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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육면집에서 만난 사람들
기사 입력 2020-07-15 08:10:12  

등산하고 돌아온 나는 갑자기 배가 촐촐해져 집근처의 우육면집을 찾았다. 누굴 부르자니 마땅치 않아 혼자 면구스러운 대로 면 한그릇에 호프 한컵 청했다.

이른 저녁이여서 그런지 옛날처럼 온종일 흥성흥성하던 광경은 오간 데 없고 넓은 대청이 휑뎅그렁하게 비여있었다.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도심 복판의 노란자위를 차지한 궐(阙)씨 성을 가진 이 우육면집만은 유별나게 장사가 잘되여 항상 손님들로 붐볐다. 나도 한때 그 속에 끼여들어 매일이다싶이 드나든 탓에 사장님은 만날 적마다 열정적으로 호프 둬컵씩 들고 와서 알은 체했다.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면발에 얼큰하고 시원한 육수를 둬모금 들이켜고 나면 이마와 코등에서 벌써 땀이 송골송골 내돋는 그 기분에 인이 박혀 왠지 며칠 건너뛰면 썰썰한 감부터 앞섰다.

내가 호프 한모금 마시려고 컵을 들었는데 뜻밖에 눈에 익은 모습이 후들후들 떨리는 걸음으로 들어와 저만치 먼곳에 가서 털썩 앉았다. 마스크를 벗으며 나를 향해 빙그레 웃는 얼굴을 보고 나서야 나는 엉겹결에 일어나 인사 대신 손을 흔들어보였다. 한동네에 사는 선배 김주임이였다. 요즘은 역병 때문에 사람끼리 서로 경계하고 멀리하는 터라  좀 떨어져앉는 것쯤은 당연지사였다. 얼마 전 살짝 풍을 맞아 병원출입이 잦더니만 잘 낫지 않는 모양인지 그사이에 희끗희끗하던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세였고 어깨는 무거운 짐을 얹어놓은 것처럼 휘우듬해져 완전히 할아버지로 변했다.

내가 김주임을 알게 된 것은 십년 전 어느 날이였다. 중학교 동창생들이 무더운 여름철에 펼쳐진 연변팀 축구시합을 관람하고 컬컬한 김에 우르르 우육면집을 찾았다. 널직한 대청은 벌써 초만원을 이뤄 복무원의 안내를 받아서야 겨우 단칸방이 차려졌다.  헌데 그 방에는 한동네의 풋면목이 있는 분이 먼저 독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불쑥 끼여들어 실례인지 모르겠습니다.”

풋면목이 있는 까닭에 내가 례의를 지켜 깍듯이 인사하자 대방도 아주 소탈하게 자리를 드텨앉는 것이였다.

우리 동창들이 모여앉으면 할말이 기수부지였다. 호프컵이 무드기 쌓일 정도로 쉴새없이 마시며 장편 연설하는 치가 있는가 하면 술은 안 마시고 우육면 한사발에 광천수 한병 놓고 끝까지 말참견하는 치도 있어 파티가 항상 둥글둥글했다.

“오늘의 축구는 왜 다 이겨놓고도 진 거야?”

“첫 슛이 문대에 맞혀나오면 그날 시합은 운수가 사나운 거지!”

모두 홈장경기에 큰 기대를 안고 갔다가 실망한 나머지 중구난방으로 축구팀에 대한 아쉬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곁에 앉은 그분한테 다가앉으며 호프 한컵을 권했다. 땅콩과 록두나물무침을 놓고 흰술을 마시던 김주임이 처음엔 사양했지만 강권에 못이겨 나중에 한모금 마시는 척했다. 알고 보니 년세가 나보다 여섯살 이상이였다. 그날따라 마침 그분이 정년퇴직을 한 날이였다.

나는 그가 직장에 다닐 때 주임직을 맡았다는 것을 알고 후에도 계속 ‘김주임’이란 호칭을 쓰기로 했다. 요즘 사람들은 퇴직이라면 대부분 ‘얼씨구절씨구’ 춤출지 몰라도 그 시절에는 정이 들고 때가 묻은 직장을 그만둘 때 모두 아쉬워 눈물이 글썽했다. 더우기 김주임한테서 연해도시에 있는 딸이 해산하여 마누라가 뒤바라지하러 급히 떠났다는 말을 듣고 나는 위로도 해줄 겸 일부러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자식들이 결혼하여 애를 낳으면 키우는 일이 자연히 부모의 몫이 되여 김주임은 홀로 집에서 서툴게나마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산다고 했다. 평소 느끼한 음식이 싫어 우육면집을 자주 찾는다면서 자신은 하루 세끼 우육면을 먹어도 새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이런 엇비슷한 습성으로 해서 후날 우리 두 사람은  우육면집에서 만나는 일이 잦았다. 내가 료리 한접시에 맥주를 받쳐 갖다드리면 김주임이 나의 친구들이 아무리 북적거려도 개의치 않고 상 우에 꼭 호프를 둬컵 사서 올려놓고 한창 나이에 출근하는 젊은이들이 참 부럽다는 식의 찬사도 빼놓지 않았다. 점잖으면서도 고지식하고 리치가 밝은 량반이였다.

가끔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면 김주임한테서 구수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집체호 시절 논바닥에서 돌피를 가릴 줄 몰라 말짱 벼포기를 뽑아버려 하루 공수를 잘리웠던 일, 도시에 올라오자마자 결혼하여 자식 둘 낳아 키우면서 집이 없어 세방살이하던중  집세를 내지 못해 괴퍅한 주인 령감한테 쫓겨났던 일, 그날 방정맞게 온종일 비가 쏟아져 짐을 꿍져놓은 채 갈곳이 없어 단위 숙직실에서 이틀째 묵다가 남도치 장인한테 제노릇 못하는 놈팽이라고 눈이 쑥 빠지도록 된욕을 먹던 일… 하여튼 온갖 고충을 겪으면서도 꼭 잘살아야겠다는 배심만을 버리지 않고 끈질기게 버텨온 덕에 후날 직장에서 집도 분배받고 지식들도 무럭무럭 컸단다.

김주임은 나와 마주앉으면 어쩐지 이야기보따리가 술술 잘 풀린다면서 번마다 은근히 기뻐했다. 그 와중에 술이 거나해지면 대체로 딸보다 아들의 자랑을 많이 하는편이였다. 딸은 이젠 자식을 둘씩이나 낳고 한족사위와 어울려 잘살고 있다며 여유작작한 표정을 짓는 것과 달리 금방 외국에서 박사공부를 마치고 대도시에 와 자리잡은 아들의 일이 자못 걱정스럽다며 왼심을 쓰군 했다. 아들이 워낙 키가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준수해서 딸 가진 집들에서 은근히 욕심 부려 자꾸 혼사말을 건넬 때마다 김주임은 “쳇, 내가 누군데 당신하고 사돈 맺을가?” 하고 어깨를 으쓱해보인단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 구석은 어쩐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꼭 좋은 조선족며느리를 얻어야겠는데…”

김주임이 늘 외우는 말이다. 딸의 혼사는 말리다 못해 두 손을 털고 나앉았지만 이번 아들 혼사만은 반드시 자신의 뜻대로 되였으면 하는 바람이 력력했다. 헌데 손벽도 마주쳐야 소리 난다고 지금 자식들이 외곬으로 삐여지지 않으면 다행이지 곰상곰상 부모의 뜻을 따라주는 일이 드물다. 그저 부모가 부질없이 시름시름 속을 썩일 뿐이지 천하에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아마 이태 전 일로 기억된다. 외국에 돈벌이 떠나는 친구를 위해 우리 대여섯이 환송모임을 가졌다. 앞으로 일고생, 마음고생을 해야 할 친구 처지가 안스러워 낮에 앉았던 김에 너 한턱 나 한턱 하다가 끝날 무렵엔 또 우육면집을 찾았다. 헌데 공교롭게 정전 때문에 넓은 홀은 수많은 초불로 밝혀져있었다. 가물가물 타오르는 초불이 크리스마스를 련상케 하여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누군가 <초불잔치> 노래를 부르자 어떤 치들은 가사나 곡도 잘 모르면서 톤을 높여 자꾸 <초불잔치야!>만 반복하며 흥얼거렸다. 다행히 식당이 텅 비여서 복무원들도 그저 시무룩이 웃을 뿐 우리의 ‘연출’을 제지하지 않아 잠간이나마 흥겨웠다. 이때 문뜩 앞좌석에 언제 들어와 앉았는지 어둑시그레한 초불 속에서도 대뜸 알아볼 수 있는 익숙한 모습이 눈에 띄였다. 김주임이 언제 들어왔는지 홀로 술잔을 놓고 멀거니 앉아있었다.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리로 다가갔다. 뜻밖에 나타난 나를 보고 김주임은 우울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어색하게 반겼다.

“오늘 마누라가 또 아들놈 밥해주러 떠나갔다네.”

김주임은 묻지도 않은 말을 불쑥 내뱉었다.

“딸집에서 금방 오신 것 같은데 왜요?”

내가 호프잔을 건네자 김주임은 알 수 없다는 듯 연신 머리를 저으며 맥주를 한모금 쭈욱 들이마셨다. 그리고 나서 표정을 바꿔 정색하며 바투 다가앉았다.

“요즘 젊은 녀석들은 왜 저 모양이지?”

밑도 끝도 없이 아리숭한 말에 나는 잠자코 김주임의 하소연을 듣기로 했다. 워낙 김주임의 아들이 좋아하는 처녀가 있었는데 타민족이란 리유로 부모가 반기를 들었다. 그 후부터 곁에서 아무리 좋은 처녀를 소개해도 듣는 둥 마는 둥 응답이 없단다. 인젠 마흔을 넘기는데 꿈쩍 안하고 있으니 도리여 김주임 내외간이 안절부절 못한다. 그래서 세집살이하는 아들이 걱정되여 마누라가 밥도 해줄 겸 떠나갔다는 것이다.

“내 팔자가 왜 이런지, 십년째 마누라는 딸의 뒤바라지를 해줄라니 아들 걱정해줄라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치고 나는 나 대로 홀아비신세로 이렇게 살아가야 하니깐. 후유~”

술기운이 올라 불그스름해진 김주임의 얼굴에 서글픔이 짙게 깔려있었다.

내가 친구한테 돌아와 김주임의 안타까운 사연을 이야기하자 끓어번지던 술판이 대뜸 찬물을 끼얹은 듯 후줄근해졌다. 너나없이 다 그런 곤혹을 겪는 판국이라 용빼는 수가 없다고 도리머리질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지금 청년들이 얼마나 힘들게 산다구. 장가 들기 싫어 안 들가?” 하며 역성 드는 친구도 있었다. 흔히 고생 끝에 락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자주 쏟아내지만 정작 탈망살이에 빠져 우왕좌왕하게 되면 누구나 신세타령을 앞세우기 마련인가 보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본능인 걸 어쩌랴 싶어 모두 우울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더우기 이때 누군가 “오늘은 친구 한 사람이 고향을 떠나가지만 래일은 또 누가 떠나갈지 모른다니깐.”라고 한 말이 가슴에 찡 하니 맞혀왔다.

아니나다를가 그 후 친구들 속에서 더러는 바깥에서 떠돌이하는 자식이 념려되여 떠났고 더러는 “이 세월에 펀히 앉아있지 말고 돈을 벌어야지!”하며 줄줄이 출국행, 대도시행을 선택했다. 영상통화 덕분에 가끔 얼굴을 볼 수 있으나 친구란 그래도 만나서 어깨를 툭 치며 술 둬잔 나누는 재미가 있어야 노래처럼 보약이 되든 산소가 되든 정이 깊어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헴! 쿨룩쿨룩…’

갑자기 나의 사색을 깨며 저만치 앉은 김주임이 사레가 들어 세찬 기침을 연거퍼 했다. 어느새 제꺽 달려온 복무원이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쿨룩쿨룩…’ 연신 뱉은 기침에 김주임의 주름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고 기침할 때마다 입안의 음식물이 튕겨나와 앞섶이며 식탁에 덕지덕지 붙어 보기 민망스러웠다. 주변의 손님들은 슬밋슬밋 멀찌감치 피해 앉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난 김주임이 후들후들 떨리는 걸음걸이로 출입문을 향했다. 내가 황급히 일어나 바래주려고 했더니 괜찮다는 의미로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리고는 얼굴에 희색을 띄우며 어눌한 말투로 래일 마누라가 돌아온다며 나한테 자랑 삼아 소식을 전했다. 순간 얼마나 기다렸으면 저러랴 싶어 가슴이 알짝지근해났다.

휘청휘청 걸어가는 김주임의 뒤모습을 점도록 지켜보다 제자리에 돌아온 나는 김이 물물 나던 우육면이 식어서 꼬들꼬들 말라들 때까지 좀처럼 식욕이 당기지 않아 공연히 맥주잔만 들었다 놨다 했다. 홀 안에 듬성듬성 앉은 손님들도 식사를 끝마치는 대로 하나, 둘 자리를 떠서 인젠 나 혼자 남았다. 마음 한구석에 왠지 허전함이 밀물처럼 그들먹이 차올랐다. 어제날 친구들은 이 시각 어디서 뭘하고 있을가? 문뜩 옛날의 친구들이 더없이 그리워났다. 도대체 자식이 뭐고 돈이 뭔데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사는 건지 고까운 생각까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원망스러움에 마주 앉으면 금시 욕설이라도 실컷 퍼붓고 싶은 착잡한 생각에 나는 발 가는 대로 밤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저 먼발치에 신호등불빛이 반짝이는 로타리가 보였다. 차량이나 사람들이 잠간이나마 멈춰서서 마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도로의 교차점이다. 거미줄처럼 뻗은 길도 서로 부딪치는 교차점이 있을라니 산 사람끼리 만날 날이 없을가 봐. 나는 중이 념불 외우듯 연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최장춘
연변일보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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