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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기지 밀산에 사랑을 심다
기사 입력 2013-09-14 20:20:30  

휴먼인러브 장학금 수여식이 끝나고, 김영후 이사장, 이일선 밀산조중 교장과 학생들이 함께 단체사진을 남겼다.
(사)휴먼인러브 밀산조중에 장학금 전달 항일독립운동기지 밀산에 사랑을 심다

김영후 이사장 “독입운동가 후예들에게 희망 날개 달아주고파”
밀산조중 빈곤학생 31명에게 장학금 지속적인 지원 약속


“휴먼인러브(Human in Love)의미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듭니다. 우리는 한 핏줄, 한 동포입니다. 이 지역(밀산)은 많은 독립투사들이 활동한 곳이고, 그런 희생으로 한국이 독립하고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린 여러분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빚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밀산이라는 지역은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일 수 있지만, 이 지역은 국제화시대를 맞이하여 세계의 평화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는 인재가 배출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9월 9일 밀산조선족중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31명 장학금 수여식에서 휴먼인러브 김영후 이사장은 힘주어 말했다. 학생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인류애를 바탕으로 국내외 재난발생 시 긴급구조와 구호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사)휴먼인러브(이사장 김영후)가 지난 9월 7일 중국 흑룡강성 밀산시를 방문해 항일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한 유적지를 돌아보고, 또 9일에는 밀산시조선족중학교를 방문해 빈곤학생 31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수여식 행사를 가진 것이다. 김영후 이사장은 장학금 수여에 앞서 “항일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한 지역을 돌아보며 인상 깊었고, 죄송스러웠다”고 방문소감을 밝히고 “장학금 지원 사업은 일시적인 행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펼쳐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거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일시적인 지원이 아님을 분명히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이번 장학지원 사업은, 아이티, 필리핀, 라오스, 인도네시아, 태국 등 재난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지원사업을 펼처오던 <휴먼인러브>가 올초부터 과거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지역의 독립운동가 후예라 할 수 있는 조선족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원사업을 펼치겠다는 뜻을 갖고 <동포세계신문>에 적합한 곳을 추천해 줄 것을 의뢰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밀산지역은 분명 <휴먼인러브>의 뜻에 부합되는 곳이었다.


100년전 밀산의 한흥동 한국독립운동 전초기지

밀산시는 2007년 말 밀산조선족백년사를 발간하여, 밀산시 현황과 조선족의 이주역사 뿐만 아니라, 밀산지역에서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도 기록해 놓고 있다. 백년사에 따르면 일제강점시기였던 1909년 말 민족독립운동가들은 러시아와 접경하고 있는 홍개호 변 붕밀산 아래 비옥한 토지를 사들여 한국독립운동기지인 한흥동(한국을 부흥한다는 뜻을 지닌 마을)을 설립하고 첫 한국독립운동기지로 살았다는 것이다.

밀산조선족백년사 편찬위원회 부주임으로 활동한 맹고군 전 밀산시 부시장과 채명군 밀산시민족종교사무국 국장은 8일 밀산시를 방문한 휴먼인러브 김영후 이사장 일행을 인솔해 십리와, 홍개호, 한흥동, 당벽진을 함께 돌며 지역소개를 해주었다.


“조선민족의 항일독립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밀산의 한흥동, 용정의 서전서숙, 상해 임시정부를 알아야 한다”

맹고군 전 부시장의 말이다. 그는 지금은 거의 자취가 사라졌지만 기록상에 남아있고 발굴가치가 높은 밀산의 한흥동을 높이 추켜세웠다. 밀산 한흥동은 1919년 4월 11일 설립된 상해임시정부보다 10년 먼저 설립된 항일독립운동의 전초기지였다는 것이다. 이를 잘 말해주는 듯 밀산시에는 안창호, 이상설, 이승희, 서일 장군, 홍범도 장군 등 항일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발굴가치가 높은 유적지들이 있다. 따라서 최근래 들러 독립운동기지로서의 밀산지역이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교육을 중시하여 1913년 한흥동에 밀산무관학교와 조선인소학교를 세우고, 십리와 당백진에도 조선인소학교를 설립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전 얘기다.


한국바람으로 위기에 놓인 밀산 조선족학교에 희망을

그런데 현재 밀산의 조선족 학교는 위기를 맡고 있다. 17개 조선족촌마다 있었던 소학교는 거의 다 문을 닫았고 밀산시내에 소학교와 6년제 중학교만 남아있다. 중학교 학생수는 200여명 수준, 밀산 조선족학교의 학생수 감소는 한국 출국바람과 함께 한국 기업이 진출한 중국내 도시로 조선족이 이주하는 등 조선족 거주환경이 바뀌면서 생긴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이다.

밀산조중 이일선 교장은 “2007년부터 급격히 줄더니 현재 해마다 20~30명씩 학생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1951년 제1회 졸업생을 낸 밀산조중은 당시 10개의 학년, 반급에 561명의 학생과 40명의 교직원이 있었다. 1976년 밀산 전체 조선족 학생수는 4천여명을 넘었다.

현재 밀산 조선족학교가 겪는 어려움은 학생수 급감으로 인해 정부차원이 줄고, 학교시설, 교습자재 부족 현상에다가 산재해 있던 학교가 하나로 통폐합되면서 비용 문제 때문에 가까운 한족학교로 진학하는 조선족학생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조선족 교사 확보도 쉽지 않다. 현재 밀산조중은 학생 203명에 교사는 65명이다. 학교는 해마다 20만위안(약 4천만원)가량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밀산조선족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버텨가고 있다고 이일선 교장은 말한다.

밀산지역의 동포들은 지역에 대한 긍지와 독립운동가들이 갖고 있을 법한 민족정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교훈과 운동장 벽면에 ‘억세게 알차게 끈질기게’라고 큰 글씨로 써있는 학교분위기, 초롱초롱한 학생들 눈동자 속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단, 안타까운 것은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적지않다는 점이다. 꿈을 갖고 살고 싶지만, 꿈을 갖고 살기 어려운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들의 마음 역시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번 <휴먼인러브>의 장학지원 사업을 통해 희망이 생긴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31명의 장학생을 대표해 왕경 학생(초중2년)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며” <휴먼인러브>에 감사글을 또박또박 읽었다. / 김경록 기자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00호 2013년 9월 14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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