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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그리운 이 겨울에
기사 입력 2018-02-19 06:14:02  

진달래의 꿈 음악회 수감록

눈이란 눈은 다 남으로 몰려갔는지, 겨울내내 큰눈을 볼 수 없어 갑갑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요즘 나는 근사한 음악회를 만나 진한 감동의 순간을 경험했다.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회원대표대회를 계기로 열렸던 새해맞이 진달래의 꿈 중국조선족음악회가 가슴에 파문이 일게 했던 것이다.

사람은 기후환경-자연 기후 문화 기후-에 민감하다. 겨울엔 눈이 내려야 제격이 듯이 문화 기후, 생태도 균형이 잡혀야 살맛나련만 근황을 보면 문화생활 불균형현상이 심한 편이다. 각종 노래교실이나 가두 광장무대, 골목 집단춤 같은 대중오락이야 그런대로 활발한 편이라고는 하나 예술감상이 가능한 공연 소식은 희소하고, 외지 공연단의 발길이 끊긴지도 이슥하다. 마음에 드는 매체 예술프로도  흔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음악회라서 나의 관심이 촉수를 높였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새해 음악회는 형식이 구전하고 출연진이 출중하고 프로그램이 격을 갖추어 장내 청중은 흡족한 표정이 력연했다. 오랜만에 네모꼴 TV화면이 아닌 립체적 현장의 지근거리에서 유명 예술인들의 재능을 감상하며 자랑과 긍지를 느꼈을 터이니 그들의 가슴인들 어찌 후련하지 않겠는가. 공연장으로 가면 이렇게 즐기는 한편 반갑게 만나서 담소를 나누는 것도 문화적 삶의 일경이건만.

나 역시 오랜만에 본격적인 현장음악의 정취를 느껴보는 감회가 깊었다.

또 한번 테너 김영철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어서 기뻤다. 절절한 자연사랑, 고향애를 담은 권태성의 가곡을 맑고 매력적인 음색으로 부른 그의 탄성있는 노래는 한결 여유가 있었고 그 다져진 가창 세련도로 보아 완숙기 성악가의 모습이 아닐가 싶기도 하였다. 젊은 바리톤 김학준은 자석처럼 마음을 끄당기는 독특한 음질과 풍성한 성량으로 장엄성이 깃든 박학림의 가곡선률을 열창하면서 독창가수로서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화려한 장식음을 구사하며 콜로라투라(花腔) 소프라노식의 고난도 기교를 넉근하게 소화한 화춘옥(김기철의 독창곡), 황매화(허원식의 성악협주곡)의 출연은 그 청아한 음성, 숙련된 정서 파악, 남성방창과의 유기적인 화답이 돋보여 음악회의 인상깊은 광점으로 남았다.

민족적인 정서와 률동이 잘 우러난 김호윤의 장새납독주(김승길 작곡)는 다시 들어도 흥겹고 정다운 인기프로다왔고 민족고유의 가락이 심금을 울리는 민악8중주(박학림 작곡), 그리고 여유롭고 세련된 솜씨로 경쾌한 민족적 리듬, 축제분위기의 악상을 멋지게 살려 낸 김휘의 바이올린독주(권길호 작곡)는 만장의 박수갈채를 자아냈다.

그뿐이 아니다. 정감의 폭과 깊이로 청중의 감성과 지적 상상력을 한껏 고조시킨 박서성, 우영일과 김해연의 관현악, 최창규의 명상곡, 안국민의 수상곡을 망라한 교향곡 연주는 음악회에 사색을 자아내는 중후함을 실어주면서 우리 음악가들의 창조력과 연주실력을 과시하였다.

그중 박서성의 관현악 “화랑”은 민족악기가 가미된 관현악에 민요가수의 전통적인 소리(무가사)를 도입한 이채로운 신작이였는데 그 사람악기 쏠로는 기발하면서도 우미로와 관현악은 새해맞이 음악회라는 큰 유화 화폭 속의 홍일점이였던 셈이다.

선뜻 다가온 고속철시대, 세계화시대에 보여준 시각적 전환도 눈길을 끌었다. 이번 음악회가 연변교향악단을 주축으로 유능한 지휘가 권태성을 비롯한 심양, 북경 등 국내 유수의 작곡가, 성악가, 연주가들이 가세해 지역적인 한계를 초월한 대규모 예술인재 조합과 눈뜨이는 연주력 향상을 이뤄낸 점은 변화된 환경에 걸맞는 음악회의 또 하나의 특점이라 하겠다.

이른바 범오락화의 편향으로 인해 사회 “문화적 수준의 일반적 저하”(러셀)가 심히 우려되는 와중이였기에 지적인 기쁨 창출에 주안점을 둔 이번 수준급 음악회는 주최측과 주관단위 그리고 우리 예술인들의 예술진로 개척의 참신한 각오와 선언으로 읽히여 흐뭇했다. 그 선언은 또한 고급한 예술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대변한 것이기도 해 나에겐 큰 위안으로 안겨왔다.

타지 극장 조건(확성기에 의뢰)이 미흡했던 점, 음악의 강약조절을 망라한 앙상블의 아쉬움, 음향조절의 흠결 등 미진한 점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고, 번마다 프로설계에서 우리 음악작품에 대한 애정에 비해 세계 경전작품에 대한 배려가 아쉬운 점도 재고가 필요한 대목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주최측과 예술인들의 보급과 제고, 유희오락과 본격예술에 대한 균형감각이며 세련된 감성과 지성, 건전한 쾌락의 세계를 향한 그들의 순수한 리상과 의지이다.

마작놀이가 길어지면 독서시간은 줄어든다. 독서를 하더라도 3류의 책만 읽으면 무지에 머문다. 사막이 늘어나면 전답과 초지는 밀린다. 예술의 도시들에서는 동란이 일어도 극장은 무전성시라고 하고 일개 택시기사마저도 당지 악단 악사들의 이름을 줄줄 외울 정도라는데 우리 고장에서도 예술인들의 새해 각오, 선언처럼 푸른 오아시스와 무연한 문화록색지대를 만드는 노력에 끊임없이 박차가 가해졌으면 한다.

원고료 인상을 비롯해 문화계에는 정책 면의 귀맛 좋은 소식들도 들린다. 연변가무단에 젊은 지휘인재가 영입되고 특히 듣던 중 희소식인 새 극장건설도 문화사업회의 지도자 연설에서 공표된 상황이라 예술인들은 공명이 좋고 확성기가 불필요한 활무대에 설 기대에 부풀 법도 하다.

프루스트의 바다 례찬은 유명하다.

“바다에서는 모든 것이 보다 신비롭다. 인가도 나무그늘도 없는 바다의 소박한 들판우에 고요히 떠있는 하늘이라는 거대한 촌락의 그림자, 정처없는 나무가지구름이 펼치는 그늘까지도 신비롭다.

“바다는 우리의 상상력을 새롭게 한다. 그것은 바다가…… 우리의 령혼을 향유하게 하기 때문이고 원래 바다란 것이 무한하고 무력한 갈망이요, 끊임없이 추락에 상처입는 비약이며 감미로운 영원의 탄식인 까닭이다.”

여기서 만약 프루스트의 “바다” 례찬을 “음악” 례찬으로 치환해 보면 어떨가. 신통하게도 바다의 신비와 음악의 신비가 일맥상통함을 금방 알 수 있다. 하나는 액체형태로, 하나는 소리로라는 차이는 있어도 무한하고 무력한 갈망, 추락과 비약이 낳는 감미로운 영원의 탄식, 그 신비성의 본질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평소에 쿨쿨 잠 하나만은 잘자는 나건만 음악의 신비한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를 않아 공연 그날은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눈이 그리운 겨울 막바지 고요한 밤.

잠 못 이룬 나는 분명히 장엄한 “경축서곡”이, 경쾌하고도 조약이 심한 왈쯔풍의 성악협주곡이 어딘가로부터 울려오는 것만 같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것은 명상곡 “봇나무”의 감미로운 선률이거나 인류의 근원적인 동심이 동기가 된 기상곡 “나의 살던 고향”의 여운일 수도 있다. 그렇잖으면 정확히 그것은 갈망의 무한과 무력, 인생의 추락과 비상이 교차하는 변화다단하고도 달고쓴 세상 그 자체의 소리이리라.

비몽사몽간에 나는 방불히 오아시스가 보이고 간혹 사막 모래바람이 이는 것 같기도 하였다. 간간히 개울물소리도 들리고 개울을 넘어 다시 사막과 오아시스를 지나 어딘가로 자꾸만 가는 것 같았다.

아마도 우리는 결연히 가야 할 것이다. 뜻이 있는 자에겐 길이 있고 길 떠난 자에겐 성취가 뒤따르리니……


장정일
연변일보  201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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