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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북평시 당위원회 주요간부로 활동
기사 입력 2006-10-07 17:30:08  

북경시 당위원회 조직사를 펼치면 김산이 류청화라는 이름으로 1929년 5월부터 중국공산당 북평시 당위원회 조직부장으로 사업하였다는 기재가 있다.  

이 시기 김산은 북경대학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을 지도하였다. 1929년 3월 김산은 북평녀자사범대학의 당지부 활동을 지도하였다. 그리고 연경대학(燕京大学, 지금의 북경대학), 공과대학의 당사업을 지도하였다. 1930년 4월중순 북평시 당위원회에서는 '5.1'국제로동절 경축대회를 열기로 결정하였다. 북평시 당위원회 지도성원으로서의 김산은 선후로 여러 대학을 다니면서 비밀리에 당원회의를 소집하고 적극 준비하였다. 여러 대학들에서는 학생시위를 단행하고 대회연설을 하며 선전물과 표어를 만들면서 경축대회를 준비하였다.  

김산이 자취를 남긴 1930년대 북경대학은 지금의 북경시 '5.4'대가(五四大街) 29번지에 위치해 있다. 2003년 9월 19일 답사팀은 김산의 아들 고영광씨를 만나 함께 김산이 발자취를 남긴곳을 찾아 다녔다. 원 국가경제위원회 기술국 부국장으로 사업했던 고영광씨는 매우 검소하고 성격이 강의한 사람이였다. 걸음이 날렵하고 말수가 적은 그는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고 늘 산책을 하며 또한 수영을 무척 즐긴다고 했다. 정열에 찬 두 눈과 검붉은 피부색을 가진 그의 모습에서 우리의 혁명가 김산이 살아 움직이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북경대학 옛터에는 당시 학교청사로 사용되였던 4층건물이 남아있다. 붉은 벽돌과 붉은 나무로 된 창틀, 문틀로 하여 전반 건물이 붉은색을 띠였기에 사람들은 홍루(红楼)라고 부른다. 1898년에 이곳에는 경사대학당이 있었으며 1912년부터 북경대학으로 고쳤다. 홍루는 1916년에 축조된 공(工)자형 건물이다. '5.4'운동시기 리대소와 진독수가 북경대학에서 교편을 잡았고 모택동도 이곳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므로 이곳은 중국에서 공산주의를 전파하던 요람이기도 하다. 1930년대 김산은 북경의 학생운동을 령도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많이 활동하였다. 그는 북경 대학생들의 '5.1'절 기념활동을 조직하기 위해 이곳에서 학생대표를 만나 회의를 소집하였다.  

1930년 4월 20일에 '5.1'국제로동절 경축행사를 위한 준비회의가 북평청년기독교회 강당에서 진행되였다. 홍루에서 남쪽으로 얼마간 걸으면 동단북대가에 이른다. 그곳에는 중국풍과 융합된 서양식 기독교회건물이 있다. 기독교청년들이 많이 활동하던 이곳이 바로 북평청년기독교회 옛터이다. 1930년 조선인 기독교 신자들도 이곳에서 례배를 보았다. 김산은 이곳에서 기념대회 준비회의를 열었다. 그는 밀정과 경찰들의 습격을 막기 위해 구체적인 보안사업을 포치하고 회의를 열었다. 이튿날 회의에는 김산의 련인이였던 제숙용도 참가하였는데 경찰들의 습격을 받았다. 학생들은 미리 준비해둔 동전과 석회가루를 뿌리면서 경찰에 대항하였고 경찰들이 눈을 뜨지 못하는 사이에 대부분 빠져나갔다.

이해 김산은 동북에 파견되여 조선공산당 만주총국과 중국공산당 만주성위를 찾았다. 김산은 조선혁명청년동맹 대표의 신분으로 길림에서 길림성 각지 조선공산당 각파 대표좌담회를 조직하였다. 회의에서는 조선인 농부들을 이끌어 중국 농민과 함께 중국 통치계급에 대항하는 농민투쟁을 진행한다는 새로운 로선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조선인, 중국인 농민동맹을 조직하였다. 김산의 주장은 80여명 대표들의 심금을 울려주었고 그들의 정치적 각성을 높여주었다. 개인적인 분쟁만 하던 사람들은 협조와 단결 정신을 고양하게 되였으며 명확한 행동방향을 세우게 되였다. 동북에서 김산은 또 단동의 당조직을 발전시켜 7명밖에 안되던 당원들을 20명으로 확대하여 지하당조직을 만들었다.

동북에서 임무를 마치고 북평에 돌아온 김산은 전부터 알고있던 중국의 녀혁명가를 사랑하게 되였다. 김산이 '아리랑'회억록에서 류령(刘铃)이라고 밝힌 그녀의 실명은 제숙용이다. 제숙용은 리대소가 발전시킨 진보적인 혁명가로서 당시 북평녀자사범학교에서 지하활동을 하고있었다. 김산은 한차례 비밀회의에서 그녀를 알게 되였고 그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였다. 두 혁명가는 서로 의지하면서 사랑을 나누었고 또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답사를 시작하던 2003년 9월 15일 답사팀은 향산공원부근에서 김산이 맑스레닌주의리론을 가르치던 곳을 찾아보았다. 우리는 북경시 향산 남영 53번지의 낡은 가옥앞에 멈춰섰다. 기재에는 서산양황기 남영 13번지로 기록되여있지만 지금의 향산 남영 53번지가 바로 서산양황기 남영 13번지이다.

1930년 봄 중국공산당 북평시위원회에서는 이곳에 당원강습소를 세웠다. 김산과 그의 련인 제숙용은 함께 강습반에서 당의 기초지식과 맑스주의리론을 강의하였다. 강습반에서는 조진중, 양홍포, 류정재, 방성오 등 많은 우수한 중국인 공산당원을 양성해냈다.

1930년 김산은 또 염광이란 이름으로 소설 '기이한 무기(奇怪的武器)'를 발표하였다. 중문 2, 3만자로 된 이 단편소설은 조선의렬단 단원 오성륜과 리봉창의 의거를 소설화한 작품으로서 그해에 상해에서 출판되였다

흑룡강신문 200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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