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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부모님들과 황혼의 재혼이야기
기사 입력 2018-05-05 16:14:09  

아래 층 85세 할아버지가 부인이 세상 뜬 지 불과 몇달만에 새장가 드셨다. 결혼등기는 하지 않고 그냥 함께 지내는 조건으로. 상대는 퇴직금도 없고 집도 없이 형편이 어려운 아들만 둘을 둔 76세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녀 8남매에 퇴직간부라 집도 있고 돈도 좀 있는 것 같다. 자녀들은 만장일치 찬성이란다.

필자의 76세 친정엄마. 어쩌다 한번 불참하면 큰일이라도 생기듯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동창모임. 무뚝뚝하고 애교 없고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래서 혹시라도 방애될가 전화 한통 하기도 주저되는 딸보다 허물없는 60년지기 친구들이랑 보내는 시간이 더 즐거워서 매주 일요일마다 한달음에 달려가시는 그 모임에는 할머니 여섯분과 할아버지 네분이 계신다. 그중 부부이신 두 분을 빼면 할머니들은 모두 혼자 살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할아버지 세 분은 똑같이 상처후 재혼했다.

그 밖에 얼핏 둘러보아도 쉽게 잡히는 주위의 친구, 동료, 이웃, 친척지인 1, 2, 3… 그 부모님들의 재혼이야기.

1980년대 중반 딸 넷만 내리 낳은 ‘죄’로 남편앞에서, 그리고 시집에서 평생 기를 펴지 못하고 사셨던 외할머니가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시자 아들 맞잡이로, 문화혁명전 대학생으로 출세시킨 둘째딸 집에 내키지 않는 발길을 옮기셨던 외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직설적이고 빠른 경상도 사투리만큼이나 성격 또한 강직하고 불 같았던 외할아버지셨지만 사위가 집에 들어올 때마다 누웠다가도 황급히 일어나셔서 맞이할 정도로 당신께는 더없이 죄스럽고 불편하기만 했던 몇개월의 동거생활. 그런 외할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새 로친을 해서 원래 살던 촌으로 돌아가겠단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그날의 엄마의 애원 섞인 '포효'. 딸 망신시킨다고, 남사스럽다고, 절대 안 된다고… 결국 일년뒤 외할아버지의 의사대로 새 외할머니를 맞아서 떠나가셨지만 우리 집만 유별난 게 아니고 그때는 다 그랬던 것 같았다. 혼자 남으신 부모님을 한 집에 살면서 모시는 것만이 효도하는 것이며 년로하신 부모님의 재혼은 자식 망신이요, 불효이며 부모님 자신에게도 체신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완연히 달라진 우리네 인생황혼기 재혼풍속도. 배우자를 먼저 잃은 남성로인은 당연히 새로운 배우자를 찾을 것이라는, 찾아드려야 한다는 이 분위기는 무엇이며 과연 그냥 그것 뿐인 것일가.

섣부른 한두마디로 뭉그려서 말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사연과 모양새를 갖춘 우리네 부모님들의 저마다 색다른 재혼이야기들이지만 지금은 대개 이런 것 같다.

"열 효자보다 악처"라고 거동에 큰 불편함이 없고 일정한 경제력을 지닌 남성로인들은 배우자와 사별할 경우 재혼을 선택하는 비률이 높은 반면 “늘그막에 제 한몸 거두기도 귀찮은데 무슨 눼 영감 뒤치닥거리까지…”라며 자유로운 혼자의 삶을 고수하는 녀성로인들. 그리고 부모로서 별로 해준 게 없는 것만 해도 미안한데 여러모로 여유가 없는 자식들의 짐까지 돼버리면 더구나 랑패라는 마음에 마지못해 재혼을 선택하는 녀성로인들. 남성에 비해 긴 녀성의 평균수명 때문에 녀성로인의 수가 더 많아서인지 우리가 체감하는 대다수 남성로인의 재혼과 그에 대조되는 많은 녀성로인의 혼자살이.

그만큼 오늘날 우리네 황혼재혼의 상당수는 신체적인 보살핌을 수요로 하는 남성로인과 안정된 생활기반을 갖추지 못한 녀성로인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종의 교환관계이기도 하다.

어쩌면 당장 죽고 못사는 젊은이들의 렬화와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보다는 덤덤하면서도 편안하게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 할 '동무'로 서로 의지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각자 필요한 것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생'과 '호혜'의 원칙이 작동하는 우리네 부모님들의 담담한 재혼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황혼의 재혼은 필경 그 이전의 수십년이라는 긴 세월 각자 다른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의 결합인 만큼 감정의 련결고리가 지극히 취약하며 량쪽의 자녀를 비롯한 복잡한 인간관계 및 전 배우자와 함께 쌓은 소중한 추억과 재산 등 풀어나가야 할 유형·무형의 과제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서두의 아래층 할아버지처럼 법적인 등기를 하지 않고 그냥 함께 생활하거나 집, 현금 등 재산을 미리 자녀 앞으로 돌려놓는 등 방식으로 재산분쟁의 소지를 아예 제거해버리는 사례들이 적지 않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자녀들로부터 부모의 재혼에 대한 저애나 반대를 불러오기 일쑤다.

이와 같이 젊은날의 초혼과 달리 황혼의 재혼은 성인자녀가 막강한 결정권자로 작용한다. 황혼재혼이 더 이상 허물이 되지 않는 오늘날, 막무가내의 반대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사별한 부모에 대한 애달픈 추억 혹은 재혼상대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으로부터 부모의 재혼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자녀들이 적지 않은 만큼 그들과의 관계처리 여하가 행복한 재혼의 중요한 변수로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생물학적 부모자녀관계에 동등한 친밀감 혹은 책임·의무감을 막연하게 기대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또 실제로 자녀들의 지나친 간섭이나 부모의 허망한 기대로 인해 심각한 모순과 갈등을 겪고 심지어 파탄으로 종결짓는 황혼재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황혼의 재혼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못이기는 척’ 묻어가면서 '효도'도 할 겸 ‘거추장스럽고’ 힘든 신체적 보살핌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부모님 특히 아버님의 재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고약한’ 자녀들도 적지 않은 현실이다. 자식으로서의 권리와 리익을 챙기는 데만 눈이 먼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황혼의 재혼은 부모에 대한 책임과 의무로부터 요령껏 도피하는 일개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재혼생활의 또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당사자간의 정서적 뉴대와 신뢰관계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결혼은 인생대사다.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의 주위를 살펴볼 때 재혼 특히 황혼의 재혼에 있어서 초혼만큼의 신중함과 진지함 그리고 도덕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거나 크게 결여되여있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재혼부부 특히 남성로인과 자녀들은 경제력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부터 재혼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생략한 채 그냥 '보모'정도로 취급하고 조금만 내키지 않거나 '보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 경우 일방적으로 재혼의 종결을 선언한다. 그래서 몇번이고 너무 쉽게 '새장가'를 드는 남성로인들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존경해야 할, 존경할 만한 할아버지들이여야 하기에 그런 모습들이 더 슬프고 아프다.

꽃다운 청춘시절 처녀총각으로 만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알콩달콩 살다가 ‘남편 먼저, 안해가 뒤따라’ 지는 만큼 아름다운 결말은 없겠지만 인생의 끝은 사람의 의지만으로 안되는 것.

조선족사회에서 황혼의 재혼이 떳떳해지고 급속한 증가세를 보인 지 이제 얼마 안된 만큼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역시 많이 서툴고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부모님이 아프면 가족이 아프고 가족이 아프면 사회가 아프다. 하루 빨리 성숙한 황혼재혼의 바람직한 모델구축을 실현함으로써 우리네 부모님들이 행복하고 우리네 가족이 건강하고 우리 조선족사회가 건전한 모습을 보고 싶다.


리화        
인민넷 201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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