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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을 위한 긴 타령
기사 입력 2014-04-09 21:34:44  

- 창작후기를 대신하여

1
지난 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가 빚은 이슈는 단편작가로는 첫 노벨상 수상이라는 기록이였다. 그로서 서점가들은 요즘 단편소설 읽기가 탄력을 얻고 있다고한다.

서점가와 인터넷을 보면 소설작품들이 그야말로 홍수를 이룬다. 장르나 작가들이 천문수자처럼 많고 그 수준여하가 천차만별이다. 그렇게 풍성한 책의 향연앞에서 어떻게 옥석을 가려 낼가? 독자로서는 혼란에 빠질때가 많다.

그렇다면 이런 접근은 어떨까? 아주 짧은 시간내에 볼수 있는 작품, 그로서 작품의 진미를 재빨리 맛볼수 있는 작품, 그렇다면 짧은 소설이 그 적격이라고 본다.

단편이냐, 장편이냐 아니면 중편이냐하는 쟝르의 분량을 두고 창작의 우렬을 편가름하는것은 어리석은 짓거리일터지만 오래동안 창작실천을 해오면서 짧은 소설에 대한 매력을 때때로 느끼게 된다.

짧은 소설 쟝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부름말이 있다.

초단편소설, 미니소설, 미형소설, 콩트(conte), 혹은 장편소설(掌篇小說), 엽편소설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장편소설(掌篇小說)은 길다는 장(长)자가 아니라 손바닥 장(掌)으로서 손바닥 같은 정도의 량을 말하며, “엽편소설(叶篇小說)'이란 나무잎만한 크기라는 뜻, 개념도 장편(掌篇)소설과 동일한것으로 볼수 있다.

요사이 중국문단에서는 또 “미(微)소설”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냈다. 위챗(핸드폰등 정보통신의 메신저)으로 볼수 있는 몇백자 소설로서 위챗(微信)을 말하는 중국어의 첫 단어를 따서 만든 용어이다. 쉽게 핸드폰 소설이라 리해해 두면 된다. 하지만 핸드폰 소설이라 해서 작난에 그치는 글장난이 아니다. 모든 군더더기를 뺀 짤막한 이야기들이라 부담 없이 읽기에 좋고 그 속에 담긴 주제의식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미소설”의 가장 현요한 특징은 현실에 접근하고 사회현실을 반영하며 시대풍모를 보여주는 글들이다.

중국의 위챗 가입자가 3억이라니 보수적으로 집계해봐도 그 독자수는 실로 어마어마한 수자이다.

이렇게 부름법들이 다양하지만 한마디로 촌극(寸剧) 즉 지극히 짧은 소설을 가리킨다. 흔히 2천~3천자 좌우로 유머, 풍자, 기지가 넘치는 문체로 인생의 한 단면을 짧고 재치 있게 표현하면서 소설의 묘미를 나타내는 쟝르라 하겠다.

때문에 세계의 대문호들은 단편소설창작에 게을리 하지 않았고 현실의 편린을 포착한 생생한 감각에 력사적, 사회적 스케일을 담은 단편명작들을 량적으로 남겨 수세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짧은 글 짓기에서 빼여난 기량을 보인 세계적인 작가들로는 모파상, 체호브, 오헨리 등이 있다.

앨리스 먼로가 닮았다고 하는 단편소설의 대가 안똔 체호브만 봐도 무려 600편의 단편소설을 세상에 남겼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매치의 선물”의 오 헨리는 오로지 짧은 소설을 닉애(溺愛)하여 “마지막 잎새”, “경찰관과 찬송가”등 300편에 가까운 잛은 소설을 남겼다.

하여 모파상, 체호브, 오 헨리는 세계 3대 단편소설 작가로 꼽힌다. 그외에도 도데, 뚜르게네브 그리고 헤밍웨이등의 작가들도 모두 짧은 소설에 심취하여 기꺼이 필봉을 바쳤다.

“로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헤밍웨이, 글을 집필할때면 한쪽 발을 들고 쓰면서 자신을 강압하여 간결한 문장을 지어 낸다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을 써냈다.

그의 번쩍이는 천재성을 보여준 그 일화를 보면, 어느 한 글쟁이가 헤밍웨이에게 내기를 요청했다.

"단 10개의 단어로 사람을 울리는 짧은 소설을 써내면 당신이 이기는겁니다."

이 얼토당토한 내기를 헤밍웨이는 단 6개의 단어로 이겨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그 소설은-

팝니다, 아기 신발, 한번도 신어보지 못한…

어쩌구려 어린 자식을 잃고 그 유품을 팔아야하는 신산한 부모의 처경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짧디 짧은 소설이였다.

여기서 유명 초단편소설 몇편으로 감흥으로 더 읽어 본다.

미국의 과학환상소설작가 프레드릭 브라운이 쓴 세상에서 가장 짧은 과학환상소설-
지구의 마지막 사람이 앉아 있는데 갑자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미국 “시대주간”에서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그물 (网)

세상에서 가장 짧은 현념(悬疑)소설-

남편이 아프리카로 사냥려행을 갔는데 안해에게로 전보가 왔다.

“남편이 사자에 물려 죽었음”
“시신을 보내시오”
하지만 도착한것은 사자의 시체였다.
“사자가 아니라 남편의 시신을 보내시오.”
“시신은 사자의 배속에 있음”…

세상에서 가장 짧은 황당소설-

길을 가던 빵은 지치고 배가 고팠다. 빵은 자신을 먹어 치웠다.

그야말로 기지와 위트가 번뜩이는 작품들이다.

단순하게 량의 다과(多寡)로만 장편과 단편이 구분되는것은 아니고 쟝르들이 어느것이 우위고 어느것이 하위인 우월의 관계가 있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대한 스케일과 복잡, 미묘한 사건의 전개로 오랜 시간 읽어야 하는 장편소설보다 단일한 사건전개와 결말의 반전, 단일한 주제가 주는 짜릿한 독서 쾌감은 짧은 소설만이 주는 독특한 맛이다.  


2
근년래 중국문단에서 짧은 소설은 거족의 발전을 해왔다.

중국에서 소설은 고대신화, 진나라이전의 우화(寓言),륙조지괴(六朝志怪), 당대전기(唐代传奇)、송원화본(宋元话本), 명나라 청나라의 장회(章回)체등으로 각 력사시기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해 왔고 그 단편가작들은 모래알처럼 이루다 헤아릴수 없이 많다. 사학가와 문학평론가들은 사실 포송령의 “료재지이(聊斋志异)”가 바로 짧은 소설의 전범이라 평하고 있다.

근년들어서도 이를 소소설(小小說)이라 지칭하면서 이에 투신하는 중국작가가 수천 수만명을 넘기고 그 전문간행물도 수백종을 넘긴다.

평론가들은 “이 20여년래 중국의 소소설 문학의 발전이 보여준 대중문화적 의의는 소소설로 하여금 현,당대문학사상 백화문이 나온 이래의 중요한 문학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높이 정평한다.

그에 편승하여 연변에서 꾸리던 중문판 “천지”도 일찍 재빨리 소소설 전문지로 탈바꿈하여 이제는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갖고있는줄로 안다.

하지만 타지역의 방흥미애(方兴未艾)에 비해 우리 조선족문단의 초단편소설창작은 내내 미온(微温적이다. 이 우수한 쟝르에 대해 망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조선족문단은 초단편소설에 대해 일찍 접해 왔었다. 80년대 조선족 간행물들에 호시 신이치라는 작가의 작품들이 적지않게 소개된적 있다. 일본추리소설붐이 일면서 모리무라 세이이치, 등 작가들에 곁들어 소개된 작가이다. 하지만 그 작가가 초단편의 대가인줄을 우리는 미처 다 알지못했다.

신이치는 현대 일본 대중문학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이름이다. 그를 일본문단은 “쇼트-쇼트”의 대가”라 부른다.

쇼트-쇼트(short-short)란 원고지 10매 안팎의 아주 짧은 소설을 일컫는 말이다. 꽁트보다 더 짧은, “마이크로(아주 작은것 또는 미세한것을 이르는 말) 픽션” 혹은 장편(掌篇)에 해당하는 형식이다.

호시 신이치는 1997년에 작고할 때까지 그런 쇼트-쇼트를 1000편 이상 발표했다. 일본에선 전집이 출간되고 작품들이 교과서에까지 실렸으며 그의 작품들은 세계 3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여 3000만부 이상의 판매부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작가들 하면 추리소설가들만 협애하게 기억하던 시기, 우리는 촌철살인(寸铁杀人)의 짧은 소설의 대가의 면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도깨비 축문 읽듯” 읽어 왔던것이다.

지금 우리 작가들중에 전문 짧은 소설 창작에 주력하는 작가는 전무하다싶이 돼버렸다. 한때 훈춘의 조은철, 료녕의 김군등이 초단편에 열성을 보여 수상도 하고 창작집도 냈었다. 하지만 두분 다 애닯게 일찍이도 타계하면서 초단편 전문작가가 아주 단절되여 버렸다.

3
길지않고 론리적이면서 매력 있는 콘텐츠가 더 필요하고 각광받는 시대다.

시간의 틈바구니에 치여 매일매일을 분망히 뛰는 현대인들에게 긴 시간과 끈기를 요구하는 장편 읽기보다는 단숨에 읽어 인생의 지혜를 얻고 지적 쾌락을 맛보는 단편 읽기가 더 우선시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문학을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아직도 세부 단위와 낮은것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문학뿐아니라 사회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온통 큰것만을 지향하는 일색이다. 큰것 위주로 굴러가는 이런 사회는 작은 단위에 의해서만이 진정 큰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는것을 모른다.

초단편소설에는 순발력과 재치가 있으며 정보를 얻기에 앞서 읽는 즐거움과 평안함이 있다. 길기만 한 무색무취의 글에 비해 간결속에 숨은 좋은 소재, 엄밀한 결구, 풍부한 함의 그리고 의외의 결말로 독자의 의표를 찌른다. 단숨에 읽힌다는 점에서, 쟝르의 격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초단편소설은 그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것이다. 글은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작품, 짧은 글에 핵심을 담으면서 촌철살인의 재치를 보여준 작품을 접했을때 독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작고 평범한 일상에서 번뜩이는 웅숭깊은 맛의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힘. 문학작품에서 독자들이 기대하는것은 그런 재치와 감동의 맛일것이다.

요즘의 작가들을 보면 “대망(大望)”에 빠져 장편에 과도한 기대를 가지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들 어느 정도 량적으로 작품을 내놓은 다음에는 호흡이 긴 장편을 쓰려는 은근한 심욕(心欲)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런 지나친 욕심, 혹은 부담감에 현혹되여 단편작품에 대해 홀시하는 경향이 보이며 때문에 급박한 그런 욕망으로 짜임이나 무게감이 미달인 장황설의 작품을 내놓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신진들보다는 중견작가들의 경우 근년래 긴 편폭의 작품, 혹은 타쟝르에 매달려 수년이 지나도록 단편소설 한편도 내놓지 못하는 작가들이 수두룩한 현상이 그 점을 말해준다.

평론가들은 “장편을 발전시킬 필요는 있지만 먼저 단편으로 탄탄한 내공을 갖춘 뒤 장편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단편의 재발견은 의미가 있다”고 모를 박는다.

이처럼 문학도들 그리고 작가들은 문학적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단편의 미학부터 닦아야 한다.

정작 나자신을 보면 여태 펴낸 소설작품의 목록을 작성하다가 스스로 놀란적이 있다.

100편에 가까운 다량의 소설작품중에서 중편소설이 단편보다 많았던것,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도 두, 세편을 제외한 외 거의 전부다가 중편이였던것이다.

짧은 글에 취약한것 같고 무얼 정리하려고 들면 한없이 길게 늘어진다. 잘 버리고 잘 비워야 청안한 법인데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은지 질질 끌고 꾸역꾸역 늘여놓기 바쁘다.
문학도의 초심으로 돌아가 초단편 습작으로부터 거듭나려 한다. 아 똘스또이의 “단편은 작가를 훈련하는 가장 좋은 학교”라는 금언을 명기하면서…

짧은 글에 대한 지론을 펼치다 또 긴 글이 되여 버렸다. 이만 차설(且說)하고 초단편 소설들을 련이어 선보인다.

  
김혁
장백산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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