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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사 6
빨치산    조회 4,019    2006.12.20빨치산님의 다른 글      
지난번에 소개하였습니다만, 연합군에 의해 일제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원하는 방향의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는 교과서의 서술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요. 결론부터 말해 그것은 논리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런 엉터리 이야기가 교과서에 실려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에게 전수되고 있음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그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그런 이야기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해방 이전에 우리 민족이 모두 합의한 나라세우기(state building)의 마스터플랜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될 필요가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전제조건은 충족되지 않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논리적 전제조건에서부터 불성립입니다. 지난 강의에서 지적해드린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방은 기독교인들에게 예수가 재림하는 그 날처럼 도둑처럼 갑작스레 찾아 왔습니다.

해방 직후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채만식 선생의 『역로』라는 소설이 재미있을 것 같아 소개해 드립니다. 해방이 된 지 몇 달 뒤에 채만식 선생은 서울역에서 기차표를 사기 위해 3시간이나 서 있었습니다. 그 긴 행렬에서 채만식은 한 친구를 만납니다. 그 친구는 긴 행렬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창구 앞으로 가 암표를 구입합니다. 어느 중학생은 창구 직원에게 거스름돈을 떼입니다. “아무튼 사람들의 질이 전보담 되려 떨어졌어. 걱정야.” 그 중학생의 말입니다.

혼잡한 열차 속에서 겨우 자리를 잡은 채만식 선생의 주변에서 열띤 정치 토론의 장이 벌어집니다. ‘늙은 농민’은 이승만을, ‘잠바 청년’은 여운형을 지지합니다. 어느 ‘시골신사’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찬양합니다. 열띤 토론은 천안역에서 중단됩니다. 유리창을 깨고 쌀보퉁이를 들이밀면서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기어 오릅니다. 여기저기서 고함과 함께 싸움이 벌어집니다. 부산에서 천안까지 쌀을 구하러 온 사람은 영악한 농민들이 일본으로 쌀을 밀수출하고 있다고 성토합니다. 그렇게 채만식의 눈에 비친 세태는 어지럽고 어두웠습니다. “백성이 아직 어리구 철이 아니 나서 그런가”, 아니면 “나이가 너무 많아 늙어빠져서 노망 기운으루다 그러는 것인가.”

저는 이러한 채만식의 소설에서 해방 당시의 숨김없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2권에 실린 전상인의 「해방공간의 사회사」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생생하게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거창한 정치사상이나 정치투쟁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일상생활이 관찰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름없이 살다간 보통사람들이라 해서 그들이 무기력하게 그 시대에 놓여졌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나름대로 그 시대의 주체로 그 시대를 치열하게 겪어내고 적극적으로 살아 남았습니다. 그들의 일상생활을 규정한 것은 민족이니 계급이니 하는 거창한 정치적 담론이 아니라 가문과 마을, 곧 그들의 전통적인 사회적 연망(緣網, network)이었습니다.

해방 직후는 의외로 평온하였습니다. 일본인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은 없었습니다.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다시 걸렸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회는 문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통에 억눌렸던 온갖 소비욕구가 분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왕성한 쌀소비가 대표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쌀이 해방이야”. “쌀이 민족이야”. 그리고 애국가, 태극기, 3.1절 등의 새로운 민족상징이 고안되고 널리 소비되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해외동포들이 돌아왔습니다. 일본에서 도합 70여 만의 인구가 돌아왔습니다. 미국적 소비풍조, 영자신문, 기독교, 슈사인보이, 염색 미군복 등은 미국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지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쌀이 일본으로 밀수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해방의 상징인 쌀이 부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매점매석 등 쌀과의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 군정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하여 일제가 시행한 공출제도를 잠시 복구하였습니다. 그러자 미 군정이 일정(日政)보다 못하다는 무책임한 투정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문과 마을을 떠나 시민사회라고 할만한 자율적인 결사체는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전제조건이 결여된 가운데 자유민주주의는 아무래도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만, 사람들은 가문과 촌락과 같은 전통적 연망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회사, 조합, 학교, 교회, 기타 우애단체 등등, 시민사회의 성립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개인과 국가 간의 중간단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는 강대했으며, 개인은 허약하였습니다. 개인과 국가 간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이 환형동물(環形動物)에 묘사한 바와 같은 속이 텅빈 단순 조직, 그러한 상태와 비슷하였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제가 물러난 뒤 어떻게 그런 상태가 조성되었는지는 앞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과제입니다. 어쨌든 사회를 통합했던 유일한 자율적 질서는 관료제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사람들은 무작위로 좌와 우로 정치적으로 동원되고 분열하였습니다. 왼쪽으로 동원된 사람들은 계급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다 공평하게 잘 산다는 사회주의의 미망(迷妄)을 추구하였습니다. 반면에 오른쪽으로 동원된 사람들은 민족이란 이념에 이끌렸습니다. 그렇게 좌와 우로 갈라진 사람들은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인 계급이니 민족이니 하는 정치 원리에 이끌려 영문도 잘 알지 못한 채 대립하고 분열하였습니다.

제가 방문한 적이 있는 충청도의 어느 마을에서는 엉뚱하게 지주 가문이 좌에 가담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지배를 받던 마을의 하민들은 우에 가담하였습니다. 경상도 어느 마을에 가보니 거기서는 윤씨 집단과 정씨 집단이 대립하였는데, 윤씨가 좌로 가자 정씨는 무조건 우로 갔습니다. 명실상부하게 ‘우리 민족’이라 할 만한 의식과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단합이 성립해 있었더라면, 어찌 그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상이한 견해와 이해관계를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사회가 넉넉히 성립해 있었더라면 어찌 바깥에서 들어온 계급이니 민족이니 하는 정치적 담론으로 인간들이 그렇게 대립하고 분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컨대 우리 힘이 아니고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것이 우리 민족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세우는 데 방해가 되었다고 이야기할 만한 전제조건은 없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촌락사회가 그러하였기 때문에 중앙의 정치가 마찬가지로 그러했던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상과 이념을 가진 정치가들이 허심탄회하게 만나 서로 약간씩 양보하면서 분단만큼은 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다짐을 놓은 적은 없었습니다. 서울의 미 군정이 그러한 발상을 낸 적이 있습니다만, 서울에서조차 정치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앉아 본 적도 없거니와, 그 때문에 평양의 정치가들이 서울에 온 적은 소문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분단을 초래한 역사적 조건은 일차적으로 내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이야기해서는 곤란합니다. 해방 정국을 규정한 외적인 국제조건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점령군으로서 한반도의 남과 북에 진주한 미국과 소련이 협력할 여지는 처음부터 적었습니다. 처음 1년 간은 두 강대국 사이에 타협의 여지가 있어 보였습니다만, 1946년 9월부터 모든 것은 너무나 명확하였습니다. 이른바 냉전이 개시된 것이지요. 미소간의 냉전이야말로 한반도의 허리를 잘라놓게 된 가장 중요한 힘이었습니다. 그 두 강대국을 제어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분단은 당시 한반도의 주민집단에게는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거절할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남한과 북한에서는 점령군에 의해 선택되고 지원되는 정치세력이 있었습니다. 남한에서는 일제 하에서 근대 문명을 학습한 하급 관료와 테크노크라트형 지식인, 중소 상공업자들이 그 중심 세력을 이루었습니다. 반면 북한에서는 사회주의혁명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자들이 중심 세력을 이루었습니다. 어쨌든 지배적 정치세력이 점령군에 의해 선택되고 지원되었다는 점에서 남북한 간에는 조금의 차이도 없었습니다.

흔히들 분단의 책임을 1946년 6월 3일, 후일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 전북 정읍에서 한 발언에 있다고 합니다만, 이는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비밀이 해제된 모스코바의 문서에 의하면 스탈린은 이미 1945년 9월 20일, 북한에 소련의 이해관계에 적합한 독자의 정부를 세울 의지를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 사령관에게 명확히 전달하였습니다. 이 점을 『해방전후사의 재인식』2권에 실린 이정식의 「냉전의 전개과정과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이정식 교수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 1945년 9월 초까지도 스탈린의 한반도 정책은 유동적이었으며,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타협할 여지가 있었습니다. 둘째, 이러한 타협의 가능성은 9월 12일부터 10월 2일 사이 런던에서 열렸던 전승국(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중국ㆍ소련) 외상회담에서 미국ㆍ영국과 소련 사이에 전후 처리를 둘러싸고 충돌이 노골화하면서 소멸하고 말았습니다. 셋째, 9월 20일 스탈린의 비밀지령에 따라 소련 군정은 북한에 독자적인 행정기구를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넷째, 그 후 스탈린의 한반도 정책은 일본과 중국의 상황에 따라 변화하게 되는데, 그가 한국전쟁을 도발하게 된 데는 중국의 공산화가 크게 작용하였다는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북한에서는 이미 1946년부터 소련군과 그의 협력자들이 북한을 완벽하게 장악한 위에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등, 사실상 독자의 정부에 준하는 통치행위를 전개하였습니다. 그에 비하자면 남한의 미 군정은 그의 협력자를 선택하는 데 오히려 주저하였지요. 미 군정에 참여한 미국의 진보적인 자유주의자들은 매우 낭만적이게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었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그들은 좌우합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운동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2권에 실린 박지향의 「한국의 노동운동과 미국」이라는 논문이 좋은 참고가 되고 있습니다. 이 논문에 의하면, 미군정에 참여한 미국 국무부의 자유주의자들은 중도 좌파는 물론, 온건한 합법적인 노조운동을 전개하는 한 공산당 계열의 전국노동자평의회[全評]조차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흔히들 미 군정이 한국의 노동운동을 무조건 탄압하였다고 합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 군정의 자유주의자들과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민주적 또는 자주적 노동조합이라는 개념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노조운동으로부터 정치세력을 분리하여 노동조합을 노동자의 진정한 대표기관으로 만들려 했습니다만, 전평이 모험적인 극좌노선으로 불법적인 투쟁을 감행함에 따라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지향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만일 전평이 정치 우선주의를 떠나 온건한 좌파 노동조직으로서 경제투쟁을 추구했더라면 미 군정으로서는 그를 탄압할 적절한 구실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미 군정이 추구한 여운형과 김규식을 지도자로 하는 좌우합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해설을 달 수 있습니다. 이윽고 1947년 미국에서 트루만선언이 나오는 등, 냉전이 사실상의 열전으로 달구어지면서 모든 낭만적 시도의 가능성은 봉쇄되고 맙니다. 미국은 미운 오리와도 같은 이승만을 협력자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은 끝까지 망설이고 주저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처음부터 단호하게 김일성을 자신의 대리인으로 선정하였던 소련의 스탈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깃발이 요란스럽게 펄럭이는 가운데 다른 이념이나 정치세력이 존속할 수 있는 가능성은 처음부터 닫혀 있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이 세워지는 것이 언제입니까. 1946년 7월이지요. 그런데 남한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런 절대 카리스마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는 크게 말해 미국의 이해관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조정과 타협의 여지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의 속성으로 인해 끝까지 봉쇄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해방 당시 한반도의 주민집단에게는 민족이니 계급이니 하는 외래 기원의 정치 원리를 극복하면서 스스로를 잘 단합된 질서체로 통합할만한 문명능력은 아직 성립해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주체적 조건이 미비된 가운데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는 곧바로 냉전에 돌입하게 되는 두 강대국이 점령군으로 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협력자들에 의해 상이한 원리의 두 나라가 건립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만, 민족의 분단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그 비극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께서는 앞서 소개한 교과서의 이야기가 왜 엉터리인지를 납득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엉터리 이야기는 하루 빨리 교과서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공동편집자)

*이영훈 교수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특강>은 EBS 라디오 홈페이지(다시듣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www.ebs.co.kr/Homepage/?progcd=000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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