하는 한국 여성들의 머리 속에
는 이런 뿌리깊은 잠재의식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자식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곧 교육열로 이어진다. 조금  적극적인 어머니들은 다른 아이
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안달이다. 그러니까  별 생각 없이 사는 어머
니들까지 최소한 남들 하는 것은 우리 아이도 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뒤를 따른다. 여
자들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살림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식을 얼마나 출세시키
느냐 하는 것이 더 크게 작용한다.
  가만 보면 이 부분에서도 유행을 따라가는 것과 똑같은 심리가 작용한다. 옆집 아이가 피
아노를 배우면 내 아이에게도 가르쳐야 하고, 옆집 아이가  태권도를 배우면 내 아이에게도
시켜야 한다. 그래 봤자 궁극적인 목표는 단 하나, 자식을 명문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 대한
민국 모든 어머니의 지상 과제다.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가면 그 시간에 가방을 맨 고등학교 학생들
이 나하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가 있다. 이렇게 늦게까지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물어 보
면 한결같이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오늘 길이라고 대답한다.
  사정이 이러니 집에서 부모가 자식한테 가정 교육을 하고 싶어도 시간적 여유가 없다. 한
국의 가정 교육은 철저하게 입시 위주인 학교 교육을 보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사람이 한세상을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배우는 지식도 중요하
지만 집에서 부모에게 받는 가르침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는 가정 교육은
없고 오로지 입시 교육만 존재한다. 나라 전체가 이토록  무질서하고 몰염치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이런 세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여자가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자식을 출세시켜야 자기 존재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그릇된 관념 때문에 여자들의 시야
가 그만큼 좁아지는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아버지들이 더욱 적극적으
로 자녀 교육 문제에 간여해야 한다. 평소에는 대충 넘어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마디 하
면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권위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한국 남자들은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이 거의 없다.  야근이다, 회식이다, 접대다 해서 날
이면 날마다 늦는다. 어쩌다가 공식적으로 늦을 일이 없는 날이면 모처럼 시간이 났다며 동
창이나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신다. 그러니 주말이 되면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에게 '봉사'하
기 위해 어디로든 놀러 가야 한다. 평일보다 주말에 더 길이 복잡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 남자들이 자녀 교육에 신경쓰지 않는 것은 의지가 없어서라기보다 능력이 없어서 못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실직자가 많아지면서 '고개 숙인 남자'들이 더욱
늘고 있지만 오늘 살고 말 일은 아니잖은가. 한국  남자들은 '가정의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
으로 귀찮다는 듯이 모든 것을 양보하고 인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장으로서 명백한 직
무 유기다. 이대로 가다가는 교육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망한다.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충격을 받다 못해 분노로 쓰러질 여성이 생길지도  모르지
만, 어차피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쓰는 글인 다음에야 무슨 소리를 못하겠는가. 내가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간결히 하고 싶은 이야기, 그러나 가장 하기 껄끄러운 이야기가 바로 이것
이다.
  "한국 남자들이여, 제발 힘을 내라. 그리고 한국 여자들, 그대들은 남자의 뒤를 따라가라."

    망나니로 키우는 가정교육
  내가 어렸을 때 동생하고 싸움을 하면 아버지는 칼 두 자루를 우리 앞에 꺼내 놓았다. 이
왕 싸우려면 '확실하게' 칼을 들고 싸우라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누구 하난가 죽어 버리면
더 이상 너희 싸우는 꼴 보지 않아도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월간지와 텔레비전 방송에 나가고 난 다음 나는 아주 많은 일을 겪었다. 심지어는 길거리
에서 나를 알아보고 "엊그제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이라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까지 하
는 걸 보면 매스컴의 위력이 크긴 큰 모양이다.
  어쨌거나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나 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 분들이 더러 있다는 사
실이다.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그분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인지도 모
르지만, 오해가 있었다면 사과도 할 겸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이야기를 언급했다. 내가 그 집으로
이사를 간 것은 몇 년 전 3월 6일이었다. 이사 간 다음날 신문값이니 우유값을 달라는 사람
들이 몇 번이나 찾아왔다. 내가 어제 이사 왔다고 했더니  그 사람들은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전에 살던 사람이 3월 7일 이후에 오라고해서 왔다는 것이다.
  이사 날짜는 분명히 한 달 전에 정해졌으니 나로서는 전에 살던 주인이 나쁜 마음을 먹었
다고밖에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경비실에 물어 보았
더니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이 월간지에 실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우리 운전 기사가 받았
다. 전에 우리 집에 살던 사람인데, 자기는 그런 몰지각한 짓을 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무
슨 착오가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우리 기사가 날짜까지  따져 가며 확인하자 자기네가 잘
못한 게 틀림없다며 언제 시간을 내 주면 찾아와서 사과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기사는 이렇게 전화를 걸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일부러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
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목소리나 말투로 봐서 우리가 생각한 것처
럼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기분이 흐뭇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이번에는 내 기사를 실은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전화가 왔는데 내가 언급한 교사를 찾아서 징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사자가 우리
집에까지 전화를 걸어서 사과했으니 더 이상 문제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평소에 위층에서 하도 쿵쾅거리는 소리가 심해 불만이 많았는데,  우연
히 엘리베이터에서 중고생으로 보이는 학생 둘이서 11층 버튼을  누르는 걸 목격했다. 혹시
나 하고 몇 호에 사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마침 바로  우리 윗집 아이들이었다. 나는 집안에
서는 조용히 걸어다녀야 아래층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느냐며  그 아이들을 꾸짖었다. 그
러고 나서 집으로 들어왔는데 조금 있으니 인터폰이 울렸다. 위층 아주머니였다. 나는  처음
에는 그 아주머니가 우리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려는 줄 알았다. 그
런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이 언제 뛰어다녔다고 그러냐며 따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아파트에 혼자 산다. 그나마 외국에 나가 있을 때가 많고, 한국에 있을 데에도 집
에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웃 주민하고 마주칠 일도 별로 없다. 그런 내가
시끄럽지도 않은 걸 시끄럽다고 굳이 시비를 걸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후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밀착 취재를 했다. 카메라가 출근길에 나서는 내 뒤를 따라왔
는데, 아파트 복도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 자전거가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어서
걸음을 옮길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한쪽  옆으로 치우며 "가정 교육이 제대로
되면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고, 그것이 텔레비전으로 방송되었다.
  공중 도덕과 교통 법규 준수는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나의 지론 비슷한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덧붙인다면  그 두 가지를 제대로 지
키기 위해서는 어릴 적부터 가정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이것만 되면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나머지 온갖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잡지나 텔레비전을 통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
면서 무심코 예를 들어 설명하다 보니 옆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눈에 띄었을  뿐
이지 특별히 이웃 주민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었다. 혹시 그런 나의 언급을 불쾌하게 받아들
인 분들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한다. 왜냐하면 남을 돕지는 못할
망정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내 생활 신조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공동 주택에서 생활하는 일본 사람들은 밤 10시 이후에는  샤워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누
가 시켜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강제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웃집에서 밤늦게  샤
워기를 사용하면 물소리가 시끄럽고 성가시게 들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런데 남인들 기분
좋을 리가 없다. 그래서 안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붙잡고 앉아 가르친다고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그저 어려서부터 남을 배려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가정 교육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교육학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근본적인 가정 교육은 이미 두 살에서 세 살 정
도면 대충 마무리된다. 한국에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대가족 제도가 붕괴된 이후 한국 가정에는 전형적인 삼각  구조가 정착되었다. 양쪽에 남
편과 아내가 있고, 다른 한쪽 꼭지점에는 자식이 있다. 그런데 이 삼각형의 무게 중심은  철
저하게 자식에게 치우쳐 있다.
  젊은 부부들이 서로를 부를 때 어떤 호칭을 쓰는지 보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십중팔
구는 '○○아빠' '○○엄마'로 부른다. 이웃집 아저씨나 아주머니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다. 그
만큼 한국 가정에서는 자식을 가장 우선시한다.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보니 자식의 결점이 웬만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당장
밥을 굶어야 할 지경이라도 아이들 과외는 시켜야 한다. 방법만  있다면 어떻게 하든 내 자
식만은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다. 이건 숫제 자식을 키우는 게 아니라 떠받드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동생하고 싸움을 하면 아버지는 칼 두 자루를 우리 앞에 꺼내 놓았다. 이
왕 싸우려면 '확실하게' 칼을 들고 싸우라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누구 하나가 죽어 버리면
더 이상 너희 싸우는 꼴 보지 않아도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전혀 교육적인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 자신부터 내 아
버지가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정 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아버지가
그 정도로 확실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는 습성을 몸에 익힐 수 있다.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백화점을 경영하는 친구가 어느 날 나에게 이런 하
소연을 늘어놓았다.
  "이케하라 상, 일본에서는 어느 백화점에 가나 엘리베이터 걸이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고
객에게 인사하는데, 우리 아가씨들은 아무리 말을 해도 되지 않아요. 언제 하루만 시간 내서
우리 아가씨들 교육 좀 시켜 주세요."
  나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건 하루 이틀 교육시킨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아가씨들한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
소를 가르치고 싶으면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오라고 하세요."
  물론 농담이지만 완전한 농담만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연기자라도 해도 강요된 웃음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과 똑같이 지어보일 수는 없는 법이다. 어려서부터, 아니 어머니  뱃
속에서부터 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정 교육이 중요하다. 비
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 작은 나사못 하나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내가 만든 물건, 내가 지은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
이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도록 하겠다는 개개인의 각오가 없는 이상 한국은 세계 무
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나는 전에 한국 최고라는 건설회사에서 지은 아파트에 산 적이 있다. 그 아파트에는 물이
빠져 나가는 구멍이 욕실, 주방, 베란다 등 세 군데 있었는데, 막상 살아 보니 단 한 군데도
물이 제대로 빠지는 곳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건가 살펴보았더니 하수구 구멍이 다른 데보다
더 높았다. 세상에,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은 코흘리개 꼬마들도 다  아
는 상식이다.
  어디 한번 혼 좀 나 봐라 하고 단단히 마음먹고  건설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정작
담당자의 답변을 들은 나는 기운이 쭉 빠져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 그건 우리가 직접 한 일이 아니라 하청을 준 업체에서 잘못한 겁니다. 그  쪽으로 연
락해 보시죠."
  한국 사람의 전형적인 책임 회피,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건설업체가 하청을 주었으면  그
하청업체가 하는 일까지 감독하고 관리해서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지, 하청업체가 한 일이
니 자기네하고는 상관없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자 보수인가 뭔가 해서 욕실하고 주방은 고쳤지만, 베란다의  하수구는 끝내 고치지 못
했다. 물이 제대로 빠져 나가게 하려면 베란다 바닥을 더 낮춰야 하는데, 그러면 안전에  문
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한국 최고의 건설회사에서 지은 아파트가  그 모양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서비스 정신은 반드시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물건을 만드는 사람 역시 비록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내가 만드는 이 물
건을 사용할 소비자를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에게서 "이렇게 좋은 물건을 만들어
준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참 고맙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
다.
  한때 일본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싼 게 비지떡'이란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 기
업들은 그런 소리를 듣지 않고 제 값에  물건을 팔기 위해 죽기 살기로 기술개발에 매달렸
다. 그 결과 지금은 누구나 일본 제품이라면 안심하고 구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본 상품이 그렇게 치고 올라간 다음 그 빈 자리를  파고든 것이 한국 상품이었다. 품질
은 떨어지지만 싼 맛에 잠시 쓰고 버린다는 생각으로 한국  제품을 찾는 고객이 많았다. 단
적으로 말하자면 주로 흑인들이 코리아 가게에 가고 돈 있는 사람은 일본 가게에 가서 물건
을 사는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품질은 떨어지는 대신 값이  싼 제품은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나  중국
몫이 되어 버렸다. 한국의 인건비는  비교할 수 없이 올라갔지만 품질은  제자리니 얼마 못
가 인건비가 더 싼 동남아 제품을 감당할 길이 없어졌다.  결국 비싼 제품은 기술이 모자라
고, 값싼 제품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서비스는 곧 마음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이런 인식이 부족하다. 수출을 해도  물건만
납품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한국 업체에서 만든 방음벽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과정에서 내가 중간 다리를 놓은 적이 있는데, 이때에도 한국 사람들의 안일한 생각 때문에
수없이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일본에서는 워낙 도로망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기 때문에 방음벽  수요가 아주 많다. 방음
벽은 언뜻 보기에 구조가 간단하고 별다른 기술도 필요하지 않은 단순한 제품인 것처럼 보
인다. 당시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일본 쪽 요구 조건을 맞추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출 건을 추진했다.
  방음벽의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앞면은 알루미늄, 뒷면은 철판을  쓰고 그 사이에 석면을
넣어 소음을 흡수하도록 만든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알루미늄과 철판을 접합시키기 위해서
는 드릴로 구멍을 뚫고 리벳을 박아 고정시켜야 한다. 재료와  장비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공정이다.
  그런데도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검사를 해 보면 불량률이 무려 50퍼센트에 육박하는 어처
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사람들은 틀림없이 발주자가 요구하는 대로 제품을 만들었
는데 왜 불량이냐고 펄쩍 뛰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항상 눈으로
쉽게 확인되지 않는 곳에서 비롯된다.
  방음벽 재료인 알루미늄과 철판 겉면은 도금되어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재질을 접합시
키기 위해 드릴로 구멍을 뚫으면 잘려나온 부스러기가 내부에 붙어  있게 된다. 원래 이 부
스러기를 공기총으로 불어서 깨끗이 제거한 다음 리벳을 박아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이
공정을 무시하고 그냥 리벳을 박아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부스러기는 알루미늄과 철판 사
이에 끼여 겉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항변했다.
  바로 이것이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의 차이다. 일본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철
저하게 작업 지시를 따른다. 이유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그냥 시키는 대로 완벽하게  처리해
주면 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자기가 생각하기에 필요하다고 판단되지  않
으면 건너뛰어 버린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그래  놓
고는 남들이 열 개 만드는 동안 우리는 스무 개를 만들었다고 자랑한다.
  방음벽을 제작할 때 부스러기를 제거하든 하지 않든 겉보기에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
러나 한 번만 비가 오면 그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다. 알루미늄이든 철판이든 겉면은 도금되
어 있지만 드릴이 들어가면서 잘려 나온 부스러기는 그렇지 않아 비가 오면 대번에 녹이 슬
고 녹물이 겉으로 흘러 나와 벌건 줄이 죽죽 생긴다.
  일본 사람들은 도로가에 병풍처럼 늘어선 방음벽에서 리벳을 박아 놓은 구멍마다  녹물이
흘러 나오면 얼마나 보기 싫은지 잘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런 요구를 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마치 그런 것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기도 하거니와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
의 불찰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방음벽이 소음만 제대로 차단하면 되지, 미관상 조금 보기 나쁜 게 뭐 그리  큰 문
제라고 납품을 받지 않겠다는 겁니까?"
  궁극적으로 바로 이 조그만 차이가 성수대교를 무너뜨리고 삼풍백화점을 무너뜨리는 엄청
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런 대형사고가 터지면 언론마다 수중 카메라를 집어 넣어 한강
다리의 안전도를 조사한다 어쩐다 하면서 떠들썩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진다.
  그런가 하면 당산철교는 전문가들이 보수만 하면 된다고 하는 데도 부득부득 다시 짓겠다
고 뜯어내기도 했다. 그러고는 정작 성수대교 붕괴 당시 수중 카메라에 잡힌 부식된 교각들
이 말끔히 보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다리가 무너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유럽에는 1천 년,
2천 년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다리들도 있다. 성수대교는  15년 동안 수많은 차량과 사람
이 통행하는 바람에 더 이상 하중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완공되기도 전에 무너져 버
린 다리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한국 건설업체들은 중동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많은 실적을 쌓았다. 그러나 한국 업체들이
지은 그 많은 공장과 건물이  무너지거나 망가졌다는 소문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가장 짧은 시간에 공사를 마치면서도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칭찬이  자자하다. 그런 한국 업
체가 왜 국내에서는 그렇게 튼튼하고 안전한 구조물을 만들지  못하는가. 외국에서 실적 올
리는 것만 중요하고 막상 내 조국 국민은 사고로 죽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외국에서 시공을 할 때에는 외국 업체들의 감리를 철저
하게 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시공도  감리
도 모두 한국 업체들끼리 하기 때문에 방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내가 만든 물건 내가  지은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도록 하겠다는 개개인의 각오가 없는 이상 한국은 세
계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박세리와 박찬호
  누가 나에게 박세리와 박찬호를 비교하라고 한다면 나는 박찬호가 거둔 성적은  박세리에
비해 10분의 1도 채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박찬호가  '별볼일' 없다는 것이 아니라 박세리
가 그 정도로 대단하다는 뜻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젊은이를 들라면 박찬호와 박세리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
을 것이다. 그 두 사람은  광고다 뭐다해서 밤낮 텔레비전과 신문에  얼굴이 실려 대한민국
국민에게 배우 못지않게 친밀한 얼굴이 되었다. 박찬호 선수를  볼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저 친구 참 행복하겠다고 생각한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동양 사
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에서  박세리와 대등한 대접과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젊었을 때 프로 야구 전문 기자 생활을 한 적이 있어 야구라는 스포츠를 비교적  잘
아는 편이다. 학생 때에는 비록 아마추어지만 야구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물론 '광적'이라
는 소리를 들을 만큼 골프도 좋아한다.
  누가 나에게 박세리와 박찬호를 비교하라고 한다면 나는 박찬호가 거둔 성적은  박세리에
비해 10분의 1도 채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박찬호가  '별볼일' 없다는 것이 아니라 박세리
가 그 정도로 대단하다는 뜻이다.
  야구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하며 한 해 15승을 올린다는 것은 개인의 영광
이요 국가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점, 얼굴이 잘 생기고 매너
까지 좋다는 점을 제외하면 메이저 리그에서  15승을 올리는 투수는 박찬호 혼자만이  아니
다.
  그러나 박세리는 다르다.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와 비교하자면  1998년에 메이저 리그 홈
런 신기록을 갈아치운 마크 맥과이어나 새미 소사하고 맞먹는  수준이다. 데뷔 첫해에 미국
LPGA 무대에서 4승을 기록했다는 것, 그 4승  가운데 2승이 메이저 타이틀이라는 것은 여
자 골프 역사상 좀처럼 수립하기 힘든 대기록이다.
  더군다나 박세리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앳된 소녀다. 알다시피 여자 나이 스물이면 육체적
으로도 완전한 성인이 아니어서 계속 성장하는 중이다. 대한민국의  시골 소녀 박세리가 그
어린 나이에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성적을 냈다는 것은 확실히 믿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골프를 쳐 본 사람이라면 이토록  박세리를 극찬하는 이유를 잘 알  것이다. 골프는 여느
스포츠와는 다르다.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훈련과 실
전 경험이 필요하다.
  그것만으로도 안 된다. 기계적일 만큼 스윙 동작이 완벽하다 해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없다. 시종일관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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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통보

표현의 자유는 '방종의 자유'를 포함하지 않으며, 진정한 자유는 '책임'이 따라야 아름답다 생각합니다. 인터넷에서 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건전한 대화로 토론할 수 있는 댓글을 남깁시다. 다음 사항을 주의하지 않으면 글쓰기가 정지될 수도 있습니다. 첫째, '발제글과 무관한 댓글을 게재'해 불필요한 분란을 조성할 때. 둘째, 발제글과 댓글을 통해 특정 누리꾼을 욕설ㆍ인신공격ㆍ비아냥(누리꾼 필명을 비하하는 것까지 포함) 등을 하면서 '비난ㆍ비판할 때. 셋째, 정당한 대화 또는 토론을 통한 타당한 비판 외, '부적절하고 저속한(천박한) 표현을 써가며 무조건 비난ㆍ비방ㆍ조롱ㆍ폄하 글을 게재'할 때. 넷째, 양쪽 전체 집단(중국동포, 한국동포)과 상대 국가를 일방적으로 비하ㆍ폄하 글을 게재할 때.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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