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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밀짚모자
기사 입력 2013-06-08 21:50:52  

-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장편소설 “인간의 증명”

지난 여름, 한국행차를 했던 나에게 인천공항 터미널 책가게에서 대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 있었다.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인간의 증명”이였다. 이 작품이 한국에서 “로열 패밀리”라는 이름의 드라마로 번안되여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면서 30여년전의 명작이 다시금 출판된것이다.

공항터미널에서, 날으는 만메터 고공의 비행기우에서, 귀국해서 그날 저녁까지 수년전에 중문으로 읽었던 책을 다시금 독파해버렸다.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1980년대 연변독자들에게는 쟁쟁한 이름이다.
영화로 각색된 “인간의 증명”이 “추격”, “망향”등 일본 영화와 더불어 중국의 각 영화관에서 공전의 흥행을 보인것은 물론 조선말 잡지들 거개가 그의 단편추리소설들을 다투어 번역, 게재했었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으로 불리는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은 전체 판매 부수가 1억 4천만 부나 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초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중 그의 문명을 가장 알린 “인간의 증명”은 약 770만 부가 팔렸으며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하면서 “증명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영상과 문자로 익숙한 작품이였지만 낡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요즘 나오는 문체가 깔끔한 소설들과 비교해도 세련됨과 깊이가 느껴졌다.
  
도꾜, 어느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흑인 하나가 변사체로 발견된다. 죠니 헤워드라는 그 흑인의 죽음을 수사하기 위해 형사들이 총동원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낡은 밀짚모자와 “밀짚모자”라는 시가 실려 있는 시집이 수사의 곬을 이어준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도꾜경시청의 형사 무네스에 고이치로는 슬픈 과거를 간직하고있다. 어릴적 그의 아버지가 주일 미군이 릉욕하려던 어떤 녀인을 도와주려다가 미군의 폭행에 의해 사망했던것이다. 아버지덕에 위기를 넘기고도 아무말 없이 사라져 버린 녀인, 폭행당하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구경만하는 주변 사람들... 이 모든 장면을 목전에서 지켜본 어린 무네스에는 그 트라우마를 지니고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죠니 헤워드의 사건을 조사하면서 무네스에는 그 트라우마와 다시 한번 마주서게 된다.  

사건의 담당팀은 미국으로 가서 공조수사를 요청한다. 죠니 헤워드가 살던지역의 담당형사 켄이 일본 수사팀과 함께 이 사건을 파헤쳐나가게 되는데 무네스에는 켄의 손등에 새겨진 문신을 보고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폭행치사한 미군중의 한 명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무네스에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겨준 그 사건에 대해 가해자인 켄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반면, 교코는 국회위원의 안해이자 유명한 에세이작가로서 사회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엘리트이다. 하지만 사고만 치는 못난 아들의 뒤수습에 골머리를 썩인다.
  
사건수사가 계속되면서 여러 곳, 여러 인물들을 에워싸고 펼쳐치는 동시다발적 사건들의 중심에는 바로 그녀가 서있음이 밝혀진다.

자신 개인의 영달에 눈이 멀어 자신의 상처를 덧나게 하며 새로운 비극을 자초한 교코는 자신의 과거를 은유하는 초모자를 계곡에 던지고 자기도 함께 뛰여 내린다.

소설은 일본시인 사이조야소의 "모자"라는 시를 모티브로 창작되였다고 한다. 시에는 곡이 덧입혀져 동명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되였고 영화의 흥행과 함께 중국에서도 많은 가수들이 번안해 부를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소설속 주인공이 고히 간직해온 낡은 밀짚모자는 과거의 아픔에 대한 소장과 미래의 희망과의 교감을 은유한다. 그 모자를 잊고있고 버렸을때 소설의 비극은 은연중 시작된것이다.

저자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1933년 일본 사이타마 현에서 태여났다 대졸후, 몇년 간 호텔직원, 비즈니스강사로 전직하다가 미스터리 소설을 써보라는 잡지사 편집장의 권유로 처녀작 “고층의 사각지대”를 발표, 작품이 제15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스터리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후 “증명 3부작”으로 일컫는 “인간의 증명”, 청춘의 증명”,“야성의 증명”을 발표하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지위를 확고히 한다. 작품은 베스트셀러의 여세를 몰아 인차 영화로 만들어졌고 역시 흥행의 상승가도를 달렸다.

“증명 3부작”의 련이은 성공으로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1978년 일본국세청 발표 고액 소득자 작가 부문 최고에 오르기도 했다.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미스터리 분야에 그치지 않고 력사, 논픽션에도 필을 대였다. 1981년에는 일본 731부대의 만행을 폭로한 논픽션 “악마의 포식”을 출간하여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 작품은 지난세기 80년대 조선어로 번역되여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되기도 했다.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추리소설이 가진 메커니즘에 더는 만족할수 없어서 인간성에 천착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에 “인간의 증명”등 “증명 3부곡”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은 대중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순문학작품 못지않은, 외려 그것을 릉가하는 무게감이 있다.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쟝르가 그렇듯 작품에는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이야기 전반에 녹아 있다. 작품은 전쟁의 혼란을 딛고 일어나 고도의 경제성장의 기치를 올리던1970년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득달같이 도래한 물질문명의 성마른 소음속에서 인간성은 시들어가고 물질만능주의, 인간소외, 도덕적 해이와 같은 현대 사회의 병폐들이 일본전역에 괴질처럼 범람하기 시작하고 작가는 이러한 극단적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사회의 환부를 펜을 메스로 삼아 도려내고 보여준다.

정치인 남편과 명문학교 자제들로 리상적인 가정의 롤모델로 불리지만 치명적인 과거를 안고있는 녀인, 방황하는 명문가의 아이들. 불륜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 대기업사의 직원, 어릴적 받은 마음의 상처로 인간불신에 젖은 랭소적인 형사, 전쟁직후 일본에 주둔한적있는 미국인 형사 등등… 각양각색의 인물들과 그들이 안고있는 사회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여러 이슈들을 저자는 날카롭게 관찰하고 랭철하게 담아냈고 종국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으로까지 이어나갔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것은 인간의 내제된 “욕구”와 “본성”이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어두운 본성은 무엇인가?하는 묵직한 질문을 작품은 긴박한 스토리, 탄탄한 구성과 함께 던지며 인간들의 감추어진 어두운 본성을 드러내는 작업에 작가는 필을 아끼지 않고 있다.
  
복잡다단한 사건에 말려든 작중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명성에 대한 욕망, 사랑에 대한 갈망, 인간에 대한 련민, 죄의식의 두려움등등을 현념속에 풀이해 가며 왜 작품의 제목이 하필이면 “인간의 증명”인지 소설의 막장을 덮음과 동시에 수긍하게 만든다.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인간의 문제들은 지금의 사회에서도 엄연히 존재하고있다. 시대적 양상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선과 악이 공존하고 욕망과 리성의 대립하는 복잡한 인간성의 모습은 놀랍도록 지금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저자가 작품속에서 던지고 있는 질문은 지금의 사회에서도 유효하다.
  
때문에 작품은 오늘날 읽어도 위화감(违和感)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시대를 초월하여 누구의 마음에나 파문을 일으키는 보편적 메시지의 울림을 지니고 있기에 지금까지 시대를 뛰여넘는 걸작으로 독자들중에서 그 사랑을 주욱 이어올수 있었던것 이다.

작가에게 령감을 주고 작품의 모티브가 되였던 사이조 야소의 시 “밀짚모자”는 섬세한 감각과 아름다운 이미지를 표출해 낸 상당히 아름다운 시이다.
시를 첨부해 본다.

“밀짚모자”
사이조 야소 (西條八十)

어머니, 그 모자는 어찌 되였을까요?
그 여름 우스히에서 키리즈미로 가는 길에
계곡에 떨어뜨렸던 그 밀짚모자는요.
어머니, 그건 좋아하는 모자였어요.
저는 그때 무척 분했어요.
하지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는걸요.
어머니, 그 때 맞은편에서 젊은 약장사가 왔었지요.
짙은 남빛 각반에 토시를 찬.
그리고 주워주려 무척 애를 썼더랬지요.
하지만 도저히 주을수가 없었죠.
아무튼 계곡이 깊은데, 거기에 풀이 키 높이로 자라 있었는걸요.
어머니, 정말로 그 모자 어떻게 되였을까요?
그때 옆에 피여있던 산나리 꽃은 이미 시들어 버렸겠지요,
그리고 가을에는 재빛 안개가 그 언덕을 자욱히 덮어
그 모자 아래에서 매일 밤 여치가 울었을지도 모르지요.
어머니, 그리고 지금쯤에는
오늘 밤 즈음에는, 그 계곡에 조용히 눈이 내려 덮이고 있겠지요.
옛날, 반질반질 윤이 나던 그 이태리 밀짚모자와
그 안에 제가 써 놓았던 Y.S.라는 머리글씨를
묻어 버릴듯, 조용히 쓸쓸하게…


연변일보 201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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