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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향 풍기는 시골에 살어리랏다
기사 입력 2012-10-12 14:58:19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 삼합진 북흥촌의 어제와 오늘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가지를 벗어나 30분간 내내 동쪽으로 달리던 승용차가 두만강을 만나 남쪽으로 핸들을 꺾어 몇분간 달리니 강역마을인 북흥촌 천수포(泉水浦)에 들어선다. 마을입구에서 차에서 내리니 싱그러운 솔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과연 '송이의 고향'이란 미명이 명불허전이다.

세월의 풍진을 꿋꿋이 이겨낸 백년가옥

고즈넉한 천수포마을 한복판에 고색이 창연한 함경북도풍의 고택 한채가 자리잡고있다. 세멘트로 지은 도시의 아파트도 30년이 지나면 볼품없이 변하는데 이 전통팔간기와집만은 파란만장한 세월을 비껴간듯 문짝 하나 비틀어진 곳이 없이 름름한 자태를 뽐낸다.

마침 이 전통가옥의 주인인 량기현(1933년생, 80세)부부가 3간으로 된 퇴마루에 앉아 한낮의 해볕을 즐기고있었다.

량기현로인은 조선 황해도 태생으로 1935년, 3살때 부모님의 등에 업혀 천수포에 이사왔다고 한다. 그때 벌써 이 전통기와집이 있었는데 당시 주인은 문씨였고 이 가옥은 문씨의 할아버지가 지은것이라고 한다.

가근방에서 소문난 갑부인 문씨할아버지는 고대광실에 못지 않은 팔간기와집을 짓기 위하여 평양으로부터 목수를 청해오고 목재, 기와를 비롯한 상등재료를 엄선해서 사용했다. 지붕은 우미한 합각지붕이고 내부구조는 정지간과 부엌이 통칸으로 되고 정지간서쪽으로 아래방, 안방, 웃방, 고방으로 되여있다.

광복을 맞아 문씨네는 부농이란 계급성분을 받았고 정치폭풍이 거세지자 어느날 밤 온 가족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주인이 떠난 팔간기와집은 마을의 공동재산으로 되였는데 력사의 변천에 따라 마을의 공동활동실로 사용되다가 후에는 집체식당으로 사용되였다. 1961년에 촌에서 이 고택을 처분하게 되였는데 당시 량기현로인은 어려운 생활형편에서도 600원이란 거금을 내고 이 가옥을 샀다. 1982년 농촌호도거리가 실시되면서 마을을 단위로 하는 문화체육활동이 피페해지면서 이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량기현로인은 상급부문의 지지하에 자기의 저택에 농촌가정문화실을 꾸렸다. 량기현내외는 마을에서 맨처음으로 컬러TV를 샀고 또 향문화소의 도움으로 록음기, 새장구, 퉁소, 손풍금 등 악기와 오락도구를 마련하고 신문과 잡지를 주문했으며 마당에 쌍봉, 철봉대, 탁구판, 배구장을 갖춰놓아 명실공히 마을사람들의 쉼터로, 문화활동실로 되게 했다. 이러한 공로로 량기현가정은 자치주정부로부터 '모범가정문화실', 중화전국체육총회, 중화전국총공회로부터 '전국모범체육가정'이란 아름찬 영예를 받아안기도 했다.

북흥촌의 어제와 오늘

1870년을 전후하여 두만강을 건너온 조선 과경민들이 삼합에 이주, 개발하기 시작했다. 1904년에 청나라 통치계급은 조선이민을 잘 관할하기 위하여 두만강안에 2개 보(堡)를 설치했는데 삼합진은 화룡현 수원보(绥远堡)에 속했으며 당시 북흥촌은 무덕(茂德)이라 불렸다.

기억력이 뛰여난 량기현로인은 지나온 마을의 력사를 손금보듯이 기억하고있었는데 가슴을 조이는 무훈담까지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에 북흥해관이 있어 촌민들은 배를 타고 조선 회령에 가 소금, 비누, 옷, 성냥 같은 생활용품들을 사오기도 했습니다. 나는 북흥촌소학교를 졸업한후 북흥촌 민병중대에 가입했습니다. 1950년 10월 20일, 북흥촌에 거주하고있는 지주아들 김학봉이 조선 회령에 있는 ‘남조선’특무들과 결탁하여 각종 무기를 들고 북흥촌민병중대부를 습격했습니다. 그자들은 겨끔내기로 무기를 내놓으라 호통쳤습니다. 포위당한 우리 민병들은 영용하게 저항하여 적들을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마을청년 리원오가 총탄에 맞아 희생되였습니다. 11월 중순부터 옹근 보름동안 미제국주의자들의 전투기가 삼합일대 상공에 침입해 기총으로 미친듯이 소사하고 농가와 학교를 폭격하였습니다.”

량기현로인은 살기 좋고 인심 좋은 북흥촌을 평생 떠나지 않았다고 하면서 북흥촌은 일찍 1959년에 주은래총리가 서명하고 국무원에서 발급한 '전국위생촌', '토지개량모범촌'이란 상장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량기현로인은 송이버섯철이면 이 마을에서 거동이 불편한 로인들만 내놓고는 모두 산에 올라 송이버섯을 뜯어 수입을 올리는데 웬만하면 2∼3만원, 많게는 7∼8만원이란 수입을 올리는 가정도 있다고 했다.

마을길에 나서도 과연 인적을 찾아볼수 없다. 마을은 온통 짙푸른 록음속에 묻혀있는데 집집마다 파란색, 하얀색의 양철바자를 둘러 마을은 더구나 포근한 감을 준다. 오후 1시를 넘겨서야 송이버섯을 따러 산에 올랐던 북흥촌 당지부서기 겸 촌장인 김왕재가 돌아왔다. 김왕재서기는 북흥촌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북흥촌은 청일색 조선족촌으로 삼합진정부로부터 북쪽으로 8킬로미터 되는 곳, 두만강서안에 위치해있고 7개 자연툰, 6개 촌민소조로 이루어졌는데 451세대, 1260여명의 촌민이 거주하고있습니다. 경작지면적은 395헥타르인데 그중 수전면적이 134헥타르, 한전면적이 261헥타르이며 그외 70헥타르에 달하는 과수를 재배하고있습니다. 몇년간 북흥촌에서는 양돈장 1호, 철분가공기업 3호를 비롯한 4호의 기업을 인입하였는데 집체경제가 전례없이 장대해졌습니다.”

김왕재서기는 기자를 북흥양돈장으로 안내했다. 양돈장 주인 김대석은 원래 삼합진정부 무장부장으로 일하다가 2008년에 고향에 돌아와 양돈장을 꾸리고있는데 현재 종자돼지 70마리, 상품고기돼지 150마리를 사양하고있었다. 현재 모든 수입을 확대재생산에 투입하고있는데 이미 건설한 양돈장건축면적만도 1500평방메터에 달하며 올해에는 300평방메터에 달하는 늪가스를 건설하였다.

사회주의 새농촌건설이 진척되면서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몰라보게 변한 북흥촌, 가정마다 언녕 벽돌기와집에서 살고있으며 유선텔레비젼보급률, 전화보급률이 98%에 달한다니 아무리 지나가는 과객이로서니 가슴이 뿌듯하지 않을수 없었다.

송이의 진한 향기에 한번 취하고 촌민들의 복된 웃음꽃향기에 다시한번 취하고나니 풍어기를 날리며 항구로 돌아오는 어부의 심정처럼 가슴은 부풀어올랐다.


글/사진 김인덕 기자
연변일보 201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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