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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아리랑예술단 무용감독 이금양 씨
기사 입력 2013-11-11 23:32:16  

"무용신을 다시 신게 되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고 감격스러워요"

7년전 한국에 들어올 땍 ㅣ념 삼아 가져온 무용신을 다시 신고 춤을 추게된 오십칠세의 무용수 이금양씨는 최근 다시 10대 시절 멋진 무용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던 소녀시절로 돌아갔다.

가리봉동 중국동포교회(김해성 목사)가 중국동포아리랑예술단을 위해 마련해준 연습실, 이금양씨는 오는 11월 17일 구로구민회관 문화공연에서 춤 독무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봐도 믿어지지가 않아요. 한국에 올때는 다시 무대에 서서 춤을 출거란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거든요."

이금양씨는 중국 길림성 통화시 출신으로 소학교 시절 영화속에서 나오는 발레무용을 보고 깊은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기회만 있으면 발레리나처럼 발끝으로 종종 걸음질을 하며 춤을 따라했다.

"부모님과 가족 이웃사람들이 그런 나를 귀엽게 봐주었고, 내가 춤을 추는데 재주가 있다고 봐주었죠."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춤과 무용은 어느 때보다도 중국사회에서 보편화되었고, 집단무가 성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분위기에 따라 중학교에 올라간 그녀는 본격적으로 무용수의 길을 갔고, 예술단에 들어갔다. 예술단은 방학기간에는 3,40명의 인원을 동원해 이곳 저곳 군부대를 돌며 위문공연을 펼쳤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전업 무용수로 활동, 어느 강철공장에서는 운영하는 예술단에 들어가 월급을 받으며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정규직으로 해주지 않아 서 너 군데 예술단으로 옮겨다니기도 하고 학교에서 무용교사로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 그녀는 북경에 화장품 가게를 차리고 북경생활을 15년 넘게 하다 북경에서도 교회에서 무용봉사활동을 펼치며 무용수로서의 생활을 계속되었다. 그러나 7년전 한국에 들어갈 결심을 하고부터는 10세에서 50세까지 40년동안 생활의 전부나 다름없던 무용을 그만두게 되었다.

"무용복이며, 여러 켤레의 무용신발을 정리하면서, 그래도 기념으로 무용신발 하나 정도는 들고가야지 하고 무용신을 들고와 보물처럼 간직하고 왔지요."

이금양씨는 무용수로 걸어왔던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씨는 한국에 와서 식당에서 일만 하였다. 그리고 교회도 일반 한국인들이 다니는 서울의 큰 교회를 다니다가, 중국동포교회로 오게 된 것은 올해 3월쯤이라고 한다.

그러다 최근 중국동포아리랑예술단에서 활동할 무용수를 찾는다는 김해성 목사님의 안내를 듣게 되었지만, 선뜻 나설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이금양씨를 잘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예술단 무용 감독이 되어 평일에는 식당에서 일을 하고 일요일에는 중국동포들로 구성된 무용단을 지도하는 무용교사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묻는 질문에 그녀는 "무용신을 다시 신게 되었다니 감격스럽지요"라고 말한다. 그의 소녀적 꿈이 다시 펼쳐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번 11월 17일 구로구민회관에서 펼치는 공연에서는 북한노래 '꽃피는 우리마을' 곡에 맞춘 창작무용과 부채춤, 그리고 그녀의 독무로는 한국가요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에 맞춰 훔을 출 예정이다.

다시 무용수가 된 이금량씨는 "무대만 올라가면 행복감이 느껴지고, 나만의 세상이 펼쳐지는 듯하다"며 소녀처럼 좋아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 돈을 벌면 중국에 무용학원을 만들어서 어린이들을 지도해 우수한 무용수로 양성하고 싶다며 오십대 후반에 다시 피어나는 꿈도 들려준다.  



김경록 기자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04호 2013년 11월 11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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