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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 감상의 어려움
기사 입력 2019-10-30 13:29:52  

팩션은 어느 곳에서나 인기를 끄는 것 같지만 나의 보잘것없는 상상력과 관대함을 동원해봐도 몰입이 잘 되지 않는 작품이 간혹 나오는 듯하다.

꽤 오래전에 TV에서 방영된 '천추태후'는 태조왕건의 손녀이며, 광종의 며느리이고, 경종의 아내이자 목종의 어머니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였다. 드라마에서 천추태후는 한 시대를 풍미한 여걸로 그려졌는데 요부나 독부毒婦의 이미지로 칠해진 그녀에게 다른 면모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해도 나로선 수긍이 잘 가지 않았다.

고려초기엔 혈통의 보존과 외척의 발흥을 막기 위하여 왕실에 근친혼이 빈번하였다. 천추태후는 황보씨인데 이는 할머니의 성을 따른 것이다. 경종이 태자였을 때 동생인 헌정왕후와 함께 태자비가 되어 궁궐에 들어온 천추태후는 경종의 유일한 아들을 낳은 기쁨을 온전히 만끽하기도 전에 남편을 잃는다. 왕위를 이어받기에는 아들의 나이가 매우 어렸으므로 천추태후는 사가로 나가서 생활하게 되고 왕위에는 천추태후의 친오빠가 오른다. 이때 천추태후는 승려인 김치양과 가까워지는데 밀회를 즐기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자 오빠인 성종이 김치양을 유배보내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는다.

성종이 아들을 두지 않고서 임종하자 천추태후의 아들인 목종이 그 뒤를 잇게 되어 천추태후는 태후로서 궁에 귀환한다. 아들이 이미 나이가 찼음에도 불구하고 섭정을 하였고 김치양을 다시 불러들여서 그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는다. 그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하기 위해 큰아들인 목종의 죽음을 바랐다는 설도 있는데… 명분은 동성애에 탐닉하는 목종이 후사를 보기가 어렵고 정사를 돌보기엔 심신이 허약하다는 것이었을 것 같긴 하다.

경종이 죽은 뒤 천추태후와 나란히 궁을 나왔던 헌정왕후가 숙부인 왕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대량원군은 당시 절에서 은신하고 있었다. 대량원군은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아들이 보위에 오르는 데 그가 방해가 될 것이라 내다보고 호시탐탐 그의 죽음을 획책하는 상황에서 간신히 생존하고 있었다.

강조의 정변이 일어나 김치양과 어린 차남의 목이 베이고 큰아들인 목종마저 잔인하게 죽음을 맞고 대량원군(현종)이 즉위하는 소용돌이속에서도 천추태후는 살아남았다가 66세에 세상을 떠난다.

천추태후를 여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치적 야심은 있었으나 정치력이 출중했던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그것이 다 성장한 아들과의 마찰의 원인이 되었으리라고 생각되는데… 고려를 황제국이라고 칭한 것과 북방의 방비에 힘쓴 공로가 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조선시대의 사가들처럼 천추태후를 요부라고 보는 것도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를 유학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던 시대의 제약속에서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사랑을 행한 인물로 치켜세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선 의문을 갖게 된다. 자식의 위치와 생명을 방기하면서 한 사랑을 사랑하는 남자와 주체적으로 사랑을 나눈 것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내게 꼰대 기질이 있어서인지 그녀의 사랑이 주체적이거나 아름다운 사랑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시청을 안 해서 잘 모르기는 한데 한창 방영중인 '미스터 선샤인'은 처음엔 역사왜곡을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았음에도 중심을 잡아가는지 그러한 말들이 이제는 묻히는 분위기이다.

개인적으로 팩션으로 이루어진 작품에서 고증이나 사건이 생략되거나 덧칠되는 것을 감안할 순 있겠는데 주관적인 관점에 지나지 않더라도 주제가 뒤틀어졌다고 생각되면 보기가 어려워진다. ◈


수국
연변통보 2018-09-17

주: 본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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