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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천진과 조선인 항일운동
기사 입력 2019-04-11 22:16:45  

2019년 올해는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한국의 경우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림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새중국창립 이후 중국은 개혁개방 40년을 거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세계가 주목하는 G2 강대국으로 급부상하였고 한국은 광복 이후 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한강의 기적으로 놀랄만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우리는 현시점에서 력사를 거슬러 오늘날의 새중국의 창립과 조선반도의 독립을 위해, 그리고 평화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피 흘려 싸워온 투사들을 되새기며 그들의 발자취들을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은 일제의 침략을 받았고 1910년 일제에게 국토와 주권을 강점당하여 식민지지배를 받게 되였다. 그러면서 수많은 조선인들의 중국이주는 독립투쟁을 목적으로 한 정치망명으로 이루어졌다. 동북3성을 비롯하여 상해, 북경, 광주 등 주요도시에 조선의 항일지사들이 모여들고 독립운동단체들이 결성되였는데 천진지역도 독립운동하기 좋은 장소로 지목되였다. 그 원인은 천진이 북방의 중요한 도시로서 동북과 상해의 철도, 도로, 수로교통이 련결되여있어 편리했으며 북경과 거리가 가까워 중국의 고층인사들과 소통하기 편리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국 조계지가 많아 일본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했으며 일본세력의 추종을 피하기 용이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천진지역에는 1919년 불변단(不變團)을 시작으로 여러 조선인 조직단체들이 활발히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변단과 의렬단(義烈團)이다.

불변단은 천진프랑스조계지에서 박룡태(朴龍太)를 중심으로 설립되였으며 대한민국림시정부의 지도하에서 은행을 습격하고 군자금을 조달하는 등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하였으나 독립사업이 잘 진행되지 못하였다. 박룡태는 1917년 8월 천진으로 이주해 남개학교 조선인기숙사 사감으로 있으며 불변단, 한민회와 같은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해 천진지역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명제세(明濟世)는 1910년에서 1912년 사이 천진지역으로 이주하여 무역상으로 생활하며 불변단의 결성에 간여하고 조직개편 후에는 부단장을 맡는 등 천진지역의 대표 독립운동가로 활약하였고 중국 항일운동에도 적극 협조하였다.

의렬단은 1911년 11월, 김원봉(金元鳳) 등 조선독립운동지사들이 길림시에서 암살과 파괴를 목적으로 한 반일비밀무장단체였다. 의렬단은 천진이 항일투쟁을 하기 좋은 유리한 지리적 조건임을 파악하고 1921년 활동중심지를 천진으로 옮겼다. 20년대에 많은 항일지사들이 천진의 의렬단에 가입하였는데 대표적으로 류자명(柳子明), 라석주(罗锡铸), 류종현(柳宗铉), 리우민(李愚民), 류석현(柳锡铉) 등 지사들이다.

한국에서 상영한 영화 <암살>(2015)과 <밀정>(2016)은 의렬단의 진실한 력사사실을 소재로 삼은 것이다. 2016년에 상영된 영화 <밀정>은 세계일보 김동진 기자가 쓴 책 <1923년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2010년)을 토대로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중심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의거는 천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며 천진에서 의렬단에 가입한 류석현은 3인 주인공중의 한 인물이다.

'황옥사건(黃鈺事件)'에서 주요인물은 실제로 의렬단 단원 김시현(金始显)이다. 거사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 일경경찰 황옥이 참여하게 되면서 '황옥사건'으로 불리게 되였다. 1922년 하반년부터 의렬단은 조선총독부를 포함한 주요통치시설을 파괴하는 계획과 총독 및 기타 요원들을 암살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들어갔다. 1923년, 일경신분의 황옥이 서울에서 천진으로 들어와 류석현의 소개로 의렬단 단장 김원봉을 만났다. 김원봉은 천진프랑스조계지 여남리(汝南里) 12호에 거주하고 있었다. 황옥이 천진에 온 목적은 자신의 일경신분을 리용하여 폭탄을 조선으로 가져가기 위함이였는데 그는 일찌기 김시현의 설복으로 의렬단 단원이 되였던 것이다. 김시현, 황옥, 류석현 등 의렬단원들은 김원봉으로부터 받은 36매의 고성능 폭탄과 5대의 권총을 안동(현 단동)을 거쳐 조선으로 운반하였다. 그러나 이 비밀이 일경에게 탄로나 몇개월간 고심한 거사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고 3명을 포함한 18명의 의렬단원들은 모두 체포되였다. 황옥사건이 실패한 원인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의렬단은 천진에서 '라석주 의거'도 기획하였는데 류자명과 리우민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참여하였다. 1926년 12월, 천진에서 중국군대 장교로 일하던 라석주는 서울 시내 중심가에 있던 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인들을 죽였고 동양척식주식회사에도 투척하였으나 불발하여 조선철도회사에 가서 일본인들을 저격하였다. 이는 일제 침략기관에 경고를 보내고 독립의지를 다시금 일깨운 의거였다.

다음, 천진에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중국혁명과 항일운동을 한 조선인들이 있었는데 이들로는 리철부, 김산, 주문빈 등이다.

리철부(1901-1937, 李铁夫)는 중공지하천진시위 서기를 력임했던 인물이다. 그는 함경남도 출생으로 조선에서 3.1운동에 참가하여 일제의 체포령이 내려지자 감시를 피해 1919년 4월 로씨야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왔다 그는 중국에서 조선독립기지를 세우고 싶었으나 쉽지 않음을 깨닫고 일본으로 건너가 류학공부를 하면서 비밀혁명단체인 공산주의연구회를 설립하였다. 1924년 대학졸업 후 조선에 입국하여 동아일보 기자 일을 하면서 1926년 레닌주의동맹에 가입하고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였다. 그러나 조직이 일제에 의해 해체되면서 1928년 다시 중국으로 망명하며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그는 중공중앙 조직에 의해 선후로 중공지하 북경반제동맹당위 서기(1931), 하북성의 선전부부장과 조직부부장(1932), 천진시당위 서기(1936)를 력임하였다. 1933년, 중국 왕명(王明)의 '좌'경 모험주의 착오로선이 살판치던 시기, 그는 잘못된 로선으로 화북당조직이 심각하게 파괴되여 혁명사업에 막중한 피해를 끼치는 것을 지켜보고 1933년 11월부터 1934년 2월초 사이, 《화선(火线)》하북성성위간행물에 10편의 문장과 의견을 발표하여 왕명의 '좌'경 착오로선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그의 이러한 주장들은 '철부로선', '취소주의'라는 비판을 받았고 당내로부터 '철부로선'을 반대하는 투쟁이 일어났으며 이로 하여 당조직과의 관계도 단절되였다. 1933년 5월 18일, 그는 국민당에 체포되는데 그해 7월에 보석출옥하였다. 1934년에 공산당 당적이 회복되고 당조직의 지시에 따라 천진 영국조계지에서 비밀리에 지하활동을 시작하였다. 조직에서는 적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중공지하녀당원 장수암(張秀岩)을 파견하여 위장부부로 동거하도록 하였는데 장수암의 공개신분은 남개중학교 교사였다. 그 이후, 이를 계기로 그들은 혁명적 인생의 동반자가 되였다. 명문가족에서 태여난 장수암은 가족의 십여명을 혁명의 길로 이끌었으며 그의 조카 장결청(张洁清)은 팽진의 안해이다. 1936년 봄, 중공중앙 북방지역 대표를 맡은 류소기는 친히 천진에 와서 당의 와요보(瓦窖堡)회의 정신에 근거하여 좌경로선의 잘못을 지적하고 정확한 로선을 지적하였다. 1937년, 리철부가 세상을 떠난 후, 1941년에 연안정풍을 거치면서 모택동은 "리철부동지는 영웅이고 호기가 있다", "화북당은 림시중앙의 모험로선에 대해 첨예한 반대의견이 있었는데 그 지도자가 리철부이다"라고 왕명 '좌'경로선의 착오를 지적한 그의 주장에 대해 고도의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김산[본명 장지락(張志樂)]은 평북 룡천 출생으로 공산당에 가입하고 중공북경시위 조직부장(1929)을 력임한 바 있다. 그는 천진 남개중학에서 공부를 하였고 북경과 천진을 오가며 지하활동을 하였다. 1929년 봄부터 1931년 말까지 2년여간 북경에서 지하활동을 활발히 진행하던 김산은 새로운 시련을 맞이하게 되였다. 그는 선후로 두 차례 밀정에게 체포되여 천진형무소에 갇혔다. 형무소에서 갖은 혹형을 당하였으나 끝까지 당의 비밀을 고수하였다. 그에게서 무엇도 알아내지 못한 일본경찰은 두번 모두 석방시켰는데 이는 당조직의 의심을 받게 되였다. 석방 후 그는 고향에 잠시 머물다가 중국 연안을 찾아갔으나 당에서는 그의 신분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는 항일군정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도중 1937년 중국 연안에서 님 웨일즈와 만나게 되고 님 웨일즈는 20여차례 인터뷰한 내용을 1941년 미국 뉴욕에서 《아리랑의 노래》로 출간하였다. 1938년, 김산은 강생에 의해 ‘일제간첩’이라는 루명을 쓰고 처형되였다. 1983년, 당에서는 45년만에 김산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명예와 당원 자격을 회복시켰다.

주문빈(1908-1944, 周文彬)은 기동(冀东)지역당위 서기를 력임하였다. 주문빈은 평안북도 의주출생으로 1914년 6세 때 독립운동하는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그의 집에는 아버지 김기창(金基昌)을 찾아 리철부, 김산 등이 자주 오군 하였는데 주문빈은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1926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항일로동자운동을 지도하고 항일무장근거지를 설립하는 등 일련의 항일투쟁활동을 하였으며 기동지역과 천진의 계현(蓟县), 보저(宝坻), 녕하(宁河), 무청(武清) 지역의 전투에서 희생되였다.

그 다음, 천진에서 학생신분으로 항일의식을 고취한 조선인으로 김염을 들 수 있다.

김염(1910-1983, 金焰)은 중국영화력사상 영화황제로 불린 영화배우이다. 김염은 한국 서울 출생으로 1912년 2세 때에 독립운동가이자 한의학자인 아버지 김필순(金弼順)을 따라 중국 통화로 이주하였다가 흑룡강 치치할로 이주하였다. 치치할에서 한약방을 꾸린 아버지가 일본간첩에게 독살당하면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김염은 1919년부터 1927년 사이 8년간 천진 북양대학(현 천진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고모부 김규식에게 맡겨지며 남개중학을 다니게 되였다. 주은래가 다니던 남개중학에서 그보다 5살 우인 김산을 알게 되였고 필수인 연극과목에서 조우(曹禺, 중국극작가), 손유(孙瑜, 영화감독) 등을 만나 함께 항일연극공연을 하군 하였다. 천진에서의 8년은 김염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항일영화배우가 되기 위한 중요한 기초를 닦는 디딤돌이 되였다.

김염은 1929년 영화 <풍류검객>을 통해 데뷔하였으며 1934년 <대로>를 출연한 이후로 항일영화 40여편을 찍었다. 그가 주연한 영화중 <장지릉운(壮志凌云)>은 일제가 향항을 점령하였을 때 가장 먼저 필림을 없애버린 작품이였다. 일제가 상해를 점령하고 김염에게 제국주의영화의 촬영을 강요하였을 때 "기관총으로 나를 겨눈다 해도 그런 영화는 찍지 않을 것이다. 예술이 사회에 이바지해야 하며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 힘이 되여야 한다”며 단호히 거절하였다. 영화감독 손유는 "김염의 영화 속에는 나라 잃은 조선인의 심정이, 일제에 저항하는 그 심정이 고스란히 투영되어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의학계의 항일운동가 김현택과 임숙을 들 수 있다.

김현택(1904-1990, 金显宅)은 중국현대종양의학의 창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한국 서울출생으로 중학시절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중국에 있는 형을 찾아 1919년에 이주하고 1930년에 중국국적에 가입하였다. 1931년, 미국뉴욕주립대학 의학박사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돌아와서 1933년에 국내최초로 종양학과를 북경협화의학원에 설립하고 중국현대종양학과의 제1연구자가 되였다. 그 당시 종양학과는 세계적으로도 30년대초에 설립하고 있었다. 사업의 수요로 1942년부터 천진에서 근무하게 되며 1990년까지 48년간 체류하였다. 1945년, 김현택은 일본군이 진황도에 퇴각하면서 군의사가 모자라 자신을 데려가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주로 피난간 적이 있다. 학생시절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그는 나라를 빼앗긴 일제를 위해 일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임숙[1922-2011,任叔, 본명 김보배(金宝培)]은 천진시 간호학교 교장직을 력임하였는데 김현택의 조카이다. 1943년, 하북 보정의 팔로군에 가입하여 혁명활동을 하였고 1945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임숙은 국민당통치하의 간호사학교를 인수받아 재빨리 학교질서를 회복시키고 학교를 확대시키는 등 천진의 간호사교육사업 발전을 위해 공헌을 하였다.

식민지백성이라는 멍에를 쓰고 조선반도에서 중국 땅으로 건너와 중국혁명과 조선독립을 위해 천진지역에서 싸워온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그들의 혁명이야기는 처절하고 씩씩하며 슬프고 비장하기까지 하다. 드높은 신념으로 밝은 미래를 확신하며 장기적인 항일혁명투쟁을 하여온 그들의 일생은 보람차고 휘황한 일생이였다.

해방과 광복이 찾아왔음에도 리철부, 김산, 주문빈, 라석주는 젊은 나이에 아스라이 이슬로 사라져 그 희열을 만끽할 수 없었다. 조선반도의 광복을 맞아 박룡태, 명제세, 김원봉은 조선반도로 귀환하였고 김현택, 김염, 임숙, 유자명은 중국 땅에 남아 중국조선족이 되여 새 중국 건설사업에 공헌하였다.

현재까지 라석주, 명제세, 김원봉, 유자명, 김염, 김산, 박용태에 대한 연구와 평가는 어느 정도 이루어져왔지만 지역학적 의미로서의 더욱 깊이 있는 연구가 요구된다. 그리고 리철부, 주문빈 등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편인데 중국에서 아직 발굴이 되지 않은 조선인 혁명운동가들에 대한 기초작업으로서의 자료발굴과 더불어 폭넓은 연구가 과제로 떠오른다. 이는 중한 학자와 정부 차원에서의 공동의 작업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디지털 네트워크가 발달한 문화산업의 시대, 핵심적인 경쟁력은 콘텐츠에 있다. 이미 연구된 영웅들의 이야기는 홍보를 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의렬단의 실제 력사사실들이 소설화되고 영화화되여 홍보되듯이 이미 력사적으로 규명된 조선인 항일투쟁 력사이야기는 체계적인 문화기획과 콘텐츠 작업이 이루어져 립체화된 형상과 사건들로 재현되고 복원되여야 한다.

중국이 새중국 창립 70주년을 맞이하고 한국이 림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량국이 할 일은 많다. 력사는 흘러간 과거이지만 오늘에 비춰진 모습이고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미래를 제시하는 라침판이고 희망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록을 통해 력사를 재현하고 그 속에서 불멸의 공훈을 세운 선렬들을 기념하고 기억해야 하며 치렬한 혁명정신을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천진시조선족련의회편, 《천진조선족력사자료집》, 내부발행, 2018.12
양지선, 《천진한인사회연구(1910-1946)》, 복단대학교 박사학위론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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