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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총이라도 쏜다!
기사 입력 2016-03-27 15:09:35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다.” 그만큼 옛날에 평안감사는 정말 천국의 신선 같은 노란자위 직책이었다. 그건 북녘에 아리따운 평양기생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처럼 ‘남남북녀’란 말은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공감해왔던 얘기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지금은 그 공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참 많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생활수준의 격차가 당연한 것처럼 내려오던 전통까지 바꾸어놓았는가 보다.

그래 좋다. 이제 북한 여자가 아리땁다는 얘기는 이미 흘러간 지난 옛날얘기라고 해두자. 그럼 북한 여성들의 끈기나 인내, 생활력은 과연 어떨까. 또 가냘픈 남한 여자나 조금 드살이 센 연변 여자들보다 북한 여자들은 과연 어떨까.

“모란봉 클럽”에서 무게 43kg의 고사총탄갑을 드는 인민 여군 또는 무거운 60여kg 군장까지 거뜬히 짊어지고 미소를 띠는 간호장교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조선 여자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6.25 전쟁 때 북한 지역의 농사와 잡일은 대부분 여자가 했다고 한다. 밭갈이 일이든 폭탄 구덩이를 메우는 일이든, 여성들의 힘과 역할이 정말 대단했다고 한다. 북한의 수많은 이깔나무들이 중국으로 들어올 때도 중국 동풍차 운전기사들이 북한 여자 하면 엄지손가락을 척 쳐들었다.

“연변 여자들이 아무리 사무럽고 드살이 세도 조선 여자들에겐 안돼.” 기중기가 없는 북한에선 여성들이 목도채로 직접 이깔나무들을 어깨로 메어 동풍차에 실었다고 했다.

그렇게 드살이 센 북한 여자들도 조선족 기사에겐 애교를 떨며 살갑게 대했는데 그건 조선족 기사들이 국경해관을 건너갈 때 의자 밑에 사탕과자를 숨겨 넣고 가기 때문이다. 고생한다고 사탕과자를 꺼내주면 ‘아저씨! 아저씨!’ 하면서 그렇게 따르고 좋아하더란다.

북한 여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듣게 된 건 고난의 행군 시기가 막 시작된 그때였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국경의 조선족 마을에 와서 열흘간 삯일을 해 준 북한 아줌마가 집으로 돌아갈 때 조선족 주인집에서 상당의 쌀(25kg 달하는)을 한 자루 내 주고 거기에 여러 옷가지, 반찬, 먹거리 등의 물건까지 가득 싸주었다.

그러면서 주인은 “쌀을 더 주고 싶지만 여자의 몸으로 너무 힘들 것 같아 이것밖에 못 주겠다”라고 말을 건네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조선 아줌마가 덥석 하는 말, “정말 더 줄 수 있다면 50kg 주십시오. 지고 갈수 있습네다.” 하면서 간청했다.

주인은 그 말을 반신반의했지만 당사자가 원하니 그렇게 내어주면서도 긴가민가했다던가. 쌀 50kg의 무게 거기에 보따리 두 개. 그렇게 무거운 짐을 키도 작달막하고 가녀린 조선 아줌마가 어떻게 길도 없는 산 몇 개를 타고 넘어 집까지 갈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근심이었다. 하지만 그 아줌마는 그 쌀 백근을 지고 무거운 물건 보따리 두 개를 들고 산 다섯 개를 넘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인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렇게 생존본능은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자기 가족이 굶고 있는 조선 여성들에게 100kg 짜리 쌀마대를 내주면서 지고 가라고 하면 아마 그대로 짊어질 여성이 참 많다.  

역으로 얘기하자면 북한 여성들의 삶은 안쓰럽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북한 지도자 김정은 동지가 고사총 중대를 직접 시찰하면서 그들의 대공 사격훈련을 관람했는데 여군인들이 긴장했는지, 아니면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인지 표적을 하나도 맞히지 못 했다. 김정은이 씁쓸히 웃으면서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은 집에서 빨래나 해야겠구먼!”

피는 못 속이는 것인가.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여성 고사포 부대를 시찰하면서 대공포 사격을 관람한 후 역시 “여자들은 집에서 애나 낳고 키워야겠구먼” 했다던가. 부전자전이 따로 없다. 그렇게 집에서 애 낳고 빨래나 해야 하는 여자들까지 군대로 끌어들여 고생시키는 김부자는 스스로 자신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았는가 보다.

할아버지 김일성 최고사령관 때도 여군인에 대한 일화가 하나 있다. 조선전쟁에서 수많은 남자가 죽거나 다치자 어쩔 수 없이 여자들에게 총을 쥐여주고 중요시설물을 지키게 했는데 처음에는 도저히 미덥지 않아 그냥 목총을 만들어 하나씩 쥐여주었다.

그리고 어느 달빛도 없는 깜깜한 밤에 여군인들이 지키는 창고 근처로 경호원들 함께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는데 보초를 서던 여군인들이 바싹 긴장해 “누구야! 거기 제자리에 섯!!”이라는 새된 소리를 질렀다. 실탄을 쏠 수 없는 나무 총인 걸 빤히 아는 김일성은 여군인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려고 계속 성큼성큼 소초로 걸어갔다. 그러자 다급해진 여군인이 이렇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서라! 진짜 움직이면 목총이라도 쏜다!”

김일성이 기가 막혀서 껄껄 웃으면서 “여자는 원래 집에서 애 낳고 밥하고 빨래해야 하는데…” 했다던가. 자신들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목총임을 침입자에게 알려주었던 그 여군인은 자신이 원하는 ‘집으로 돌아가 밥하고 빨래하며 애를 낳아 키웠는지’는 모를 일이다.

언제였던가. 엄동설한에 북한에 한번 갔었던 적이 있는데 윗동네 아줌마가 오라고 해서 갔더니 여자 두 명이 우리 앞에 수줍게 마주 섰다. 한 명은 아줌마, 다른 한 명은 스물다섯 처녀였다. 조금 전 ‘노루 두 마리가 있다’는 아줌마의 전언을 떠올리면서 ‘이 두 여자가 노루 임자인가 보구나!’하면서 지레짐작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녀들은 바로 우리가 잡아먹으려는 ‘노루’였다. 그래서 윗동네 아줌마를 눈이 쑥 빠지게 호되게 혼내고 닦달하니 함께 갔던 친구가 슬그머니 부탁했다고 실토하는 것이었다. 어깨가 축 처져서 내려가는 그녀들이 불쌍해 호주머니에 있는 잔돈 150원을 꺼내 나누어 주라고 했다. 순간,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중간에서 가로채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엄습했다.

광복 후 수십 년… 이밥에 소고기국을 말아먹으면서 비단옷을 휘감고 기와집에서 사는 지상낙원은 몰라도 강냉이라도 배불리 먹고 땔나무에 뜨듯하게 사는 그런 생활도 못하고 있으니 과연 일제시대보다도 못한 지옥이 아닌가 싶었다.

주인집에서 이튿날 속이 더부룩하여 마당 울바자 안의 한켠에 수수깡을 이어 만든 변소로 갔는데 주체사상탑처럼 뾰족하게 쌓인 똥이 밑구녕을 찌르는 같아 감히 편하게 앉지는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엉덩이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 낮은 변소 안에 잔뜩 웅크리고 어정쩡하게 있는데 휘몰아치는 삭풍에 엉덩이에 서리가 끼는 듯했다. 일을 다 보고 뒤처리를 하려다 보니 종이가 없었다. 팬티를 벗어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그 집의 아이를 불렀다. 그런데 아이가 달려 나오더니 옆에 데룽데룽 달아놓은 강냉이 껍데기로 뒤처리를 하라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너 장난하냐? 당장 종이를 가져와!” 했더니 한참 후 아이가 눈치를 흘끔흘끔 살피면서 걸어오더니 품 속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주었다. 그것을 찢어 뒤처리를 하면서 삭풍에 저절로 펄럭펄럭 젖혀지는 그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책장 귀퉁이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세기와 더불어…….”

언젠가 연길 신화서점에서 스쳐지나면서 보았던 장군님의 로작 아니던가?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만주벌판에서 말 타고 개 장수하면서 일본군을 무찔렀다는 그 전설의 얘기들……. 방에 들어온 후 그래도 조금 걱정이 되어 “저 내가 뒤처리한 건 다시 뒤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도 괜찮으냐” 라고 물으니 그 집 아줌마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쓰레받기를 들고나가 담아 오더니 부엌 아궁이에 쓸어 넣었다.

그날 낮에는 북한 사람들과 잠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 데, 그들은 주변에 여러 사람이 있어 그런 것인지 듣기 좋은 소리만 입에 올렸다. “장군님(김정일)께서 이번에 다 들어오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냥 먹고살기 위해 건너간 사람은 봐준다오.” “우리 인민이 단 한 사람이라도 외국에 있는 한 회갑을 쇠지 않겠다고 하셨다오.” 어느 한 사람은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우리 장군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대. 우리 인민은 참으로 선량하고 착한 인민들입니다. 우리나라 형편이 이렇게 어렵고 살림이 어려워도 수령과 지도자에 단 한마디 원망도 안 하니 말입니다.”

북한에 가서 그렇게 입조심하고 정치에 관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나도 그 순간만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피식 웃어버렸다. 목젖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참았다. 사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말하면 그냥 모가지 뎅강 아니면 아오지행인데…….’ 하지만 그런 말을 어찌 입 밖에 낼 수 있을까. 그냥 장난으로 한 말에도 발끈하는 것을….

다음과 같은 우스운 일도 있다. 한 조선족 남성이 조선에 갔다가 겪은 이야기다. 그는 자기가 림장에서 꽤 잘 나간 사람인데 어느 날 조선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내가 우리 림장에서 ‘창장’이였소.”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빙 둘러선 그곳에 조선 사람들이 그 ‘창장’이란 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창장’이란 게 무슨 직책인가 반문했다던가. 창장은 조선말로 번역하면 ‘림산 작업소 지배인’이라고 하면 딱 적당할 듯한데 이 조선족은 그것을 모르다 보니 잠깐 궁리하다 림장의 최고 직책이란 걸 설명하기 위해서 “난 우리 림장의 지도자요!” 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주변의 조선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조선족 남성은 ‘조선 사람들이 이제야 알아듣고 자기의 대단함을 깨달았는가 보다’ 하면서 흐뭇함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데 순간 한 조선 사람이 얼굴을 붉히면서 이렇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림장이 그리 커서 지도자가 다 있어?!” 그랬다. 당연했다. 조선 사람들에게 지도자란 한 나라의 수령이고 영도자이며 최고 존엄을 지칭하고 상징하는 의미인데 어느 쪼그마만 림장의 조선족이 함부로 들먹일 직책이 아닌 것이었다.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던 그 얘기… 하지만 지금도 자그마한 조선반도, 그 절반의 땅에 김씨 3대가 아직도 지도자 놀이만 계속 반복하고 있어 우리 민족 백성들은 고난과 고생의 대물림이 이어지고 있다. 가냘프고 연약한 여자들에게 더는 고사총과 자동소총을 쥐여주어 엄동설한에 고생시키지 말고 집으로 돌려보내 애 낳고, 밥하고, 빨래하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





올챙이
연변통보 201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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