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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화 선생의 삶을 듣는다(下)
기사 입력 2015-07-27 16:26:16  

중국 땅에서 평생동안 우리 노래와 가락을 지켜온 소리꾼  

향년 93세가 되는 중국 심양 소가툰의 신옥화 선생은 한민족의 혼이 깃들어 있는 전통국악의 대가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구술을 기초로한 일대기를  <동포세계신문>이 세 번에 걸쳐 연재를 한다.
[지난호에 이어]북만주에서는 8·15해방을 맞이하자 조선족 군중문예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는 남동생 신동석을 찾아다니다가 학교에 붙었고 1946년에는 참군시켜 군속이 되다보니 조직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때 목단강에서는 업여문공단이 성립되었는데 그는 매일 두 시간씩 참가하여 연습했고 한 달에 한 번씩 공연을 하여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그 시기 그는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있을 때였다. 원인은 결혼 후 그 해에 아이를 가졌다가 낙산한 후 다시 임신을 하지 못 하였기 때문이다.

목단강 업여문공단에 한동안 다니다가 조선 평양으로 가는 도중 심양에 도착하여 아는 사람의 만류로 인해 정착하게 되였다. 심양역전 앞에서 국수집을 하다가 9개월만에 돈 천원을 날려버리고 그만 두었으며 화평구 서탑 구시장안에 집 한 칸을 잡고 살게 되었다. 이틀이 안 되여 심양조선족문화관에서 “항미원조 군속 위안을 위한 8·15해방 경축공연”에 연출해 달라는 요청이 왔지만 냉정하게 거절하자 목단강에서 온 심양시 민위 임과장이 재삼 설복 요청을 해와 부득불 <사막의 어머니> 극의 주역을 맡게 되였다. 연출이 끝난 후 심양 민위 영도들은 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심양시 소가툰구 련맹촌에 있는 박륭웅과 결혼하였다. 있는 밑천으로 한족 기업가와 합자하여 다디미 공장을 꾸렸으며 이를 갈이 땅을 사서 농사를 했는데 무당 1200근의 수확을 올렸으며 벼 이삭 하나에 170알이나 열렸던 것이다. 남들이 3벌 김 매면 6벌 김매는 열성으로 얻은 결실이였다. 그런데 그는 평생 농사를 지을 팔자가 아닌가보다. 동북삼성 문예공연대회가 심양에서 열리면서 연변가무단이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였다. 조선족문화관을 찾아 민간 예인을 찾아 달라는 요청을 하였던 것이다. 심양 문화관의 추천으로 목단강에서 소학 교원을 하던 김성민 선생님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김성민을 잘 모르지만 그는 목단강시에서 신옥화의 연출을 보았기에 신옥화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농촌에서 조용히 농사를 짓는 것이 꿈이고 남편이 반대하여서 연변가무단의 요청에 답복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편지가 사흘이 멀다하게 왔고 사람이 일곱 번이나 찾아와서 하는 수없이 남편에게 2주 있다가 오마하고 연변으로 가게 되었다.

연변에 도착하니 귀빈을 접대하듯 모시는데 침실에 들어서니 침대도 이부자리도 새 것으로 갈아 놓은 깨끗한 방이었다. 그리고 처녀 한 명을 시중으로 시켜 세수물도 떠 오고 방도 치우는 분에 넘치는 대우를 하였다. 이튿 날 연변가무단 영도들이 찾아와 인사를 하였다. 과거 천하디 천한 매창녀가 이런 사람 대접을 받아 보긴 처음이였다. 연변가무단은 음악조, 성악조, 무용조, 화극조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예술 수준을 높이 제고 하도록 지도해 주십시요, 지금 화극조에서 춘향전을 하자고 하는데 선생님이 춘향역을 해도 좋고 또한 옛 풍속과 동작, 표현등 각 방면에서 지도해 줘야 하겠습니다. 음악조에서는 장구 치는 것과 가야금, 꽹과리를 배워 주시고 성악조에서는 노래(창)를 가르치시고 무용조에서는 무용동작을 가르쳐주십시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네 개 조에 두 시간씩 하루에 8시간을 지도하였다. <춘향전>은 6개현과 장백에까지 가서 순회공연을 하였는데 방송국에서 온다 어디서 온다하며 꽃다발이 계속 올라왔고 신문에 대서특필하여 보도 됐으며 연변일대가 들썽하였다.

2주일 있기로 하고 간 것이 한달 반 되어서 돌아왔다. 남편은 펄쩍 뛰면서 다시 안 보내려고 하였지만 단동에 있는 시형의 설복하에 다시 가게 되었다. 1956년에는 가무공연이 북경에서 열려 연변가무단은 1등상을 타고 돌아 왔다.

그 후 그는 연변예술학교가 성립되면서 “신옥화 선생님이 오지 않으면 예술학교 간판을 걸수 없다”고 까지 요청하기에 가서 고전 음악을 가르켰으며 각종 활동에 열심히 참가하고 교수하기에 노력하였다.

그 곳에 있는 동안 그의 스승 지만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신옥화를 보자 감격하여 “야, 너 여기 있었구나!”하며 하는 말이 “나 같은 전문가를 청할 것 뭐요, 여기 신옥화 같은 분이 있는데, 서도 남도창을 겸비한 전문가요.”하며 남도창을 겸비한 사람은 북조선에 임소양이 있고 중국엔 신옥화 밖에 없다고 높이 평가해 주었다.

문화대혁명 때 성분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돈화 산골 쌍두대대에 하향 갔다가 만 4년을 마치고 55세에 다시 연길로 올라 왔다. 조직에서는 그더러 마음대로 선택하라기에 남편의 아들이 심양소가툰에 있으므로 그리로 가겠다고 하여 다시 소가툰으로 돌아 왔다. <글=림호>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41호 2015년 7월 25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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