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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락” 흔적이 점점 사라지는 조선동네
기사 입력 2013-11-08 19:17:54  

이미 페교된 보락보진조선족소학교의 옛터.

ㅡ환인만족자치현 보락보진 보락보촌을 찾아서

환인만족자치현 보락보진 보락보(普樂堡)촌을 찾아가는 길에 이미 작고한 리영훈선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선생은 환인현민위 부주임으로 사업하던 시기는 차치하고 퇴직후에도 환인현조선족력사연구회(2006년 환인현조선민족사학연구회로 개칭)를 설립하고 《환인현조선족지》, 《조선족성씨만담》, 《조선족보연구》 등 책자를 펴내는 한편 본사의 특약기자로 민족문화사업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분이다.

17년전 선생과 함께 처음으로 보락보촌을 찾을 때다. 달리는 뻐스안에서 선생은 보락보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지금도 촌명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기억속에 남아있다. 넓을 보(普)자, 즐거울 락(樂)자, 작은 성 보(堡)자 세 한자로 구성된 보락보촌에 대해 “다같이 즐겁게 사는 동네”라며 나름대로 풀어본것이라고 “다같이 즐겁게 사는 동네” 정말 마음에 드는 해석이다.

보락보촌은 원래 보락보조선족진에 귀속된 마을이다. 소개에 따르면 현정부는 1985년 보락보진에 조선족들이 상대적으로 집중돼있는 점을 감안, 성정부의 비준을 거쳐 보락보조선족진을 설립하였댔으나 17년만인 2002년에 “조선족” 세 글자를 떼내야 하는 비운을 맞았다. 그만큼 보락보진에서도 조선족이 가장 많았던 이 동네의 인구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는것이다.

진정부광장에 차를 세우고 미리 약속한 정광식(72세)옹과 전화련락을 취했다. 보락보진조선족소학교에서 근 30년간 교장사업을 하다 정년퇴직한 정광식선생은 70세를 넘긴 로인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전거를 타고 금시 달려왔다. 관전태생인 선생은 열살나던 해인 1952년에 이 마을로 이사왔다. 1963년 환인현완전중학교(한족학교)를 졸업하고 보락보진조선족소학교 교원으로 배치받아 1999년에 현성조선족학교에 통합될 때까지 줄곧 교육사업에 종사했던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 마을로 이사오며 학교에 입학할 당시 학생수가 168명에 달했고 교원으로 배치받아온 1963년에도 140명을 웃돌았다. 1990년대초부터 학생수가 급감하기 시작해 1999년 페교 당시는 학생 56명에 교원 13명이였다.

정광식선생은 이 동네가 생겨난 년도에 대해서 딱히 모르고있었으나 대략 추정할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기억하고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였지만 1963년 교육사업에 종사하면서부터 자주 만나군 하던 손씨 로인이 있었다. 손로인은 술 한잔 마시고나면 자신이 스무살나던 해 관전 하로하에서 이곳에 와 처음으로 정착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꺼냈다는것, 당시 그의 년세가 60세를 웃돌았다니 그분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동네 력사는 90년이 넘는다는 얘기가 된다. 또 하나, 딱히 어느해인지는 모르나 정룡달이란 사람은 이 동네서 사는 어머니를 모시러 한국에서 들어왔다가 길이 막혀 눌러앉아 생활하다 세상떴고 박해수씨도 아버지를 모시러 한국에서 들어왔다가 역시 이 동네서 생을 마감했다는것이다. 이 동네의 유구한 력사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오랜 세월을 지나며 마을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보락”의 흔적도 점점 사라지고있다. 1970년대전까지만 해도 20여년간 시종 8, 90호를 유지했다가 1990년대 50호 좌우로 급감세를 보여 현재 호적인구는 30호다. 허나 실제 남아 생활하고있는 촌민은 20명에 불과하다. 그중 70세 이상이 6명이고 60세와 50세 이상이 각각 4명이며 40대가 6명이다.

사람이 없으면 동네는 빈 껍질에 불과하다. 정선생은 다행히 수전 400무와 산장 등 촌민들의 기본 생활기반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며 호적을 남겨두고 “외지”에 나가있는 촌민들이 귀촌하기를 기다렸다.



김창영기자
료녕신문 201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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