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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는 피고 천지꽃은 진다
기사 입력 2020-08-05 07:27:06  

어릴 때부터 익혀온 고향 사투리가 엄청 많지만 그중에서도 천지꽃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고향을 떠나온 지도 꽤 오래 되였지만  필자는 아직도 진달래라는 표준어 대신 천지꽃이란 방언을 더 자주 쓰고 있다.

꽃부데(함경도 방언 꽃봉오리)가 앉은 가지를 꺾어 물병에 꽂아두면 연분홍 꽃이 곱게 피여난다. 해마다 천지꽃이 필 무렵 전쟁터에 나갔던 아들이 돌아온다고 즐거워하시던 외할머니 그러다 때아닌 꽃샘추위가 들이닥치면 천지꽃이 죽는다고 락루(함경도 방언 눈물 흘리다)하시군 하였다. 몇해 지나 아들 사망통지서를 받은 후로부터 천지꽃이 피기 시작하면 고령군 개포리라는 큰아버지가 죽은 곳 지명을 입속말로 곱씹어 외우군 하시였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필자는 낙동강류역 고령군 개포리 땅 큰아버지 시신이 밝혀있는 곳을 찾았어도 울 수는 없었다. 세월을 돌이킬 수 없어서 혹독하고 슬플 수만 없어서 그저 처절할 뿐이다.

이 세상에는 향긋한 향기로 코끝을 간질이는 화려한 꽃들이 많고 많지만 유독 천지꽃이 내 맘속에 깊숙이 들어와 자리잡게 된 것은 어린시절이 꽃잎을 질근질근 씹어 단물로 배고픔을 달래던 추억만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숙성, 발효되여온 천지꽃이란 말은 알른알른 선인들의 체취가 묻어있어 살결처럼 따뜻한 체온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 삶이 붉게 타는 리유는 바람을 타고 배재굽이를 넘나들었던 투박한 함경도 토박이말 천지꽃이 필자를 한껏 붉게 물들여놓았던 까닭인가 본다. 그 옛날 화전 불길처럼 산언저리에 붉게 피여나는 천지꽃은 아스라하게 떠오르는 추억같이 옛이야기를 품고 내 살과 피를 파고들어와 꽃떨기가 싱싱하게 피여나있다. 춘하추동의 순환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섭리라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도리지만 주름이 늘어가도 천지꽃 이름만은 엄동설한에서도 맘속에 만발하게 꽃을 피운다.

천지꽃 이름은 ‘天指花’로 오랜 고서에도 기록되여있고 천지꽃과 사춘격인 철쭉꽃 이름과도 서로 소리가 닮아있다. 제주도 남부 서귀포지역에서는 진달래를 젠기꽃으로 말하여왔고 젠기꽃을 꾹꾹 눌러 만들어놓는 빙떡을 젠기라고 불렀다. 몽골어에서는 테를지( 特日乐吉)라 한자로 표기하는데 천지꽃 뜻과 음이 일맥상통된다. 천지꽃잎을 뜯어 말리우면 짙은 향기가 풍기여 함경도에서는 예전에 절에서 가루를 내여 향불로 피워왔었다. 만주어에서는 천지꽃을 ‘niyanci hiyan’(安楚香)라 표현하고 있다.

일찍 피고 일찍 지는 꽃의 시주팔자 탓이라 할가 천지꽃 이름은 우리 력사 여백을 메워주기도 하고 바깥세상과 이어주는 기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이제 바야흐로 우리 곁을 떠나 저 망각의 대안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진달래광장, 진달래마을, 진달래국수, 진달래비행장 이름은 다투어 피여나 장관을 이루고 있지만 천지꽃이란 말은 각종 행사는 물론 여러 방송, 신문, 서적에서도 그 자취가 사라진 지 오래되여 이제 두 눈을 비비고 샅샅이 뒤져서 찾아보아도 좀처럼 보기 힘든 사어로 되여버렸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이 세상에서 천지꽃이란 말을 쓰는 마지막 세대로 남아있는 가장 서글프고 고독한 세대일지도 모른다.

여러 줄기가 한데 어울려 무더기를 이루며 피여나는 천지꽃은 주로 뿌리로 번식하는 관목이다. 모든 꽃은 뿌리가 땅속에 박혀있으면 늦든 이르든 언젠가 꽃봉오리가 열리고 꽃이 피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열매가 달리고 씨앗을 퍼뜨린다. 허나 천지꽃 뒤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천지꽃 뒤에 남은 것은 그 옛날 물병에 꽂은 꽃처럼 시들어버린 메마른 추억 뿐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를수록 천지꽃 기억은 지워지고 그 우에 진달래 이름이 덧씌워진다. 진달래는 피고 천지꽃은 진다. 천지꽃에 대한 기억은 때론 블랙박스처럼 압축되고 저장되여있더라도 종당에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차츰 삭제되여갈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말의 변천사에서도 보듯이 언어의 생로병사 시집, 장가는 연변과 함경도 방언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식한 학자들에게도 연변과 함경도 방언이 외목(함경도방언 따돌림)에 나고 왜곡되여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천지꽃 이름은 물리적으로 만지거나 끄집어낼 수 있는 물체가 아니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특별한 계기가 생기면 아직도 깊숙이 저장한 기억들을 불러내와 우리 마음을 흔든다. 다른 꽃들을 볼 때는 건성이지만 유독 천지꽃만은 우리 맘속에 자리잡고 들어와 힘겹고 지친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 꽃잎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다.

천지꽃과 진달래는 동일한 꽃을 말하지만 천지꽃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진달래로 바라보는 풍경은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진달래는 피고 천지꽃은 진다.



허성운
연변일보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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