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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말
기사 입력 2007-02-05 04:38:54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형제가 놀이터 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다. 작은 녀석에세 “네 자전거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큰 녀석에게 “그러면 네 것이겠구나” 하고 묻자 역시 아니라고 한다. 그럼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니까 “우리 자건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조선족이 한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우리”라는 단어를 이해해야 한다. 그 ‘우리’라는 속에는 형제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가끔 시장을 보러 갈 때 이용하고 아버지도 동네를 한 바퀴 타고 돈다. 그래서 전체의 우리 것이라는 이유다. 중국 사람들은 나의 어머니, 나의 집, 나의 학교, 나의 나라로 표현 하는데 반해 유독 한국인은 우리 어머니,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나라, 라고 표현한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잣말을 잘 하는 것도 ‘우리’ 라는 공동 울타리에서 생활하는 주거 구조 때문이다.

“원. 날씨가 이렇게 춥냐?”
“돼지죽은 주었느냐?”
“들에 가더니 왔는가?”

괜히 강아지를 욕 한다든지, 아니면 닭 쫓는 시늉을 하는 것은, 그 의미나 내용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의 우리의 주거공간에 들어선다는 신호인 것이다.

먹는 습속도 예외가 아니다. 서양 사람은 큰 그릇에 있는 우리 음식을 내 접시에 옮겨놓고 내 것으로 만들어 놓고 내 것을 먹는다.

이에 비해 우리는 우리 음식을 한상에 차려놓고 우리 모두가 우리 것을 직접 먹는다. 그러기에 음식상에 오른 모든 음식은 찌개를 비롯한 모든 찬과 간장에 이르기 까지 우리 것이다.

이 ‘우리’라는 개념이 뚜렷이 각인된 민족이기에 마지막 남은 접시의 고기나 떡 기타 모든 음식에 손이 가지 못함은 ‘우리’ 것을 나 혼자 다 먹는다는 쑥스러움과 미안함, 그리고 우리 속에 개인이 드러나는 일이기에 마지막 한 점의 고기나 음식 안주를 선뜻 먹지 못하고 남기고 일어서는 것이다.

이 ‘우리’라는 어울림이 서구의 개인주의와 편리함을 내세워 우리사회 전반에 만연하면서 퇴색되어 버렸다. 도심 속의 생활 구조와 주거환경의 변화에 따라 각박해진 우리속의 인심이 새로이 솟아나 정이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논객열전
연변통보 2009-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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