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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나연변항일사]<3.13>반일시위운동(5)
고정닉    조회 1,065    2008.12.08고정닉님의 다른 글      
1919년 3월 13일, 해방전 조선족사회의 중심지였던 룡정에서 기세드높은 대규모의 반일시위가 거행되였다. 이를 력사에서는 <3.13>반일시위운동이라고 일컸는다.
  1919년에 중국, 조선 등 동방의 여러 국가에서는 성세호대한 반제운동이 일어났다. 1917년 쏘련의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한 후 맑스주의와 사회주의사상은 동방에 전파되였고 동시에 제1차 세계대전이 결속된후 국제렬강들의 식민지 재분할이 진행되고 페전국 식민지국가들에 대한 민족자결주의 사조가 일면서 약소민족의 민족해방운동을 고양시켰다.
  
중국에서는 5월 4일 북경대학 학생들을 위수로 한 <5.4>운동이 일어났고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중국대륙에는 민주사상과 사회주의사상이 급속히 전파되였다. 조선에서는 3월 1일 서울에서 종교계와 학생들을 주축으로 하는 <3.1>운동이 일어나 민족독립을 선언하였다.
  
이러한 주변의 영향, 특히는 조선의 <3.1>운동의 영향으로 하여 연변에서도 조선의 <3.1>반일독립운동을 성원하는 대규모의 반일대중운동을 온양하게 되였다. 조선에서 <3.1>운동을 준비하고있을 때 연변의 각 반일단체와 종교단체의 진보적인사들은 <민족독립선언>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2월부터 준비사업을 진행하였으며 로씨야의 조선인들과 손을 잡기 위하여 2월 11일 김약연, 정재면, 리중집 등 6명의 대표를 씨베리아에 파견하는 한편 전 북간도 조선족 반일운동을 지도하기 위한 독립운동의사부를 성립하였다.
  3월 7일, 조선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연변에 전해졌고 이 소식을 접한 룡정동명중학교의 교원이였던 최봉익은 직접 조선에 나가 <조선독립선언서>를 가져왔다. 이튿날부터 연변의 반일애국지사들과 진보적인사들은 최봉익이 가져온 <조선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대중들속에 배포하여 대대적으로 여론을 일으키는 한편 반일시위집회준비를 다그쳤다. 이와 동시에 룡정과 국자가에 있는 각 사립학교의 학생들은 10일부터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시위행진을 진행하였으며 독립선언집회를 가질것을 요구하였다. 로씨야에 간 대표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로씨야의 조선동포들과 함께 <선언운동>을 진행하려던 의사부간부들은 급변하는 정세에 맞추어 3월 13일 룡정에서 집회를 열리로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조선에서 <3.1>운동이 발생한후 일제는 연변의 조선족들도 <3.1>에 호응하여 반일집회를 거행할 조짐이 있을것을 알고 북경주재일본공사는 중화민국정부 외교부에 중국정부는 일본의 <우방>으로서 마땅히 조치를 대여 연변경내에서 전개될수 있는 반일운동을 제지시켜야 하며 만일 중국측에서 이를 리행하지 못하면 <일본이 중국을 돕는 견지>에서 연변지역에 군대를 파견할것이라고 위협하였다. 3월 10일 일본령사관 국자가분관에서도 총령사의 명령을 받고 룡정에서 있게 될 반일집회문제를 가지고 연길도윤공서 외교과와 교섭하였다. 이때 일본은 조선족의 반일운동에 대해 파병하겠다는 조건을 중국과의 외교에서 주요한 술책으로 삼았던것이다.

이런 정세하에서 부패무능한 당시 중국정부와 봉계군벌 장작림은 조선족의 반일운동에 대하여 방임하는 태도를 취하는것은 결국 일본측에 출병구실을 제공하는것이라고 인정하고 연길도윤 장세건에게 조선족의 반일운동을 제지시킬것을 명령하였다. 연길 도윤은 상급의 명령과 일본령사관의 압력에 의해 길림 륙군 2려 10퇀 퇀장 맹부덕을 룡정촌 군경 총지휘관으로 임명하고 즉시 군경을 파견하여 일본령사관을 보호하고 조선족들의 반일운동을 제지시킬것을 지시하였다.
  
맹부덕은 3월 12일 저녁까지 조선족반일단체의 지도자들을 불러놓고 4시간이나 끌면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조선족의 반일집회을 정지할것을 요구하였으나 끝내 실패하였다. 이에 화가 꼭뒤미까지 치민 맹부덕은 수하에게 명령을 내려 13일 새벽부터 룡정의 거리마다에 보초를 세우고 순라대를 조직하여 집집에 걸어놓은 태극기를 뽑아버리게 하였으며 행인들을 샅샅이 수색하고 룡정으로 들어가는 4갈래의 대통로를 전부 차단하게 하였다.
  이러한 형세하에서 원래 상부지내에서 집회를 가지고 곧바로 일본령사관에 쳐들어가기로 한 계획은 엉망이 되였으며 지도부 성원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원래의 계획대로 행동하자는 주장도 있었고 모험을 피하자는 견해도 있었고 맹부덕과 다시 담판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결과 맹부덕과 다시 담판하자는 주장이 우세를 점하여 집회의 시간은 지연될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정오 12시에 집회를 선포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13일은 룡정에 큰 장이 들어서는 날이다. 이날 새벽부터 룡정시의 조선족은 물론 국자가(현재 연길시), 투도구, 대립자 등 연변각지의 인민대중들은 군경들의 제지와 총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밀듯이 룡정으로 몰려들었다. 대렬을 지어 룡정에 들어서는 사람들도 있었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들어서는 사람도 있었다. 어린이들과 늙은이들은 대렬에 가담하지 못하고 구경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개산툰지방의 반일군중들은 정동학교 학생들과 함께 12일 밤중부터 주먹밥을 지니고 밤길을 걸어 명동학교에 도착하였고 달라자의 민중들은 새벽에 출발하여 명동학교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명동학교의 교원과 학생들과 함께 북과 나팔을 울리며 호호탕탕하게 룡정으로 행진하였으며 그외 동성용, 조양천, 동불사, 로투구, 명월구, 장인강, 투도구, 의란구, 월청구, 위자구, 석현, 국자가 등지의 민중들도 학생들과 함께 룡정에 밀려들었다.
  
정오가 가까워오자 회장에 모인 반일민중은 무려 3만여명에 달했으며 그가운데는 화룡현(현재 화룡시)의 명동학교, 정동학교의 교원과 학생들로 조직된 320명의 <충렬대> 대원들과 국자가 도립중학의 조선족학생들로 조직된 천여명의 자위단원들도 포함되여 있었다.
  
집회장소는 상부지밖의 예수교 부속 영신학교앞 공지였다. 정오가 다가오자 수를 헤아릴수 없는 조선족민중들이 만세를 웨치며 대회장에 들어섰다. 이미 대기하고있던 맹부덕의 군경들은 총칼을 꼬나들고 시위군중들을 위협하며 해산할것을 명령하였다. 군경과의 몸싸움에 일부 군중들은 군경의 총칼에 상처를 입었다. 부득불 집회대오는 예정된 지점에서 밀려났고 회의장소는 당시 간도보통학교뒤쪽으로 옴길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원래 정오 12시에 거행하기로 한 집회는 오후 1시가 되여서야 진행될수 있었다.
  드디여 천주교회당의 종소리가 울렸다. 이 종은 당시 15세였던 림민호가 쳤던것이다. 림민호는 어른들의 행동에서 큰 구경거리가 생겼음을 눈치채고 슬그머니 어른들의 뒤를 따라 룡정에 들어왔고 높은 곳을 찾다보니 종루에 올라갔던것이다. 이리하여 연변의 반일투쟁에서 큰 의의를 지니는 <3.13>반일운동은 15세 소년 림민호가 친 종소리로 하여 서막을 열게 되였다. 림민호는 그후 동만지역에서 공산주의혁명에 투신하며 모스크바 동방대학을 졸업한후 조선에서 국제적색로동조합을 조직하였고 해방후 연변대학이 창립된후 제1임부교장직을 맡아 조선족의 교육사업에 필생의 정력을 깡그리 바쳤다. 아쉽게도 문화대혁명가운데서 박해를 받아 1970년에 세상을 떠났다.
  
종소리가 울리자 드디여 반일군중대회가 시작되였다. 국자가 예수교목사이며 대회 회장인 김영학이 대회를 선포하고 <간도거류조선민족일동>의 이름으로 된 <독립선언포고문>과 <공약 3장>을 랑독하였다. 랑독이 끝나자 온 장내는 <만세>소리가 천지를 진감하였고 태극기가 하늘을 덮었다. 이와 같은 민중들의 반일기세에 감화되여 일본령사관 소속으로 되여있는 간도보통학교의 학생들까지도 교장과 교원들의 제지를 물리치고 <만세>를 웨치면서 유리창을 들부시고 거리에 뛰쳐나와 집회군중들과 합류하였다. 이 광경을 본 일본인교장은 10년교육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개탄하였다.
  
대회가 끝나자 군중들은 일본령사관을 향해 시위행진이 거행되였다. 시위대오의 맨앞에는 <충렬대>의 공덕흡이 <조선독립을 성원>이라는 글이 씌여있는 오장기를 높이 추켜들고 나섰고 그 뒤에는 태극기와 중화민국기를 추켜든 명동학교, 정동학교의 교원과 학생들로 구성된 <충렬대>가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기세드높이 전진했고 연변각지에서 모여둔 군중들이 그 뒤를 이었다. 시위대오는 <조선독립만세!>, <일제의 침략을 반대한다!>, <친일주구를 타도하자!>라는 구호를 높이 웨치면서 호호탕탕하게 상부지내의 일본령사관을 향하여 나아갔다. 룡정시내의 일본상인들은 아침부터 점포문을 닫아걸고 피신해버렸고 일본침략자들은 시위군중들의 기세에 대경실색하여 어쩔바를 몰랐다.

  이때 맹부덕은 상전의 명령을 받고 군경들을 거느리고 시위대오가 경과할 상부지계선에서 총칼을 들고 대기하면서 시위대렬이 상부지내로 들어가는것을 제지하여 나섰다. 시위대오가 다가오자 군경들은 선두에서 들어오는 공덕흡에게 달려들어 그가 든 기발을 빼앗으려 하였고 이에 격분한 군중들은 돌멩이를 군경들에게 뿌리면서 대항해나섰다. 조수처럼 밀려드는 시위대오를 도저히 막을수 없었던 군경들은 드디여 적수공원인 시위행렬에 대해 총질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군중들은 맹부덕의 군경들이 중국사람이니 일제를 위해 살인귀노릇은 하지 않을것이며 총을 쏴도 공포를 놓을것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군경들의 총은 시위대오의 가슴을 겨누었던것이다.

  맨 앞장에서 기발을 들고 전진하던 공덕흡이 군경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총소리는 련달아 울렸고 총소리와 함께 수십명의 군중들이 쓰러졌다. 당장에서 10명이 희생되고(후에 또 7명이 사망) 3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시위대오는 일대 혼란을 이루면서 흩어졌다.
  
이런 정세하에서 김영학 등 집회조직자들은 사상자들을 동산 영국조계지의 제창병원으로 호송하는 한편 즉시 시위대오를 해산시킨다음 일부 군중들을 거느리고 상부지를 포위하면서 사건의 시말을 렬거하고 사후대책을 대기전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동시에 구춘선 등 5명의 대표를 연길도윤공서에 파견하여 중국군대가 시위군중을 격사한 사건에 대하여 엄정한 항의를 제출하고 중국정부는 마땅히 사상자에게 치료비와 배상금을 지불하며 사건조작자들을 엄벌할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길림성 성장과 북경정부에 향해 지방군경들이 시위군중들에 대한 탄압에 항의를 표시하고 정부에서 이번 사건을 책임지고 처리할것을 강력히 제기하였다. 하지만 무능한 군벌정부는 이런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14일에는 룡정에다 60여명의 군경을 증파하고 엄밀히 경계하면서 사태가 가라앉을때까지 현장을 유지하도록 명령하였다.
  
3월 17일, 룡정의 각계인사들은 의사회를 조직하고 렬사들의 장례를 치렀다. 3천여명의 애국적 청년학생들과 군중들이 날창과 몽둥이를 지니고 다시 룡정에 집결하였다. 이들은 제창병원에서 발인제를 지낸후 <조선독립순직자>라고 쓴 만장을 앞세우고 렬사들의 령구를 메고 가두행진을 하면서 희생된 렬사들을 추모하고 일제와 반동군경들의 피비린 탄압을 규탄하였다. 가두행진을 마친후 수난자들의 령구를 룡정 동남교외에 있는 합성리 공동묘지에 안장하고 <충렬자제공지묘>라고 새긴 비석을 세웠다.
  <3.13>반일투쟁에서 수난당한 렬사들은 다음과 같다.

  채창현, 공덕흡, 박문호, 김흥식, 정시익, 현봉률, 김승록, 김태균, 장학관, 김종묵, 허준언, 김병영, 박상진, 최익선, 현상로, 리유주, 차정룡, 원인선, 리균선.
  룡정에서의 <3.13>반일시위는 일제와 반동군경의 피비린 학살에 의해 진압되였지만 <3.13>반일투쟁의 영향으로 하여 조선족대중들의 반일운동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연길현에서는 3월 13일부터 4월 6일까지의 사이에 여러곳에서 수백명 혹은 수천명의 군중들이 집회를 가지고 시위행진을 거행했으며 연길, 화룡, 왕청, 훈춘 등지에서도 집회가 시위행진이 끊임없이 진행되였다. 뿐만아니라 남만의 조선족대중들도 련이어 조직되여 일떠나 반일운동을 벌렸는바 3월 12일부터 4월 22일까지 사이에 류하, 통화, 장백, 집안, 환인, 관전 등지에서도 반일집회를 가지고 시위행진을 거행하였다.
  
<3.13>반일시위운동은 그 규모나 지속된 시일 그리고 반일투쟁에 참가한 수효와 범위 등면에서 전례가 없는 반일대시위이다. 이번 투쟁은 일제침략자들의 기염을 꺾어놓았고 조선인민들의 반일민족애국투쟁을 힘있게 성원하였으며 조선족인민들의 반제운동의 발전을 힘있게 추동하였다. 동시에 일제침략자들을 몰아내고 민족이 해방을 이룩하려면 반드시 무장으로써 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경험과 교훈을 얻게 하였다. <3.13>반일시위운동을 계기로 하여 연변의 반일운동은 무장투쟁에로 전환하게 되였으며 이때로부터 연변에서의 반일무장투쟁은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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