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통보

 

   자유토론방

 

 

연변통보를 즐겨찾기에 추가합니다검색중국날씨공지사항  

동포뉴스포 럼독자마당독자 명칼럼연재물문서자료실이미지세상벼룩시장

[연변기행] 4편. 백금(白金)으로 가다
별 자리    조회 5,034    2006.12.22별 자리님의 다른 글      
▲ 뢰봉을 따라배우자는 표어


용정시외버스터미널에 들어서니 ‘뢰동동지를 따라 배우자’는 표어가 있어 서글프게 웃어본다. 옛날 같으면 버스터미널에 얼마나 많은 ‘뢰봉’들이 남을 도우려고 대기하고 있었겠는가. 노인에게 자리도 안내하고 뜨거운 물을 따라주고 차에 오를 때에는 짐을 들어주고 터미널 어디엔가는 ‘잃은 물건 찾기’코너도 있었을 것이다. 가끔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신축터미널에 옛날 표어를 고안해낸 이도 그런 소중한 마음가짐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서로 소중한 사랑을 나누자는 기대일 것이다.

표를 끊고 개찰구로 나가니 白金이라는 행선지를 밝힌 버스가 시골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버스에 오르는 여객들은 모두 시골사람들뿐이다. 옛날 옷매무시를 하고 옛날억양과 옛날어법으로 주고받는 모습을 보노라니 옛날의 소박한 인간관계와 시골인정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콧마루가 시큰해 났다. 연길은 서울에 비해 유행이 한 템포 느리다면, 시골은 두 템포는 봐야할 것 같다. 백금처럼 커우안(口岸)도 없이 꽉 막힌 변강(邊疆)마을은 10년 전의 옷매무시 그대로다. 서울에서는 밖에 나갈 때면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연길에서는 서울에서 입던 평상복이면 된다. 가끔 평상복을 입고 시골길에 들어서면 자칫 한국인으로 오해받기 쉬웠다.

“아닙니다. 한국에 돈 벌러 갔던 사람입니다. 연길에 살고요.” 그렇게 급급히 변명을 하고 마주앉으면 우린 마치 오랜 이웃처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버스는 승지촌에서 비포장도로에 들어섰다. 흙길에 들어서니 차 꽁무니로 먼지가 뽀얗게 인다. 옛날 포장도로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살았던가 싶다. 시커먼 연기를 퐁퐁 쏘는 경운기에 앉아 흙길을 콩당콩당 들추며 일 다니고 장보러 다니고 영화구경 다니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는데 말이다. 들추는 세상이 끝난 지도 한참은 되었건만 여긴 발전 전망이 없으니 현상유지를 시키는 것 같았다. 길가의 나뭇잎들은 먼지세례를 받아 마치 눈을 뒤집어 쓴 듯싶다. 가끔 삽으로 길가 배수로를 점검하는 양로공(養路工)아저씨들이 눈에 띄였다. 전에는 자전거페달을 돌리며 출퇴근하던 사람들이였는데 옆에 오토바이가 서 있는 것을 보니 진작 오토바이시대에 들어선 것 같았다. 양로공 직업도 옛날에는 ‘쇠밥통’이고 시골의 예쁜 아가씨를 마누라로 맞을 수 있는 그린카드였는데.

창밖으로 대신저수지 땜이 보인다. 그 앞으로 옛날 벽돌로 지은 숙소들이 처량하게 안겨온다. 그 때는 벽돌집에 사는 사람이면 잘 사는 사람이었다. 빨강 벽돌 벽에 비낀 사람들의 모습은 브랜드를 입은 부자만큼이나 보였으니 말이다. 그 벽돌도 따지고 보면 진흙을 구운 것이었건만. 그 풍요가 오늘은 처량하게 보이니 세월도 많이 흐른 셈이다.

    

▲ 대신저수지


대신저수지를 따라 꼬불꼬불 한참을 달리니 앞으로 용신향이 나타났다. 옛날 용신향은 단독 향진이었는데 언제부터 백금향에 귀속되었는지 간판이 백금향 용신촌으로 바뀌었다. 길가로는 ‘의료위생소’며 ‘공소합작사’ ‘농기소’와 같은 20여 년 전의 간판들이 그대로 있어 눈을 황홀하게 했다. 또 건물 벽에는 그 시절의 구호들도 남아있었다. 여기서 그냥 60~70년대를 묘사한 영화 한 편 찍어도 누구 눈을 의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때는 타도(打倒)할 것이 왜 그리도 많았던지. 지주로부터 우파 반혁명 ‘특무’, 지어는 2천여 년 전의 공자와 맹자도 타도하고 하다못해 동네에서 눈을 맞춘 남녀도 타도했다.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이 지금 여기 건물 벽과 길거리에 그대로 남아있어 마음이 씁쓸했다. 뛰어야 하는 세월에 사람 잡기만 했으니 참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도 선택할 수 없던 그 세월은 참으로 아까운 시간이었다.

운전기사는 차에서 내려 정류소에 모여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보매 꽤 오래 정차할 모양이다.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은 버스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고 있었다. 또 일부 사람들은 운전석 옆에 쌓아놓은 짐을 내리고 있다. 물건들은 시골에는 없는 생활용품들과 시골에도 있으나 값이 비싸서 도회지에서 싼 가격으로 사오는 것들이다. 또 오랜만에 ‘술안주거리’를 들고 헤벌쭉 웃으며 내리는 아저씨도 있었다.

    


    

▲ 옛시절의 구호와 간판이 남아있는 농기소 건물




버스가 백금에 도착한 것은 오후 한낮이다. 길가로는 삼삼오오 떼를 지어 한담하는 마을청년들이 보인다. 버스가 정차하자 장정들은 이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볼거리가 없는 시골에서는 버스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곧 구경거리다. 당연히 낯선 내가 그들의 시선을 샀다. 그들은 내가 어디서 오고 무슨 일로 왔으며 직업은 뭐고 나이는 얼마며 고향은 어디냐는 것들이 알고 싶었을 것이다. 또 내가 한국에서 여러 해 살다가왔다고 하면 요즘 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며 한국초청장, 위장결혼의 시중가격은 얼마며 무슨 일을 해야 돈벌이가 되고 1년에 얼마씩을 벌수 있느냐는 것이 알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런 의혹과 기대를 받아들일 시간이 못 되었다. 두만강에 가는 것이 급했기 때문이다. 두만강을 보러 왔고 두만강을 보러 가기 때문이었다.

마을 앞 둔치에 오르니 고요한 두만강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여기의 두만강은 무산광산에서 내려온 광석가루로 바닥이 검푸르게 되어 있었다. 삼합에서 괜찮았던 걸로 미루어 보면 백금에서 삼합까지 구간에서 많이 침전된 것이다. 그러니 백금에서부터 남평 호곡까지의 구간은 이처럼 광석가루가 바닥을 덮었다는 말이 된다. 요즘은 무산광석이 중국으로 수출이 되면서 양적인 증가로 오염이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강 건너를 자주 바라보았지만 인기척 하나 없다. 이북에서 단속이 심한 원인 같았다. 이 때 아저씨 한 분이 소를 끌고 둔치를 지나고 있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가 본다. 옆에 오기를 기다려 말을 건넸더니 반갑게 대해준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당연히 강 건너 동포들의 사정이다. 아저씨는 요즘은 형편이 많이 좋아졌단다. 그러면서 산에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곡식만 심었으니 양식은 전에 보다 많아졌지만 채소를 재배할 줄 모르다 보니 보면 밥만 먹는단다. 그러니 모두들 영양실조로 시들시들해 있다는 것이다.

하긴 조선족들도 채소재배를 할 줄 몰라서 옛날부터 한족들한테서 사다 먹었고 지금도 연변의 채소농사는 한족들이 독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날부터 한족들은 동네의 뒷간이라는 뒷간은 다 뒤져다가 채소를 재배해서는 조선족한테 팔았다. 기생충 알은 얼마나 먹었으랴만 그런 채소라도 없었으면 우린 지금의 이북처럼 밥만 먹고 자랐을 것이다. 그런 민족의 약점이 어려운 이북동포들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저씨의 말을 들으니 채소재배기술자들을 이북에 보내어 기술을 전수시키고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사시장철 푸르싱싱한 채소를 먹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아직 어둡기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배가 출출해 났다. 길가에서 여관을 물어 가보니 여관이자 식당이다. 군모를 삐딱하게 쓴 50대 중반의 주인아저씨와 동문서답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안주인이 나와서 저녁 주문을 받는다.

“혹시 ‘야리(두만강물고기)’탕이 있습니까?”

안주인은 마침 물건을 받았단다. 요즘은 ‘야리’가 많지 못해서 없을 때는 며칠씩 물건을 받지 못하는데 오늘은 마침 손님이 올 줄 알고 물건도 왔단다. 좀 기다리니 큼직한 냄비에 ‘야리’탕이 나온다. 밥도 제법 옛날 어머니가 해주던 윤기가 자르르 도는 밥이다. 야리탕을 먹노라니 어릴 때 해란강가에서 천렵을 해서 먹던 ‘세치네탕’이 생각났다. 부근의 채소밭에서 감자를 얻어오고 고추와 내기풀을 따다가 해란강물로 끓인 ‘세치네탕’은 못 먹던 시절에 회식이나 다를 배 없었다. 그 해란강에 ‘세치네’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이제는 두만강에도 ‘세치네’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겼을 때 실컷 먹어둔다고 먹었지만 워낙 양이 많아서 반도 먹지 못했다. 하는 수없이 안주인한테 이튿날 아침 데쳐달라고 부탁하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여관방에 들어가 보니 방안에는 TV 한대 없다. 물론 나는 이런 귀중한 시간에 TV를 볼 사람은 아니다. 오랜만에 시골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수를 하고 반바지바람으로 1층에 다시 내려오니 주인내외가 출입문을 잠그려고 서두르고 있었다. 시골사람들이 일찍 자는 버릇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건 너무 이른 시간이다.

“왜요. 벌써 자게요?”
“지금 올라가려던 참이었소.”

주인아저씨는 마침 잘됐다면서 나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다름이 아니고 강 건너에서 밤중에 자주 뛰어드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불도 끄고 창문도 잠그고 일치감치 자도록 하오.”

아저씨는 밤중에 소변을 볼 때 쓰라면서 바게쓰를 방안에 들여다 주고는 밖으로 나가더니 빗장을 지르고 자물통을 잠그더니 사라졌다.

‘강 건너라면.‘
나는 그 자리에 굳어졌다. 이북에서 중국 민가에 뛰어들어 물건을 약탈했다는 소문을 듣고서도 설마 했는데.......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무슨 돌발사고가 날지 몰라 주인이 시키는 대로 창문을 잠그고 전등을 끄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전에도 불법으로 월경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북에서 오는 사람들은 친척집을 바라고 왔고 친척집 형편이 좋지 않으면 빈손으로 얌전히 돌아갔다. 물론 중국에서 밀입국하는 경우는 조금 다르다. 술을 사들고 두만강을 건너가 이북동포들과 술을 마시고 왔다는 이야기, 권투를 배우려고 술과 안주를 사들고 갔다는 이야기, 이북에 잔치가 있는데 미처 통행증을 발급받지 못해 밤도와 다녀왔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니 이북에서 강을 건너와서 약탈했다고 하면 상상도 되지 않았다. DMZ도 아닌 우리의 두만강이 어쩌다가 이런 경계의 강으로 되었는가. 조상들을 볼 면목이 없다.

그날 밤 나는 한 숨도 자지 못했다. 흉기를 든 이북청년이 죽기내기로 벽을 타고 2층으로 올라오는 환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성주


*다음 회 제4편 <두만강 가를 홀로 걷는 나그네>

10167

연변통보

표현의 자유는 '방종의 자유'를 포함하지 않으며, 진정한 자유는 '책임'이 따라야 아름답다 생각합니다. 인터넷에서 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건전한 대화로 토론할 수 있는 댓글을 남깁시다. 다음 사항을 주의하지 않으면 글쓰기가 정지될 수도 있습니다. 첫째, '발제글과 무관한 댓글을 게재'해 불필요한 분란을 조성할 때. 둘째, 발제글과 댓글을 통해 특정 누리꾼을 욕설ㆍ인신공격ㆍ비아냥(누리꾼 필명을 비하하는 것까지 포함) 등을 하면서 '비난ㆍ비판할 때. 셋째, 정당한 대화 또는 토론을 통한 타당한 비판 외, '부적절하고 저속한(천박한) 표현을 써가며 무조건 비난ㆍ비방ㆍ조롱ㆍ폄하 글을 게재'할 때. 넷째, 양쪽 전체 집단(중국동포, 한국동포)과 상대 국가를 일방적으로 비하ㆍ폄하 글을 게재할 때.

2022.07.06
  오늘의 토론

   날로 먹다니! 이거 밤새 짠 거예요~~
대무신왕

   남북이 쉽게 통일하는 방법
곤드레

   한국아덜이 자꾸만 미국미국 거리는데
곤드레

   기실 언론통제는 한국이 더 심하지
곤드레

   조선족이 민족정서에 동요하지 않는 이유
곤드레
  한 주간 토론 > 더보기

   한국아덜중에 그나마 괜찮은 아덜 꼽아보
곤드레

   미국이 중국 가장 견제하는 이유가
곤드레

   기실 중국은 문제생겨도 한국이랑 전쟁할
곤드레

   아~~ 옛날이여
대무신왕

   한국예능 못본지가 몇년됐다
곤드레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공감
비공감
166   몽골여성과 혼인하여 피해을 입으신분 연락을 기다립니다 (3) 왕건이 01.05  3343  9  78
165   탈북 자유민들에 대하는 중국 조선족의 반인륜적 행위  비명횡사 01.05  3342  4  73
164   연길 진달래광장에서 뉴스속보입니다. (1) 기자 01.05  3932  3  113
163   한 가지 제안드립니다  돼지 01.05  3265  3  93
162   늙는것은  세익스피어 01.05  3332  3  75
161   야웅이가 오늘 결투를 한단다 (3) 왕스 01.05  4242  9  168
160   5편 두만강가를 거닐다  치우천황 01.04  4348  15  96
159   재외공관 직원, 탈북자 박대로 또 `물의' (3) 탈북자 01.04  3103  6  78
158   백제는 정말 중국을 지배했는가? (2) 치우 01.04  4025  8  57
157   새로운 황우석 동영상  비명횡사 01.04  2846  2  73
156   우리라는단어 (2) 논객 01.04  3239  6  93
155   4년간의 평가 (4) 해모서 01.04  3959  4  104
154   싸우면서 정이 든다 (1) 갈피리 01.04  3517  3  55
153   야웅이는 박멸시켜야 한다 (6) 해모소 01.04  3676  4  94
152   중화문화와 유교문화의 차이점 (6) 칠드기 01.03  4273  17  180
151   단절된 역사  단군 01.03  3016  3  67
150   조선족 포용은 남북통일의 前단계로 간주해야...?  음모자 01.03  2975  2  86
149   자유 게시판이라하여 저주성글 을남발함은 적극 제재 하여... (5) 123 01.03  4869  6  108
148   부끄러움에 대하여  한국류학 01.03  2970  3  68
147   덕담 한 마디  지나가다 01.02  3032  2  71
146   2007년도에 바라는거  mt 01.02  3838  10  164
145   연변을 왜 옌볜으로 표기할까 ?  노동1호 01.02  4129  5  146
144   아직은 새해도 아니고 정축년이 아니다 (2) 사학자 01.01  4272  6  151
143   중공의 동북공정?... 조선족 문제 해결에서 접근해야..... (1) 목발오리 01.01  3162  8  105
142   ‘조선족’에 드리운 한국 언론의 그늘  비명횡사 01.01  3743  3  92
141   [펌] 조선족 불법체류자를 몰아내자  황가리 01.01  3503  2  89
140   《한국의 우공》이라 불리우는 사람  새해복음 01.01  3422  4  128
139   한국은 반도가 절대 아니다  비명횡사 01.01  3290  3  95
138   날로 늘어나는 타민족과의 통혼현상 (2) 金亨根 01.01  3963  3  124
137   한국인이 되기를 원하는 조선족에게 귀화? 허용해야...  TKO 01.01  3984  8  176
136   07년 새해엔 보다 많은 발전이 있기를... (1) 해모수 12.31  3158  3  95
135   사람 살리는 민족주의와 조선족문제...  음모자 12.31  2839  2  114
<<<1521152215231524152515261527152815291530>>>Pages 1533

오늘의 포토
장춘-백두산 고속철도 24일 개통

자게 실시간댓글
 朴京範님이[ 한국청년들의 진짜 ...]
문재점-> 문제점 떄문 -> 때문
 朴京範님이[ 한국청년들의 진짜 ...]
생혁->생략
 朴京範님이[ 한국청년들의 진짜 ...]
해탈 대무신왕 이 바보들아 과학 의...
 朴京範님이[ 한국청년들의 진짜 ...]
철학 물리학 전기공학 의학 等을 한...
 朴京範님이[ 한국청년들의 진짜 ...]
정보화 시대에 정보과학을 모르는 바...
 곤드레님이[한국아덜이 조선족 싫...]
엉아가 떠나면 떵남이는 무슨 멋에 ...


최근 칼럼

독자 칼럼

오늘의 칼럼


Copyright 2006 연변통보 all right reserved.
webmaster@yanbianews.com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