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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증조모 그리고 한반도 이야기
기사 입력 2014-03-13 17:26:40  

내가 어려서 할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우리 할아버지가 만주로 이주해온 시기는 1910년 전후 같다. 그때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당시 우리 집은 만주 서란현의 한족툰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증조모는 “말도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살지 못하겠다”고 말씀하면서 나의 작은 할아버지네 집(고향 충주)으로 내려가셨다고 하는데, 몇 해를 고향에서 사시다가 “배고파서 고향에서 못 살겠다”고 하여 부친이 증조모를 다시 모시고 만주로 올라오셨다.

증조모는 고향에서 하도 배를 곯다 보니 밤중에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종종 시래기를 불려놓은 것을 건져서 드시곤 했다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아무튼, 그 이후로는 다시는 고향 충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으셨다고 하던가.

광복 후에는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람(일반적인 시기 이외 개인의 주어진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는 시기까지 참작해.)이 불어 우리 집도 고향으로 간다고 청진까지 내려갔는데 3.8선이 가로막혀 고향으로 갈 수가 없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만주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 증조모가 고향으로 돌아가 봐야 배나 곯을 뿐인데 고향으로 가지 못할 바에는 만주로 되돌아가자고 말씀(북조선에서 사는 것도 마뜩잖았다.)하셔서 우리 집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또 조선전쟁 이후 북조선 복구 건설과 중국에서 3년간 연속 자연재해 시기 많은 조선족이 조선으로 건너갔지만, 우리 집만은 확고부동하게 중국에서 살았다.

그 시기 북조선으로 건너간 사람 대다수가 중국으로 다시 건너왔는데 그들은 조선이 야박하여 못 살겠다고 했다. 사실 60년대 북조선을 돌이켜보더라도 그렇다. 60년대 북조선 일 인당 GDP는 근 400불이고 중국은 170불이었다. 하지만 북조선에 갔던 조선족들 모두 조선이 먹고 사는 데는 중국보다 그리 나은 게 없다고 했다.

그리고 89년 처음으로 한국 충주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의 연고가 있는 외진 두메산골에 있는 고향 마을을 가보니 증조모가 고향에서 배를 곯으며 잠을 주무시지 못하였다는 얘기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어찌 보면 4천만 인구가 사는 흑룡강성의 면적보다 오분의 일밖에 안 되는 한국의 국토면적에서 5천만 인구가 살아가다 보니 치열한 삶의 경쟁구도 속에서 있는 듯싶다. 그것도 흑룡강의 평원 같은 지역이 아니라 국토의 삼분의 이는 산림 지역이다.

현재 한국 일 인당 GDP가 수치상으로 중국보다 대략 세 배지만, 조선족들이 볼(꼭 물질적인 것이 아닌) 때 ‘한국인들의 삶이 조선족보다 그리 나아 보이지 않는다’고 종종 얘기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얘기가 동감이 간다. 좁은 땅에 그것도 국토의 0.6%에 많은 인구가 집중된 현실도 그렇고 식량 공급 구조를 보더라도 전체 곡물 수요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 등 기타 여러 면에서 볼 때 돈 없는 서민의 삶은 꽤 각박하게 보이곤 한다. ◈



표자두
연변통보 2014-03-13

주: 본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치마끈

표아바이동문 충북 충주이군요.
좋은 고장입니다.
어른들께 듣기로는 소자는 충북 보은에서
1800년대 후반에 경북으로 왔답니다.
지금도 2년마다 묘사지내려 갑니다.^^


2014.03.13 

낙지

광복후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람이 불어 우리집도 고향으로 간다고
청진까지 나갔는데 3.8선이 가로막히여 고향으로 갈수가 없어서 다시
만주로 돌아왔는데 증조모의 주장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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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마 38선이 아니라 두만강을 못넘었을겝꾸마..
흑룡강쪽사람들 그래서 눌러산 사람들 많습찌~
1910년좌우면 일찍 나왔습찌


2014.03.13 

치마끈

한국은 70년대초 통일벼가 나오기까지는 쌀밥 구경이 힘들었죠.
제사때, 명절때나 쌀밥에 고등어 한덩어리 맞보는...

집도 60년대까지 초가집이 많았고,
70년대 초반에 쓸레트지붕, 기와지붕 따위로 바뀌었슴다.

한국의 5천만 인민들은 독하게 살았습니다.
아직도 노동시간은 세계 최장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14.03.13 

치마끈

소자의 윗대 어른세대들은 정말 고생을 많이하셨습니다.
일제시대와 동족상잔의 피비린내나는 6.25 난리통을 겪으시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주린배를 쥐고 자식들을 키우시느라고 생고생..

소자의 기억에도 저녁무렵이면
일하여가신 아버지께서 노임으로 밀가루 한포대를 지고
삽짝문으로 들어서시면

어머니께서 그 밀가리로 국수도 만들고 나물 듬북 넣어서
수제비를 만들어 자식들 입에 넣어주시던...

소자의 윗대어른들은 골병이 들어 대부분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2014.03.13 

잉걸

한국 사람들이 드넓은 만주와 연해주에 가가 살기 싫어서 안 사는기 아이다. 표옹이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염장을 지르고 있다 아이가. ^^

2014.03.13 


우리가족 직계친척들은 중국늦게오고 중국그닥재서 현재는 미국에 다시이민갓소 나도이제갈 확률이 대단히 높으니 표아바이 동북이나 잘지킵소

2014.03.13 

낙지

미국갔다 맞갔재무 다시 오오~

2014.03.13 


우리북조선친척들도 둘이나 영국갓소 원래 내력이 이런거같소

2014.03.13 


제네나 국가니 민족이니 잘지키오 난모르오

2014.03.13 

돔구장짓자

그 추운 허허벌판에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

201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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