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통보

 

   일대일토론방

 

 

연변통보를 즐겨찾기에 추가합니다검색중국날씨공지사항  

동포뉴스포 럼독자마당독자 명칼럼연재물문서자료실이미지세상벼룩시장

동만에서의 토비숙청(5)
역사강좌    조회 3,317    2009.01.03역사강좌님의 다른 글      




동북근거지창설의 크나큰 장애와 우환 제거 4000여명 토비숙청 대량의 군수물자 로획


우환을 없애기 위해

일제가 패망한후 동북의 정세는 아주 복잡했다. 국민당은 항전승리의 과실을 빼앗기 위하여 미국의 지원하에 륙, 해, 공 3로로 동북에 대량의 병력을 투입하는 한편 일본군과 괴로군 패잔병, 경찰, 헌병, 특무, 일제의 앞잡이들과 토비들을 규합하여 공산당과 민주정권을 진공하는 이른바 “지하군”, “선견군”, “정진군”을 편성하였다.

동북경내에는 갈래가 복잡한 정치토비가 무려 9만여명이나 있었는데 이들은 동북에서의 국민당의 사회적기초가 되어 국민당의조종밑에 도처에서 살판치면서 공산당과 민주정권을 뒤엎고 교통을 파괴하고 인민들의 재물을 로략질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민주정권을 적대시하면서 때만 오기를 기다리는 일만잔여세력을 철저히 숙청해버리지 않는다면 농민대중을 폭넓게 발동할수 없을 것이고 근거지의 안정이 있을수 없을 것이다.이렇게 되면 일단 국민당이 대거 진공해오면 정면과 배후의 량면협공을 받는 위험한 처지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될것이였다.

때문에 일만잔여세력과 정치토비는 튼튼한 동북근거지를 창설하는데 있어서 크나큰 장애와 우환이였다. 이리하여 동북에서는 “근거지를 건설하며 토비숙청을 다그치자”는 중공중앙 동북국의 지시에 따라 1945년 겨울부터 기세드높은 토비숙청투쟁을 벌리였다.

연변에서의 토비숙청은 전 동북적으로 제일 먼저 시작되였다. 중공연변지방위원회와 연변군분구에서는 동북국의 지시와 “군대를 건설하는 한편 토비를 숙청하자”는 중공길림성공작위원회의 지시정신에 좇아 군분구 사령원 강신태와 정치위원 옹문도가 몸소 책임지고 토비를 숙청하기로 결정하였다. 토비숙청에 동원된 병력은 군분구의 경비부대와 각 현 보안퇀 및 조선의용군 제5지대였는데 병력은 1만1천여명, 절대다수가 조선족들이였다.


일망타진

송하평탄광을 일명 “만탄”이라고도 불리웠는데 화룡에서 2.5킬로메터가량 되는곳에 있다.

곽영춘은 탄광의 경찰이였는데 후에는 로동자들을 때려죽이고도 눈하나 깜박하지 않는 십장으로 되었다. 1945년 9월, 송하평탄광 “보안대” 두목자리를 차지한 곽영춘은 인차 안도의 선병균, 오도양차의 단수림과 결탁하였다. 그는 100여명의 병사에 100여자루 보총, 2정의 기관총을 가지고있었다.

중공화룡현위에서는 이 대오를 개조해보려고 했다. 현당위 서기 운청, 현보안퇀 부정위 장보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송하평에 가 귀순할 것을 권고하였다. 2개월 남짓이 공작한 결과 곽영춘은 자신의 대오를 동북인민자치군 화룡보안퇀 독립영으로 재편성하고 영장이 되는것을조건으로 귀순하였다. 그러나 장개석군대가 기세사납게 장춘과 길림을 공략하자 그는 선병균, 단수림과 반변을 밀모하면서 공산당을 반대하고 장개석을 옹호해나섰다.

1945년 12월 24일, 룡정의 보안 4퇀과 쏘련홍군 20여명은 송하평탄광에 둥지를 틀고있는 곽영춘토비무리를 진공했다.

그런줄도 모르고 곽영춘은 한창 술판을 버리고 질탕 먹고 마시고있었다. 아군이 초소를 지나 곧바로 영부를 향해 돌진해 들어가자 곽영춘 등은 술좌석에서 뛰여나와 저항하였다. 총소리는 송하평하늘가에 자지러지게 울려퍼졌다. 적들이 저항은 완강하여 좀체로 누구러들려 하지않았다. 오후 한시에 시작된 전투는 2시간 남아 끌어 세시경에야 끝났는데 적 43명이 격살되고 48명이 생포되였다.

1945년 가을, 전보흥은 연길현 삼도만 평강촌에서 토비대를 세우고 지방정권의 수립을 반대하면서 백성을 략탈,  유린했다. 이에 연길현 경비퇀 퇀장 남창수가 200여명 전사들을 거느리고 공격했으나 실패하고말았다. 1946년 1월 27일, 경비 2퇀은 경비 1퇀과 합동작전을 벌려 재차 삼도만을 진공, 아군땅크가 대문을 마사버리니 혼비백산한 토비들은 당황망조하여 북쪽으로 도망쳤다. 토비들은 투항을 권고하러간 최성학, 손장상 등 9명을 살해하는 “오품엽자참안”을 빚어내기까지 했다.

1946년 음력설직전에 화룡현보안6퇀 퇀장 박근식은 일부분 전사들을 거느리고 화룡현과 안도현의 접경지대에 있는 오도양차에 둥지를 틀고있는 있는 단수림의 토비무리를 공격했으나 20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적 11명을 소멸했을뿐 토비소굴을 공략하지 못했다. 이에 3월 15일, 연변군분구 부사령원 구회괴가 친히 6퇀과 8퇀을 거느리고 가 공격하였다. 적들은 배겨내지 못하고 서북쪽으로 빠져 안도로 도망쳤다. 이번 전투에서 아군은 적 80여명을 소멸하고 총 40여자루 로획했다.

로야령기슭의 왕청일대에는 토비가 득실거렸다. 대흥구, 하마탕, 계관라즈, 천료령, 라자구 등지에는 마희산의 “동북 제1정전군”, 안진유의 “동북정진군 제5퇀”, 요옥령, 왕극귀의 “동북자치군 제3지대”와 리모경의 “보안대” 등 3800여명의 토비들이 있었다.

1946년 2월경, 경비1퇀은 퇀장 박락권의 지희밑에 왕청보안퇀과 협동작전을 벌려 2월 22일, 천교령에서 리모경의 “보안대” 526명을 투항시키고 모령에 도망쳐간 200여명의 토비들을 숙청해버렸다. 그리고 알미다, 초피거우 등지의 토비 300여명도 아군에 포로되였다.

춘양에 둥지를 틀고있던 마희산토비무리는 1946년 1월에 당지 인민무장의 공격을 받고 100여명이 라자구에 도망쳤다. 2월, 경비1퇀과 왕청보안퇀 그리고 녕안 제2지대는 협동작전을 벌려 마희산토비무리들을 량면협공하여 도망친 마희산 등 소수의 완고한 비적을 제외한 대부분 토비들을 소멸해버렸다.

4월초, 왕청보안퇀이 라자구에 진격하자 안진유토비무리는 동녕현 로흑산으로 도망쳤다. 5월5일, 안진유는 아군내부에 숨어든 토비의 호응밑에 라자구에 주둔해있는 아군을 습격하였다. 이소식을 접한 경비1퇀과 왕청보안퇀에서는 즉시 라자구로 달려가 삼도하자에서 토비무리들을 격파하였다. 안진유 등 소수의 토비들이 로흑산으로 도망쳤다. 후에 아군은 로흑산에 들어가 안진유 등 토비들을 몽땅 소멸해버렸다.

뒤이어 왕극귀, 요옥령의 700여명 토비들도 조양천에 주둔하고있던 조선의용군 제5지대에 의해 소멸되였다.

일본이 무조건투항한후 쏘련군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제때에 일본군을 집중시키지 않아 흩어진 패잔병들이 돈화의 산야에 숨어 늘 부근의 마을을 습격하였다. 그래서 군중들은 무기를 들고 자위하기 시작했다. 한달남짓한 사이에 이런 대오가 각지에서 많이 나타났는데 이때 지주, 위만관리와 경찰, 자위단 및 오랜 비적들은 갖은 애를 써서 이런 대오의 령도권을 탈취하였다. 그들로는 앵목의 리충옥, 성서의 당옥, 대석두의 리옥보, 대포시하의 장영춘, 관지의 장진호, 태평령의 등진상, 삽어하의 주흥복, 남항니허의 왕대법사 등이였다. 이자들은 오로지 국민당을 동경하고있었고 무장을 쥐자 극력 세력을 늘이였다.

1945년 8월 19일, 동북항일련군 소분대 리문장 등이 쏘련군과 같이 돈화에 왔고 얼마후에 또 류건평이 왔다. 9월초, 류건평을 사령으로 하는 돈화현보안사령부가 건립되자 자연발생적인 무장대오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1월, 양상규 등 연안간부들이 와 돈화현위와 현림시정부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쏘련홍군사령부에서는 공산당원이 현장이 되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다. 하여 위만군 소좌군의출신인 류화일이 현장으로 되었다. 그는 국민당돈화현당부의 려명과 언녕부터 배짝이 맞아 들락날락 하는자였다. 그는 수하에 수백명의 공안대를 두고 보안대와 엇섰다.

보안사령부는 먼저 교도대를 조직하고 4개 향의 8개 대대를 받아들여 재편성, 간부를 파견하였다. 국민당은 각종 수단으로 이런 지방무장을 끌어당겼으며 보안사령부에서 재편성하여 임명한 대대장을 국민당 상좌퇀장으로 위임하였다.

11월 하순부터 류화일은 공개적으로 국민당간판을 내걸었고 향의 대대들을 국민당에 기울러지게 하였으며 항일련군간부였던 리문장을 대포시하에서 살해하기까지 했다.

돈화주둔 쏘련홍군사령부에서는 중공돈화현위에 즉시 현소재지를 떠나지 않으면 안전을 담보할수 없다고 통지하기까지 했다. 이런 형편에서 현위는 교도대대와 함께 현소재지를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는데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겨우 륙과송까지 왔다. 때마침 조선의용군 제5지대가 연길방면으로 가는 도중에 돈화를 지나다 양상규를 만나 돈화의 정황을 듣고 그들을 방조하기로 하였다. 하여 쏘련홍군과 련계를 짓고 교도대대와 부근의 조선족들로 구성된 두 개 중대가 합쳐 800명 병력으로 돈화로 쳐들어갔다.

보안사령부에서는 쏘련홍군의 지지하에 류화일이 통제한 공안대대의 무장을 전부 해제하고 돈화림시정부의 대권을 탈취하였다. 그러나 4개 향은 여전히 토비가 통제하고있었다.

1946년 2월, 길동군구에서 파견된 등극명려가 토비숙청임무를 맡고 돈화에 왔다. 아군은 선후로 신개령의 소관툰과 대관툰, 대황툰, 삼도황구 등지에서 일부 토비들을 향해 맹렬한 공세를 들이댔다. 마지막에 이 토비무리들은 장춘 팔리보에서 몽땅 소멸되였다.

동만근거지에서의 토비숙청투쟁은 반년 남짓한 시간을 거쳐 1946년 7월에 승리적으로 끝났다. 이번 토비숙청투쟁에서 아군은 4000여명의 토비들을 소멸하고 각종 포 24문, 중경기관총 76정을 포함한 대량의 무기와 군수물자들을 로획했다

21204

연변통보

표현의 자유는 '방종의 자유'를 포함하지 않으며, 진정한 자유는 '책임'이 따라야 아름답다 생각합니다. 인터넷에서 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건전한 대화로 토론할 수 있는 댓글을 남깁시다. 다음 사항을 주의하지 않으면 글쓰기가 정지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 '발제글과 무관한 댓글을 게재'해 불필요한 분란을 조성할 때. 둘, 발제글과 댓글 내용을 무시한 채 글쓴이에 대한 욕설ㆍ인신공격ㆍ조롱ㆍ비아냥(누리꾼 필명을 비하하는 것까지 포함)할 때. 셋, 정당한 대화 또는 토론을 통한 타당한 비판 외, '부적절하고 저속한(천박한) 표현을 써가며 무조건 비난ㆍ비방ㆍ조롱ㆍ폄하 글을 게재'할 때. 넷, 양쪽 전체 집단(중국동포, 한국동포)과 상대 국가를 일방적으로 비하ㆍ폄하 글을 게재할 때.

2022.12.10
  오늘의 사는 이야기
  한 주간 이야기 > 더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공감
비공감
14   산해관 넘어 전국해방 전장으로 <3>  역사강좌 01.03  2871  24  199
  동만에서의 토비숙청 (5) 역사강좌 01.03  3317  21  204
12   산해관 넘어 전국해방 전장으로 <4>  역사강좌 01.03  3145  10  202
11   장춘해방전역에서의 《조선퇀》 (2) 역사강좌 01.03  3999  19  180
10   동북산야에 울린 승리의 노래 <1>  역사강좌 01.03  3371  18  246
9   '상시기'에게 -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6) 연공 02.14  3354  17  235
8   뭘 그리 궁금하노? 그냥 즐겨~~ (3) 영웅일지매 01.18  2168  0  0
7   여러분 특별토론 좀 해봅시다 (1) 영웅일지매 03.01  1916  0  0
6   내가 알아주는 조선족 누리꾼은 (17) 영웅일지매 04.06  2490  0  0
5   아직두 조선족 유저들에 생각이... (5) 영웅일지매 10.15  2023  0  1
4   한모에 반금련 여사왈... (1) 영웅일지매 11.10  2148  0  0
3   누구에 한글 학원 타령 소리를 하니 생각이 나는 게..... (7) 영웅일지매 11.15  2320  0  0
2   부산역에서 패싸움 하자고 한다!! (4) 영웅일지매 11.18  2188  0  0
1   통키.... (1) 영웅일지매 05.24  1732  0  0
<<<212223

오늘의 포토
장춘-백두산 고속철도 24일 개통

자게 실시간댓글
 朴京範님이[중공 축구는 언제 월...]
입력->압력
 朴京範님이[중공 축구는 언제 월...]
소수민족집계 5%도안되는데 설사있...
 대무신...님이[중공산 휴대폰에 사용...]
중공산 휴대폰이 저러는 데 다른 전...
 대무신...님이[영웅도 한국가면 바보...]
뭐라고 쳐 씨부려 싸노
 곤드레님이[영웅도 한국가면 바보...]
벤투도 축협에서 존나 간섭하고 월...
 곤드레님이[영웅도 한국가면 바보...]
축협 벌거지같은 틀딱들이 이번에도 ...


최근 많이 본 기사

독자 칼럼

오늘의 칼럼


Copyright 2006 연변통보 all right reserved.
webmaster@yanbianews.com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